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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세미나] 2월 9일 발제문

누구 2019.02.09 15:11 조회 수 : 199

2019 미술사 세미나, 2월9일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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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지의 영역 추구: 상징주의 미술과 세기말 회화

1880년대에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 중요한 예술 동향으로 상징주의 문학이 등장한다

1. 상징주의란?

* 장 모레아스의 “상징주의 선언”

장 모레아스는 1886년 9월 18일자 르 피가로 지에 “상징주의 선언”을 발표해 일약 상징주의 이론의 기수가 되면서 본격적인 상징주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1) “상징주의 시는 시 그것 자체의 목적성 이외에 문학의 교훈적 효용성이나 웅변적 요소나 고답파 시의 객관적 묘사 같은 일체의 비(非)시적인 것을 배제해야 한다”.

2) “시는 현상 세계가 아닌 본질 세계로서의 원형(原型)적 관념(Idée)을 지향해야 한다”.

3) “그러한 ‘관념’에 도달하기 위해서 시는 유추(analogie)와 상징(symbole)을 차용해야 한 다”. (김기봉, 프랑스 상징주의와 시인들, 55-56쪽)

2. 시대적 배경: 급변하는 사회, 해체되는 공동체, 세기말의 불안감과 대공황

상징주의가 등장한 19세기는 격변의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는 혁명의 바람이 불었으며, 영국의 산업 혁명으로 인해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로 이행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소외와 개인주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았고 노동자와 부르주아 간의 계층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 1873년부터 시작된 대불황으로 인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보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비관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불안과 위기감으로 인해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은 현실 도피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이들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현실 대신 내면의 세계에 눈을 돌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랑스 시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을 했다.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한 감각의 해방을 추구하며 인간 본연의 감정과 내재된 관념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꿈, 비현실적인 세계, 자아 세계, 죽음, 이국적이고 기괴한 것, 신비스러움에 집착했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형태가 없는 초자연적인 것에 집중하고 인간의 생사와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를 찾으려 했다.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3781

3. 주요 화가와 화풍

1)귀스타프 모로

신화나 성서에서 딴 소재를 사용하여 신비로운 느낌이 나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면밀하고 자세한 묘사, 빛나는 색채감으로 상징적이고 탐미적인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1892년부터는 파리의 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제자 중엔 마티스, 루오, 마르케 등이 있다.

https://www.indiepost.co.kr/post/8256

2)퓌비 드 샤반느 (1824~1898)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뛰어난 실력의 벽화작가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 도서관과 팡테옹(Panthéon), 마르세이유의 롱샹(Longchamp) 궁전, 프랑스 전역의 시청과 공공건물, 그리고 미국의 보스턴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벽화를 남겼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59934&params=page%3D209%26acid%3D5

https://www.musee-orsay.fr/en/collections/works-in-focus/painting.html?no_cache=1&zoom=1&tx_damzoom_pi1%5BshowUid%5D=4066

3)오딜롱 르동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840년 프랑스 남부 보르도에서 출생한 르동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부모에 의하여 가족 소유 농장으로 보내져 외삼촌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르동에게 태어날 때부터 지병이 있었다거나, 어머니가 장남을 너무 사랑해서 차남인 르동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거나,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쨌건 어린 시절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버려진 그 경험은 르동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르동은 문학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해냈다.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집중했으며 내면의 눈으로 사물을 관찰한 다음,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표현했다. 작품 활동 초기 르동은 주로 판화를 활용하여 어두운 흑백 세계의 광경을 그려냈다. 학교 교육을 받으며 보들레르, 에드가 앨런 포 등을 탐독했고 아카데미 미술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다 판화가 로돌프 브레스댕을 만나게 된다. 그에 의하여 뒤러, 렘브란트, 고야 등 판화에 있어서 중요한 화가들을 접한 영향들과 스스로의 개인사가 뒤섞여 표출된 ‘검은 색(Noirs)’이라 불리는 이 시기의 그림들은 기묘하고 독특한 그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개별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오늘날 대중들에게 보다 더 익숙한 르동의 그림들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다양한 색채를 활용하게 된 후기의 작품들이 많다.그는 1894년에 병을 극복한 후 낙천적인 성격을 갖게 됐는데 그 이후부터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에서는 인상주의 느낌이 나는데, 원래 르동은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집단에 소속돼 있었다.

https://www.indiepost.co.kr/post/8256

http://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33781

http://magazine.hankyung.com/apps/news?popup=0&nid=02&c1=2004&nkey=2012070200086067232&mode=sub_view

4. 그 밖의 경향

북구의 신비주의 빛 데카당한 자세도 주목할 만 하다. 대표적으로 앙소르, 호들러, 뭉크 등의 작가를 들 수 있다

*호들러: 알레고리의 한계를 깨달은 페르디낭 호들러(1853-1918)는 이른바 ‘평행 이론’을 정립시켰다. 그것은 기본적인 창조질서와 조화를 드러내기 위해, 개별 요소들을 균형 있게 반복하는 기법을 의미했다. 이즈음 그의 친구 에밀 자크 달크로즈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체계 있는 운동의 일종인 ‘율동체조’를 개발했다.

호들러는 코르셋과 발레슈즈를 벗어던진 채 새로운 형태의 춤을 선보였던 미국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의 예찬자이기도 했다. 호들러는 자신의 주제를 구현하는데 평행이론과 율동체조를 도입했다. 역사와 내용이 배제된 보편적이고 초시간적인 주제의 춤 역시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http://www.jeju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26

5. 미술과 생활의 만남: 나비파와 아르누보

나비파 (Nabi,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

고갱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젊은 화가들의 그룹으로, 1891년에서 1899년까지 여러번의 그룹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1. 특징과 의의

미술에서 색채는 사물의 원래 색과 같을 필요가 없다는 고갱의 관념에서 발전한 나비파는 신비주의와 상징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아 아주 대담하게 화면을 구성했다. 표현상의 특색으로는 반(反)사실주의적, 장식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나비파 화가들은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적인 색조로 그림을 그렸으며, 색채를 정서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표현의 단순화와 굵은 윤곽선을 통해 장식적 기법을 차용한 나비파는 20세기 초의 추상과 비구상 미술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https://www.indiepost.co.kr/post/8859

http://monthlyart.com/encyclopedia/%EB%82%98%EB%B9%84%ED%8C%8C/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창해ABC북, 창해, 2002

2. 주요 작가

세루지에Paul Sérusier(1863~1927), 베르나르Emile Bernard(1868~1941), 뷔야르Edouard Vuillard(1868~1940),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 드니Maurice Denis(1870~1943) 등

*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은 스위스에서 태어나 결혼 후에 프랑스로 귀화했다. 원래 목판화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나비(Nabi,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파에 합류한 후에는 전통적 기법을 버리고 보다 장식적인 화풍을 선보인다.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아, 평탄한 색면으로 아주 대담한 화면 구성을 즐겼다.

https://www.indiepost.co.kr/post/8859

판화, 포스터

일본 목판, 중세 판화 등에 영향을 받아 유화와는 다른 판화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19세기말에는 목판뿐만아니라 석판화 기법도 보급되면서 쉐레, 툴루즈-로트렉 등이 이 기법으로 포스터를 제작하여 파리 시내 곳곳에 이들의 포스터가 붙기 시작하였다. 주요 작가로는  쉐레, 툴루즈-로트렉 등이 있다.

아르누보, 아름답고 비 효율적인

1.정의

아르누보는 근대의 생활 환경을 만족시키고자 역사적인 양식들 (신고딕 양식, 신르네상스 양식 등)에서 비롯된 형식들을 백지화시키고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려는 확고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아르누보의 기간을 짧게 잡으면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쏟아져나온 1893년에서 1905년 사이의 약 10여년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아르누보의 근원을 일본미술의 경향,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주도된 영국의 공예운동 등에 있고, 20세기 초반 이후의 유럽 각지에서 발견되는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고려하면 그 기간은 더 넓게 잡을 수 있다.

2.경향

일종의 ‘총체 미술’을 꿈꾸었으며 새로운 건축, 가구, 회화를 요구하였다. 넓은 의미로는 상징주의의 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다. 평면적 형태, 다이나믹한 표면의 선을 통해 감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환기하려 하였다.

또한 과거의 양식과도 관련성을 갖는다. 켈틱 채식 필사본, 로코코 양식, 일본 판화 등. 가볍고 경쾌하며 비대칭적인 디자인, 평면 장식에의 고집, 생명력 넘치는 곡선의 선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의 추상적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아르누보 양식은 20세기 미술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창해ABC북, 창해, 2002

빈 분리파

아르누보의 계열로 텍스트에서 소개하고 있으나,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한 계파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1.시대적 배경

19세기 말, 빈은 프라하와 헝가리를 지배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정치적 중심지이자, 각기 다른 언어와 전통을 모자이크처럼 하나로 묶은 문화적 중심지였다. 부르주아 계급은 오스트리아 제국이 사회의 공공질서를 계속 유지해주길 바랐고, 젊은 지식인들은 카페에 모여 새로운 진보적 사상들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2.결성과 사회적 영향

‘분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secedo’를 어원으로 하는 이 명칭은 아카데미즘이나 관 주도의 전시회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의 전통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운 표현 활동을 목표로 했으며, 그 목적은 미술과 삶의 상호 교류를 추구하고 고루한 사상을 답습하지 않는 작품의 제작이었다.

분리파에는 특정한 예술 이념이나 양식은 없었지만, 예술 경향과 국적을 초월하여 전위미술*에도 관대히 문호를 개방했다는 점이 공통되는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초 인상주의와 아르 누보*의 영향을 받은 회화 운동으로서 출발한 분리파의 성과는 오히려 현대 건축과 공예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분리파는 영국의 미술과 공예 운동*, 독일의 유겐트슈틸* 등과 더불어 근대 공예와 건축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중 빈 분리파는 1897년 클림트와 건축가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가 결성했으며, 당시 경직된 사회에 균열을 가져왔다. 심리학, 특히 무의식에 대해 고민하고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총체 예술, 사회 예술이라는 점에서 빈 예술계를 사로잡았다.

http://monthlyart.com/encyclopedia/%EB%B6%84%EB%A6%AC%ED%8C%8C/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창해ABC북, 창해, 2002

3.주요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오토 바그너 (Otto Wagner),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에곤 쉴레(Egon Schiele)  등

6. 근대조각의 거장들

19세기, 조각의 경우 양식면에서는 고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적인 자세를 취한 영웅들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기능의 개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 19세기 중반으로 들어서면서는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후원자의 교체와 함께 조각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도시, 광장, 공원 등 조각의 공간이 달라지면서 애국심 고취의 기능, 사실주의적 기술이 더 강조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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