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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미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페르난두 페소아

수유너머웹진 2019.04.25 13:54 조회 수 : 26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페르난두 페소아

 

 

 

 

 

이재현(수유너머104 세미나 회원)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라는 제목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내 불안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던 것과 동시에 “OO(여기엔 우울, 행복, 기쁨, 만족, 게으름 등이 해당한다.)/(적절한 조사 자리)/□□(여기엔 기원, 정복, 여정, 접속, 괜찮아 등이 해당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 치고서 정말 멀쩡한 책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시선을 조금 내려 배수아 작가가 이 책을 번역했고, 이후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도 포함된 것을 확인한 뒤엔 기꺼이 서가에서 뽑아들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의 책을 읽어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도 충분히 있는 내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려는 듯이 두터운 산문집 속 수백 개의 산문들은 일련의 통일성과 흐름을 배반하면서 제각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때로는 인류역사의 유구한 문제들에 대한 이성적 논증으로, 때로는 자연의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의 표현으로, 또 때로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존재들과의 일화로, 다시 때로는 꿈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이들을 마주대하며 느끼는 소회로 이어지는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페소아가 펼쳐 보이는 소재와 감성의 다양성과 그 깊이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단순히 한 화자의 내면의 넓이로서만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 앞에서 말한 것들을 뒤에서 다시 반박하는 순간까지 마주치게 되면 과연 이 책을 믿고 따라가도 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난 존재하지 않는 패거리를 만들어냈어. 이 모든 걸 실제 세계의 틀들에 맞췄지. 서로 주고받는 영향들에 눈금을 매기고, 우정 관계들을 구체화시키고, 내 안에서, 다양한 관점들과 토론들을 경청했고, 이 모든 것으로 봐서는, 그들 모두를 창조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가장 거기에 없던 사람이었어.”

 

페소아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직접 자신의 창작과 이명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만큼 페소아의 문학세계를 명약관화하게 드러내는 구절도 없을 것이다. 페소아는 독특하게도 수십 가지의 이명을 내세워 글을 썼다. 그런데 페소아의 이명은 본명을 가리기 위한 한두 가지 필명의 수준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적인 자아를 가진 수십 명의 인물들의 목록이었다. 불안의 책또한 페소아 본명이 아닌 베르나르두 소아레스가 화자이며, 심지어 페소아와 페소아들알베르투 카에이루와의 인터뷰내 스승 카에이루를 기억하는 노트들에선 각각의 이명들이 함께 등장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논쟁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책의 원제는 ‘Livro do desassossego’입니다. ‘desassossego’는 조용함과 평정의 반대말로 포르투갈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 문어적 표현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책 자체가 불안한 것입니다. <불안의 책>은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불안의 책은 제목과는 달리 불안의 감정들만 수록되어 있지는 않다. 그 안에는 현대인의 신앙과 종교(특히 기독교와 이교), 비관주의와 신비주의, 예술과 부조리, 도시와 시골, 우정과 사랑, 행동과 관조, 권태와 슬픔 등 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애에서 만들어내고 느낄 수 있는, 아니 어쩌면 하나의 자아만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가능한 모든 감상과 의식의 총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불안의 책인가?

 

일본 웹에서 불안의 책을 검색하면 不穏”, 즉 불온의 서로 번역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네이버 포르투갈어사전에서도 ‘desassossego’불안, 걱정, 근심과 함께 ‘(사회적) 불온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하니 산문집 안에서 현실과 꿈을 막론하고 온 세계로 뻗어나가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온한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듯싶다. 안온한(듯 보이는) 세계와 불화하는 개인 내면의 불온한 감정들은 불온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는 없을 것이다. 불안의 책은 분명 소아레스라는 1인 화자의 진술이지만 페소아의 모든 이명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동시대와 다른 감수성을 지닌 개인이 단독자로서 홀로 서 있기 어려운 현실의 맥락을 감안할 때 일관성의 부족이 아니라 필연적인 다양성의 촉발로 이해될 것이다.

 

백년 전 포르투갈의 어떤 시인이 다양한 화자들을 내세워 서술한 불온한 감정들은 지금의 나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는가.

 

페소아는 내가 말하지 못한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이다. 불안의 책에서 페소아는 거울을 발명한 자는 인간의 영혼에게 독약을 준 것이다.(466)”라고 했다. 페소아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 그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일이며, 거울 이전에는 수치스럽게 허리를 굽혀야만 겨우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에서 페소아가 말하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행동은 나에겐 내 내면의 깊은 곳을 바라보는 행위로 다가왔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외면하고픈 못난 본능과 추악한 욕구, 역겨운 호승심과 비루한 자아의 덩어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 혐오스런 혼합물을 직면하는 것은 달갑지 않으나 바로 내 것이기에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페소아는 내가 미처, 또는 애써 언어화하지 못했던 나를 언어화해 보여주었고, 때때로 그것은 영혼의 내벽을 긁어대는 언어로 된 사포이기도 했으나, 하릴없이 주변으로 헛도는 내 고개를 나 자신을 직시하도록 붙들어 주었다.

 

동시에 페소아는 내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동지들과 마주치게 하는 도라도레스 거리이기도 했다. 비록 현실의 거리에서 페소아는 그와 함께 동행할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러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그는 자신 안에 있는 이명들과 함께 글을 쓰며 꿈꾸었다. 페소아와 같이 나도 나와 다른,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사람들과 함께 읽었기에 두 달이 넘는 긴 시간동안 천천히 페소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페이스메이커였을 뿐만 아니라 맥루한이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한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들은 각자가 미디어로서 서로의 옆에 있었다. 각자가 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알 수 없었던 분야의 지식들, 삶의 결과 감정들을 우리는 페소아를 가교로 하여 나눌 수 있었다.

 

불안의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단장의 번호를 적다보면 어느샌가 숫자세기 놀이가 돼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는데 책장을 표기하기 위해 붙여둔 스티커들로 두꺼워진 다른 사람들의 책들을 보며 모두 같은 심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다만 그중에서도 꼭 몇 개만 꼽자면 역시 자신 주변의 가깝고 작은 친구들에 대한 동지애를 드러낼 때였다. 반 정도 남긴 포도주로 손님의 좋지 않은 컨디션을 알아차리고 인사말을 건넨 종업원의 동지애(24), 고향으로 떠나는 사무실 사환 아이를 보며 사무실 사환 아이가 떠났다.”라고 감정을 자제하려 하나 비통하게 되뇌고 마는 그의 모습(279)은 타자에게 냉정하려고 애쓰지만 결코 감추지 못하는 페소아의 인간을 향한 따뜻한 동지애를 드러낸다. 인간의 경지가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다 그에 가닿을 수 없는 스스로를 인지하며 생기는 인간적인 간극(특히 오마르 하이얌, 446~448)도 페소아라는 이름을 기억에 오래 남겼다.

 

우리는 페소아에 이어서 프랑스 초현실주의 문학을 읽어가기로 했다. 언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글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이들의 글을 읽는 것은 나에게도 가장 큰 행복이다. 매번 마주치는 행운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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