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spot   얼룩으로 남은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서

    일종의 탐방기의 성격을 가진 기획 연재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랑시에르적인 의미의) 정치성을 띤 장소들, 없는 셈 쳐지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사건' 이후의 시간들과 '장소' 를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과거의 사건에 대해 증언해 줄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방문자/이방인인 제가 혹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그 사건이나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개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자 합니다. 
    첫번째 연재는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
시베리아 조선인 일본군 포로와 유족에 관한 들:음 아카이빙>입니다.
    이 글은 『문학3 (제2호)』(창비,2017)에 기고한 글입니다.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
                               ⎯ 시베리아 조선인 일본군 포로와 유족에 관한 들:음 아카이빙(2)

 

                                                                                                                                                                                                                                 심아정

스탈린의 비밀지령, 전후 복구의 비계(scaffold)가 된 포로들

 

   그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일본은 승산 없는 전쟁을 끌어오다가 1944년엔 급기야 식민지 조선에까지 징병제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종전을 불과 며칠 남겨두고 징집되어 온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문순남은 1923년 생으로, 종전 두 달 전에 징집되어 만주로 끌려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일주일 앞둔 1945 88, 줄곧 관망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던 소련은 일본에 대해 갑자기 선전포고를 하고, 만주에 주둔하고 있었던 일본의 관동군을 침공한다. 당시 관동군 정예부대의 대부분이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만주에 남아있던 전력은 군수물자와 인력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일본은 전쟁 말기에 만주와 조선 각지에서 조선인 청년들을 급조하는 방식으로 징집을 실시하여 만주의 관동군에 그들을 배치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소련 정부는 경제 부흥과 도시 재건을 위한 노동력으로 일본군 포로들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1945 8 23일에 소련 국가방위위원회의 결정(No.9898)으로 불리는 ‘스탈린 비밀지령’이 내려지자, 일본군 포로들은 그해 9월부터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몽골로 이송되어 강제노동으로 내몰리게 된다. 포로들은 전후 소련과 몽골의 재건을 위한 비숙련 노동력으로 투입되었다. 건물이 준공되면 인부들의 발판이나 지지대와 같은 비계가 철거되듯이, 물질적 토대를 구축한 포로들은 이후의 소련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활동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스탈린비밀지령.jpg  포로서진1.png
<좌: 스탈린 비밀지령극비문서 No.9898   우: 시베리아 포로수용소에서 촬영된 사진(1990년대 부산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송광호기자 제공)>

 

   관동군 소속 조선인들은 일본군으로 간주되었다. 소련 각지로 끌려간 일본군 포로는 64만 명을 웃돌았고, 2000여개의 포로수용소에 흩어져 수감되었는데, 이 중 조선인은 1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일본 국적과 창씨개명된 일본 이름으로 포로명부에 기록된 채 소련군에 넘겨졌기 때문에 아직도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고 한다. ‘일본군’으로 뭉뚱그려진 사람들 속에는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 심지어 말레이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환영받지 못한 귀환, 적성국가 소련에서 살아 돌아온 빨갱이?

  

   결국 시베리아의 조선인 포로들이 귀환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 3년이 지난 1948년 말이었다. 시베리아로 끌려간 1만 여명의 조선인 포로들 중

2300여명은 3년이 넘는 억류생활을 마치고 출신지별로 귀환하게 되었다. 화물선에 실려 흥남부두에 도착한 포로들 중 북한 출신자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남쪽에 고향이 있는 귀환자들은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와야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지만, 가장 위험한 고비는 38선을 넘는 일이었다고 생존자들은 말한다. 무사히 남한으로 내려왔다 하더라도 적성국가 소련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고 조사를 받기도 했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그들은 인천 송현동 전재민(戰災民)수용소에 수용되어 약 50일 동안 무려 15개 이상의 기관으로부터 조사, 심문을 받아야 했다. 조사관들은 포로경험자들이 소련에서 남한이라는 국가를 배반했을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1949 326일자 <동아일보> 2면에는「소련에 포로 갔던 청년들 그리운 고향으로」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포로 청년 477명 중 범죄혐의자 18명을 적발하여 남기고는 나머지를 각 도 경찰국에 인도하여 분산시켰다는 내용이다. 기사에서 언급된 18명의 운명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아직 찾을 수 없다.

   고향에 돌아와서까지 감시의 대상이 된 이들도 있었다. 공산주의자로 몰리거나 잠재적인 간첩으로 의심받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에서의 경험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자신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 요구는 당시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들이 ‘커밍 아웃’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나서부터다. 그들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라는 뜻의 ‘삭풍회’를 조직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포로 기간 중에 강요당한 강제 노동에 대한 노동증명서를 받아냈다.

 

 

공문서의 지면(紙面)에서 청년기의 아버지를 만나다

 

   문용식은 국민 대다수가 이런 현대사의 비극을 모르고 있다고 토로한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법에 근거해서 한일 양국 정부기관에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고 정부로부터 그에 대한 대답과 조치를 받아냈다. 일본 시민사회의 대표를 알게 되어, 여러 면에서 도움을 받는 일도 있었다.

   문용식은 일본에서 시민들의 활동이 촘촘한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는 것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한국, 대만 등 일본 식민지 피해 국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전국의 시민단체가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그에게는 그저 놀라운 광경이었다. 일본의 시민들은 한국의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재판을 지원하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계속되었다.

   국가기록원은 2007년 러시아 군사문서 보존소로부터 소련에 억류되었던 조선인 포로카드 약 3700명 분을 입수하는데, 문용식도 이때 아버지의 신상명세서와 수용 상황 등이 적힌 카드 사본을 받았다. 비록 공문서의 지면(紙面)을 통해서이지만, 그는 처음으로 포로시절의 청년이었던 아버지를 오롯이 대면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망으로부터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의 자필로 쓰인 이름 석 자를 보고 문용식이 느꼈을 여러 가지 감정의 뭉치들은, 나와 동료들이 이 문서를 처음 보았을 때 당사자인 문용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강도로, 그러나 매우 강렬하게 전해져왔다. 우리는 이렇게, 평생 농부였으며 둥근 얼굴에 키가 작고 이마엔 상처가 있었다는 그의 아버지, 무산자 계급으로 기록되어 있는 문순남과 만났다.

 

 문순남조사기록.jpg 스탈린비밀지령.jpg
<러시아 군사문서 보존서로부터 받은 아버지 문순남의 조선인 포로카드의 일부>

 

   문용식이 기대했던 국가의 모습은 그가 싸워왔던 시공간 속엔 부재(不在)했다. 공개된 극비문서들 속에 드러난 국가의 실체는 국민을 고작 국가 간의 거래조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흉악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국가란 애초에 실체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동시에, 국가에게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되어 삶을 송두리째 박탈당했던 사람들의 존엄성과 자유와 권리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회복되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권리를 지켜내고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까? 문용식은 국제법에 대한 호소와 더불어 국적을 초월한 기민(棄民)들의 연대를 통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이 부당한 세계를 살아내는 모습은, 이러한 질문들이 뒤늦게나마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하나의 목소리이자, 우리의 공명(共鳴)을 재촉하는 타자의 명령이다.

 

 

:음 아카이빙,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학술계에서 냉전은 지금 뜨거운 연구주제라고 한다. 그러나 1차 사료만으로는 만나지지 않는 삶의 결이 있을 테고, 공식 기록만으로는 들릴 리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들리게 하고 보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이 그들의 삶을 보이지 않게 만들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게 억압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되어야 한다. 들리고 보이게 하는 방식 또한 다양해 질 필요가 있다. 증언할 수 있는 당사자가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 우리는 그들이 남기고 간 증언과 어떤 식으로 관계 맺어야 하는 걸까? 나와 동료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후의 귀환에 대한 서술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의 서술들을 다시 만나 재편해야 하고, 몇 명도 채 안 되는 증언 가능한 고령의 생존자들과도 다시 마주해야 하며, 남겨진 유족들과도 소통해야 한다. 삭제된 기억이나 억압당한 발화들이 있다면 삭제나 억압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을 분석해야 하고,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며 우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서 들:>이라는 작은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시베리아 포로문제에 관련된 소설, 회고록, 연구논문, 증언집 등의 자료들과 함께 냉전에 관련된 문헌들을 찾아 읽거나, 관련 영화와 다큐를 보는 등의 세미나를 격주로 하면서, 시베리아 포로 경험 생존자 할아버지들 중 아직 건강하시고 기억도 또렷하신 부산의 박정의 할아버지와 유족 문용식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녹취와 촬영을 통해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인터뷰 때 당사자들로부터 전해 받은 개인 소장 자료들은 스캔하여 분류한 뒤 전자화해 둔다. 어느 정도 체계가 갖추어지면 일반 공개를 해서 누구나 시베리아와 관련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채집한 증언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공유하려는 시도 또한 기획 중인데, 각자 자신의 사유를 증언에 덧대어 재해석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면서 냉전에 얽힌 개인들의 삶과 통치성에 대해 주목하는 동료 수용과 사건의 당사자나 생존자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의 증언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필자 외에도, 영상이나 예술 작업으로 시베리아 포로문제를 다루는 동료들이 있다. 기억의 정치학에 관심이 있는 새내기 회원 희진도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가령, 예술작업을 하는 동료 원중은 녹취파일의 주파수에 주목한다. 주파수가 격한 반동이나 고조를 보일 때 정확히 그때 어떤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는지를 잡아낼 수 있도록 녹취록을 전자화하고, 주파수와 그에 대한 증언내용을 손으로 한땀 한땀 자수를 놓아 함께 볼 수 있는 작업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하는 순간을 크로키로 그려내기도 하고, 인터뷰 당일의 기차 밖의 풍경이나 우리의 모습을 스케치로 기록해 두기도 한다. 사진과 영상 작업을 하는 수환은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기도 하지만, 인터뷰 현장에서 그들의 삶 곁에 항상 말없이 함께 있어주었던 사물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아내기도 한다. 증언하는 박정의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그와 함께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낡은 벽시계, 빛바랜 가족사진, 벽에 붙어있는 세계지도 등의 사물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할부지사진2.jpg   박정의인터뷰장면.jpg 
<부산 박정의 할아버지댁 방문 인터뷰(2015년 7월과 2017년 2월에 찍은 사진)>

 

   시베리아 조선인 일본군 포로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관심과 문제의식은 어느새 그 외연이 조금씩 넓어지게 되었다. 조선인 군속들로 일본군 B,C급 전범이 된 사람들과 그들의 유족, 오사카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실은 제주 사람들, 내선결혼으로 패전 후 조선에서 살다가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일본에서마저 배제되었던 재한 일본인 여성들과 무국적자가 된 그녀들의 아이들, 그리고 병역을 거부한 청년들이 겪었을 거부 선언 이후의 시간들에 이르기까지, 국민국가체제에서 모래알처럼 빠져나오는 사람들, 권력자들에 의한 동일성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녹아들지 않는 '앙금'같은 사람들의 삶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대구에서 인터뷰를 마친 비 내리던 어느 날 밤에, 문용식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공부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고. 국가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보이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는 방식을 궁리하고 있다고 말이다. 지금도 그는 캐나다 구치소에 억울하게 억류되어 있는 한국인 남성 전 모씨의 문제 해결을 위해 탄원서를 쓰거나 국회의원실에 전화를 걸고 민원을 제기하는 활동을 틈틈이 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정작 이러한 논의에 관심을 쏟아야하는 국가의 태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문용식의 활동과 박정의 할아버지의 증언을 통해 나와 동료들이 경험하고 있는 ‘시베리아’는 일본군 내의 조선인 포로들의 체험과 귀환 이후의 봉합된 시간들에 머무르지 않고,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또 다른 존재들의 삶 속으로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우리가 살아내는 세계가 떠안고 있는 적나라한 모순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국민국가체제가 갖는 허구 혹은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며, 문용식과의 교류를 통해, 우정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감 속에서 친구의 존재를 함께-자각하는 것임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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