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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10.10]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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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횡단의 미학1 - 여성화된 신체 혹은 ‘혼-성’의 감각

: 불보살 신체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절묘한 혼성

팔·다리·허리 등 신체 전체 형상 조성하는 윤곽은 유려한 곡선
태국·미얀마 입불들과 한국 관음보살도 대단히 여성적인 신체
평상심·평온함 추구하는 불교 자체가 예술적인 종교임을 뜻해

2023-1010_불교를 미학하다42.jpg
고요함과 평온함, 부드러움과 자비로움을 표현하는 불보살의 전형적인 표정은 여성적이기 마련이다.
사진은 태국 왓 마하탓의 입불(왼쪽)과 왓 트라팡응엔의 유행불(오른쪽).

 

태국 불교사의 초기를 주도했던 수코타이 시대의 중요한 사원인 왓 마하탓은 사원 중앙의 좌불이 주불이지만, 그 뒤에 있는 수코타이 양식의 체디(불탑) 좌우에 사각평면의 두 몬돕을 세우고 그 안에 입불을 안치했다. 주불과 마찬가지로 흰색이 칠해진 두 입불은, 주불의 은은한 미소에 비해 좀 더 완연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 입불의 자세로 인해 허리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선과 아래로 펴서 늘어진 팔의 곡선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데 신체 전체의 형상을 조성하는 이 윤곽선은 대단히 유려한 여성적 곡선이다. 가슴에서 허리로 좁아들었다 골반을 지나 다리로 이어지는 곡선의 굴곡은 남성의 신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팔의 모습도 부드럽게 구부러져 유려하다. 입불 전체의 형상을 조성하는 신체와 팔의 윤곽선으로 인해, 얼굴의 완연한 미소나 둥근 눈썹도 여성적인 느낌이 확연하다. 그리고 무외시인을 하고 있는 손의 손가락도 팔처럼 길고 부드러운 곡선이다. ‘걸작’이란 말도 모자랄 독창적이고 멋진 몬돕 안에, 오직 부처만이 존재한다는 듯, 불상과 더없이 가까이 다가가도록 공간을 비좁게 꽉 채운 왓시춤의 좌불 또한 여성적이다.

걷는 모습의 불상인 유행불의 경우에는 이 여성적 곡선이 더욱 두드러진다. 수코타이의 왓 사시나 왓 트라팡응엔은 실제 인체보다 약간 큰 아담한 유행불을 따로 세워놓았다. 이 유행불은 걷는 동작을 표시하는 옆으로 흘러나온 다리를 빼면 왓 마하탓의 입불과 전체적으로는 유사한 모습이지만, 가슴은 좀 더 솟아나왔고, 허리와 골반, 다리를 잇는 곡선의 굴곡은 더욱 여성적인 모습으로 강조되어 있다. 걷기 위해 좁은 보폭으로 살짝 구부러진 다리는, 단아하고 평온한 얼굴이 없었다면 외람되게도 ‘요염하다’는 느낌마저 줄 정도다. 씩씩하고 힘찬 다리, 혹은 성큼성큼 걷는 남성적 걸음과는 상반되는 부드럽고 날렵하며 유려한 모습이다.

이는 단지 태국 불상만의 특이성은 아니다. 미얀마 바간 지역의 아난다 사원에 있는 입불들은 모두 가슴과 허리, 골반, 다리를 잇는 윤곽선이 태국의 입불처럼 여성적 굴곡이 완연하다. 티베트의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 무량수불 등은 여성이 아니지만, 많은 경우, 심지어 칼을 들고 있을 때조차, 잘록한 허리가 넓은 가슴과 대비되는 여성적 신체를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보살상, 특히 관세음보살상은 대단히 여성적인 신체를 갖고 있다. 두드러진 예는 석굴암의 부조들이다. 여성적 얼굴을 하고 있는 관세음보살은 물론 문수보살이나 보현보살, 그리고 그 옆의 범천과 제석천도 유려한 곡선으로 흘러내리는 여성적 신체를 갖고 있다. 석굴암의 범천, 제석천이나 문수보살, 보현보살처럼 남성의 얼굴로 보이는 경우에도, ‘남성적인’ 느낌은 거의 주지 않는다.

근육의 입체성이 살아 있는 든든한 팔, 세상을 다 싸안을 듯한 늠름한 가슴과 넓은 어깨,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한 굵고 안정적인 허리, 악한 적을 제압하는 역동적인 동작이나 다가올 싸움을 예감하고 준비하는 긴장된 자세, 아마도 이런 것이 남성적인 신체를 표상하게 하는 형상적 요소일 것이다. 남성적인 얼굴 또한 이와 상응한다. 즉 힘과 감정, 그리고 굳은 의지가 명확히 드러나는 단호함과 역동성을 가져야 남성적 얼굴에 값한다. 얼굴의 윤곽은 가로로 늘어나고 직선적 힘을 가지며, 이목구비는 진하고 뚜렷한 경계를 갖기에 눈은 감아도 겨누어보는 듯하고 입은 닫아도 소리가 비어져 나오는 듯하다. 볼 또한 패이고 솟으며 울룩불룩한 입체성을 갖는다. 눈썹이 짙어지고, 남성임을 잊지 말라는 듯 수염이 강조되기도 한다.

근육질의 울퉁불퉁한 몸과 단단한 팔과 다리, 부릅뜬 눈과 단호한 입을 모두 갖지만, 금강역사에게서 일차적인 것은 역동적인 힘을 과시하는 남성적 신체인 듯하다. 사천왕은 뚱뚱하다 싶을 정도로 가로로 확장된 두툼한 몸매가 남성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얼굴이다. 부릅뜬 눈과 치켜올라간 진한 눈썹, 울룩불룩한 볼, 고함소리가 터져나오는 듯한 입, 폭발하듯 펼쳐진 수염 등을 통해 보는 이에게 강력하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표정의 얼굴이다. 티베트의 명왕들도 대개는 사천왕과 유사하다. 교합상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얼굴도 이런 경우에는 남성적이다. 타라나 바즈라요기니처럼 여성의 신체를 갖고 있는 독립된 상들도,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리거나, 치켜올라간 눈썹이나 꽉 다문 입이 팽팽한 긴장을 머금고 있는 경우에는 그 표정으로 인해 여성적이라고 느끼기 어렵다.

반면 입체적 근육이 아니라 평면화된 피부의 부드러움, 우아하게 오르내리는 곡선으로 흐르는 신체의 윤곽선, 곧게 펴있을 때조차 살그머니 구부러지며 유려하게 흐르는 팔다리의 곡선, 마주한 대상이나 보는 이들 편안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표정은 어떤 신체에 여성적 감응을 새겨넣는다. 여성적인 얼굴 내지 표정 또한 남성적인 것과 대비된다. 가로 방향으로 닫힌 눈이나 입이 묵뚝뚝하거나 단호해지지 않도록 얼굴의 윤곽선은 세로 방향으로 갸름하게 길어지고, 볼이나 이마는 세파나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한 게 아니면 엔간한 선들은 지우고 평면화된다. 눈은 대상이나 보는 사람을 향해 있을 때에도 그게 다가 아닌 듯 어딘가 허공을 향한 시선이 섞여 있어 모호한 비의성을 담고, 특별한 일이 있어도 부릅뜨지 않는다. 입은 열려 있을 때도 속삭임의 대기 속에 묻혀 소곤대고, 닫혀 있을 때도 살그머니 닫혀서, 결의나 거절의 단호한 침묵이 아니라 살며시 잠겨드는 고요와 부드러운 평온의 침묵을 표현한다.

선과 면, 눈과 입의 이런 효과로 인해, 반개한 눈과 침묵에 잠긴 입, 고요하게 가라앉은 볼, 굴곡이 적은 이목구비는 남성의 얼굴에도 여성적인 얼굴을 새겨넣는다. 조용히 앉아서 적정의 침묵 속에 들어간 자세나 차분하게 서서 반개한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형상 또한 남성의 신체에 여성적 신체성을 불어넣는다. 남성임이 분명한 데도 불보살의 조상(造像)들이 대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니 고요함과 평온함, 부드러움과 자비로움을 표현하는 불보살의 전형적인 표정은 여성적이기 마련이다.

이는 불교라는 종교 자체가 여성적인 종교임을 뜻하는 것 같다. 적정열반이라는 깨달음이든 매순간 일상에서의 평정을 뜻하는 평상심이든, 불교가 가르치고 도달하려는 목표도, 두려움이나 긴장을 없애주고 평온함을 주는 보시와 자비의 가르침도 생각해보면 불보살의 신체나 표정의 여성적 감응과 상응하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불보살의 신체가 여성의 신체는 분명 아니다. 이렇게 여성적 신체는 남성의 신체와 여성의 신체의 구별을 횡단하며, 남성이라고도 할 수 없고 여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렇다고 그저 중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절묘한 혼-성(混-性)의 지대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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