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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열기가 식기 전인 따끈따끈한 개봉영화를 보고 재빠르게 리뷰를 쓰는 코너입니다. 영화에 대한 깊은 고찰과 숙고보다는 개봉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과 인상에 대해서 가감없이 스케치하고자 합니다. 영화의 국적과 장르는 가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오로지 현재 개봉하고 있는 영화와 같이 호흡 수 있는 리뷰를 올리고자 할 뿐입니다.  


돌연변이는 화해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는가?

-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보고





수유너머N 회원 조지훈




 마블코믹스 영화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엑스맨 시리즈가 3년 만에 돌아왔다. 개봉 일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관객들은 돌아온 원조 마블코믹스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환호에는 근래 대히트를 쳤던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등의 영화 속 주인공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히어로 영화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어벤저스 시리즈가 인기를 얻은 것과 맥을 같이함에 틀림없다. 분명 마블코믹스 영화가 보여주었던 히어로물들은 90년대 이전에 유행했던 전적으로 다르다. 더 이상 히어로 영화들은 일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세련되고 극도의 시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우리는 마블코믹스 영화의 입장권을 끊으며 현재 영화의 기술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쾌감을 선사받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똑같은 마블코믹스 영화 시리즈라고 해도 관객들이 엑스맨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관객들은 엑스맨 시리즈를 통해 감각적 쾌감을 넘어서 사회적 성찰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무게감 있는 연출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돌연변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소수자라는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이유도 한 몫 한다.





엑스맨 시리즈의 전체 설정은 간단하다. 가까운 미래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특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종족이 생겨났고, 이에 위협을 느낀 인간들은 자신과 다른 돌연변이 종족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이에 맞서 돌연변이 종족 사이에 두 가지 집단이 생기는데, 하나는 인간들의 탄압에 맞서 폭력적으로 대응하고 더 나아가 우수한 돌연변이들의 능력을 활용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는 메그니토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 집단과, 다른 하나는 인간과의 공존을 꾀하면서 돌연변이들의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학교를 세워 운영하는 평화주의 노선을 걷는 자비에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다. 엑스맨 시리즈는 이렇게 돌연변이 종족 내의 강경파와 평화주의자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헐리우드 식의 선악구도를 완전하게 피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강경파 집단은 악당, 평화주의 집단은 히어로), 나름대로 강경파 집단이 그렇게까지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관객들에게 납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고 끝까지 이 두 집단 간의 갈등을 해소시키지 않고 팽팽하게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는 미덕을 보여 왔다.


그런데 감독은 엑스맨 시리즈에서 두 집단의 싸움을 너무 오래 끌어왔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번에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싸워왔던 두 집단의 수장들, 즉 메그니토와 자비에 사이에서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유는 간단한다. 두 집단 간의 싸움을 틈타 돌연변이 집단을 완전히 섬멸할 수 있는 센티널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인간집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공동의 적은 너무나 강력해서 돌연변이 집단의 연대로도 막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은 시간여행을 하기로 선택한다. 과거로 돌아가 돌연변이와 인간의 적대가 생길 수 있는 사건들을 막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돌연변이 종족 내의 적대적인 두 세력의 화해가 필수적이다. 다시 말해, 과거로 돌아가 이 둘을 화해시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돌연변이와 인간의 화해를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영화 속 인물들의 중심 과제인 셈이다.





최종적으로 엑스맨의 감독은 평화주의자인 자비에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인간들에 폭력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음으로써, 느리지만 천천히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공존할 수 있게끔 터전을 닦아두는 것이 자신들이 걸어야할 길이 생각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에서 돌연변이를 말살시킬 무기를 개발하는 인물을 암살하려고 하는 어느 돌연변이에게 평화주의자 자비에가 막아서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 행동은 너의 본질이 아니다.” 다시 말해 폭력적인 적대 속에서 돌연변이 종족의 본질을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화는 자비에의 웅변과 맞물리면서 인간을 향한 돌연변이 종족의 용서를 보여주고, 이러한 화해 속에서 희망적인 미래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엑스맨 시리즈가 인간과 돌연변이의 갈등을 통해 사회적 분열의 문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이번 작의 화두는 집단 간의 화해다. 감독은 영화 속 돌연변이 종족이 인내심과 화해를 통해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었던 것처럼, 소수자는 화해를 통한 다수자와의 공존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마도 영화 속의 돌연변이 강경파이자 악당인 메그니토의 지지자가 아니라고 해도, 이러한 결론이 딱히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가 화해와 공존을 반대해서가 아니라, 어째서 화해해야 하는가, 소수자인 돌연변이가 다수자인 인간과의 공존을 통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화해와 공존이라는 선택은 단지 인간과 돌연변이 사이의 폭력과 파국을 피하기 위한 이상 이하도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아마도 현실 사회에서라면 이러한 비폭력의 윤리도 중요한 의미를 갖겠지만, 굳이 돌연변이와 인간이 대결하는 상상까지 해가면서 현실 윤리를 재확인해야 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심심하다. 영화가 끝나면서 진짜로 궁금한 것은 다시금 따스한 미래를 맞이한 자비에와 그의 돌연변이 친구들이 아니라, 어디론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 메그니토의 고독한 행방인 것은 아마도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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