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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전집읽기] 후기 :: 인간적인 II :: 1119

연두 2018.11.23 21:18 조회 수 : 157

나를 여행하는 일에 관하여.

 

세미나 후 자기소개를 하면서 저는 니체를 언제부터 읽었는지 얘기했습니다. 저는 작년 12월을 재작년 12월이라고 착각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니체를 읽으면서 더 깊이 구석구석 바라보고 되짚어본 나, 그 여정이 제겐 꽤 힘들었나 봅니다. 세미나보다도 뒷풀이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이 제게 더 많은 잔상을 남깁니다. 

인식이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고 제가 얘기했습니다. '영원한 생동감'이란 내게 꿈처럼 멀었고 '도대체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408. 저승여행)' 라는 그의 단언은 나를 향한 호통으로 들렸습니다. 꽤나 오래 허우적대면서 제 자신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완전히 지쳐버린 저는 두 다리가 늪에 빠진 채로 옴쭉달싹할 수 없는 상태로 세미나에 갔습니다. 니체가 과거란 수많은 물결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223. 어디로 여행해야 할 것인가). 최근 몇 개월간 제게 일어난 몇 가지 사건은 저에게 제 과거를 한꺼번에 거대한 물결로 밀어부쳤고, 저는 번쩍 눈이 띄었습니다. 갑자기 저의 지난 20년을 맞딱드렸습니다. 제가 바라보았다기 보다는 그것들이 발견하지 않을 수 없도록 밀어닥쳤다는 게 더 맞겠습니다. 

깊고 차갑고 외로운 그 곤란함.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가끔 어푸어푸 숨을 쉬던 차에 떠밀리듯 억지로 교토에 가게 되었습니다. 더없이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를 고립시켰습니다. 고립 속에서 나는 아주 잠시 '보다 높은 나, 홀가분한 나'를 만나 즐거웠습니다. 

아래가 제가 말씀 드렸던 James Turrell의 작품입니다. (@ Minamidera, Naoshima art project, Japan) James Turrell의 작품들은 니체의 말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가는 잘 기획된 공간에서 빛과 색의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 것들이 실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관람객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빛을 체험함으로서 우리의 인식의 한계, 굴절, 왜곡을 인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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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태양을, 신의 존재를, 완강한 신념을 지운 암흑, 차갑고 깊고 외로운 곤궁. 그 속에서 저는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끝난다는 것. James Turrell의 작품의 저 어둡고 푸른 사각 형상이 암흑에 익숙해진 순간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며 다시 그렇게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암흑 속에서 섣불리 다른 조명을 켜지 말아야겠다고. 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우둔한 긍정과 부정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였겠지요. 

촉촉님이 물었습니다. 니체가 5단계의 등급으로 여행자들을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어느 단계로 보느냐, 아마 그 등급으로 보자면 연두는 관찰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228. 여행자와 그 등급).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가장 낮은 등급, 순전히 수동적 상태의 여행자입니다. 관찰자인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그 다음 등급의 여행자이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있는 한 가능하지 않을, 서로 마주보는 적대 관계. 어떤 하나의 비밀에 찬 적대 관계인 나와 나(서문, 11p). 

인식이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라는 저의 질문에 제가 다시 답해 봅니다. 나의 병을 인식해야 치유의 길을 걷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식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질병과 치유를 반복하면서 위대한 건강에 이르렀던 니체를 다시 떠올립니다. 연희님이 계속 건강검진을 해 보라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ㅋㅋㅋ 

여행하는 자로서의 나. 나를 여행하는 나의 여행술이 늘어갈수록, 구석구석 돌아볼 수록 백 개, 천 개의 나를 만나고, 새로운 나를 생성하고, 그 안에 담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법도 같습니다. 세계가 다 존재하는 그런 분열적이고 구석구석 돌아볼 곳이 많은 그런 나. 수백 개의 가면을 지닌 나. 

사케미님이 얘기했었죠. 자신 안에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좋은 가면을 쓰고 싶게 만드는 사람들을 더 계속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이 세미나를 한다고. 특이성을 가진 개별자들인 세미나 회원들. 그들이 모두 내 안에 있는 각각의 우주와 공명하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타인을 만나는 일은 내 안의 천 개의 우주를 여행하는 일과 닮아 있는 걸까요. 촉촉님이 힘주어 여러 번 말했던 우주적 존재인 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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