늦은 후기네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을 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김수영).

  <머리>로도 살지 않고 <심장>으로도 살지 않고 오직 <온몸>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에 필경 수반될 위험과 두려움을 피할 수는 없을까. 온몸으로 밀고 나가기, 즉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반항은 논리의 비약을, 합리성 너머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반항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광기는 성장과 함께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세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실천이 성공적일지 확신할 수 없고 확인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실천이 타인에게 우리의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면 될수록 우리는 위험한 운명에 인질로 사로잡힌다. 결국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란 불확실성의 바다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불확실한 삶이란 불안하고 불쾌하고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에 관하여 확신에 차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확신을 경계하며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우리의 태도를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말처럼 사물의 본성의 핵심에는 모험하는 청춘의 꿈이 있으며, 그러한 모험은 아름다움이라는 완전성을 향해 비극을 감내한다. 모험은 우리에게 비극적인 서사가 모든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동시에 비극은 우리 자신의 희망이란 좌절되기 마련이라고 가르쳐줌으로써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만든다. 그렇다면 김수영의 말처럼 “자유의 이행”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바로 지금 이 순간에―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하지만 그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그도 우리도 희망을 품은 모험과 희망이 좌절되는 비극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다만 우리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반항으로 되도록 만드는 것 외에는 없다. 끝끝내 헛된 것으로 마침표를 찍더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모험을 감행해야하는 셈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가려한다면 생의 방향성과 목적지를 스스로 찾고 또 찾아야만 할 것이고, 특히 방황하는 개인들이 많아지는 요즘에는 온몸으로 사는 것이 대다수의 운명이 되어가는 시대일 것이다. 김수영은 이를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불온한 것”이라고,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참으로 바른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한 인간의 삶이란 희망의 모험이다. 그 과정상에서 마치 직업으로서의 예술가가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우리 각자는 삶의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독특한 삶이라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방에서 실천하는 ‘반항’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절망만을 보게 되는 반항일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반항은 시지프스의 절망적인 노동만을 떠올리게 하며 결국 그 절망적인 고통에 짓눌려 무의미와 죽음만이 유일한 해방구로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삶의 예술가들은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안다. 그러나 분명 우리에겐 타인에게 내어줄 자리 하나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네가 나에게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 하나쯤 내놓는다면, 이때 비로소 자폐적이고 파멸적인 행위가 반항의 행복으로, 진정한 실천으로 변화할 것이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김수영의 생각처럼, 모험이 수반하는 실패와 무의미와 죽음이라는 비극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조건으로 고통 받는 타인에게 눈을 돌리고 돌보기. 반항으로, 저항으로, 반란으로, 혁명으로 나아가지만 타인의 아픔이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기. 즉, 희망을 의무로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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