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이데올로기의 근원에서 부각된 -일본인들의 목소리들

 사카이 아키토야케아토의 전후 공간론세이큐샤, 2018, 354, 3400+세금.

(원서 정보 逆井聡人『<焼跡戦後空間論青弓社, 2018.)




가게모토 츠요시

 


  

이 책의 제목에 들어간 야케아토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번역하기 난감한 말이기 때문에 일본어로 남겼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타버리고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진 장소정도로 말할 수 있다. ‘폐허이기도 하며 초토이기도 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된 공간이다. 저자 또한 이 용어가 제국이라는 과거 잔영이 만드는 비장감”(21)이 내포되어있다고 지적하며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흔히 이 단어는 전후 일본의 부흥의 근원으로 인식된다. 즉 일본폐전과 부흥, 그리고 경제발전이라는 단선적인 이야기들의 근원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와는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들을 찾아낸다. 단선적인 이야기가 하나의 시간적 인식을 만드는 것에 대항하며, 위계를 매길 수 없는 존재들이 공존하는 공간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2011311일의 지진 이후 다시금 일본에서 발화된 단어는 바로 부흥이다. 이 단어에는 다음과 같은 계보가 있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이나 45년의 일본 패전에서 무너진 도쿄에서 그 단어를 통해 일본인의 미담들이 만들어져왔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공간에는 일본인이 아닌 존재들또한 확실히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야케아토라는 울림은 전후 일본이데올로기를 그것의 근원으로부터 지탱해준다. 그런데 그 공간에는 과연 그런 헛된 이야기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야케아토에 대칭되는 것으로 야매 시장을 제시한다. 야매 시장은 불법적인 것을 매매하는 곳이다. 그것이 생기기 위해서는 역으로 거래되는 물건에 대한 국가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 그 통제에서 벗어나는 물건들을 거래하는 자들은 종종 비-일본인들이었다. 야매 시장에서 야케아토를 바라봄으로써 일본인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시간적인 단선성은 상대화되며 그와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의 공간이 열린다. 저자는 말한다. “야매 시장을 지나치게 상징화해서 기호로서의 가능성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 상징화의 과정에 개입하는 국가 권력을 부각시키며, ‘전후 일본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공간상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 이를 위해 감히 점령기 일본의 도시공간을 논의할 때 빈번히 참조되어온, 이른바 정전(正典)으로 간주되는 영화나 문학작품을 다루겠다. 그리고 이때까지의 비평에 빠져버렸던 야케아토의 논리, 혹은 국민적인 풍경의 궤도에서 벗어난 이야기 해석을 시도하겠다.”(30) 그리고 비-일본인이 존재하는 야매 시장에는 패전 전 대일본제국오족협화(五族協和)’와 같은 다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전후 일본단일민족이데올로기로 거듭나가려는 경계가 바로 있었다는 것이다. 야매 시장은 “‘일본의 외연으로서 기능한 공간”(136)인 셈이다.


책의 본론은 구체적인 텍스트 독해이다. 이시카와 준(石川淳)의 소설 「야케아토의 예스는 기존의 논의틀에서 일본인들의 이야기로 분석되어 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이민족이 등장하고 있는 가능성으로서 소설을 재독해한다. 즉 기존의 논의들이 전제로 해온 일본인이라는 틀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당시 도쿄 우에노(上野) 지역의 야매 시장에는 상당히 많은 조선출신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작가가 구체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민족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이상, 이 소설을 일본인들의 이야기로 독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209). 야매시장을 야케아토에 포섭시키지 말고 그 공간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공산당 계열의 작가인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반슈 평야의 조선인 표상을 해방된 민족으로만, 다시 말해 조선에 돌아가려는 존재들로만 표상해버렸다고 지적한다. 이 표상을 통해 “‘새로운 일본이라는 이야기에 회수되지 않는 일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배제되는 과정을 노정해버리는 사태”(253)를 지적한다. 즉 소설의 작가는 패전과 해방이라는 계기를 통해 조선인은 모두 고국에 돌아간다는 식으로밖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이 서쪽으로, 즉 조선으로 향하는 조선인에 대해서는 의미부여를 할 수 있었으나 동쪽으로 향하는 조선인의 존재는 기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부여를 하지 못했다. 바꾸어 말하면 귀향하지 않는, 일본에 머물 수밖에 없는 조선인들의 존재를 기입하기는 했으나 조선인은 해방의 기쁨을 품으면서 조선에 돌아간다는 관념이 강한 나머지 그들의 존재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매 행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생활을 위해 탁주를 만드는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재일조선인 작가 김달수의 소설이 분석대상이 된다. 김달수 소설에서 탁주는 당연히 야매행동이지만 한때는 경찰을 회유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다. 이는 바로 생활을 위한 여성들의 경제활동이다. 이는 야매시장을 부정적으로 표상할 때 동원되는 민족차별적 담론에 대한 생활 현장(즉 사상의 현장)으로부터의 반론이다. 또한 남성 주도의 민족운동과는 별개로 일본에 대한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일본인/조선인이라는 구도에서 부여된 차별적 이미지를 흔들 수 있는 민족내부의 차이(여성/남성)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곳에 투쟁이 존재하는 것이며, 탁주는 이를 매개한다.


이 책은 야케아토가 결코 일본인을 동일화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음을 제시한다. 일본인의 부흥 이야기로 연결되는 야케아토라는 관념이 무너질 때 일본인(리버럴 세력도 포함해서)들이 기대는 전후 일본이라는 것이 사실은 매우 얄팍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작업을 위해 도입된 것이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고 있음이며, 그러기 위한 방법이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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