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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사진04] 사진에서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가?

수유너머웹진 2014.06.02 06:57 조회 수 : 8

사진에서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가? - 스투디움과 푼크툼

- 롤랑 바르트,『밝은방』, 동문선 

 

 

 

 

수유너머N 회원 고승환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저작 『밝은방』에서, ‘구경꾼’의 관점으로 사진에 접근한다. 바르트 자신이 사진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찍는 자’의 관점에서 사진을 바라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렇게 사진에 접근할 때 드는 질문은, 그렇다면 사진을 보고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가 이다.

 

 이에 대한 답으로, 바르트는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말한다. 스투디움이란 “사진에서 느끼는 평균적인 정서, 즉 거의 길들이기에 속한다.”(P.41) 즉, 코드화된 시선을 말한다. ‘찍는자’의 의도를 ‘구경꾼’의 마음 안에서 이해하는 과정에서, 스투디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의 의도를 파악할 때 스투디움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푼크툼이란 무엇인가? 푼크툼이란 스투디움을 깨뜨리는 것으로, “사진 안에서 나를 찌르는 우연”(p.42), 세부요소이다. 말 그대로 사진 안에 있는 어떤 부분에 꽂히는 것이다. 푼크툼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각하는데는 아무런 분석이 필요하지 않는다. 즉, 푼크툼은 코드화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바르트는 때때로 추억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그는 “푼크툼은 의도적이지 않거나 최소한 완전히 의도적은 아니며, 필경 의도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p.66)라고 말한다.

 

 그가 푼크툼을 의도적이지 않다고 확연히 구분 짓지 않은 이유는, 본인 스스로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의도가 어느 정도 가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사진을 보면서 계속 생각이 달라졌던 것이다. 실제로 책의 뒷부분에 갈수록, 사진을 보는 데 추억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푼크툼은 도덕이나 고상한 취향만을 취급하지 않는다. 푼크툼에는 위계가 없다. 그가 푼크툼을 설명하기 위해 예로 드는 사진의 대상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바르트는 스투디움만 있는 사진으로 보도사진과 포르노사진을 꼽는다. 하지만, 포르노사진도 에로틱한 것으로 변하여, 푼크툼이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르트에게는 두 개념 중 푼크툼이 중요하다. 푼크툼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왜 그럴까? 구경꾼의 관점에서 사진을 볼 때, 푼크툼이 사진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러한 차이없는 반복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보았을 때, 즉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나는 보았을 때, 의미가 생긴다.

  


푼크툼은 고정되지 않는다.


 

 위의 사진을 보자. 이 사진은 제임스 반 데르지의 <가족 인물 사진>이다. 1926년에 찍혔다. 바르트는 이 사진을 보며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설명한다. 스투디움은 분명하다. “체면, 가족주의, 순응주의, 나들이 복장이고, 백인 모습으로 치장을 하기 위한 사회적 상승노력이다.”(p.61) 푼크툼은 그에게 누이 혹은 딸(사진의 맨 오른쪽 인물)의 넓은 허리띠, 열중쉬어 자세인 그녀의 두 팔, 특히 끈달린 그녀의 구두이다. 흑인 유모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 사진 속 인물이 바르트가 어렸을 때 겪었던 혹은 알고 있던 흑인 유모를 떠올리는 데 어떤 작용을 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더 생각해보니 진짜 푼크툼은 그녀가 목 아래에 늘어뜨린 목걸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푼크툼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달라질 수 있다. 처음보고 바로 꽂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없다면 계속 보고 생각하다가 꽂힐 수도 있다. 나는 이 사진을 보자마자 꽂히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 보니 맨 오른쪽 여자 분의 안경이 나를 찔렀다. 지금은 안경도 거의 무용지물이 될 만큼 눈이 많이 나빠지신 할머니. 언젠가 나른한 오후에 할머니가 안경을 떨어질 듯 말 듯 코에 살짝 걸쳐 바느질 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푼크툼은 명백히 사진 안에 있다. 왜냐하면,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푼크툼이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푼크툼은 각 개인이 사진에 보충하여 덧붙이는 것이다. 하지만, 푼크툼이 드러나는 것은 사진 외부의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푼크툼적 요소는 사진작품 안에 없는 것이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푼크툼이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자 사진의 배경과 작가의 의도는 제쳐두고, 자신에게 어떤 푼크툼이 작용하는지를 보면 늘 보던 사진도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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