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차 기형도 세미나는 1부와 2부의 순서를 바꾸어 1부엔 금은돌 튜터님이 준비한 발제문을 읽었고 2부엔 기형도의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토론했습니다.
“그는 이미 시인이었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시인이었다. 시적인 몸을 만들고, 시를 노래하고, 시를 향유하며, 시로 숨 쉬고, 시로 살고 죽었다.” (발제문 중에서)
기형도는 중학교 3학년 누이 기순도 씨의 죽음 이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만 스물아홉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 인생의 중간지점을 지나고 있는 스무살 무렵의 기형도. 금은돌 튜터님는 이 시기의 기형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기형도의 시 세계의 출발점을 등단 이후가 아닌 습작기와 문학청년 시절에서부터 바라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발표 시 ‘껍질’, ‘팬터마임’, ‘아버지의 사진’, ‘꽃’, ‘교환수’, ‘시인1’, ‘아이야 어디서 너는’ 등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껍질’로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의 해석에서 세미나 원의 의견이 갈리기도 했습니다. 독자의 눈으로 시적 주체를 바라보는 관념적 해석과 시인의 눈을 통해 시를 보자는 이미지적 해석의 충돌인 듯 보였는데, 이분법 구조를 벗어나 “예술적 미학과 현실적 가치체계 모두에 접근하고 싶”어 했던 기형도의 의도와도 잘 어울리는 멋진 토론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야 어디서 너는’은 어려웠습니다. 생환, 물의 상상력이라는, 튜터님과 세미나 원의 도움을 받고 다시 읽어도 쉽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상을 풀어내기에 아직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약간 좌절했습니다.
토론은 늘 익숙지 않고 세미나는 어렵기만 합니다. 세미나원들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하는데 나는 무슨 말을 하지? 고민하느라 맥락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시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넓어지고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작은 웅덩이를 파 내려가면 언젠가는 넓은 호수가 되리라 믿습니다. 다음 세미나도 기대됩니다.
저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인정하지 않기도 해요. 그것을 형식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통과해야 할 관문이지만요. 사실, 시를 쓰는 자가 시인이지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온 '시민'의 '시인'화를 꿈꾼답니다. 하하하.
시인 기형도는 등단 전에, 이미 훌륭한 시 작품을 썼지요. [포도밭 묘지]는 등단 전 1982년에 썼던 작품이기도 하고요. 숨을 쉬는 이 순간에, 시인의 상태, 예민한 감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형도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청춘의 시기를 보냈다고 생각해요.
여기 모인 분들도,,,이런 감각의 상태를 유지했으면 해요. 잠시 동안, 기형도를 읽을 동안만이라도요. ㅎ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