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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원한에서 가책까지

 

 

1. 반작용과 원한

반동적 힘들은 작용을 분열, 지체,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능동적 힘들은 창조가 분출되도록 만든다. 원한은 반동적 힘들이 능동적 힘들을 이기게 되는 유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향 받길 중단하는 방식으로만 승리한다.

 

2. 원한의 원리

반동적 장치의 두 체계인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 반동적 무의식은 기억의 흔적에 의해 항구적 자국이다. 의식은 반작용이 ①현재 흥분이나 대상의 직접적 이미지에 대한 반작용이 되기 위해, ②흔적들에 대한 작용이길 중단하는 체계이다. 의식의 기원, 본성, 기능은 단지 반동적이다, 그래도 의식은 반동적인 고귀함이 존재한다. 무의식의 흔적들은 의식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대표로 위임된 능동적 힘은 의식을 뒷받침해야 하고 매순간 그것의 새로움, 유동성, 가볍고 동적인 화학적 요소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이러한 초-의식적인 능동적 능력은 망각 능력이다. 만약 망각의 능력이 쇠약해진다면 흥분은 무의식 속에서의 흔적과 혼동되고, 반대로 흔적들에 대한 대응은 의식위로 올라와 침투한다.

 

3. 원한의 유형학

이러한 원한이 왜 복수심인가? 원한의 인간은 수용된 흥분의 힘에 집중하기 위해서만 주체 자신의 전체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행위 할 수 없고, 자극에 반응할 수 없다. 그의 반작용은 해결을 보지 못하고 행위를 대신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반작용은 대상이 무엇이든 복수하는 대상으로서 비난한다. 원한의 인간은 그에 미치는 영향을 공격으로 체험한다, 그에게 미와 선은 고통이나 불행처럼 난폭하다, 원한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이다. 그는 외부에서 오는 새로운 자극이 그 안에서 얼어붙는 의식의 경화증에 걸려있다.

 

4. 원한의 특징들

①감탄할 수도, 존경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무능력 - 흔적들의 기억은 증오심으로 가득차 있다. 기억의 반추동물인 사람은 자신을 비난함으로 미움을 위장한다. 원한의 인간은 원인들을 비하하고 불행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삼는다, 그와 반대로 귀족적 존중은 불행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능력 ②<수동성>- 원한에 있어서 행복은 마약, 마비상태, 휴식, 평화, 안식, 정신과 신체를 위해 긴장을 푸는 수동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③잘못의 전가, 책임의 분배, 영원한 비난, 복수심, 앙심, 나약함 ↔공격적인 파토스(경향)의 강함. 원한의 인간은 자신을 선량하게 생각할 수 있기 위해 타자들이 사악한 존재이길 원한다.

 

5, 그는 선량한가? 그는 악의가 있는가?

주인의 정식은 “나는 선하다 그러므로 너는 악하다” 능동적 인간은 다른 자와 비교하지 않고, 행동들과 업적들을 초월적 가치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는 행동하고, 긍정하고, 즐기는 내적 특징을 가진다. 그러므로는 단지 긍정의 결과로서 상정된다. 품위는 저속하고 천박한 것과 대립시키면서 최고의 서열에 있다. 공격성은 부정적적인 것이지만 긍정적인 전제들의 결론으로서의 부정적인 것이다. 니체는 원한과 공격성을 구별한다.

노예의 정식인 “너는 악하다 그러므로 나는 선하다” 부정적인 것이 본질적인 것을 구성하고, 긍정적인 것은 부정에 의해서만 현존한다. 원한의 인간은 자아를 주장하기 위해 비-자아를 대립시킨다. 노예의 정식에도 가치들이 창조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악으로 상정하면서 시작한다. 그래서 선이 되는 자는 이제 모든 행위들을 신적인 제3자의 관점에 결부시킨다. 좋음과 나쁨은 도덕적 판단에 의해 선과 악으로 태어난다. 선과악은 새로운 가치지만 행위 함으로써가 아니라 물러남으로써, 긍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정과 함께 시작됨으로 창조된다. 이러한 가치는 삶에 대한 증오,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것에 대한 증오를 숨기고 있다. 노예는 주인은 악하고 자신은 선하다고 보면서 복수를 한다.

 

6. 오류추리

원한의 오류추리는 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서 분리된다는 허구에 근거한다. 이 허구 덕분에 반동적 힘들이 승리한다. 반동적 힘은 힘들의 관계를 전복시키고, 능동적 힘들에 대립해 우월한 것으로 표상한다. 원한에 있어서 반동적 힘들은 힘을 중립화, 추상화시키고 행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상상한다. 허구란? ①인과성의 계기; 동일한 현상을 원인과 결과 ②실체의 계기; 주체 속에서 문법적 허구 ③상호결정의 계기; 중립화된 힘의 도덕화

 

7. 원한의 발전: 유태교의 사제

원한에 형태를 부여하는 자, 비난하고 복수의 기획을 추구하는 자, 가치의 전복을 시도하는 자가 유태교 사제이다. 그는 노예에게 반동적 삼단논법을 제공하고 부정적인 전제를 만들어 낸다. 그는 기독교의 새로운 사랑을 고안해 낸다. 불행하고 가난한자들, 무능한 자들, 보잘 것 없는 자들만이 선량하다. 반대로 우아하고 강력한 자들은 나쁜 자들, 잔인한 자들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고 불경건한 자들이며 악한 자들이다. 사제가 없었다면 노예는 원한의 야만적 상태위에 자신을 고양시킬 수 없었다. 사제는 반동적 힘들의 승리를 필요로 하지만 그의 의지는 권력의지이고 허무주의이다.

 

8. 양심의 가책과 내재성

능동적 힘이 허구에 의해 분리되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다. 내재화는 능동적 힘이 반동적이 되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가책은 원한을 계승한다. 원한은 이제 전염병을 퍼뜨리려는 의지로서 나타난다, 양심의 가책이 최고로 발전하면서 원한을 감싸게 되는 곳에서 반동적 힘들은 승리한다. 가책의 첫 번째 정의는 힘의 내재화에 의한, 힘의 내부로의 투사에 의한 고통의 배가이다.

 

9. 고통의 문제

가책의 두 번째 측면은 원한의 방향 전환에 의해 고통이 내재화, 감각화, 정신화 됨으로써 새로운 의미인 원죄를 만든다, 고통을 능동적 관점에서 판단하면 주인의 기술이며 쾌락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 세계관에서 전쟁과 비극적 공포들은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놀이였다. 오늘날 고통은 현존을 반박하는 논증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논증은 반동적 방식이다. 고통의 능동적 의미는 삶을 반박하는 논증이 아니라 반대로 삶의 흥분제, 삶을 위한 미끼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거나 고통을 주는 것은 능동적 삶으로서의 삶의 구조, 삶의 적극적 표현이다.

 

10. 양심의 가책의 발전: 기독교 사제

유태교 사제는 강한자를 악한자로 간주해 능동적 힘을 분리시킨다면, 기독교 사제는 고통의 내면화를 주재한다. 기독교는 유태교의 완성이다. 원한의 힘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죄지은 자들을 신에게 이르게 한다. 니체는 성 바울의 증오로 가득 찬 성격과 신약성서의 저속함을 비판한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조차 유태교적 가치들로 끌고 간다. 이 죽음으로 인해 사랑과 증오의 대립이 설정된다.

 

11. 선(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인간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①최악의 반동적 힘들과, ②법의 형태인 능동적 힘들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국가나 교회 등의 역사적 압력에 의해 나타나고, 후자는 개인 자체에 행사되는 인류의 활동이다. 문화는 의식에게 망각의 능력과 대립되는 새로운 능력인 기억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미래의 기능이며 감성의 기억이 아닌 의지의 기억이다. 인간은 고통 없이 기억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문화는 고통의 기억을 통해 약속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든다. 문화는 고통을 약속의 등가물로 만들고, 인간들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서 결정된다. 문화는 고통으로 손실을 지불하는 인간, 부채에 대한 책임자인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2. 후-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그런데 가책도 원한도 문화와 정의의 과정 속에 개입하지 않는다. 타인이 고통을 당할 때 느끼는 쾌감을 개입시키는 않는다면 고통의 등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원한은 정의의 기원에 있기는커녕 능동적이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이다. 정의가 원한을 기원으로 삼지 않는 것처럼, 처벌은 가책의 산물이 아니다. 처벌은 죄인에게 잘못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고통의 대가로 자기의 반동적 힘들에 책임을 느끼는 문화의 상태와 반대로 능동적 힘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가책의 상태는 서로 대립한다. 문화의 산물은 법에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운명에 대한, 법에 대한 권력에 의해서 정의되는 주권자이자 입법자인 개인이다. 즉 자유로운 자, 가벼운 자, 책임이 없는 자이다.

 

13.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된 문화

마치 문화가 선사의 노동에 의해 후-역사적 산물로서 개인에 도달하는 종적활동으로 간주했지만 역사는 반동적이고 열등한 힘들이 승리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인종들, 민족들, 계급들, 그리고 국가들을 제시한다. 역사는 문화의 산물로서의 주권자인 개인 대신에, 순종적이고 병적인 존재를 만들어 낸다. 훈련의 절차들을 이용하지만 인간을 군집 동물로, 길들여진 피조물로 만든다. 그러므로 역사는 반동적 힘들이 문화를 독점하거나 그것을 힘들의 이득으로 우회시키는 행위로서 나타난다. 반동적 힘들의 승리는 역사 속에서 부수적 결과가 아니라 보편의 원리와 의미이다

 

14. 가책, 책임성, 죄의식

반동적 힘들이 결집할 때 신성함, 사회, 국가에 대한 반동적 부채가 생겨난다. 부채는 인간의 해방에 참여했던 능동적 특성을 상실한다. 기독교의 대속은 부채를 심화시킨다. 그것은 더 이상 채무를 탕감해 주는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속하는 고통, 영원히 채무자가 되는 고통의 문제가 된다. 반동적 존재들은 이제 밖에서 죄인을 찾아서는 안 되고, 교회에 대해, 신에 대해 죄인이 된다.

 

15. 금욕적 이상과 종교의 본질

금욕적 이상은 원한과 가책의 복합체이며, 서로에 의해 강화된다. 그것은 원한의 질병과 가책의 고통이 견딜만한 것이 되고, 게다가 조직되고 파급되는 수단들의 모든 방식을 표현한다. 금욕적 사제는 정원사, 사육자, 양치기, 의사이다. 결국 금욕적 이상은 반동적 힘들이 승리하게 만드는 의지를 표현한다. 금욕적 이상은 저 세상에 대한 허구가 동반되며, 삶과 속의 능동적인 것을 비하하고, 세계에 외관이나 무의 가치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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