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 목요일 (6월 13일) 레비나스의『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 <제3장: 감성과 근접성>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죠!
세미나 후기 이제서야 올립니다! 늦어서 죄송해요L
세미나 서두에서 저희는 '감성의 의미화'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레비나스가 감성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법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데요.
우선 첫 번째는 버클리(Berkeley)의 관념적 감각론이죠. 레비나스에 따르면 이 이론은 ‘대상의 감성적 질들을 검증된 내용에로 축약하는 데 있다. 느끼는 것에 대한 느껴지는 것의 적절한 소유 속에서 의식의 내재적 본질, 존재와 존재 표명의 일치, 관념론의 본질이 재발견된다. 그러나 감성적 ‘경험’과 직관의 근저에 있는 감관은 우리가 그것에서 끄집어내는 ‘관념’이나 ‘명료성’으로 축약되지 않는다(p125)’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가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두 번째 방식은 다름 아닌 후설의 현상학입니다. 레비나스는 ‘발견과 지식으로서 감성적 직관은 이미 말해진 것의 질서에 속한다. 이 직관은 관념성이다. 인지된 것으로서 개별적인 것은 이미 탈감성화되는 것이고, 직관 속에서 보편적인 것에로 귀결되는 것이다(p124)’라고 합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후설의 ‘지향성 구조는 여전히 사유 또는 이해의 구조에 머물러 있다(p129). 관념의 ‘질료’인 감관은 지향성에 의해 고무되는 한에서만, 또는 기억의 보존과 미래의 예견에서, 기억과 기다림에서 ~에 대한 이론적인 인식의 도식에 따라서 내재적 시간 속으로 구성되는 한에서만 의미 있는 것에 관여하게 된다(p128)’. 레비나스는 ‘~에 대한 의식, 드러내기의 개시로 해석되는 감성은 이미 시각, 관념, 직관으로 축약될 것이다. 주제화된 요소들의 공시성과 시각의 동시성. 반면 시각 그 자체가 열림과 지식으로 완전히 다 규명되는지를 자문할 여지가 있다(p131)’라며 후설 이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감성적인 것의 의미화일 수 있는 근접성은 의식의 운동에 속하지도 않고, 관념의 조작에도 속하지 않는다(p124)’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레비나스에게 ‘동일성 속의 타자성은 타자에게 노출되는 타자를 위함으로 만들어지는 몸의 정체성(p134)’이고, ‘육화로서 감성의 주체성은 회귀 없는 포기이며, 타자를 위하여 고통을 겪는 모성적 몸, 수동성과 체념의 몸, 순수 감내(p152)’이라는 점!
레비나스는 ‘마음의 타자를 위하는 자(란) 사소한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코나투스를 도려낸 육체의 전 무게라는 것[…] 모든 활동과 대조적인 수동성보다 더 수동적인 수동성, ‘모든 나체화’보다 더 벗은 벌거벗음, 감정의 분출, 기도, 심정을 토로하는 데까지 노출되는 벌거벗음,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는 것으로 축약되지 않는 수동성, 그러나 출혈처럼 고갈되는 상처받기 쉬움과 애절함, 자신의 벌거벗음이 갖는 단면들까지 벗기는, 표현하고 말하면서, 자신의 노출까지도 노출하는, 정체성의 형식 자체가 그에게 부여하는 보호까지도 벗겨내면서, 내가 먹는 빵까지도 나누는 형태로만 가능한 타자를 위하는 존재의 수동성(p139)’을 가리키며, 타자에 사로잡힌 자의 ‘증가되는 수동성’, ‘응답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지게 되는’, ‘이웃의 짐을 짊어질수록 그에게 점점 다가가게 되는’ 주체의 근접성과 무한 책임의 관계를 보여줍니다(p178).
오는 목요일(6/27) 저녁 7시 30분에 열 세미나에서는 레비나스가 3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타자의 얼굴 속에서 명령하는 그리고 배제된 삼자로서 조준 되어질 수 없는 무한의 무 원리’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세미나 준비를 위해서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제 4장 대속편 읽어 오시면 되구. 발제는 제 차례(수진쌤)입니다. 준비 잘 해갈게요. 아무쪼록 타자에게로의 노출 속에서, 상처에로의 노출 속에서 다른 사람은 대신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레비나스 철학에 관심 있으신 분은 누구나 세미나 참여 가능합니다.
세미나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분은 아래에 댓글을 달아주시거나, 반장님(종헌)에게 연락주시면 되요!
시간: 격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장소: 수유너머 104, 1층 세미나실(왼쪽)
반장: 정종헌 (010-3l75-9438)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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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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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쫑
예전에 쫑이 제안했던 ‘공지’ 순번제로 올리기가 재가동된 것 같군요ㅎㅎ. 공지와 더불어 복습에 유익한 후기까지, 것도 거시기를 공들여 올리신 수진쌤(세미나 이후 댁에서 관련 텍스트 읽기를 찬찬히 하신 듯), 역시 (예비) 레비나스 전공자의 면모를 보여주신 듯…더불어 레비나스 세미나 활력도 재가동된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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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쫑
텍스트상의 후설 비판 부분과 관련해서는, (쫑이 발제하면서) 레비나스가 후설의 공적을 인정하면서도 논박한 부분(관념성, 후설의 논리연구1, 2와 관련된..)은 ‘단편적’으로 비판하면 그렇지만서도ㅎ 논리 연구(저작) 이후 펼친 이념들1,2,3(저작들)이나 후설의 상호주관성 등의 사유 부분에 이르면 후설의 현상학도 그렇게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은연중에 비췄었는데.. (우리 멤버가 다 레비나스쌤 팬들이시라ㅎ) 그럼에도, 네, 그렇지요. 오온, 감관, 감성, 의식론적으로 보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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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쫑
넝구샘이 언급하신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문구를 보다 문뜩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금강(반야) 경전 해설이 떠오르네요ㅎ. 구라..습(그분 이름 도저히 기억 안 남..취중이니 더더욱^^)이나 현장이 번역한 한(자)역을 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나가르주나가 연기(緣起)를 피우며^^설법한 공(空)사유는 레비나스와 어법은 달라도 상통하는 부분도 있어 뵈고요. 자성, 타성이 따로 있지 않다는 용수의 무실체 개념요... 홍당무가 돼서 ‘무’를 언급한다는 게 민망하지만 지나가면서 끼적이고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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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구
" 나는 홍당무일때, 무를 언급한다." ㅋㅋ 쫑샘 종종 홍당무가 되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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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쫑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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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쫑
참고로, 버클리 비판 부분은 후설이 이왕 그런 식으로(기호화, 대리화, 기하학화...) 딴지를 걸었었지요ㅎ
수진쌤~ 후기 감사합니다. 세미나 때 분명하게 정리가 안되었던 부분을 정리해주시니 좋으네요. 특히 '감성'에 대한 두가지 접근방법에 대한 비판내용이요. 관념적 감각론과 사유나 이해의 구조에 머물러있는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한다는 점이 명쾌하게 정리가 되네요!
레비나스는 자신의 사상과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자신의 사상 사이의 차이를 계속해서 드러내려고 하잖아요. 그 부분들을 찾아낼 때, 특히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지난 번 <감성> 부분도 그래서 처음엔 헤맸지만 작지만(?) 분명한 차이(!)들을 발견하면서 재미 있었구요.
다음 주에 공부할 4장<대속>이 이 책의 핵심 부분이라고 하니.. 떨리는 맘으로 책 펼쳤습니다!
시작부터 광광. "내가 나일 때 나는 너다" (폴 첼란) _ 두둥. 기대되네요!
곧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