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잡지 『에피』 6권 리뷰 

 ‘필드 사이언스’와 ‘수능 리뷰’를 중심으로


 



고승환(수유너머104 회원)





1. 들어가며


 에피는 ‘과학기술비평’잡지다. 보통 시중에는 과학기술 그 자체의 설명이나 이슈에 대해 서술한 책들은 많지만 비평하는 책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험적인 잡지라고 할 수 있다. 비평한다는 것은 비판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군가는 과학을 왜 성찰해야하는가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과학은 <관찰-가설-검증>의 단계를 마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 또한 인간의 욕망, 정치, 사회, 경제 등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에피는 지금까지 총 6권의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주제를 다뤘다. 흥미로운 주제가 많지만 가장 최근 6권에 해당하는 내용 중 <키워드|필드 사이언스>와 <2019년 수능 ‘과학’관련 리뷰>에 대한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2. 키워드|필드 사이언스에 대하여


 학창시절부터 배웠던 과학교육이라고 한다면 늘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이론과 실험들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량적인 지식을 전달해야하는 교육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으나, 수많은 이론을 만들고 실험을 했던 과학자들의 연구과정은 생략된 채 완벽히 정리된 결론과 설명만을 배우는 것이 재밌지 않았다. 연구자들의 열정과 고뇌가 담긴 날 것의 연구과정을 알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6권의 키워드인 필드 사이언스는 제목만으로 매우 흥미로운 주제였다. 각 편들에서 기억에 남는 내용을 위주로 정리해보겠다.



 ‘정양승의 시체농장 : 법의인류학자의 실험실’에서는 ‘시체농장’이라는 필자의 독특한 업무환경에 대한 설명과 그 필요성이 잘 전달되었다. 그의 말처럼 시체의 부패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시체를 모아둔 야외실험장이 있다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꽤 신뢰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나라면 과연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을 때 자신있게 할 수 있다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이 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돌아다니며 부패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야한다니……. 이 일을 담담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싶다. 필자가 한 여름 큰 비가 내린 후 시신 위로 넘어진 적 있다고 했을 때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어마어마한 양적 데이터를 통해 시체들의 사망 시기를 추론하는 과정도 놀랍지만 그 곳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열정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최재천의 생물학 연구의 현장’에서는 2가지 부분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하나는 실험실에서 민벌레를 사육하는데 필요한 야생공간을 연구자가 직접 만들어 관찰하고 실험했다는 것이다. 현장성을 살려 야생 그대로를 재현한 모의공간을 만든다고 할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알고 싶었다. 다른 하나는 학계에서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과 연구비에 대한 비판이었다. 현 정부는 각각의 학문의 속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논문의 개수로만 성과를 판단하여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략적으로 생각해도 현장 연구자가 100편을 쓰면 실험실 연구자는 적어도 1,000편은 써야 비교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비 투자규모인 20조가 연구자 입장에서는 부족한 현실이며, 그 20조마저도 도전이 두려워 이미 해외에서 기반이 닦인 안정적인 연구만 뒤쫓다보니 지는 게임만 한다는 것이다. 사업비 원금회수를 못하더라도 전체 사업비의 20%정도는 새로운 연구에 지원하자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독자로서 굉장히 공감되는 생각이고 이런 생각이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닌데 왜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이원영의 남극에서 펭귄 연구하기’에서는 연구자와 연구종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 기존의 통념을 깨주었다. 보통 객관적인 연구를 위해 연구자는 연구대상에게 감정을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인구달 박사가 침팬지 각 개체에게 이름을 붙이며 교감했을 때 침팬지들이 경계를 풀었고 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사례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생각해보면 연구자가 감정의 동물인 사람인데, 어떻게 전혀 감정의 개입이 없을 수 있을까? 오히려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여 이용할 때 보다 객관적이고 상세한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연구자의 관심에 따라 같은 연구대상이라 할지라도 질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언급하며, 동물행동학자로서의 질문은 어떠한지 그리고 그 질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부분을 통해 필자의 관심분야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호정의 Wet, Wet, Wet 습지로 가는 생태학자’에서 필자는 ‘도시’를 하나의 생태계로 분류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도시에서의 연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숲에서는 식물의 종류에 따라서 흙 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결정되곤 하지만, 도시에서는 지하철 노선에 따라서 다른 종류의 미생물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 강변에 밤마다 켜 있는 가로등 때문에 물 속의 물고기가 밤낮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시도 때도 없이 알을 낳기도 한다. 여름철 서울 도심의 시끄러운 매미소리도 밝은 불빛들과 연관이 있다.”(p.75) 도시의 체계를 기준으로 관찰되는 생태계라니! 도시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자세한 연구내용과 방법이 훗날 대중교양서적으로 기록되었으면 한다.



 ‘김웅서의 온 바다는 나의 실험실’에서는 염분, 수온, 수심을 자동으로 측정할 수 있는 CTD와 넓은 해역에서 표층 수온, 해안선 변화, 해수면의 고도 등을 알 수 있는 인공지능 그리고 잠수정 등 실험장비들이 궁금했다. 기술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연구성과들도 놀랍지만 기술자체에 더 관심이 갔다. 평소에는 주로 교양수준에서 뉴턴잡지, 위키백과, 유투브동영상을 활용해 기술의 원리를 익히고 작동모습을 보곤 하는데 해양관련 기술들도 찾아보고 싶었다.



 이 외에도 ‘박지형의 인류세의 산하유기’, ‘이융남의 나는 왜 고비사막으로 가는가?’편이 있었다. 각자 전문가로서 자기 영역의 자부심과 열정이 느껴지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알 수 있었다.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면 자세한 연구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이 작은 책 한 권으로도 필드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의 생각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3. 2019년 수능 ‘과학’리뷰에 대하여


 에피편집부는 수능 ‘과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리뷰에 앞서 ‘수학’리뷰 원고 청탁 실패기를 통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전달했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이 수학의 어떤 범위도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니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런가?”, “수험생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교육적 효과는 무엇이며, 그것의 사회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첫 번째 문제의식에 대해 크게 공감한다. 책에서는 셈을 할 줄 알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과 셈을 못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의 차이를 언급했다. 아마도 이 차이는 능력의 차이를 말한 것일 거다. 계산기가 없는 상황에서 셈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수학만 이런 것이 아니다. 기계, 전기를 비롯한 각종 기술에서도 적용된다.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기술에 대한 호기심이 전보다 늘었지만, 그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기술 앞에서의 무력감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여러 기계장치들은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다. 자동화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동적으로 작동시킬 번거로움을 없앤 것이므로 이용하는 관점에서는 편리하고 좋기만 하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마냥 좋은 일이 아니다. 기계가 자동화되는 순간 학습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한 번의 클릭으로 기계내부에서는 전기적 신호에 따라 여러 메커니즘이 순차적으로 작동을 하고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처음의 입력과 마지막의 출력뿐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기계가 고장이 났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저 교체밖에 없다. 교체를 하더라도 엔지니어 진단과 설명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각 부품들의 기능을 알고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있다면 전문가의 설명에 그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게 되고 일명 ‘호갱’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수능 ‘과학’에 대한 전문가들의 리뷰에서 중요한 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수험생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어려운 문제’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과목의 본질적인 특성을 묻되 다양한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 과목의 본질적인 특성과는 관계없이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종류의 문제는 수능에서 모두 출제되지만 보통 전자의 경우는 출제자입장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고, 후자의 경우가 과목의 등급을 결정짓는 킬러문제가 되곤 한다. 왜 그럴까? 수능에서 ‘좋은 문제’는 오류가 나지 않으면서도 변별력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물리에서는 전형적인 상황이 아닌 다양한 상황을 전제로 문제를 내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교과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오류없이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게끔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택되는 것은 ‘질점이 마찰이 없는 빗면 위를 미끄러지는 상황’뿐이다.(p.97참고) 지금 교육현실에서 과목의 본질적인 특성을 무시한 채 복잡하기만한 문제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험생들의 점수에 따라 순위를 매기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한 교육적 효과라는 것은 형식적 공정성을 통한 개개인의 위계질서의 정당성을 내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형식적 공정성은 공고히 될지 몰라도 전문가 혹은 비판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4. 이번 호와 관련하여 앞으로 기대하는 점


 이번 호에서는 ‘필드’를 다뤘다면 언젠가 다음기획은 ‘실험실’에서의 연구도 집중 조명했으면 한다. 실제 연구의 대부분은 필드와 실험실을 병행하며 이루어지고 있고, 각각의 장소마다 장·단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필드의 경우 실험실에 비해 실험자가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는 상황이 덜하다. 그런데 개입을 덜하기 때문에 그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가 수시로 발생하여 원하는 사실이나 사실들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기가 어렵다. 반면 실험실의 경우 실험자의 조작을 통해 원치 않는 변수를 통제하기가 필드에 비해 쉽다. 그러나 실험자의 조작이 개입될수록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작은 엄밀한 기준과 제약이 있어야한다.



 실험하려는 종목이나 방향에 따라 실험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실험기구는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어떤 실험자들이 열정과 호기심을 갖고 어떤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설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험실에서의 연구가 필드보다 통상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이미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자세히 생각해보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도 자세히 알 수 있다면 무척 재밌을 듯하다. 



 또한 이번 수능 리뷰를 통해 문제의 분석을 했다면 다음은 우리나라 교육철학과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한번 정리되었으면 한다. 대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된다면 의미있는 글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것은 에피가 10년이고 100년이고 지속적으로 출간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나오는 모든 과학서적을 보진 못했지만 꽤 유명한 여러 책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에피는 다른 잡지들과는 다른 차별성이 있다는 점이다. 자연과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잡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구독하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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