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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5.27]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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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날아오름’의 감응과 상승의 기하학

: 상승하는 곡선에 균형과 안정성을 부여하다

미얀마 건축 주도하는 건 오목한 점근선 따라 상승하는 윤곽선
점근선은 곡률 갖는 원의 일부 아닌 곡률 변하는 ‘비정규 곡선’
오목과 볼록, 출렁이는 곡선 적절히 스며들어 상승 기하학 직조

 

2023-0527_불교를 미학하다34.jpg
미얀마 바간의 아난다 사원. [위키피디아]

 

미얀마 사원의 형상을 주도하는 것은 세 가지 유형의 탑이다. 첫째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스투파를 원형으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힌두사원의 시카라를 원형으로 하는 것, 셋째는 피아탓(pyattat)이라고 불리는 미얀마 고유의 불탑이다.

첫째 유형의 탑이 중심 모티프가 된 것은 쉐다곤이나 쉐지곤 사원 등의 ‘파고다’인데, 거대한 계단형 기단 위에 세워진 불탑 자체만으로 본체를 이룬다. 미얀마의 불탑은 스리랑카에 비해 상륜부가 크게 확대되었고 탑신도 수직방향으로 길어졌다. 스리랑카 스투파의 윤곽선이 볼록한 곡선인 반면, 미얀마의 파고다는 오목곡선을 그리는 장대한 윤곽선이다. 또 하나, 미얀마 파고다의 중요한 특이성은 거대하게 확장된 기단이다.

쉐산도 파고다는 이런 변화의 초기적 양상을 아주 잘 보여주는데, 마치 피라미드를 쌓듯 거대한 테라스형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종형 스투파를 얹었다. 파고다 양식의 전범이 된 쉐지곤은 이 거대 기단의 단차를 줄여 윤곽선의 연속성을 강화했고, 기단에 비해 작았던 스투파의 크기를 확대했다. 

이후 파고다에서 기단과 탑신의 연속성은 커지고, 가장 하단의 기단에서 스투파를 거쳐 꼭대기의 첨점에 이르는 윤곽선이 하나의 시원하게 상승하는 오목 곡선을 점근선으로 갖게 된다. 가령 바고의 세모도나 양곤의 쉐다곤은 그 기단의 단차를 더욱 줄이고, 스투파와 기단 사이에 다시 양자를 연결하는 탑신을 추가해 전체 윤곽선이 훨씬 더 부드러운 윤곽선을 그리도록 했다. 기단 끝에서 탑신을 거쳐 상륜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점점 커지는 기울기로 상승하는 윤곽선이 전체 파고다의 형상을 조성하고 있다.

둘째 유형은 아난다 사원이나 술라마니 사원 등의 상부에 세워진 시카라 형상의 탑이다. 이들 사원은 내부공간을 갖는 육면체의 ‘본체’ 위에 불탑(‘제디’)을 세웠다. 이들 사원은 힌두신전의 시카라 위에 있는 쿠션 모양의 아말라카 대신 뾰족한 첨탑을 올린 불탑이 특징적인데, 그 밑에는 내부공간을 갖는 ‘본체’를 두었다. 그러나 ‘본체’ 없이 계단형이 작은 계단형 기단 위에 불탑을 세운 것도 많다. 바간 지역에 세워진 크고 작은 많은 불탑들은 오히려 파토 없는 이런 유형의 탑이다.

시카라 특유의 볼록한 곡선이 앞의 파고다에 비해 두드러진 편이고, 불탑은 그 아래 건축물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하지만 넓은 지붕과 좁은 불탑 하단을 연결하기 위해 중간에 여러 층의 테라스를 끼워넣었고, 이로 인해 지붕 끝과 불탑 끝은 거칠기는 하나 대략적으로 오목한 점근선을 그린다. 그 점근선의 오목함은 지붕이 넓을수록 더 확연해진다. 그 점근선의 오목함이 시카라의 볼록한 배와 대비되며 올록볼록하며 율동적인 윤곽선을 그린다.

미얀마 건축을 특징짓는 셋째 유형의 탑은 마하보디 사원처럼 지붕이나 문루에 세워진, ‘피아탓’이라 불리는 탑이다. ‘만델레이 양식’이라 불리는 이 탑은 미얀마 건축에 고유한데, 스투파나 시카라 같은 불룩한 탑신을 갖지 않으며, ‘옥개’로 구별된 5층이나 7층의 탑신을 갖는다. 피아탓의 옥개 끝을 이은 윤곽선 또한 현수선 포물선의 형식을 이루는데, 파고다보다 수직성이 훨씬 강하다. 물론 지붕 위에 조성되는 경우, 종종 지붕의 처마끝이 윤곽선에 이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첫째 옥개 끝과의 차이가 크기에 탑은 지붕과 구별되며, 탑의 윤곽선과 지붕선은 꺾어지며 이어진다. 그 경우에도 그렇게 이어진 선 전체는 급격히 상승하는 ‘비정규 곡선’을 그린다.

만달레이 양식의 또 하나 중요한 특이성은 옥개마다 평면성을 갖는 장식들이다. 옥개를 넘치듯 채우는 이 장식들은 화려하고 커서 탑신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마저 있다. 피아탓의 장식은 피아탓을 벗어나 수많은 건축물을 장식하는 하나의 스타일을 이룬다. 가령 만달레이의 쉐난도 수도원은 피아탓이 없지만, 용마루나 추녀마루, 합각마루는 물론 각 층의 테라스 난간도 빈틈없이 이 스타일의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반복적인 모티프들로 미시적으로 분할된 이 장식들은 독립적 형상을 이루는 대신, 이웃한 것들과 이어지며 마루나 난간의 수평선 위에 펼쳐지는 거시적 형상의 원소적 부분으로 참여한다. 이 거시적 형상은 때론 불꽃같고 때론 물결 같은 윤곽선을 갖기에, 전체로 보면 일렁이는 곡선을 따라 춤추며 상승하는 형상이다. 이 거시적 형상은 평면적인데다 미시적으로 세분되어 있어서, 양감은 물론 무게감도 느끼기 어렵다.

쉐다곤이나 쉐지곤이 잘 보여주듯, 파고다 사원의 주탑은 현수선 같은 오목한 곡선의 윤곽선을 점근선으로 갖지만, 실제 윤곽선은 종형 탑신이나 연꽃봉오리 모양의 상륜처럼 볼록한 곡선과 그 사이에 있는 오목한 곡선이 교차하는 날씬한 S자 곡선이 반복되며 춤추듯 출렁대며 상승한다. 이 상승의 힘은 꼭대기로 갈수록 커지는 각도에 의해 가속되지만, 그저 가열찬 상승만은 아니다. 오목볼록한 선의 율동에 의해 완급이 조절되며 여유를 갖고 있어서다. 수평성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상승운동의 가속은 급하지 않고, 전체적인 상승감은 안정적이다. 탑신의 불룩한 양감은 무게감을 통해 안정성을 더한다. 이는 바간 양식의 사원도 다르지 않다.

 

만달레이 쉐난도 수도원. [위키피디아]
만달레이 쉐난도 수도원. [위키피디아]

 

테라스 형의 기단은 탑신 하단과 하나의 윤곽선으로 이어지며 파고다 전체와 연속적인 상승의 힘을 표현하기에, ‘기단’이라 하지만, 기둥이나 벽을 떠받치는 ‘기초’ 내지 ‘근거’가 아니라, 탑 전체의 상승운동을 시동하는 부분이라 해야 한다. 기단의 네 방향에, 테라스의 수평선을 가로지르며 수직으로 만들어진 계단들은 이런 상승의 벡터를 명확하게 가시화해준다. 법당이나 파토의 ‘지붕’ 또한 기둥에 받쳐지는 독립적 부재(部材)라기보다는 피앗타의 0번째 옥개(만달레이 양식)나 불탑 밑의 최하단 테라스(바간 양식)로서 탑신의 상승운동에 참여한다.

미얀마 건축을 주도하는 것은 오목한 점근선을 따라 상승하는 윤곽선이다. 이 점근선은 하나의 곡률을 갖는 원의 일부가 아니라 곡률이 계속 변하는 ‘비정규 곡선’이다. 미얀마 건축에서도 대칭성은 중요하지만, 이는 그 자체로 형상을 구성하는 원리라기보다는 상승하는 곡선에 균형과 안정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스투파나 시카라의 불룩한 양감은 수평선과 대칭성이 주는 안정감을 이 상승감에 더한다. 피아탓에서 시작된 평면화된 장식들의 물결처럼 출렁이고 불꽃처럼 일렁이는 형상들은 입체가 갖기 마련인 무게를 최소화하여 가파른 탑의 상승운동을 가벼운 춤사위가 되도록 한다. 두 가지 유형의 탑을 통해 상이한 양상의 상승감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상승하는 두 개의 대칭적인 비정규곡선과 안정성을 주는 수평선, 무게를 제거하는 평면성과 상승의 속도를 늦추는 불룩한 스투파나 시카라의 양감, 오목과 볼록이 이어지는 선이나 불꽃처럼 출렁이며 춤추는 곡선이 적절하게 섞여들며 미얀마 사원에 특이한 상승의 기하학을 직조한다고 하겠다. ‘날아오름’의 감응을 주는 상승의 기하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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