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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104_ [베르그송 기획세미나]_ 김충한 선생님

근본적 자아를 되찾기 위하여

제2장 의식상태들의 다수성에 관하여(2)_pp151~177_ 발제문_ 20180820월_이미라

속도 개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단 지나간 공간과 일단 도달된 동시적 위치들”이기 때문에 “역학이 시간으로부터 동시성만을 취한다면 운동 자체로부터는 부동성만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베르그송에 따르면 “우리 의식에 나타나는 대로의 지속과 운동”의 “본질”은 “끊임없이 형성되는 도중에 있다”는 점에 있기에, 대수학은 “지속과 운동 자체는 번역할 수 없”다.(153) 설사 역학이 그 동시성과 위치를 ‘매우 작은 간격 사이’의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첫째로, “지속과 운동이 정신적 종합이지 사물이 아니기 때문”(153)이고, 둘째로, “운동체가 한 선분의 점들을 차례로 점”하면서 일어난다하더라도 “운동은 그 선분 자체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기 때문”(153)이고, 셋째로, “고유한 의미에서의 지속은 본질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이질적이며 구별되지 않으며 수와는 아무런 유사점이 없으므로 서로에 대해 동일한 순간들도 외적인 순간들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154)

이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베르그송은 동질적 시간 관념과 양의 질 관념을 얻어낸다. 먼저, 동질적 시간 관념. “공간만이 동질적이고, 공간에 위치한 사물들은 구별되는 다수성을 이루며 모든 구별되는 다수성은 공간에서의 전개를 통해 얻을 수 있다”.(154) 공간은 의식의 성격으로서 말해지는 “지속도 계기도 없”는 “동질적”인 것으로서, 공간에는 “외부세계의 상태들의 각각만이 존재할 뿐”이다.(15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공간에 위치한 사물들”이 “구별되는 다수성을 이루”고 외부 상태들의 “다수성이 실재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의식” 때문이다.(154) 의식이 외부 세계의 상태들 “각각이 따로 떨어져서 존재했던 공간에 그것들 전체를 배열하는”(155)것이다. 이때 의식에 의해 사용되는 공간, 즉 외부적 상태들을 계기적인 것으로 보고 배열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이 바로 동질적 시간”이다.(155) “실재 지속의 상징적 상(像)”, 이것이 “동질적 시간이라는 관념”(160)이다. 다음, 양의 질 관념. “구별되는 다수성”은 “의식의 상태들의 다수성”과는 “아무런 유사성도 나타내지 않는다.”(155) 전자는 “직접적으로 수를 형성하는 물질적 대상들의 다수성”(113)으로서 “양적인”(155)인 것인 반면, 후자는 “필연적으로 공간이 개입하는 어떤 상징적 표상의 매개 없이는 수의 모습을 띨 수 없을 의식적 사실의 다수성”(113)으로서 “질적”(155)인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이 주목하는 것은 “질적 다수성이라 부르던 것을 병행하여 고려하지 않고는 구별되는 다수성이라는 관념 자체를 형성할 수 없다”(157)는 사실이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우리가 단위를 세며 구별되는 다수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이중적 측면을 나타낸다.”(158) 단위들의 동일성을 가정하는 측면과 양이 질적 진전을 이루는 측면이 그것이다. ‘구별되는 다수성’은 한편으로는 “단위들이 동질적 공간에 도열한다는 조건” 아래 “단위들을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 되고, 다른 한편으로 “마치 전체의 리듬”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후자, 즉 ‘전체의 리듬’을 만드는 측면은 수 역시 나름의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세 번째 단위가 다른 두 단위에 더해지면서 그 본성, 즉 외양을 변하게 하”는 것처럼 “상호침투와 이를테면 질적 진전 없이는 어떠한 덧셈도 불가능”하다.(158) “질 없는 양의 관념을 형성하는 것은 따라서 양의 질 덕분이다.”(158)

이러한 ‘구별되는 다수성’ 형성이 갖고 있는 이중적 측면은 우리 의식의 이중적 측면이기도 하다. 우리 의식은 동일성과 특수성이라는 “이중적 측면”을 갖고 있다. 동일성의 측면은 모든 항들은 “항상 자기 자신과 동일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외부 대상과의 동일성을 생각하기 때문이다.”(159) 특수성의 측면은 각 항은 “특수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 항을 더함으로써 전체의 새로운 조직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159) 이러한 이중적 측면으로부터 “우리가 질적 다수성이라 부르던 것을 수적 다수성의 형태로 공간에 펼쳐 놓고, 하나를 다른 것의 등가물이라 간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159)

그런데 앞서 언급한 동질적 시간은 자아가 “그 표면으로부터 외부 세계와 접촉”(160)하는 곳이다. 이때의 자아를 베르그송은 “표면적 자아”(161)라고 부른다. “표면에서의 우리의 심리적 삶은 동질적 장소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그러한 표상 방식은 우리에게 큰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161) 반면 “우리 의식의 심부로 파고들어가면 갈수록” “표상의 상징적 성격”은 “점점 더 뚜렷해진다.”(161) “더욱 깊은 자아”, 즉 “내적 자아”는 “느끼고 열정을 발하며, 숙고하고, 결정하”는 자아로서, 그러한 의식적 사실의 “상태와 변화가 은밀히 상호침투하며 그것들을 공간에 펼쳐 놓기 위해 겪는 어떤 힘(force)이다.”(161) ‘표상 방식’과 관련한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욱 깊은 자아와 표면적 자아는 “오직 하나의 동일한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지속하는 것처럼 보인다.”(161) 한편 “반복되는 하나의 동일한 객관적 현상을 일정하게 표상함으로써 표면의 심리적 삶이 서로서로 외재적인 부분들로 갈라지기 때문에, 그렇게 정해진 순간들(moments)”이 “더 개인적인 의식상태들의 불가분적이며 동적인 진행 속에서 구별되는 부분들을 결정한다.”(161) 이것이 바로 “상호외재성이 의식의 깊은 곳 까지 울려퍼져들어가는”(161) 이유이다.

“다수성의 두 형태”, 즉 ‘물질적 대상들의 다수성’과 ‘의식적 사실의 다수성’은 “지속의 매우 다른 두 평가”이자 “의식적 삶의 두 측면”으로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164) 우리는 “동질적 지속”에서 “이질적 순간들이 상호 침투하는 지속을 분간해” 내야 하고, “잘 결정된 상태들로 이루어진 자아 아래에서 계기(succession)가 융합과 유기적 조직을 함축하는 자아를 분간해” 내야한다.(164)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분간을 잘 해내지 못한다. 그 결과 “동질적 공간에 투사된 자아의 그림자에 만족”하고 “채워지지 않을 구별의 욕망에 뒤틀”린 채 의식을 “실재의 상징으로 대체시키거나 또는 상징을 통해서만 실재를 본다.”(164) 다수성의 두 형태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를 베르그송은 표면적 자아의 속성에서 찾는다. 표면적 자아는 사회적 삶과 언어에 잘 부합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표면적 자아, 즉 “굴절되고 또 바로 그 사실 자체에 의해 재분열된 자아가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삶의 요구에 그리고 특수하게는 언어의 요구에 무한히 더 잘 부응하기 때문에, 의식은 그러한 자아를 선호하고, 근본적 자아는 점점 시야로부터 잃어버린다.”(164)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적 삶이 우리의 내적이며 개인적 삶보다는 우리에게 더 많은 실용적인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고 “우리의 인상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것을 응고시키는 경향”때문이다.(167)

그렇다면 ‘잃어버린’ 근본적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적이며 살아있는 심리적 사실들”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의식적 사실에 달라붙어 있는 이미지, 정확히 말해 “굴절되어 있으며” “동질적 공간에 응고된 그것들의 이미지로부터” 의식적 사실들을 떼어내야 한다고 베르그송은 말한다.(165) 의식적 사실들, 즉 “우리의 지각과 감각, 감정, 관념들은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난다.”(165) “하나는 명료하고 정확하지만 비인격적”인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혼동되고, 한없이 움직이며 표현할 수 없” 모습이다. 이중적 모습 중 어떤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는가하는 문제는 “다수성의 두 가지 형태, 즉 지속의 두 가지 형태를 구분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구별되는 다수성’ 혹은 ‘양적인 시간’ 속에서 생각한다면 의식적 사실은 명료하고 정확하지만 비인격적인 모습으로 보일 것이고, 반면 ‘혼동된 다수성’ 혹은 ‘질적인 시간’ 속에서 생각한다면 의식적 사실은 혼동되고, 한없이 움직이며 표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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