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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평] 이 한 장의 사진: 벤야민, 손택, 바르트와 함께하는 사진읽기


사진 세미나를 같이 했던 학인들과 함께 사진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진이론에서 고전격에 해당하는 발터 벤야민, 수잔 손택,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언급하면서, 더불어 이들이 특별히 애정을 보였던 "이 한장의 사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벤야민과 아제. 사진과 거리의 청소부(2)’



신광호/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초창기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은 …… 그들 주변에는 어떤 아우라(Aura), 시선이 그것을 파고드는 동안 그 시선에게 충만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어떤 매질(媒質)이 있었다. 그리고 이 아우라에 상응하는 기술적 등가물도 분명히 있다. 즉 가장 밝은 빛에서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이어지는 명암의 절대적 연속체가 그것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75p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의 [뉴 헤이븐의 생선 파는 여인]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속 여인은 무심하면서도 유혹적인 수줍은 모습으로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사진사 힐의 예술을 입증하는 증거물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그것은 그 당시 살아 있었고 여기 사진에서도 여전히 실재하면서 결코 예술속으로 완전히 편입되려 하지 않는 그 사진 속 여인의 이름을 끈질기게 물으면서, 침묵시킬 수 없는 무엇이다.“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의 [뉴 헤이븐의 생선 파는 여인]    카를 데우텐다이의 사진


 또한 카를 다우텐다이가 그의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그는 어느 날 아내가 여섯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그의 모스크바 저택의 침실에서 동맥을 끊고 자살한 것을 발견했다. 아내는 이 사진에서 그의 곁에 서 있고, 그는 아내를 붙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를 비껴가고 있고, 마치 뭔가 빨아들이듯이 불길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충분히 오랫동안 그러한 사진 속에 침잠했다면, 여기서 참으로 대립적인 것들이 서로 접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묘사가 얼마나 설득이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벤야민이 응시하고 있는 바가 분명 기술적 복제 가능성으로 인해 사라져야 할 아우라라는 점이다.


벤야민은 초상 사진이 사진의 초창기에 중심부를 이루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말한다. 초창기의 초상 사진에는 아우라가 존재했다. 그리고 아우라의 요인은 사람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표정에서 찾을 수 있다. 제의적 가치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기억하려는 거의 의식적인 종교적인 행동에서 최후의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통한 제의적 가치의 마지막 저항이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 



 아제의 파리 사진들은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들이다. 그 사진들은 초현실주의가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진정으로 광대한 대열의 전위대이다. 그는 몰락기의 관례적인 초상 사진술이 퍼뜨린, 사람을 질식시킬 듯한 분위기를 깨끗이 청소했으며, 그것도 말끔히 제거하였다. 즉 그는 최근의 사진술이 이룩한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한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을 아우라에서 해방시키는 작업을 개시하였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83p



위에서 언급했던 초상 사진에 비하자면 아제의 사진은 공허하다. 아제는 칸칸이 구두들이 늘어서 있는 신발장이라든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손수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파리의 안뜰, 식사를 하고 난 후의 식탁과 치우지 않은 채 수도 없이 널려 있는 식기들, 5라는 숫자가 건물 벽면 네 곳에 엄청나네 크게 씌어 있는 무슨무슨 가() 5번지의 성매매 업소등을 찍었다. 아제가 또한 사진에 담았던 파리 성곽의 포르트 다퀘유 성문이나 호화로운 계단이나 안뜰이나 카페의 테라스나 테르트르 광장 등은 모두 비어 있으며 아무런 정취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아제의 작업들이 지니는 의의는 역설적으로 사진 속에서 사람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는 데에 있다. , 제의적 가치가 마지막 거처로 삼고 있던 인간의 얼굴을 이미지의 내에서 완전히 밀어 버린 터이다. 아제로 인하여 마침내 사진은 제의적 가치에서, 그리고 아우라에서 해방되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기술복제시대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파괴되는 현상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벤야민은 이에 대해 특별한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만 아제의 경우, 사진에서 인물을 몰아냄으로써 이미지의 아우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이끌어 낸 인물이기 때문에 벤야민의 저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벤야민은 아제의 작업 속에서 세계와 인간 사이의 유익한 소외를 발견하고 이를 초현실주의의 선구로서 여기고 있다. <사진의 작은 역사>의 말미에서 벤야민이 제시하는 표제를 통한 구성사진의 경우에도 아제의 작업에서 단초를 찾을 수가 있다. “아제의 사진은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한 사진에 이르기 위해서는 관찰자는 어떤 특수한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화보신문들이 그 관찰자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주기 시작하였다 …… 이러한 화보신문들에서는 최초로 설명문구(Beschriftung)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다.”(118) 


이렇듯 벤야민에게 있어 아제는 기술복제시대 아우라의 붕괴라는 필연적인 과정을 결과물로 보여 준 인물임과 동시에 앞으로의 사진, 즉 예술로서의 사진이 아닌 사진으로서의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 준 인물이다. 벤야민의 사진론에서 아제는, 한 시대의 문을 닫고 어디로 들어설지 모르는 - 다른 시대로의 문을 열어젖히는 내기, 그 내기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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