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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7.31]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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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은근의 미학과 피아니시모의 힘2
      -포르티시모와 피아니시모

: 불교는 강렬한 긴장과 다른 무심한 매혹의 힘

포르티시모 미학은 긴장 강도의 최대화 위해 강약 대립 이용
서사적 흐름의 대립으로 최대 강도 극적 효과 얻으려는 의도
예불소리·타종 등은 긴장 부재라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긴장

2023-0731_불교를 미학하다38.jpg
바티칸 미술관의 라오콘 군상 [위키미디어 커먼스]

 

서양의 그림이라고 언제나 감정이나 표정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초상화의 얼굴에는 상이하고 상반되는 느낌들이 분명 뒤섞여 공존한다. 그렇기는 해도 탈속의 성스러움이든 모성의 자애로움이든, 꽉 눌렀어도 배어나오는 분노든 모면할 수 없는 운명으로 슬픈 고통이든, 그 상이한 느낌들을 어딘가로 이끄는 주도적인 느낌이 대개는 있다. 초상화가 아닌 경우에는 인물의 동작이나 서사로 인해 이 느낌은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고요함’을 개념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빈켈만은 그리스 조각 ‘라오콘’의 인물을 두고,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평정을 잃지 않았다 하여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라고 예찬한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격정적일 만큼 강렬한 표정이다. 물론 단순하다 해도 단일하지는 않다. 상이한 감응이 섞여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 주도적 감정에 다양한 색을 칠하는 데 머문다. 의연함과 슬픔, 불안함과 기대감 같이 상이한 감정이 동시에 드러나는 경우에도, 그것들은 모두 높은 강도로 섞이기에, ‘포르티시모’(fortissimo, 매우 강하게)의 강도 속에서 공존한다.

반면 불화나 불상에서는 어떤 감정이나 감응이 표현되고 표정이 명확하게 드러날 때에도 그런 강렬함을 느끼긴 어렵다.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불은 웃는 표정이 드물게 선명하지만, 그 표정은 강렬하기보다는 은은하다. 고려 불화는 대부분 섬세한 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두드러지만, 강렬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감응들을 갖지만, 어떤 하나의 느낌도 눈에 띄도록 강하지 않다. 모든 감응들이 포르테 없는 피아니시모의 강도로 모호하게 섞여 있다.

강렬함이란 강함이 아니라 강약의 긴장을 통해서 얻어진다. 포르티시모의 미학은 그 긴장의 강도를 최대화하기 위해 대개 강약의 대립을 이용한다. 소리의 강약이나 완급뿐 아니라 명암, 색채의 대비, 직선과 곡선 등 형태의 대비, 중심과 주변의 대비 등등 또한 강렬함을 극대화하려는 잘 알려진 방법이다. 내용에서도 그렇다. 선한 신의 힘은 그가 제압하는 악마의 힘의 크기를 통해 확인될 수 있고, 영웅의 위대함은 그가 겪는 고난의 크기를 통해 표상될 수 있다. 

‘드라마틱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서사적 형식이 힘의 강약이나 속도의 완급 같은 크기의 대립과 쉽게 손잡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서사의 흐름이나 힘의 흐름을, ‘위기’와 ‘절정’이라는 최대 강도의 긴장으로 밀고 가서, 그로부터 급격히 이완시키는 고전적인 ‘플롯’ 또한 이와 동일한 지반 위에 있다. 서사적 흐름의 대립과 대비를 통해 최대 강도의 극적 효과를 얻으려는 것이다. 

대립이나 대조를 이용해 강도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이러한 기법들은 드라마나 소설 같은 서사 예술이나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 예술은 물론 음악 같은 청각 예술에서 더 두드러진다. 소나타나 협주곡, 교향곡은 대개 느린 속도의 악장을 통상적 속도나 빠른 속도의 악장 사이에 넣어 대비한다. 바로크 시대의 합주협주곡은 총주(tutti)와 솔로(solo), 반복되는 리토르넬로와 그 사이의 에피소드의 대비를 근간으로 하고, 고전주의 시대 발전된 소나타 형식은 대립되는 두 개의 주제를 이용해 직조된다. 근대의 조성음악은 대체로 화음이나 리듬에서 플롯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시와 발전, 위기와 절정, 결말의 구성방식을 이용한다. 

 

해인사 새벽예불.[조계종 홈페이지]
해인사 새벽예불 [조계종 홈페이지]

 

반면 드라마틱한 서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귀를 잡아끄는 자극에 대해선 반감마저 있었을 것이기에, 불교 음악은 형식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형식화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똑같은 예불소리도 절마다 다르고, ‘반야심경’을 낭송하는 소리도 사람마다 다르다. 예불을 할 때 듣게 되는 예불문이나 염불소리는 헤테로포니 중에서도 불일치의 정도가 큰 헤테로포니에 속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함께 낭송할 수 있는 것은 선율의 변화나 리듬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들으면서 대충 맞춰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불 시에 노래하는 예불문은 가장 느린 속도(속도 또한 강도다)를 가지며, 선율의 변화도 작아서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다가 마지막에서야 한 번 바뀐다.

예불 시에 ‘연주’되는 사물의 경우에도, 법고는 빠른 리듬으로 두들기지만, 시작과 끝 말고는 거의 차이가 없으며, 북채가 두드리는 타점과 음색만 약간 달라질 뿐이다. 최대한 낮은 주파수의 파동, 그리고 소리와 소리 사이에 최대한의 고요한 간극을 만들어 듣는 이가 기다림으로 공백을 채워 넣게 하는 느린 범종소리의 매력 또한 피아니시모의 미학 안에 있다 하겠다. 그것은 여러 중생들 듣고 성불하라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소리들은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다. 이 표정 없는 ‘연주’가 심심하고 썰렁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송광사의 사물 연주와 예불 소리를 ‘선(禪)’이란 제목의 음반으로 만들며 김영동은 대금소리를 더해 선율적 표정을 만들어 넣었다. 그러나 사물과 예불 소리의 매력은 이런저런 표정들이 섞인 듯 이어진 듯 은묘하게 펼쳐지는 무심한 표정이라 한다면, 이 선율적 표정은 없었으면 더 좋았을 덧칠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강렬함을 지향하는 포르티시모의 미학과 대비되는 피아니시모의 미학이 있다면, 그것은 대립을 이용한 강렬한 긴장과는 다른 무심한 매혹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될 터이다. 그것은 긴장의 부재라기보다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무엇 하나 움직이지 않는 적막함이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강렬함 못지않은 긴장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무심한 얼굴 속에 숨기듯 접혀 들어간 얼굴들, 거기에는 강렬함에 봉사하지 않는 미약한 힘들이 있고, 무심하지만 무감하지 않은 섬세한 어떤 힘들의 변화가 있다. 그런 강도로 하나인 듯 여럿인 듯 이어지는 다른 표정들이 무심하고 미약하게 섞이고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이 거기에 있다. 그렇게 표 나게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감응, 수다한 표정을 무심한 표정의 얼굴이나 신체에 동시에 새겨 넣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그러나 상황에 따라,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드러날 표정들을 고요함의 강도 속에 미묘하게 겹겹이 새겨 넣는 것이다. 은묘하게 펼쳐질 다의성과 다표정을 무심한 얼굴 속에 은밀하게 접어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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