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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9.18]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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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은근의 미학과 피아니시모의 힘4
- 은묘와 은연은 은근의 미학을 협시

: 은밀하게 접어넣고 은묘하게 펼쳐지는 미의 세계

은미함이란 응결됐기에 강렬한 것보다 더 강한 역설적 강도
쉽게 드러낸 감정이 눈 사로잡아도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해
드러낼 때조차 숨듯 뒤로 물러선 것 있을 때 마음 사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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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함 속에 매혹의 힘을 어떤 강도로 숨겨넣을 때, 그림이나 조각은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어떤 힘의 거처가 된다. 사진은 십일면 관음보살상.

 

은밀과 은묘, 은미와 은연, 이는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작동하는 두 가지 표현방식이다. 특정한 표정을 갖지 않기에 무심한 얼굴 속으로 많은 다른 표정들을 숨기듯 접어 넣는 것이 은밀이라면, 그 무심한 얼굴이 보는 이와 만날 때마다 다른 표정으로, 이 표정에서 저 표정으로 오가며 펼쳐지는 것이 은묘다. 이처럼 부처나 보살의 얼굴을 성스럽게 하거나 애써 자비롭게 하지 않고 무표정하다 싶을 만큼 무심하게 표현하는 것을 두고 ‘무심’이나 ‘무분별’, ‘무위’와 같은 개념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도를 향해 이끌려는 이를 상(像)으로 만들 때조차 보는 이의 마음을 애써 사로잡아 감동시키려 하지 않고, 보는 이에게 부처와 보살의 마음을 전하려 할 때조차 ‘자기 마음대로’ 보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내려놓음(放下著)’이란 개념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터이다. 이러한 개념이 저 피아니시모의 힘을 이용하여 표현되는 ‘내용’이다.

탈초점화를 포함하는 평면화라는 방법 속에서 우리는 은미와 은연의 표현방식이 작동함을 본다. 이때 평면화란 모든 것의 차이를 최소화하여 두루뭉술 뒤섞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이를 격별(隔別)하게 응축시켜 최소화된 굴곡 속에 새겨 넣는 것이다. 탈초점화 또한 어떤 중심이 당기는 힘을 분산시켜 형상과 배경의 차이가 만드는 깊이감을 줄이는 것이지만, 상이한 형상이나 사건 사이를 오가며 마음이 내키는 어떤 지점을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다양한 방향을 향한 감응들을 미미하고 작은 차이 속에 최대한 응결시키는 것이다. 은미함이란 그렇게 응결되었기에, 강렬한 것보다 더 강한 역설적 강도(强度)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 은미의 힘은 강렬함과 대비되는 ‘고요’와 ‘평온’에 가까이 있다. 은미하게 응결된 힘은 마음을 흔들어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반대로, 최소치로 잦아드는 잔잔한 파동을 통해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힌다. 평온하게 한다. 이것이 은미와 은연이라는 표현형식을 통해 표현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쉽게 드러낸 감정은 잠시 눈을 사로잡을 수 있어도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하며, 사로잡은 마음도 오래가지 않는다. 드러낼 때조차 숨듯이 뒤로 물러선 것이 있을 때 마음은 거기에 말려든다. 포르티시모의 미학도 실은 그렇다 하겠으나, 은미와 은밀로 접어넣고, 은연중에 은묘하게 드러나는 피아니시모의 미학은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표현이 만들어낸 미감은 대기처럼 은은히 번져 나오며 보는 이의 신체와 감각에 은근히 스며든다. 피아니시모의 미학은 은근(慇懃)의 미학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을 둘러싼 부조들은 이 은은하고 은근한 매혹의 힘이 얼마나 큰 강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표면에서 살며시 배어나온 평면화 된 제석과 범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윤곽선, 옷주름은 작은 곡률로 조용히 흘러내린다. 비슷한 포즈로 두드러지지 않는 두 보살의 팔들은 멈춘 듯 움직이는 듯 고요한 동작으로 우아하고, 반쯤 옆으로 돌린 얼굴은 무심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비추어 되돌려준다. 가벼운 무게감을 가진 입은 소리 없는 물음을 보는 이에게 던지는 듯하고, 간결한 선으로 반개한 눈은 보는 이의 시선을 보지 않던 것으로 이끄는 듯하다. 이 모든 감응은 은은하지만 은근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피아니시모의 은미한 힘이 강렬한 포르티시모 이상으로 높은 강도를 가질 수 있음을 본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은 정면상인지라, 무심한 얼굴 속에 숨은 은묘한 표정이 좀더 높은 강도를 갖는 듯하다. 벽에서 배어나오듯 살그머니 솟은 평면화된 신체는 고요하고, 신체에 비해 표면에서 올라와 있으나 최소화된 굴곡으로 평면화된 얼굴은 평온하다. 날카로우면서 부드러운 눈에는 경책과 포용, 안타까움과 너그러움이 동시에 깃든 듯하고, 차분하게 다문 입은 웃음기를 머금은 듯 보이다가 단호해 보이다가 한다. 하여 그 얼굴은 온화한 표정의 부드러움을 갖지만 꿰뚫어보는 눈의 예리함 또한 가지며, 평온한 표정과 풀어진 자세를 얼른 추스르게 하는 긴장을 동시에 갖는다. 슬픈 연민의 표정인지 무언가 미덥지 않아서 안타까운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이고, 여성으로도 보이고 남성으로도 보이는 얼굴이며, 당당한 동시에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겸허함이 공존하는 얼굴이다. 결코 어떤 감정이나 감응을 강렬하게 드러내지 않고 무심한 얼굴이지만 그 매혹의 힘은 지극히 강한 것이어서 엔간히 둔감한 이조차 눈을 빼앗기지 않기 어렵다. 

은미함 속에 매혹의 힘을 어떤 강도로 숨겨넣을 때, 그림이나 조각은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어떤 힘의 거처가 된다. 이 힘은 은연중에 감지되며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은근하게 지속된다. 이 은미하고 은밀한 힘은 앞에 나서지 않고, 시선을 부르는 손짓이나 눈짓도 하지 않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면 은근하게 당긴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거기 있음이 잊혀지지 않은 은근한 존재감을 갖는다. 외연적 깊이를 갖지 않아 평면적이지만, 베일 뒤에 숨어 당기는 어떤 힘의 내포적 깊이감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따로 눈 둘 곳 없이 흩어져 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대기가 되어, 은은한 분위기로 보는 이의 신체에 은근히 감겨든다.

그윽함이란 가시화된 깊이가 없음에도 감지되는 어떤 깊이를 뜻한다. 사실감의 환영도, 재현적인 입체감도 없이 평면 속에 존재하는 깊이감이다. 피아니시모의 강도를 통해 전해지는 은근의 미학은 그윽함의 미학이다. 은근이란 눈이나 귀, 코, 입을 잡아채는 두드러진 강렬함은 없지만, 그렇기에 일단 다가선 감각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 무심의 강도다. 은근이란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모호한 존재감으로 보는 이를 당기기를 지속함이고, 그윽함이란 은밀하지만 간절하게 당기는 이 역설적 힘과 감각의 깊고 고요함이다. 

은은하게 배어나와 은근하게 스며드는 이런 미감은, 무언가를 돌파하며 나아가게 하는 강렬함과 반대로,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연 조건 따라 오는 것을 오는 대로 받아주는 원만과 상응한다. 원만이란 상이한 감응이나 표정들을 은묘하게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고, 그렇게 담아낸 것이 은은히 번지며 다가온 이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은근한 힘이다. 그러니 그 ‘원만(圓滿)’에서 ‘원(圓)’이란 컴퍼스로 그은 선이 아니라 최고 크기의 곡절로 구부러진 곡선을 뜻하고, 수많은 곡절을 감춘 평온한 곡선을 뜻하며, ‘만(滿)’이란 은연중에 드러날 매혹의 힘들을 은미한 강도 속에 최대한 가득 채움을 뜻하는 동사임이 강조되어 한다. 은밀하게 접어넣고 은묘하게 펼치는 것이 무위와 무심에 상응한다면, 은미하게 평면화된 것이 은연중에 펼쳐지는 것은 고요와 평정에 상응한다. 은밀과 은묘로 표현되는 무심과 무위, 그리고 은미와 은연으로 표현되는 고요와 평정이 최소치의 강도 속에 최대치의 힘과 능력을 담아내는 원만함을 협시(脇侍)하고 있는 것이다. 은근의 미학의 두 기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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