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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미나_가상현실보다 환상적인 포 읽기

수유너머웹진 2019.06.24 16:51 조회 수 : 232

가상현실보다 환상적인 포 읽기

-끝까지 가본 인간 정신의 다채로움

   

                                                                                  

 

         이봉순(수유너머 문학세미나 회원)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광기와 우울로 대변되는 그의 명성 때문에 잘 알려져 있는 아는작가임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천재적인 문학가로서의 위상과 진면목을 모르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검은 고양이애너벨 리로 회자되는 포를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그의 문학세계의 깊이와 다채로움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엿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수유너머104 문학세미나를 통해 그의 시선집을 비롯하여 단편전집 우울과 몽상을 세미나원들과 함께 읽기 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포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세미나 반장님이기도 한 송승환 시인이 작년 여름에 다른 삶은 있는가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문학강좌를 통해서였다. 일련의 강좌 중 그의 대표시 갈가마귀를 함께 읽으면서 음미하고 또 그의 시작법에 대한 글을 분석했던 시간을 통해 세미나원들 중심으로 포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19~20세기 초 프랑스 극작가의 대표 작품들을 읽으면서 시작된 문학세미나의 한 정점이 보들레르가 내가 쓰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여기에 있다고 한 포의 소설전집과 시선을 읽으면서 맞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미지-거기로 향하는 언어의 모험, 전위적 상상력의 언어, 외부와 바깥의 언어,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탐문해온 문학 작품을 매주 함께 읽고 토론합니다. “다른 삶들은 있는가라는 아르튀르 랭보의 문장을 오늘의 물음으로 되새기면서 지금-여기전체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삶과 언어의 모험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1년 전 521일 문학세미나를 시작하는 글을 새삼 읽어보며 지난 1년간 현대극의 효시가 된 희곡들, 포의 소설과 시, 페소아의 산문과 시,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를 거쳐 본격적인 초현실주의를 탐색하는 시즌을 시작하기까지 뒤돌아보면 포만큼 미지-거기로 향하는 언어, 전위적 상상력의 언어, 다른 삶의 가능성을 끝까지 누구보다도 다양한 형식과 실험을 통해 탐색한 작가가 있을까 싶다. 그리고 그의 글들이 영감과 천재로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와 효과 그리고 이론을 바탕으로 치열한 노력 끝에 완성된 세계라는 점에 경탄하게 된다. 포는 짧은 미국문학의 전통에서 전무후무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생전에 상당한 명성을 얻긴 했지만, 오히려 프랑스에서 먼저 인정받고(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감성,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시어의 선택과 구성, 시작법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사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현대문학과 미술, 철학 곳곳에 영감을 주었다. 나도 포의 작품을 읽으면서 여러 지점에서 포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과 작가를 다시 만나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포의 단편소설 아른하임의 영토가 데려가는 상상의 지점은 초현실주의 미술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아른하임의 영토가 자아내는 시적, 환상적 공간이 주는 암시와 서로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천일야화의 천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대문학의 거장 보르헤스의 환상적인 글쓰기가 포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불명확함, 과학적 설명처럼 세밀한 각주를 사용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만들기, 책 속의 책,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체험하게 하는 소설적 기법이 이미 포의 단편에서 시도되었다. 그런가 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 문학관과 상통하는 아름답지만 기이하고 몽상적인 것에 대한 포의 집착은 엘레노오라, 베레니스, 리지아등의 단편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다. 포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보다 앞선 세대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오스카 와일드가 포의 작품들을 읽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예술을 위한 예술,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의 태도 등이 앞선 세대 포에서 진지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포가 짧은 생애동안 쓴 단편소설의 소재와 형식은 다양한데, 19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은 열기구를 소재로 한 이야기 열기구 보고서, 열기구 종달새 호에 탑승하여 284841에서 포가 독특한 상상력으로 펼쳐 보이는 철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 우주와 미래문명,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글쓰기는 지구 혹은 지상이 아닌 다른 곳, 다른 삶에 대한 관심과 열망의 표현으로 읽혀졌다. 그리고 싱거 밥 귀하의 문학인생-고인이 된 한 편집자의 육필원고, X투성이의 글, 블랙우드식 기사 작법등에서는 포의 언어에 대한 위트 있는 감각과 허를 찌르는 풍자를 잘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현대 추리문학의 원형인 모르그 가의 살인, 도둑 맞은 편지, 군중 속의 남자, 황금 곤충등은 지금 읽어도 그 상상력의 치밀함과 세련된 구성에 감탄하게 된다. 특히, 도둑맞은 편지는 라캉, 들뢰즈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서 인용되고 영감의 원천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포의 흑백 초상사진을 본다. 우수한 교육을 받아 영민했고 감수성이 예민했으며 학창시절에는 다방면에서 최고의 재능을 보여준 학생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문학적 성취 속에서 정신착란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았으며 요절한 어린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문학적으로 보여주었지만 살아 생전 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한 우울한 눈빛의 한 남자가 어떻게 그 짧은 생애동안 그토록 뛰어난 시와 소설을 썼는가 생각해본다. 그의 존재와 삶 자체가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하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나에게 문학은 현실도피였다. 그것이 소극적, 퇴행적 태도일 수 있지만 현실의 일상에서는 가질 수 없는 아름답고 고양된 감정, 우울하지만 달콤하기도 한 다른 삶을 바라보게 하는 현실도피였는데, 포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문학읽기가 주는 아름다운 현실도피 속에 충분히 즐거웠다. 기술을 이용하여 생생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고 애니메이션이 실사보다도 더 현실적인 장면장면 묘사로 우리의 눈길을 매료시키는 요즘에도 포의 문학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독서의 경험을 통해서 즉 글로서만 가볼 수 있는 환상과 이상의 세계, 미지의 세계이자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현실도피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다른 삶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혹은 그럴 수 있기를.

 

  다양한 문학적 형식으로 글쓰시를 하면서 결국 포는 보이는 것 너머의 현실, 우리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혹은 다르게 보기를 시도했다. 프랑스 상징주의자, 초현실주의자,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영감의 원천이 된 포의 단편들과 그의 시작법 태도는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력적이고 유효한 도전을 주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 두꺼운 소설집의 첫 장을 펼칠 때 또 어떤 태도로 읽을지 또 읽히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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