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모토 츠요시] 생활사(史)와 역사의 균열

수유너머웹진 2019.03.22 14:50 조회 수 : 11

생활사(史)와 역사의 균열




가게모토 츠요시






니시카와 유코 <고도의 점령 – 생활사에서 보는 교토 1945-1952> 평범사, 2017, 516쪽, 3800엔 + 세금.(원서 정보:西川祐子, 『古都の占領 生活史からみる京都 1945-1952』, 平凡社2017, http://www.heibonsha.co.jp/book/b298039.html)




1. 생활사 - 지도에 점을 찍고 선을 부각시키기


  2차 대전 패전 후 1945년-52년에 걸쳐 일본은 연합국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 책은 교토라는 일 지방 도시를 대상으로 이 시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500쪽을 넘는 두께를 가지지만 읽어보면 매우 얇다고 느낄 정도의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압축한 산물이다. 책을 열면 몇 장의 지도 자료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교토에서 점령군에 의한 교통사고 발생지역과 점령군이 압수한 주택을 점을 찍어서 점령군의 이동경로를 밝힌 것이다. 그것은 교토 남부에 있던 군사적 거점(일본군 16사단 터, 우지(宇治)의 비행장)에 연결되는 길이기도 했다. 신문기사나 행정자료를 확인할 때마나 지도상에 점을 찍어 그것이 모였을 때 지도는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 지도의 점들은 노상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의 주소와 그 여성들이 잡힌 장소와도 일치한다(255쪽). 


“자료 하나하나는 단순한 물건은 아니라 결국 사람인 것이다. 모여져서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앞에 모은 재료를 때마다 즉흥적으로, 그러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생각하면서 짜내고 작자도 실은 몰랐던 구도를 차차 부각시키는 수법을 크레이지 파치워크(crazy patchwork)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이 이미 크레이지한 실들의 얽힌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 되지 않는 극한에 있는, 공백이자 거꾸로 말하면 역사의 균열이 되는 블랙홀의 윤각을 어떻게든 해서 확인하고 싶다.”(219-20쪽) 


이러한 말이 책의 곳곳에 삽입된다. 그리고 점령군의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점령군의 교통사고에서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도 배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었다. 따라서 피해자는 일본정부에 신청을 하고 일본정부가 ‘위로금’을 내었다(68쪽). 당연히 이는 점령군에 의한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242쪽). 이러한 교통사고나 성범죄를 비롯한 점령군의 범죄들은 검열 때문에 신문에서는 보도되지 못했다. 저자는 행정문서에서 피해의 그림을 그려낸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작업, 즉 ‘생활사’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기억이냐 문헌이냐, 어느 한쪽이 선택문제가 아닐 것이다. 각각의 기억에서는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문헌기록의 그물에서 빠져나오는 미세한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되어 세부가 소거되어 큰 이야기, 즉 역사가 만들어 진다”(14)


고 지적한다. 우리는 현대사를 ‘큰 이야기’로서는 ‘일정 정도’알고 있는데 그 곳을 산 개인들이 살아남아온 이야기를 개개인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작업에서는 신문이나 행정문서 등 일차 자료의 검토와 함께 인터뷰 조사나 당대 소설, 그리고 일본 패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자 자신의 경험도 호출된다.  




2. 생활 속의 군사기지


  잘 알려진 것처럼 교토는 사철 등 오래된 목조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즉 미군의 폭격을 본격적으로 받지 않았다고 논의되어온 경향이 있는데, 교토는 군사적인 거점이기도 했기 때문에 군사시설은 폭격을 받았다(103쪽). “어떤 군대의 기지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군대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다.”(103쪽) 그 중 저자가 부각시키는 곳은 2014년에 사드 레이더 기지가 만들어진 교토 북부 지방에 있는 교가미사키(経ヶ岬)의 우카와(宇川) 마을이다. 이곳은 원래 일본군 감시소 기지였으며, 1948년에는 미군 레이더 기지가 된다. 58년에 자위대로 이관되어 그것이 2014년에 다시 미군에게 ‘제공’되었다. 이는 한국에서의 사드 문제와 연결되어 사드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동아시아 지도에서 ‘교토의 레이더 시설’이라고 소개되어온 장소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군사기지의 역사성을 보여준다. 점령군 때문에 받은 피해에 대해 보상을 신청하는 문서인 「진주군사고 위로금 지출 부담 행위서(進駐軍事故見舞金支出負担行為書)」에 우카와 마을이 나오는 것이다(122쪽). 우카와에서는 점령군에 의한 화재, 아이가 중상을 입었던 교통사고, 한국전쟁 당시 점령군이 바다를 출입금지로 했기 때문에 어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점령군이 마을의 농업용수를 써버렸다는 것이 기록되고 있다. 바로 이것은 군사 기지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죽은 전쟁이 아니지만 생활의 재생산을 무시해서라도 어떤 하나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군대의 논리가 계속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주민을 대표하는 촌장은 점령군의 명백한 부당행위에 대해서도 점령기에는 ‘항의문’이 아니라 ‘탄원서’를 써야 했다.”(127쪽) 탄원서를 받은 일본 관청에서는 특히 ‘간접적 피해’에 대한 신청이 가능해진 53-4년에는 중앙과 지방 사이에서 신청을 채용할 여부를 둘러싼 많은 교섭이 있었다(128쪽). 탄원서로 남겨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있다는 것은 문서화되지 않았던 ‘작은 피해’들은 수면하에 더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저자가 그 당시 교토 시내를 산 사람들에게 한 인터뷰에 의하면 점령군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전기 공급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87쪽) 또한 교토 중심부의 기온(祇園) 지구에서는 점령군이 음주운전을 하면서 지프차로 돌계단을 올라갔다는 소문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많았다(93쪽). 이러한 소문은 확실한 사실인지를 묻기 전에 그러한 소문이 개연성 있게 전파될 만큼 군사적인 것들이 생활 세계에 개입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오감이 달라진 생활


  ‘생활사’연구의 시선은 가계부로 향한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의 가격 차이가 두 배나 되는 세상에서 가계부를 쓰고 월말에 지출 결산을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암거래를 기록하면 잡힐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당시 가계부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188쪽). 그 조사 중 어떤 서민의 일기를 통해 경제상황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그 일기는 헌책방에서 나온 것인데 농업경제학자가 발견해 책으로 간행했기 때문에 세상에 남았다(189쪽). 저자 니시카와는 그 일기에 나오는 물건이나 음식물의 당대적 의미를 파고 들어가면서 일기를 재해석한다. 다른 회상기와 일치된 부분을 찾아내어 ‘기록’으로 채용해 간다. 시골에서 암거래를 하다가 기차로 교토로 들어올 때 교토역 직전에서 짐을 창문에서 버리고 검속을 피한다거나(198쪽), 훔쳐온 경찰의 제복을 입고 암거래 단속이라고 해서 쌀을 다시 훔치는 사람(199-200쪽), 도로가 지금에 비해 훨씬 나빴기 때문에 암시장에서는 신발이 잘 팔렸다(213-4쪽) 등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려준다. “점령기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당시의 옷보다 신발에 화제를 돌리면 이야기가 풍성해졌다”(214쪽)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첫 월급으로 구두를 샀다거나 한국 전쟁 반대의 삐라를 뿌리고 잡힌 사람이 신발이 좀 좋았으면 잘 도망갔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다는 것이다(215쪽). 그리고 암시장은 한국음식이나 중국음식 등 일식보다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 영양실조 상태의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었고, 미군 물자(치즈가 비누인 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은 아니었다) 등 ‘새로운 음식문화의 입구’였다고 지적한다(216쪽). 정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오감이 달라지면서 계속 재생산되는 생활을 모색하는 모습들이 부각된다. 




4. 한국전쟁과 교토


  점령기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큰 것은 1950년부터의 한국전쟁이겠다. 미 육군병원이 되던 교토의 제일일본적십자병원만으로는 수용하지 못해 교토시립미술관이 임시적으로 육군병원이 되었다(278쪽). 두 시설 다 지금도 존재한다. 50년에 들어 교토는 더욱 군사적인 도시로 재편성되었다. 한국전쟁 반대의 삐리를 뿌리고 체포된 한 학생의 일기가 분석대상이 된다. 군사재판을 거쳐 형무소에서 노동을 하는 학생은 형무소에서 만든 물자가 미군물자인 것을 알자 혼자 파업을 선언한다(311쪽). 그 이전까지의 그는 스스로가 만든 제품을 입는 소비자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담아 재봉틀을 밟았었다. 그의 파업은 성공했으며 군사물자의 작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311쪽). 학생은 52년 일본의 ‘독립’을 계기로 석방되는데, 그는 석방은 평화 운동이 쟁취한 것이 아니라 패배의 결과였다고 받아들인다. 형무소에서 수많은 ‘범죄자’와 만난 학생은 그들이 범죄에 이르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원인을 알게 되었으며 “그 최종적 해방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313쪽)고 일기를 마무리했다. 다른 체포자의 경우, 일본의 경찰관이 영문의 체포연장을 가지고 와서 ‘너는 읽을 수 있지’라고 체포하러 온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다(317-8쪽).


  그리고 점령기 교토를 묘사한 소설로 분석되는 것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이다. 금각사는 교토시 서북지역에 있기 때문에 이 책의 분석 대상이 되어온 교토시 동남지역과는 정반대에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CIC(Counter Intelligence Corps/대적첩보부)가 있었으며 저자는 “공백이 많다고 보이는 지역은 점령 관련의 시설이 적고 사건도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접속이 있었다는 것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진 지역일 수도 있다”(326쪽)라고 지적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불타기 전의 금각사보다 새로 세워진 빤작이는 금각사를 좋다고 한다. 소설 중에서 오래된 금각사와 임신한 상태에서 폭력당한 여성을 통해 패배한 일본이 ‘싱징’되었다고 논의한다(362-363쪽). 이러한 논의는 금각사와 점령군 시설의 위치관계 등 지리적인 근거에서 도출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미시마 유키오가 “이 소설에 한정하면 작중 인물에게 교토에서 생활시키고 거리를 걷게 하기 위해 야외조사를”(353쪽)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러한 교토에서의 한국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이별을 한 한국에서의 한국전쟁보다 미약한 것이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전쟁의 폭력 속에서 생활이 있었던 것처럼 병참기지였던 교토에서도 군인들과 주민들의 교섭은 한국과는 또 다른 형식으로 존재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우토로 마을 또한 교토남부의 일본군 비행장 공사 때문에 재일조선인이 집주하게 된 지역이다. 점령군이 교토시내에서 이 비행장으로 가는 길이 사고다발구간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또한 이 책과 관련시켜서 보다 넓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차자료의 바다로 내려가 다시 시공간의 선을 짜내는 작업의 성과로 제출된 이 책은 역사의 공백의 윤각을 드러내, 그것을 반전시켜 역사의 균열을 발견하며, 그 균열에서부터 다시 역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323쪽). 그것은 공백을 만들어 내어 기존의 이해구도에서의 가치를 일단 일반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생활이라는 재생산의 과정은 귀천을 떠나 모든 것을 삼키면서 진행되는 일이기에 이는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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