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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30주기 추모 기획세미나_기형도 시집 새로 읽기

수유너머웹진 2019.06.22 00:07 조회 수 : 248

입속의 검은 잎 시집 읽기

 

 

 

                                                                          나무(기형도 기획세미나 회원)

 

 

 

지금까지 우리는 4차례에 걸쳐 기형도의 미발표작 시들과 산문을 읽었다. 어찌보면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읽기 위한 준비 단계로 근육을 키워오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세미나에서는 1부의 시들 일부를 읽었다. 3시간 꼬박 열띤 논의를 걸쳐 살펴본 시들은 시집에 나열된 순서대로 보자면 이렇다. <어느 푸른 저녁>, <오후 4시의 희망>, <장미빛 인생>,<여행자>,<추억에 대한 경멸>,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물 속의 사막>, <정거장에서의 충고>,<진눈깨비>,<그날>. 그러나 우리는 어떤 우발을 기점으로 우리만의 리듬을 이끌어내며 세미나를 진행하기 때문에 실제 논의된 순서는 이와는 다르다.

튜터님이 회원들에게 어떤 작품을 인상적으로 읽었냐는 물음에 한 분이 <그날>이 인상적이었는데, 분위기가 독특하다고 운을 띄웠다. 여기에 촉발되어 우리의 논의는 종횡무진 롤러코스트를 타듯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제부터의 서술은 회원님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글쓴이 나름대로 소화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품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써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가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날> ;인생의 비애 】

 

 

여기 “전날” “직장과 헤어”진 “백발”의 “은퇴한 노인”이 자신의 “넋”을 챙겨 기나긴 여행을 떠나려 한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그의 지난 삶은 권태에 짓눌린 날들이었다.(“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된다.”) 그의 마음 속 소지품의 내용물은 “비로소 나는 풀려나간다”는 자유에 대한 기대와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는 삶의 중심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벅찬 희망과 설렘이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짐을 다 꾸려 “텅텅 울리”(불길함의 전조)는 낭하(복도)를 지나 현관문 앞에 손잡이를 붙들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거리를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렇다면 그의 최후의 발걸음은 안녕하신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는 “쇠뭉치 같은 트렁크”에 걸려 혹은 기력이 부친 나머지 나자빠지고 만다. 그때 “계집아이 같은 가늘은 울음 소리가 터”지고(<여행자>에서의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 길쭉하고 가늘은 다리”가 오버랩되는 순간.) 빗방울이 백발 위로 떨어진다. 이 “빗방울”의 다른 이름은 또 다른 생에 대한 축복의 고무鼓舞가 아니라 눈물 또는 슬픔인 것이다. 이 시는 삶의 아이러니로서의 인생의 비애가 느껴진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몸과 영혼을 담보로 자본의 굴레에 속박되어 은퇴한 이후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카르페 디엠(Carpe diem)!

 

 


그 날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에서 金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소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된다.

모든 의심을 짐을 꾸리면서 김은 거둔다.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젖은 길은 침대처럼 고요하다. 마침내 낭하가 텅텅 울리면서 문이 열린다. 잠시 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거리를 바라본다. 김은 천천히 손잡이를 놓는다. 마침내 희망과 걸음이 동시에 떨어진다. 그 순간, 쇠뭉치 같은 트렁크가 김을 쓰러뜨린다. 그곳에서 계집아이 같은 가늘은 울음 소리가 터진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빗방울은 은퇴한 노인의 백발 위로 들이친다.

 

 

기형도의 어떤 시편들은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인상적인 장면을 따와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여 극화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날>이 그렇거니와 <장미빛 인생>과 <추억에 대한 경멸> 또한 마찬가지다.

 

 

 

【<장미빛 인생>;“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장미빛 인생>은 누아르 필름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측면(시 제목도 또한 그렇다)이 있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희극적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분명 우두머리를 꿈꾸었을” 어깨 세계의 만년 2인자 내지 똘마니 쯤 되는 듯한 반백의 덩치다. “그는 건강하고 탐욕스러운 두 손으로/ 우스꽝스럽게도 작은 컵을 움켜쥔다.“는 대목에서 시적 화자의 농기弄氣가 드러나고, 평생 보스 밑에서 눈치나 살피며 기죽어 지낸 그의 곤고한 삶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얼굴 위를 걸어다니는 저 표정”에서 엿보인다. 그가 결국 “두툼한 외투 속에서” 꺼내든 것은 건달들의 필수품인 송곳이나 주머니 칼(“그것으로”, “무엇인가”의 정체)로, 탁자를 파내며 새긴 구절은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라는 말이다. 이 행은 한 연을 이루고 있거니와 상당히 중의적으로 읽힌다. 무슨 거사를 도모하려는 듯한 사내의 신중한 몸가짐과(“건장한 덩치를 굽힌 채, 느릿느릿/ 그러나 허겁지겁, 스스로의 명령에 힘을 넣어가며”)는 달리 한갓 ‘낙서행위’였다는 측면에서 희극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의 함량을 생각할 때 어떤 처절함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허황된 꿈을 꾸는 어깨 세계의 똘마니를 통해 우리네 욕망의 허망함을 그렸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장미빛 인생’이라는 제목을 나는 그렇게 읽고 싶다. (참고로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은 사랑에 대한 찬가다.

 

 

 

장미빛 인생

 


문을 열고 사내가 들어온다

모자를 벗자 그의 남루한 외투처럼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밀어넣고

그는 건강하고 탐욕스러운 두 손으로

우스꽝스럽게도 작은 컵을 움켜쥔다.

단 한번이라도 저 커다란 손으로 그는

그럴듯한 상대의 목덜미를 쥐어본 적이 있었을까

사내는 말이 없다, 그는 함부로 자신의 시선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한 곳을 향해 그 어떤 체험들을 착취하고 있다.

숱한 사건들의 매듭을 풀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많은 방문객들을

저 시선은 노려보았을까, 여러 차례 거듭되는

의혹과 유혹을 맛본 자들의 그것처럼

그 어떤 육체의 무질서도 단호히 거부하는 어깨

어찌 보면 그 어떤 질투심에 스스로 감격하는 듯한 입술

분명 우두머리를 꿈꾸었을, 머리카락에 가리워진 귀

그러나 누가 감히 저 사내의 책임을 뒤집어쓰랴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다, 비로소 생각났다는 듯이

그는 두툼한 외투 속에서 무엇인가 끄집어낸다

고독의 완강한 저항을 뿌리치며, 어떤 대결도 각오하겠다는 듯이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얼굴 위를 걸어다니는 저 표정

삐걱이는 나무의자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밀어넣고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 위를 파내기 시작한다

건장한 덩치를 굽힌 채, 느릿느릿

그러나 허겁지겁, 스스로의 명령에 힘을 넣어가며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추억에 대한 경멸>; ‘추억은 노인에게나 어울린다’】

 

 

<추억에 대한 경멸>은 한 인간의 소외와 고독을 실감나게 포착하고 있다. 혼자 사는 듯한 사내는 손님과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겨울 어슴푸레한 저녁을 맞았다. 그러나 이는 자기기만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자신의 실토(“탄식”)로 보아 “유쾌”는 “불쾌”라는 감정을 더욱 부추겨줄 뿐이다. 이후는 사내의 소외의 공간과 몸부림치는 고독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불을 켜려고 방 안을 가로질러가야 하는데, 그는 “방이 너무 크다”고 중얼거린다. 실제 방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게으른 사내”이자 외로운 인간이기 때문이다.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이 구절은 단어 배열이 통상적이지 않은데, 리듬을 고려한 것 같다.(원래의 구조는 ‘방이 너무 크다,고 중얼거린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많으니까)’가 되어야 한다.) 시인은 “왜냐하면, 하고”라는 도치 형태를 통해 교묘하게 리듬을 살려내고 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첩을 꺼내 추억을 뒤적거린다. 그러나 문득 혼자 견뎌야 할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여인숙”이란 단어가 그의 외로운 처지를 부추겨주고, “모자라도 뒤집어쓸까”라는 문장이 그의 권태를 교묘하게 함축하고 있다. 그는 마침내 “내가 차라리 늙은이였다면!”하고 탄식하며 “사진첩을 내동댕이친다.”

 

마지막 행에서 사내의 몸부림치는 고독(“독한 술”로 위안을 삼으려는)은 역동적(“헐떡이는”)으로 묘사된다.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고양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한 술을 쏟아붓는, 저 헐떡이는, 사내”. 아, 이렇게 써 놓고 다시 읽어보니 이 구절을 “모자라도 뒤집어쓸까”하고 변화를 갈구하는 사내의 엽기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게 더 적절하다고나 할까. 날카로운 이빨의 주인공은 고양이이고 사내는 고양이의 야생성과 독립심에 질투가 뻗쳐 그놈의 입에 술을 들이붓고 있는 것이다, “헐떡이며”. 마침내 고독은 엽기적인 폭력으로 완성되었다고나 할까.

 

‘추억은 노인에게나 어울린다’고 나는 쓰고 싶다.(<입속의 검은 잎>에 나오는 “침묵은 하인에 어울린다”의 패러디.) 왜냐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이미 지나 갔으니 젊은이에게는 항상 미래의 시간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 속의 젊은 사내가 미래에 대한 전망이 꽉 막힌 노인처럼 과거의 추억거리를 반추反芻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 ‘추억에 대한 경멸’이다.

 

 


추억에 대한 경멸

 

 

손님이 돌아멸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

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

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

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

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

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

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

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된다.

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

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쓸까

어쩌다가 이봐,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

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렇다, 이런 밤은 저 게으른 사내에게 너무 가혹하다.

내가 차라리 늙은이였다면! 그는 사진첩을 내동댕이친다.

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 그의 커다란 슬리퍼가 벗겨진다.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고양이,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독한 술을 쏟아붓는, 저 헐떡이는, 사내

 

 

 

【 <정거장에서의 충고>;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

 

 

이 시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하는 구절로 시작한다. “희망을 노래하”는데 왜 “미안하지”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에서는 ‘집’과 ‘길’과 ‘구름’ 이미지가 유독 눈길을 끈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이 ‘집’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이며, ‘길들’위에서의 날들을 영위해야 하고 ‘구름’과 같이 떠돌고 나서야 다시 또 다른 우주라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동안 의심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희망을 노래하련다”의 내용은 저 종결부의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에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불안의 짐짝들”은 한 개인의 고통과 불안을 말할 수도 있으나 인간의 생로병사 자체가 불안의 목록들이 아닌가. 한마디로 삶의 이면들인 것이다.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는 말에서는 절망이나 체념이 아닌 배포와 달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나는 쓴다”라는 말에는 방점을 크게 찍을 일이다. 인간의 필연적인 죽음을 응시하면서 화자는 자신의 실존을 시인으로써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는 마지막 행은 조로早老의 엄살 내지 위세나 겉늙은이 포즈가 아니라 이 생의 이치를 깨달은 자의 역설적인 어법으로 읽고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이미 늙은 것이랄 수도 있겠다. 자신의 꼬리를 문 우로보로스처럼 처음과 끝이 이미 내 몸 안에 있으니.

제목에서 보이는 ‘정거장’의 의미는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의 첫 문장, ‘만물지역려萬物之逆旅’를 떠올리게 한다.

“무릇 천지란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夫天地者 萬物之逆旅)

광음은 백세의 나그네와 같다光陰者 百代之過客”

말난 김에 덧붙이자면 <죽은 구름>이라는 시편에 등장하는 구름도 역려逆旅(정거장)의 이미지와 흡사한 뉘앙스를 풍긴다. 행려자가 도시의 빈집에서 객사한 내용을 다룬 이 시는 더러운 창문에 머물다가 “저 홀로 흩어진 구름은/ 처음부터 창문의 것이 아니었으니”라는 말로 끝나고 있다.

 

 

 

정거장에서의 충고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마른 나무에서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지고

나는 천천히 노트를 덮는다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

그러나 추억은 황량하다, 군데군데 쓰러져 있던

개들은 황혼이면 처량한 눈을 껌벅일 것이다

물방울은 손등 위를 굴러다닌다, 나는 기우뚱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집을 떠나왔던가

그것으로 흘러가는 길은 이미 지상에 없으니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

구름은 나부낀다, 얼마나 느린 속도로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나뭇잎들이 그 좁고 어두운 입구로 들이닥쳤는지

내 노트는 알지 못한다, 그 동안 의심 많은 길들은

끝없이 갈라졌으니 혀는 흉기처럼 단단한다

물방울이여,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들어선 안 된다

주저앉으면 그뿐, 어떤 구름이 비가 되는지 알게 되리

그렇다면 나는 저녁의 정거장을 마음속에 옮겨놓는다

내 희망을 감시해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물속의 사막>;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1부의 시들을 읽으면서 글쓴이가 주목한 시편은 <물속의 사막>이었다. 이미지 연상이 뛰어난데다 화자 ‘나’의 회상을 통한 심회가 돋보이며 시적 기교가 출중하다는 점에서다. 오밤중, 화자는 도시의 빌딩에 혼자 남아(당직 근무?) 창을 통해 퍼붓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첫 행에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비는 장마비인데, 그는 문득 유리창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의 형상에서 옥수수잎이 사르르 흔들리는 모습을 연상한다.(“유리창,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린다”.) 이로 인해 “무정한 옥수수나무······”하고 무심결에 중얼거리게 되고, 이는 “그해” 장마에 대한 촉매가 되어 연상 작용에 추진력을 얻게 된다. 흰 개는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그 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집에 대한 연상은 고향 ‘비닐집’으로 이어지고 흙탕마다 무성했던 잎들(아마도 옥수수 잎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창문에 아버지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오른다. 아버지는 유리창에 잠시 붙어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고 말한다. 이어 아버지는 “빗줄기와 몸을 바”꿔 “우수수ㅡ”지워지는데, 이는 ‘옥수수’의 발음에 따른 유사 발음 이미지다. 그러고 나서 화자는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하고 아버지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아버지의 환영’과 더불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에 “와이셔츠 흰 빛은 터진다”는 이미지는 밤 도시의 차디 찬 빌딩의 삭막함을 보여준다.(더불어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의 이미지 또한 삭막한 도시 이미지가 섬뜩하게 드러나고 있다.)

 

‘물속의 사막’이라는 제목의 의미(사막 속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물속의 사막이다!)는 첫 행의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는 말에서 장마통에 도시의 환한 빌딩 안에 갇힌 모습에서 우선적으로 제시되는데, 놀라운 점은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는 마지막 행의 겹의 구조를 띤 사막의 이미지다. ‘집’은 ‘눈’으로 ‘물들’은 ‘눈물’로 치환하여 읽을 수 있겠는데, 메마른 도시의 삶속에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화자의 회한을 엿볼 수가 있다. 이는 역시 자신의 삶 또한 사막에 다름 아니다라는 전언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물속의 사막

 

 

밤 세시, 길 밖으로 모두 흘러간다 나는 금지된다

장마비 빈 빌딩에 퍼붓는다

물 위를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지나가고

나는 더 이상 인기척을 내지 않는다

 

유리창, 푸른 옥수수잎 흘러내린다

무정한 옥수수나무······· 나는 천천히 발음해본다

석탄가루를 뒤집어쓴 흰 개는

그 해 장마통에 집을 버렸다

 

비닐집, 비에 잠겼던 흙탕마다

잎들은 각오한 듯 무성했지만

의심이 많은 자의 침묵은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한다

밤 도시의 환한 빌딩은 차디차다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오신다

유리창에 잠시 붙어 입을 벌린다

나는 헛것을 살았다, 살아서 헛것이었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진다, 빗줄기와 몸을 바꾼다

 

아버지, 비에 묻는다 내 단단한 각오들은 어디로 갔을까?

번들거리는 검은 유리창, 와이셔츠 흰 빛은 터진다

미친 듯이 소리친다, 빌딩 속은 악몽조차 젖지 못한다

물들은 집을 버렸다! 내 눈 속에는 물들이 살지 않는다

 

 

 

 

【<오후 4시의 희망>; ‘어리석은 시간’】

 

 

이 시는 글쓴이 나름으로 <잎 속의 검은 잎>과 더불어 문제작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세미나는 기형도에 대한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를 빌어 회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통상 기형도의 시 세계를 ‘극단적인 비극적 세계관’이니 ‘도저한 부정성의 세계’로 치부들하고 있는 모양인데, 이 시를 통해 그러한 시각이 상당히 피상적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기력이

육체에 대한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

-<밤 눈>의 시작 메모

 

 


이 문제작은 우선 시적 화자, 다시 말해 인칭의 문제에서 기형도의 독특한 특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시편이라 할 만하다. 이 시에는 ‘金’과 ‘나’와 ‘그’라는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세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자아의 삼중 분열로 해석된다. ‘金’은 대상화된 또 다른 ‘나’의 자아이고, ‘그’ 또한 또 다른 자아이다. 이들 관계의 위상에 대한 정치한 분석은 차후로 미루기로 하고 우선 이들이 동일인이라는 것만 지적하도록 하자.(이 부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금은돌 튜터님의『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라는 책에서 ‘흐르는 주체’ 개념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각각 한 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행들에 드러난 인칭의 배치를 통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위의 지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첫 행에서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도 참고할 만하다.) 이러한 문제는 굳이 들뢰즈의 ‘되기’라는 용어를 빌리지 않고서라도 정신분열적인 요소라기보다는 ‘만인되기’라는 시적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만물되기’라는 시편도 읽은 적이 있지 않은가. <새벽이 오는 방법>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썩은 나무 등걸처럼 나는 쓰러진다. 바람이 살갗에 줄을 파고 지났다. 쿡쿡 가슴이 허물어지며 온몸에 푸른 노을이 떴다. 살이 갈라지더니 形體(형체)도 없이 부서진다.”

글쓴이는 이 시의 구조적인 측면에 대한 분석은 차치하고 주제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를 천착해보자고 한다. 글쓴이는 처음에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이 시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해석했었다. 그러한 단서는 단적으로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라거나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결정적으로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는 부정적인 듯한 진술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섣부른 판단이었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에서 의미심장한 긍정적인 기미가 엿보이고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라는 역설적인 표현에서 생애 대한 애착이 느껴지고, 마침내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에서 ‘어리석은 시간’을 <밤 눈>의 시작 메모를 참고해 볼 때 시쓰기를 통한 실존의 구체적인 확인의 시간으로 읽을 때 그의 “울음”과 “얼굴이 이그러지”는 희열의 순간을 묘사한 것이라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여 ‘오후 4시의 희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의 푸른 노트에 쓰여 있던 알짜배기 ‘HOPE!" 참고로 기형도의 후배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시인은 하루의 근무를 마친 오후 4시에 신문사 빌딩에서 (이) 시를 썼다고 한다.

 

 

 

오후 4시의 희망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간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은 중얼거린다,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을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 것이다,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 여보게

놀라지 말게,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에 앉아 있었네

김은 약간 몸을 부스럭거린다, 이봐, 우린 언제나

서류뭉치처럼 속에 나란히 붙어 있네, 김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아주 얌전히 명함이나 타이프 용지처럼

햇빛 한 장이 들어온다, 김은 블라인드 쪽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가볍게 건드려도 모두 무너진다, 더 이상 무너지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네

김은 그를 바라본다, 그는 김 쪽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무너질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가

즐거운가, 과장을 즐긴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한가

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

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

한 번 꽃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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