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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정상참작될 수 없는 고백 앞에서

― 금은돌,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읽고 ―

도경(수유너머104 회원)

 

한국문학사 수업이 한창인, 대학의 한 강의실이 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학생이 김수영을 주제로 리포트를 발표한 뒤의 일이다. 여학생들은 김수영 시의 여성혐오적인 측면에 “분노”했다. 교수는 되도록 중립적인 태도로 김수영 시를 분석하고 그와 그의 시가 놓인 문학사적 위치를 설명했으나 그녀들은 설득되지 않았다. 이 수업 기말 리포트 제목 중 하나는 “찌질이 김수영”이었다.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그보다 ‘먼저 웃는’ 민중의 저력을 노래하고(「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정권의 부정에 더욱 정면으로, 온몸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을 통렬히 반성한(「어느날 고궁을 나서면서」) 참여시인 김수영은 어쩌다 찌질이가 되었는가.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反逆)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김수영,「구름의 파수병」에서

사실 김수영은 끊임없이 ‘고백’했다. 나는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고. 나는 찌질하다고. 시와, 문학과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그의 생활, 그 반역이란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이었다. 가정과 돈, 안일한 일상과 천박한 자본주의. ‘여편네와 아들놈을 데리고 낙오자처럼 걸어가면서’ 그는 ‘조용히 미쳐’갔다. 김수영의 ‘그 고절과 비애’(「생활」)의 핵심에는 어김없이 ‘여편네’가 있었다. ‘단돈 10원에 벌벌 떠는 여편네’(「이 거룩한 속물들」). ‘여편네의 계산’ ‘너의 독기가 예에 없이 걸레쪽같이 보이고’(「만용에게」) ‘봉건의 노예이던 여자는 지금 금전으로 그 상전이 탈을 바꾸어 있을 뿐’(「내실에 감금된 애욕의 탄식」)이지만 그런 ‘여편네의 방에 와서 기거를 같이해도’ ‘나는 점점 어린애’(「여편네의 방에 와서 –신귀거래1-」)다. 이 무력한 남성 시인은 비속한 여편네・여성을 혐오한다. 그리고 그 혐오를 경유해 자기를 비하한다. 찌질이 김수영, 맞다. 여학생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김수영은 고백했다. ‘시에서 욕을 하는 것이 정말 욕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문학의 악의 언턱거리로 여편네를 이용한다는 것은 좀 졸렬한 것 같은 감이 없지 않다’(「시작 노트 4」)고. 김수영의 여러 시가 여성을 혐오와 폭력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혐오의 비윤리성을 스스로 고발하고 윤리적 문제에 자기를 투신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김수영은 문학과 생활을 구분하지 않았다. “생(生)은 시의 재료”였고 그래서 “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되었다. 김수영 연구자, 이영준 교수의 말대로 ‘김수영의 시가 갖고 있는 문제적인 측면은 그 시대가 그랬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드러낸 것으로 용서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용서,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 어린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 40명가량의 취객들이 /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 아까운 것이 /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김수영,「죄와 벌」

 그러나 용서는 불가하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힌 죄와, 죄를 꺼리지 않은 시대와, 그 시대에 대한 자백 역시 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타자 혐오를 예민하게 기소하는 시대. 우리는 문학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을 읽고 써야 한다. 꾸짖고, 벌하고 드러내야 한다. ‘밤새 고인 가슴의 가래’를 ‘마음껏 뱉어’(「눈」)낼 때다. “나를 부수는 장소에서, 철저하게 실패를 공부하는 일. 그 장소가 문학이”기 때문에. “김수영은 스스로 탑을 쌓지 않았”으며 자기 “신화화를 반대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 아침에 서약한 게 있다니까 / 남편은 어제의 남편이 아니라니까 / 정말 어제의 네 남편이 아니라니까’(「거미잡이」) 이것은 시인 김수영이 서약한 기꺼운 벌일 것이다.   

김수영은 “여편네”를 이용하면서, 얼마나 폭력적인 남성인지, 얼마나 여성을 무시해왔는지, 폭로해 왔다. 심지어 황홀과 연민의 순간에도 자기 분석을 놓지 않았다. 시인 자신은 철저한 텍스트였다. ― 금은돌,「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68)

금은돌 작가는「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에서 문학적 프로파일링을 시도한다. “왜”라는 부사로 ‘여편네’ “사건을 둘러싼 상황을 삽으로 파”내려 한다. “접사 카메라가 되어 밀착하여 바라보는 일. 다시 멀어지는 일” “부사 ‘왜’의 작동방식’”에 따라서. 작가는 김수영의 출신에 밀착해본다. 연극배우였던 김수영의 시가 드라마적 감정구조로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토대로 시를 분석한다.「죄와 벌」 화자(배우)의 자기 인식(“폭력을 휘둘렀지만 위대한 인물은 아닌”)과 성격(“반성하는 기미 없이 투덜”) 그리고 가치관(“타인의 고통보다 남자의 체면이 중요”)을 간파하고 화자의 “방백”에서 “철저하게 아웃포커스”된 “대사는커냥, 눈빛 한 번조차 나타내지 않”(56)는 여성의 희생을 읽어낸다.

「만용에게」와 「식모」 분석에서도 “드라마 흐름과 주도권을 쥔 남성은 혼자서 모든 상황을 종료”(58)하는 현장을 짚어낸다. 여편네, “「어디 마음대로 화를 부려보려무나!」라는 직접화법으로 아내의 간접화법을 덮어” 그녀의 목소리를 “은폐시키는 형식”을 치밀하게 밝혀낸다. 화자는 “타자(아내)에 대한 책임보다 ‘나’의 자유를 중요”(59)하게 여기고 있다고 판단, 그런 배역을 지시한 시인(연출가)의 “남성적 지배 욕망을 실연(acting-out)하는 이데올로기 공연”(57)을 비판한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낮춘 것은 포즈에 불과하”며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전략이자 뒤집기 수법”(61)이 아닌지 의심한다. “자유와 정의와 양심과 사랑의 표어를 내걸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폭력”(63)이라고.

접사 카메라의 수사 다음 “‘왜’가 놓여야 할 위치는 “over view”였다. 작가는 거리를 두고 사건들을 살핀다. 화자가 “흠칫, 놀라”(「이혼 취소(離婚 取消)」)거나 “섬찍함을 느끼는”(「성(性)에서」) 지점에 주목한다. 아내의 ‘눈동자’에서 ‘그대가 흘리는 피’를 본 순간. 화자는 놀람을 느끼며 “내면에 스며든 눈동자”를 “타자를 직감하는 기호”(65)로 받아들인다. 아내는 화해 가능한 마주봄을 압도하기도 했다. 아내와의 성관계 중 화자는 “아내에게 적나라하게 “개관”당하는 지점”에 이른다. “느닷없이 거울로 비춰진 “섬찍”한 낯섦”을 느낀 그는 아내의 응시에 더 이상 “내가 나를 속일 수 없는 지점”(67)에 이른다. “시선이 역전당하면서 자리바꿈이 이루어”(68)진다. 여성-“타자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시인은 저만치 아래로 미끄러지는”(46) 남성-주체가 무력화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속물근성을 여성에게 전가하고, 위로받으려고 했던 포즈들. 여성을 비하하며 요설조로 몰아붙이고, 폭력성을 드러냈던 장면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남성이었는지 보여주었던 자학적인 면모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사랑의 온전함이 아니었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내리치는 폭력성까지 고백하면서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결핍이었다. (70)

몇 년전, 한국문학사 수업이 한창인 대학의 한 강의실에 금은돌 작가가 있었다. 여학생들은 김수영 시의 여성혐오에 분노했다. 찌질이 김수영. 작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김수영은 찌질했는가?” “김수영은 왜 자신의 찌질함을 기록했는가?”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 김수영은 남편과 아내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문학으로 끌어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순과 폭력성을 까발리”려했다. “사랑의 결핍”을 역설하고 진정한 “사랑의 이행을 실현”(70)하기 위해서. 찌질한 자신을 폭로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분석하면서. 그러나 김수영의 (자유와 정의와 양심과) 사랑론이 여성-타자 혐오를 경유했음에도 위대함으로 승인되어 온 것은 “남성 중심적인 관점에서 김수영 신화를 만들어 나간 것”(71)이며 이 신화는 유죄 판결을 피할 수 없다고, 작가는 결론 내린다.

그리고 금은돌 작가에게 “이것은 단지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관한 비판으로 끝나지 않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시를 왜 쓰는가?” 질문의 “미궁 속으로” 던져진 채, 작가는 “오랫동안, 방황했다”고 한다.『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쓴 이후 그녀는 아리아드네의 실마리를 잡았을까. 미궁에서 빠져나왔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라는 부사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이기 때문에, 금은돌 작가는 “‘문학하다’는 문장에 끌려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상참작될 수 없는 또 다른 사건에 부사 “왜”를 꼽을 것이고 새로운 질문의 미궁들 속으로 괴롭게 그러나 기꺼이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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