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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12.5]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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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횡단의 미학5 - 연횡적 건축술의 조형능력

: 미시적 요소의 반복·연대가 만드는 거대한 표정

미얀마·태국의 지붕·탑·종에 부가된 장식 반복이 윤곽 만들어
서양 건축, 일정 규칙으로 분할·반복…장식이 윤곽 넘지 못해
층층 반복되는 몰딩·테라스 등이 건축물 전체 형상까지 좌우

2023-1205_불교를 미학하다46.jpg
1)두씻 마하 프라쌋의 중첩된 지붕.  2,3)아유타야의 왓 차이 왓타나람의 쁘랑 

 

미얀마나 크메르, 태국의 경우, 미시적 형태소들의 부가적 반복을 통해 작동하는 연횡의 미학을 탑이나 사원의 건축에서 발견하게 된다. 쉐다곤이나 쉐모도 파고다에서 층층이 반복되는 테라스와 첨탑 부분의 몰딩은 탑의 형상을 조성하는 미시적 형태소들이다. 만달레이 양식의 피아탓에서도 세모난 미시적 형상들로 채워진 옥개들이 층층이 이어지며 오르락내리락 춤추는 형상을 만든다. 그 각각의 세모난 형상은 더욱 작은 세모난 미시적 형태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태국 아유타야의 왓몽콘버핏이나 방콕의 왓 프라깨우 등 대부분의 사원 지붕은 작게 나뉘어진 소지붕들이 중첩되고, 그렇게 중첩된 것이 또다시 중첩되며 조성된다. 정면의 박공 또한 여러 겹으로 중첩된다. 얼마든지, 어느 방향으로든지 중첩에 열려 있는 이러한 반복으로 인해 지붕이나 건물 전체의 형상은 대단히 다기한 형상을 갖는다. 휜 사각형 평면성이 층층이 겹쳐지는 이런 형상의 중첩된 지붕과 달리, 뾰족한 꼭지점으로 모이는 휜 삼각뿔의 지붕도 미시적 형태소의 반복을 통해 구성된다. 


미시적 반복의 방법은 체디에도 아주 촘촘하게 사용된다. ‘스리랑카 양식’의 체디들이 종형 스투파 아래와 위에 층층이 쌓인 얕은 테라스와 몰딩에 의해 다양한 형상으로 변주되는데, 미얀마와 달리 전체 불탑 규모는 아주 작아진다. 반복되는 형태소들은 확대되는 반면, 체디의 중심인 스투파의 비중도 크게 축소된다. 미시적 형태소의 반복에 홀려, 애초의 중심이었던 스투파에서 관심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이 반복되는 성분들은 불가침이라고도 생각했을 법한 스투파 안으로까지 파고들며 스투파를 변형시킨다. 

아유타야의 체디에서는 테라스의 사각형 모서리를 톱니 모양으로 분절하는 선을 따라 수직으로 상승하는 기둥 형태의 미시적 성분들이 스투파 윤곽선을 따라 구부러진 곡선이 되어 스투파를 파고든다. 이렇게 반복되는 형태소들은 급기야 종 모양의 원형 단면을 갖던 스투파를 테라스로부터 올라온 ‘기둥’을 따라 톱니 모양의 모서리를 갖는 ‘팔각형’으로 변형시킨다. 방콕 왓 포의 스리랑카 양식 체디들에서는 스투파마저 잠식하는 미시적 형태소들의 반복이 중첩을 거듭하여 체디 전체를 모든 방향에서 촘촘하게 파고든다.

수코타이부터 아유타야, 그리고 짝끄리 왕조의 방콕에 이르기까지 가장 선호되었던 것은 ‘크메르 양식’의 체디인 쁘랑인 것 같다. 선호된 이유는 직선과 곡선이 섞인 미시적 형태소들이 가로 세로 모든 방향, 모든 크기로 자유롭게 변형가능하고, 이 형태소들의 반복이 만드는 형상 또한 대단히 넓은 선택지에 열려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옥수수 모양의 불탑은 때론 깔끔한 윤곽선을 갖기도 하고 때론 캄보디아에서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온 거칠고 울퉁불퉁한 윤곽선을 갖기도 한다. 층층이 쌓인 작은 테라스와 불탑의 비율, 그리고 쌓아 올린 불탑의 높이 등도 대단히 다양하다. 감실의 지붕이나 각각의 테라스도 다시 더 작은 미시적 형태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고, 작은 지붕선 위의 장식 또한 더 작은 형태소들의 반복을 다시 보여준다. 방콕의 왓 아룬에 있는 쁘랑은 이런 양식의 체디 가운데 가장 장대하고 아름다운 불탑이라 할 터인데, 반복되는 테라스들 가운데는 도깨비나 사람, 가루다 등이 줄을 지어 채워진 것이 주기적으로 끼어 있다. 온통 반복이고 반복의 반복이다. 미시적 형태소들의 부가와 중첩에 의해 전체 형상을 조성하는 미학적 조형술이 불탑마다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다. 

사실 굳이 미얀마나 태국이 아니어도, 테라스나 기둥, 지붕, 창문 등의 건축적인 성분이나 직선, 사각형, 원, 호 등의 기하학적 성분, 꽃이나 식물의 줄기, 잎, 동물의 머리 등 장식적 성분이 반복되는 것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니 반복이란 말만으론 이러한 미학을 특정화할 순 없다. 결정적인 차이는 반복이 확고한 형식의 윤곽선이나 프레임 안에서, 거기를 채우는 장식적 요소로 사용되는가, 아니면 반복이 프레임을 흘러넘치거나 윤곽선을 만들고 변형시키는가에 있다. 

서양의 주류 건축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평면이나 입면, 파사드 등의 윤곽선이 일차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평면의 경우 십자형이나 원형, 사각형 등 일정한 기하학적 형태로 먼저 그려지고, 그것을 다시 일정한 비례로 분할하며 기둥이나 벽 등의 자리를 배정한다. 파사드나 다른 입면들도 윤곽선의 비례와 형태가 정해지고, 그것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분할하여 기둥과 문, 창문 등의 자리를 배정하여 전체 형상을 만들어간다. 반복이 윤곽선을 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비트루비우스의 인간이 기하학적 형식 안에 인물을 가두듯, 서양 건축은 기하학적 형식 안에 건축물의 형상을 가둔다.

미얀마나 태국의 사원이나 불탑에서 형상의 조성을 주도하는 것은 미시적 형태소들의 부가와 중첩이다. 부가되고 중첩되는 형태소들의 반복이 윤곽선을 만든다. 물론 건축물의 형상을 규정하는 윤곽선이 먼저 있지만, 그것은 반복되는 형태소들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기하학적 윤곽선 안에서, 그것의 분할에 의해 부분들이 조성되는 서양의 경우와 아주 다르다. 여기서 윤곽선은 미시적 반복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이다. 형태소의 반복은 이 가이드라인을 따르지만, 부가와 중첩에 의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반복되는 형태소들의 선이나 배열을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체 형상의 표정을 바꿀 수 있다. 윤곽선의 양상은 기하학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캄보디아의 탑들이 흔히 그러하듯 윤곽선을 비집고 삐죽삐죽 솟아나는 미시적 성분의 반복은 그것을 울퉁불퉁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변형시킬 수 있다. 

주어진 형식적 프레임을 적절히 분할하여 일정한 규칙에 따라 그 프레임을 미시적 요소들로 채우는 것과 달리, 미시적 요소들의 부가와 중첩이 형상을 만드는 조형력을 가지며, 그 조형력이 모든 방향으로 열린 가소성을 갖고 있을 때, 반복은 능동적인 조형능력을 가진 미학적 방법이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구성된 형상은 하나의 가변적 다양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수적인 다수나 반복의 형태로 다양체를 직접적으로 가시화한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수의 미시적 형태소들이 반복되며 윤곽선이나 프레임의 기하학적 형식을 가로질러 형상을 구성하는 조형적 가소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반복되며 연결되는 이웃한 형태소들과의 연대를 통해, 프레임을 횡단하고 정해진 형식을 횡단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조형적 능력, 그것이 이 미시적 형태소의 반복을 통해 작동하는 미학적 능력이다. 횡단의 미학의 또 다른 방법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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