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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위하여

< 시 읽는 시간 > ( 감독 이수정 )

김효영(수유너머104 회원)

 

책읽기 모임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알고 지낸 지 꽤 지난 후였는데도 그 때 그녀의 자기소개는 인상적이었다. 처음 온 그에게 내밀어진 평범한 의자 하나가 그렇게 눈물겨웠다는 거였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그랬다. 어딜 가든 그 곳에 내게 마련된 자리는 없다고 자주 느꼈다. 누구에게 의자를 내어주기보다, 남은 의자의 개수를 헤아려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은근히 쟁탈전을 벌여야 하는 사회가 우리에게 더 익숙한 탓이려니.

그 씁쓸한 맛이 다시 느껴졌다. 날 선 긴장과 불안, 병듦의 징후들, 절망과 자위. 표면적으로 <시 읽는 시간>은 자본주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신체가 지르는 비명을 실어 나른다. “죽어버리고 싶은 아침”을 기록하고, “속으로는 울고 있는데 겉으로는 웃고, 그렇게 감정의 회로가 엉망이 되어” “언제는 내가 존재하기는 했었나”라는 지속되는 자기 부정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입 한번 떼지 않고 온 종일 원고지만 쳐다봐도 언제나 시간에 쫒기는 출판사의 편집일. “꾹 참고 지내다보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점점 머리는 멍해지고, 표정이 없어지고, 반응이 느려진다.” 바둑알 같아서 두는 대로 옮겨지는 직원의 위치에서 20년을 보낸 동시녹음기사.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빛이 모두 꺼지는 공허에 휩싸인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그를 무서운 심연으로 끌어내린다. 공황장애가 덮쳐온다. 경영난을 명목으로 감행한 부당해고에 20년 다닌 직장을 잃은 공장노동자. 그 부당해고에 10년째 천막 농성중인 그에게 “한 남자가 가정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는 부채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모두 돈이 할 일”인 데, 엉뚱하게 자신이 제물이 되어버린 세상에 그는 “돈이 웬수”라고 적을 뿐이다. 수입이 불안정한 일러스트레이터. 그는 곧 노숙자가 되거나 독거노인처럼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이지만, 불안의 크기만큼 조작하는 대로 승산을 얻는 게임에 더 몰두해간다. 한국으로 유학 온 일본인 여성. 여자로 태어난 것뿐인데 그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절망은 끝이 없다. 그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사회는 위화감을 줄 뿐이다. 희망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나는 사라져 없어지고 싶네”라고, “나는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싶네”라고 그는 노래한다.

그처럼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도 우리는 살고자 한다. 살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죽고 싶다고 누군가 말 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죽겠다는 말이기 이전에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전언이다. 그것은 지금의 삶의 방식이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한 고발이고, ‘다른 삶’을 찾지 못할 바에야 죽겠다는 집요한 생에의 의지의 표현이다.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에서 기이하게도 생의 한 가운데서 터져나오는 ‘살고 싶다’는 외침을 듣는다. 그것이 유기체가 갖는 단순한 생의 의지이기 이전에 ‘다른 삶’에 대한 진심어린 호소이자 그를 향한 절박한 의지를 내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더 좋은 삶’을 고민한다는 것은 유토피아를 그려보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 좋은 삶의 문제는 결코 일시에 도래할 유토피아적 미래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먹고사는 문제를 간과한 채 철없는 환상에 빠져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뿌리박고 있는 이 대지의 척박함 속에서도 살아야 한다고, 살 것이라고 다짐할 때, 우리는 삶이라는 씨앗을 뿌릴 대지를 돌아본다. 우리가 토양을 개간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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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시간>이 시종 고요한 풍경을 그려내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이들의 이 무서운 생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정작 그들은 어떤 필사적인 몸짓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덮쳐오는 고통과 아픔들이 폐허의 형상을 빌어 가시화된다. 이제 역동적인 쪽은 풍경이었던 것들이 된다. 카메라가 신도시 건설 계획의 중단으로 폐허가 된 인천시 서구 가정동과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구불구불한 산동네 개미마을, 사계절의 무심한 시간을 견뎌온 해고 노동자들의 텐트천막을 차례로 비추는 동안 관객은 이미 이 영화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들이 아니라 그들을 폐허의 형상으로 덮쳐온 시련이자 고통이며, 그 배후에 자리잡았으나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삶의 이면임을 직감하게 된다.

고통 앞에서 가난한 마음은 그저 주저앉을까? 앙상한 신체를 지키지 못해 그처럼 폐허가 되고 마는가? 인물들은 자신을 관통하는 고통 속에서 어떤 공진의 지대를 발견한다. 그것은 “직접 겪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금방 알아듣게 된” 나에 대한 회고이고, “자기 고통이랑 다른 사람이 갖는 고통이랑 비록 같지는 않아도 뿌리는 비슷하다”는 공명이며, 그렇기에 더 이상 “고통스럽거나 낯설지 않게” 그것들을 마주하고 역으로 “내가 겪었던 상황과 기억, 그런 것들”이 치고 올라와 금방 타자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공진하는 지대의 발견이다. 이 지점에서 이 내밀하고 개인적인 서사는 한 인칭적 개체의 울타리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로 확장되고, 비인칭의 서사로 나아간다. “정말 죄책감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감정에 몰아넣었던 4월 16일, 영화 속 인물이 ‘죄책감’이라는 시를 읽을 때 그것은 모두의 달력을 일제히 그 날로 돌려놓는다. “밤에 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건 네 탓이야”, “여자가 무슨...”, “안에 싸도 되지?” 같은 말들을 함부로 뱉었던 사회에 그 말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작업을 마주할 때, 우리의 신체는 이미 여성의 그것이 되고, 그 모욕에 욕지기를 느낀다.

그렇기에 언뜻 보기에 대단히 정적인 인물들의 몸짓과 말들은 거대한 출렁임을 동반하는 동요의 진원지가 된다. 그들이 자신의 몸으로 감각되는 고통에 최대치로 달라붙어 그 뾰족한 삶의 조각들을 성실히 쓰다듬고 세공할수록, 우리는 그 쓰라림을 넘어선 배후를 기대하게 되고 그들의 작업대에 바싹 다가서게 된다. 우리는 “약까지 먹고 회사를 다니려고 하다니. 되게 이상한 생각이네. 나 병들었었구나. 안 되겠다. 탈출하자!”고 선언하는 오하나의 결단에서, “코앞에 술잔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항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집에서 나와 같이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를 곁에 둔 기쁨을 넌지시 전하는 김수덕의 말에서, “1+1은 2밖에 안 되고, 배부르려면 다른 나라를 약탈해야만 하는 필연적이고 투쟁적인 게임의 세계 배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시는 보여주는 것 같다”는 안태형의 미소에서 이미 고통의 이면에 자리한 또 다른 세계를 엿보기 때문이다.

척박한 토지를 개간하는 데 따라야 할 마땅한 수순은 없다. 다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詩)가 자신의 일상에 일으키는 고요한 진동을 조금씩 감지할 뿐이다. 항시적으로 우리는 시를 만난다. 시는 나와 같이 느끼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감응을 불러일으킨다. 시적 화자를 자신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때문에 단순한 공감과 위로받음이기 이전에, 그들이 드러내는 낯선 감각과 조우하는 일이다. 그렇게 시가 고통의 장막을 찢어내고 강렬한 빛을 안으로 들일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엿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죄책감’의 시적 화자를 따라 우리는 끝없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간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고, 그만큼 그 일은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쉼 없이 내려간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그 고요한 데시벨의 정점에 도달한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가다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는 마지막 시구에서, 우리는 이 인물들의 그간의 몸짓의 정체를 별안간 깨닫는 것이다. 인물들의 행보는 혹시나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렇지만 그 역시 “별 시답잖은 생각”일지 모른다는 머뭇거림과 흔들림 속에 있다. 비록 그것이 표면적으로 불안과 고통, 절망으로 점철되었더라도, 그들은 그 배후에서 그와는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그렇게 지극히 수동적인 동시에 무력한 한 인간들의 서사는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희망의 몸짓이 된다. 척박한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살겠다고 결심할 때, 우리의 개간 작업은 시작된다. 그것이 비록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 그렇기에 쉽게 “시답잖은 생각”이라고 치부되어 버릴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시답잖은 생각에 미래를 건다. 지금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지금 여기에 불러 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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