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SF: 이승연의 "안녕, 창백한 푸른 점"

 

최유미/수유너머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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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저1호가 찍은 사진: 창백한 푸른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1990년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찍은 지구 사진의 이름이기도 하고, 이 탐사 계획에 관여했던 칼 세이건이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보이저 1호가 찍은 사진을 보면 우주선 카메라에 반사된 태양광의 산란 무늬가 굵은 사선처럼 지나가고 그 속에 하얀 점이 찍혀있다. 그 점만으로는 지구가 창백한지 푸른지는 알 수 없다. “창백하고 푸른 점”이라면 딱 떠오르는 둥그런 지구에 하얀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사진은 인공위성이 찍은 사진인데, 그렇게 창백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은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 그는 지금의 인공위성정도의 고도까지 올라갔을 터이니, 물이 태반인 지구가 푸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냥 하얀 점일 뿐인 지구의 사진에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는 어쩔 수 없이 인종적이고 젠더적인 냄새가 풍긴다. “창백한 푸른(pale blue)”이라는 말은 푸르스름한 실핏줄이 드러날 만큼 파리한 백인 여성의 피부를 연상하게 한다. 하나뿐인 지구를 말할 때조차 주인공은 백인이고, 구원을 기다리는 연약한 여성이라는 것이 내 신경을 건드린다. 내가 너무 삐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보호라는 명목으로 벌어지는 온갖 악행들을 생각하면 무신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튼 세이건은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작은 존재인가를 드러내어서 파괴되어 가는 지구환경에 대해 경고하고자 했다. 안다. 그의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해러웨이에게 배운 데로, “우리가 다른 아이디어들을 생각하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들을 사용하는지는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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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이승연의 “안녕, 푸른 점”은 유쾌하기도 했고, 안도되기도 했고, 조금 아슬아슬 하기도 했다. 우선 스토리텔링과 미술작품이 함께 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흔히 전시에서 제공되는 “작가노트”가 아니라 한편의 SF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흔히 보는 제 작품을 이렇게 봐 주십사하고 설명을 제공하는 “작가노트”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작품이었고, 그의 미술작품과 씨줄 날줄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무늬를 만들었다. 그리고 너무 다행인 것은 그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여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하나뿐인 지구가 아니라 지구와 꼭 같은 게 하나 더 있다는 것이고, 그 별의 생명체가 변이를 거듭했지만 인간이 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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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스토리텔링에 나오는 변이의 방향은 근대적 발전신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지만 거기로 부터의 비껴남도 함께 있다. 그 별의 거주자는 점차 복잡해지고, 점차 유능해져 갔다. 동그란 단순한 모양에서 꼬리가 생기고, 땅으로 나아서 다리가 생기고 점점 복잡한 형태로 변해간다. 이들은 팔 다리도 여럿 만들어서 실컷 사치를 부린다. (쫌 부러웠다!) 그들은 형태가 복잡해질수록 힘도 더 세져서 마침내 그 별의 절대 강자가 된다. 전형적인 발전신화는 여기서 두 갈래 길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는 힘의 무한한 팽창이다. 이제 “창백하고 푸른 별”에 만족되지 않는다. 우주는 넓고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꼭대기에 오른 자의 절망적 하강이다. 꼭대기에 오르려고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다 잃고 나서야 그 허망함을 깨닫고 다시 ‘위대한’ 기원으로 되돌아가는 스토리.

이승연이 택한 길은 후자에 가깝다. 다시 몸은 단순화로 향하고 머리만 남았다가 그마저도 벗어버린다. 그것은 정신이자 에너지 상태다. 이들은 처음에 이 별에 정착했던 바다로 돌아가지만 거기를 다시 영토화 할 수 없다. 에너지가 너무 커져서 자신들이 몸을 얻었던 태(胎)를 깨뜨릴 정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체가 가진 영토성을 완전히 지워버린 상태로 우주를 부유한다. 나는 그의 스토리텔링에서 위대한 뇌(정신)이라는 플라톤주의적인 메타포를 아주 모른척하기는 어려웠고 내 신경의 여기저기를 건드렸다. 위대한 정신은 비천하고 불결한 신체를 정화시킨다고 불태우고 죽이고 추방하지 않았나. 위대한 정신은 나의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12개의 스크린에 펼쳐지는 그의 경쾌한 그림들과 작은 방에서 펼쳐지는 그림자의 향연은 그 자체로 사람을 잡아 끌기에 충분하게 좋았다. 이런 작품을 보고 요따위 생각을 하다니 나는 좀 삐뚤어져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나는 마지막에 가서 끝내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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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던 에너지들은 다시 몸을 얻는데 이번에는 탄소가 되었다. 탄소? 이들은 4개의 팔이 달린 녀석들로 가장 단단한 결합을 만들 수 있고, 유기체들은 탄소화합물이다. 아~ 이들은 다시 유기체로 태어날 셈인가? 생명의 위대한 재탄생이라는 뻔한 드라마가 펼쳐질까 나는 조마조마 했다. 그런데 이승연은 여기서 경쾌한 반전을 감행한다. 이들의 이번 체현은 ‘순수한’ 탄소원자다. ‘순수한’ 탄소들은 특정한 압력 이상에서 정사면체로 배열되면서 그물구조를 이루는데 그것이 가장 강한 결정체인 다이아몬드다. 이때 탄소원자의 4개의 팔은 다른 탄소 원자와 모두 단단히 악수를 하는 모습이다. 결혼반지, 절삭기, 레이져에 사용하는 반짝반짝한 다이아몬드가 외계인의 다른 체현이라니! 하긴 생명은 ‘순수한’한 것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 탄소가 포도당이 되려면 최소 수소와는 만나야 하지 않는가. 이 외계인들은 탄소원자로 흩어졌다가 다시 다이아몬드 결정체로 모이기를 반복하면서 우주를 떠돈다. 언젠가는 또 다른 것으로 변이할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본 누군가가 니체의 영원회귀를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순수한 것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도 이런 스토리텔링이면 유쾌하다. 내가 순수한 것에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자기와 다른 것 모두를 정화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지 달리 그런 것이 아니었다. 특권만 행사하려 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건 그것대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과학자에게 지구의 기원에 관해 배우면서 이 작업을 했다는 이승연의 작품에서 플라톤주의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리학자들은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강력한 진실로 만들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이승연은 “꼭 믿을 필요는 없어요”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SF를 만든다. 나는 물리학도 SF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혁명기의 물리학자들만큼 탁월한 이야기꾼들도 드물었고, 그들만큼 몽상가도 드물었다. 가령, 뉴튼은 지구와 태양이 서로 매력(attraction)으로 끌리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물리학을 경쾌한 SF로 풀어내는 작업은 그것을 자격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풍성하게 만든다. 이승연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그라면 순수한 것의 얼굴을 남을 정화시키려는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반짝 반짝, 유쾌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런데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목성이라면 모를까 지구와 같은 압력조건에서 탄소가 다이아몬드로 결정화되기는 힘들다. 지구에서 다이아몬드가 귀한 건 그 때문이다. 압력이 높고 탄소가 많은 목성에는 다이아몬드가 많다. 이 지구에서 흔한 건 연필심으로 쓰는 흑연이다. 이때 탄소는 3개의 팔만 강력하게 다른 탄소원자와 악수를 해서 6각 평면을 이룬다. 어느 날 연필심이 내게 “안녕, 지구인” 하면서 말을 건다면, 너무 짜릿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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