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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9.5]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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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은근의 미학과 피아니시모의 힘4
- 은미하게 접어넣고 은연히 펼쳐지다

: 느리고 깊숙한 시선과 만날 때 펼쳐지는 긴장

돈황·티베트·일본 불교미술에도 입체화 기법 찾을 수 있어
서양처럼 입체기법이 확산 안 된 것은 매력 못 느꼈기 때문
대부분 지역서 평면화 성향 많이 나타나는 게 특이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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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 220굴 ‘불설법도’. 이 그림을 비롯한 많은 불교미술에서 입체화기법이 찾아볼 수 있으나 대다수 지역에서는 여전히 평면화를 선호했다.

 

입체화에 대한 선호나 그걸 표현하는 기법이 ‘동양’이나 불교의 회화에 없었다고 할 순 없다. 가령 중당(中唐)기 작품인 돈황 막고굴 제220굴의 설법도나 오대십국 시대 작품으로 보살과 팔부신중을 그린 제6굴의 벽화는 스푸마토 기법을 이용하여 얼굴이나 신체에 입체성을 부여하는 아주 때 이른 시도를 보여준다. 북주시대의 작품인 290굴의 ‘비천도’는 명도를 달리하는 두꺼운 선을 이용해 입체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가령 돈황석굴의 그 많은 벽화 가운데에서도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스푸마토를 이용한 입체화의 기법이 이처럼 있었음에도 거의 확산되거나 발전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주는 효과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터이다.

조각 또한 그러해서, 지역에 따라 입체화를 추구하는 성향의 문화가 있으며, 같은 지역에도 상반되는 성향의 불상들이 섞여 있다. 간다라 지역이 아니어도 입체성을 선호하는 감각이 강한 곳도 있다. 가령 일본 불상들은 대체로 입체성에 대한 선호를 보여준다. 간신지(觀心寺)의 여의륜관음좌상이나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의 수많은 천수관음상들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티베트의 불상들에서도 평면화보다는 입체화의 양상이 확연하게 발견된다. 포탈라 궁 소장의 십일면천수관음보살상들이나 34개의 팔을 가진 대위덕금강(야만타카) 상은 3차원의 공간에 팔들을 가득 채워 넣어, 최대치로 증식되고 최대한 증폭된 입체성을 갖는다. 2개 내지 4개의 팔을 가진 타라 보살상도 그렇고, 무량수불이나 문수보살 등의 크고 작은 불상들도 그러한데, 조용히 앉아 있는 경우에도 티베트의 불상들은 대개 골곡이 많고 볼륨감이 강조된 신체를 갖는다. 불상이나 고승의 광배도 강한 입체성을 갖는 장식으로 채워진 경우가 통상적이다. 사실 환조를 만들면서 이처럼 입체화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조각을 하면서 평면화하려는 성향이 오히려 많은 지역이나 문화권에 나타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유를 물어야 하는 특이한 현상이라 하겠다.

시선을 겨냥한 작품에는 어디나 시선이 모이는 초점이 있다. 화면이나 장면 속에 많은 인물이나 사물이 그려져 있을 때에도, 작가는 대개 보는 이의 시선이 모이는 어떤 중심을, 시선의 초점을 그 안에 만들기 마련이다. 이는 동시에 여러 대상들로 시선이 흩어지며 전체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초점을 없애거나 증식시켜 시선을 모으는 힘을 최소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탈초점화’라고 명명될 수 있는 것인데, 이 또한 평면화와 마찬가지로 피아니시모의 미학에 속한다. 이는 ‘형상’과 ‘배경’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형상은 어떤 장면의 전면을 차지한 것이고 배경은 그 뒤에서 그것을 떠받쳐주는 것이다. 초점화는 그렇게 형상으로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시선을 모으는 방법이다. 장면화된 서사에서 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많다면, 그 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모으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성모자나 성가족을 그린 많은 그림들에서 인물들의 시선은 성모와 아기 예수로 향하는데, 거기서도 시선이 모이는 초점은 역시 성모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야바위꾼’은 속임수로 인해 인물들의 시선이 제 각각 흩어지고 있지만, 그런 사태의 이유를 제공하는 인물, 그의 뒤로 감추어진 손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 내지 주연이라 할 그것은 다른 형상들마저 배경으로 밀어 넣는, 형상 중의 형상이다. 그것이 시선을 모으는 중심인 초점이다. 나머지는 그것을 뒤에서 떠받쳐주는 배경이다. 밝은 빛을 사용하거나 그려지는 인물의 크기를 다르게 하는 것, 혹은 그려진 인물들 사이에서 시선이 모이게 하는 것 등이 초점화를 위해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지만, 사건의 서사나 제목 또한 이를 위해 기능하는 중요한 성분이다. 이로써 형상은 앞으로 나서고, 배경은 뒤로 물러선다. 도드라진 형상과 물러선 배경은 굳이 투시법을 쓰지 않아도 다른 ‘깊이’를 갖는다. 평면적 기법으로 그려도, 초점화는 그려진 장면을 입체화한다. 투시법이 ‘중심점’이나 ‘소실점’ 같은 초점을 통해 평면에 깊이감을 만드는 기법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초점화가 차원수를 늘려 입체화한다는 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화나 불상들에도 초점이 있다. 삼존불이나 오존불의 초점은 중앙의 불상이고, 영산회상도의 초점은 한 가운데 있는 석가모니불이다. 이를 위해 대개는 크기의 차이를 둔다. 광배의 크기나 화려함을 통해 표시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초점을 동등한 위상을 가진 채 증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일본 쥬린지(十輪寺)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오불회도’에서는 삼신불, 삼세불을 이루는 다섯 부처가 동등하게 강조되어 있다. 중심이 5개나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옆의 협시보살마저 강조되어 있다. 하여 시선은 그 많은 중심 사이에서 떠돌게 된다.

감로도에는 상부에는 지옥의 중생들을 구원하러 온 불보살들이 크게 그려져 있지만, 다섯 내지 일곱 분이 있다. 게다가 그림의 중간에는 수륙재를 올리는 제단이, 그 앞의 하부에는 아귀가 크게 그려져 있어서 상부의 불보살보다 더 시선을 모으는 것 같다. 석가모니 일생의 중요 사건을 그린 팔상도나 ‘관경서분변상도’에는 여러 사건들이 거의 동등하게 병치되어 그려져 있다. 이 경우에도 시선은 중심을 찾지 못한 채 그 여러 사건들 사이를 오가게 된다.

우리는 최대 강도가 만드는 강렬함을 따라가는데 익숙하다. 탈초점화를 포함하여, 평면화는 그것과 반대되는 방향에 있다. 강렬함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미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최소 크기의 강도가 최대치의 긴장을 만들어내기도 함 또한 안다. 아주 작은 소리 하나, 혹은 모든 것을 정지한 적막함이 그렇다. 공중에 멈추어 선 매 또한 그 최저 속도 속에 최대치의 어떤 긴장을 접어넣는다. 이처럼 곡률이나 강도의 변화를 최소화하면서도 어떤 당기는 힘을 거기 숨겨넣을 수 있을 때,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작동한다.

면이나 선의 최소 변화 속에 어떤 힘의 팽팽함을 숨기듯 접어넣는 것을 ‘은미(隱微)’라고 한다면, 그렇게 접혀들어간 힘이, 천천히, 한참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느린 감각을 향해 살그머니 펼쳐지는 것을 ‘은연(隱然)’이라 해도 좋겠다. 은미와 은연은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작동하는 또 하나의 짝이다. 하지만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단지 피아니시모와 같은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은미란 단지 곡률벡터의 작은 변화가 아니라, 그 작은 변화 속에 슬그머니 당기길 반복하는 어떤 매혹의 어트랙터(attractor)를 숨겨 넣는 것이다. 애써 당기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거기 머물다가, 느리고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선과 만날 때면 은연히 펼쳐지는 고요한 긴장을 살그머니 접어넣는 것이다. 은미한 진동의 파동을 은연중에 방사하며 그걸 알아보고 응답하길 기다리는 은근한 매혹의 힘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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