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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3.5.8]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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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매달림의 감각, 매달림의 기하학

: 티베트인 ‘매달림’ 선호 배경엔 유목생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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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인들에게는 기하학보다는 매다는 감각이 더 우선
탕카·걸개·룽다·타루초 등은 매달림에 대한 선호 보여줘
양탄자 매달아 방풍과 보온했던 유목민의 삶에서 유래

 

2023-0512_불교를 미학하다33.jpg
티베트 전통사찰. 

 

티베트의 건물들은 모두 수평적이다. 지붕선들이 잘리거나 요철을 이루며 나고 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긴 수평선을 근간으로 한다. 순례자들을 불러들이는 조캉 사원과 앞의 넓은 광장을 사변형으로 둘러싼 건축물들은 수평성, 사변형의 기하학주의를 확연히 보여준다. 걸개그림인지 커튼인지 모호한 ‘탕카’들로 둘러싼 테라스는 중정의 난간마저 사각형의 면들로 덮어버린다. 이 형상이 강력해 그 위에 얹은 중국식 지붕이나 스투파 형태의 장식들조차 사각형과 수평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하나하나의 건물로 다가서면 단단한 질감적 벽들의 육면체와 만나게 되지만, 모서리를 약간만 지나가 벽들의 ‘어깨’가 보이게 되면 어느새 건물은 면으로 다가온다. 그 벽은 대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사선의 각도를 갖는 평면화 된 그 벽들은, 창문들이 매달려 있듯 그려진 그림 같다. 그림이 매달려 있으니, 캔버스 같은 화면-벽도 매달려 있는 듯 보인다. 이는 포탈라궁이나 대붕사원처럼 비탈에 지은 절에서 더욱 확연하다. 기단이 따로 보이지 않기에, 산비탈에 늘어져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평지붕에 닿을 듯 벽의 상부에는 촘촘히 수직으로 창문을 만들지만, 벽의 하단은 일부러인 듯 넓은 벽면으로 확실하게 비워 둔다. 만약 건물의 아래로부터 떠받쳐지는 구조였다면, 창문들은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고, 이는 필경 불안정한 느낌을 줄 텐데, 여기선 그런 느낌을 전혀 주지 않는다.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나 줄에 매달린 걸개그림이 공중에 떠 있지만 불안정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창문들은 지붕의 수평선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위보다 아래 창문이 더 작은 것은, 심지어 중암에서 한옆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매달림의 감각 때문이다.

떠받침의 감각이 기초의 수평선과 떠받쳐지는 지붕의 수평선 사이에 기둥의 수직선이 떠받치는 구조의 확고함으로부터 안정성을 얻는다면, 매달림의 감각은 매달린 것들이 흔들려도 매단 수평선만 든든하다면 충분히 안정적이다. 전자에게서는 흔들리지 않는 균형이 안정감을 준다면, 후자에게서는 아무리 흔들려도 괜찮을 것 같은 유연한 안정성이 균형감을 준다. 떠받침의 구조에서는 높이가 달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안정감이 유지되지만, 매달림의 구조에서는 엔간한 흔들림에는 안정감이 와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매달림의 감각에서는 수직의 창문들 한쪽이 길게 늘어져도 좋을 것이고, 늘어진 것들의 길이가 들쭉날쭉해도 상관없을 것이다.떠받쳐지는 것의 균형은 다른 높이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지만, 매달린 것은 아래쪽 길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주사(昌珠寺)에서는 창문 하단이 심지어 테라스 ‘아래’로 늘어져 있다. 그래서 떠받침의 감각은 확고불변함을 불변의 이상적 모델로 삼지만, 매달림의 감각에는 불변성을 애써 찾지 않는다. 이 매달림의 감각은 최초의 근거로부터 차곡차곡 단을 올리고 기둥을 세워 축조물을 만들어야 확고한 안정감을 얻는 논리학과도 거리가 멀다. 

 

사원 내부의 기둥 장식. 사원 내부의 기둥 장식.

 

사원 내부로 들어가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매달림은 단지 건축물의 기하학을 넘어서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함을 보게 된다. 내부의 ‘주두’ 장식이 일단 눈에 들어온다. 그리스 신전의 이오니아 식 기둥 장식에서는 받치는 기둥과 받쳐진 지붕 사이에서 눌리며 밀려나온 선들이 아래방향으로 감겨든다. 떠받침을 구성하는 두 힘의 대립을 가시화하는 장식이라 하겠다. 코린트 식은 기둥 끝에서 지붕을 밀며 솟아오르는 이칸투스 나뭇잎들 문양이다. 기둥의 떠받치는 힘을 먹고 자라난 식물일까?

반면 티베트 사원 내부의 기둥은 기둥머리 끝에 매달린 채 아래로 늘어진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예를 들면 타쉴훈포 사원의 기둥은 기둥머리에 육각형의 아름다운 ‘비늘’들이 3단으로 매달려 있고, 거기에는 다시 목걸이 같은 문양들이, 거기 얽혀드는 식물문양들과 함께 멋지게 아래로 늘어져 있다. 또 다른 기둥은 코린트식 기둥과 대응하는 일종의 식물장식인데, 전체적으로 삼각형의 형상을 이루며 머리에서 아래로 뾰족하게 내려가고 있다.

사원 내부의 도처에 매달려 있는 천들이나 상징적 도안이 그려진 걸개그림들, 화려한 술장식이 달린 탕카는 매달림의 감각이 사원을 장엄하는 양상을 즉물적으로 보여준다. 건물의 문이나 창문마다 있는 커튼이나 걸개들도 그렇다. 조캉 사원, 라모체 사원 등 모든 사원이 문과 창문, 테라스 등 수평선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걸개들을 가득 매달아두었다. 이렇게 매달린 것들에 눈이 가니, 사원 앞에 세워놓은 당간 기둥을 겹겹이 둘러싼 채 끈에 묶여 있는 깃발들에도 눈이 간다. 이건 필경 벌판이나 산자락, 절, 마을 어디서나 바람이 부는 곳이면 보게 되는 룽다(風馬)나 타루초(經文旗)들일 것이다. 만트라나 경전을 적은 깃발들을 매달아 놓고, 바람의 기(氣)로 그것을 읽게 하려는 이 깃발 또한 탕카나 걸개만큼이나 매달림에 대한 선호를 산출한 연기적 조건 중 하나였을 것이다.

피카소나 말레비치, 몬드리안 등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듯 우리가 아는 기하학은 둥글둥글한 머리들 속에 숨어 있는 원이나 구라는 보편적 ‘본성’을 보고, 담벼락이나 지붕의 형상을 사각형, 삼각형 같은 불변의 ‘형식’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달림의 감각 안에서는 사각형도 흔들린다. 흔들리고 날리면서 바람의 기를 전하고 마니차처럼 만트라를 ‘기계적으로’ 읽으며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생에 평온함을 불어넣는다. 매달린 것들의 안정감은 흔들려도 끄떡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들리며 평온한 것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디나 걸개를 매달고, 창문도 매달고 벽도 매달고 했던 것일 게다.

티베트의 기하학적 건축을 보면서, 기하학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조건과 무관한 기하학의 초월성을 새삼 확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유사한 것을 보면 하나로 묶어버리는 피상적 관찰의 안이한 산물이라 해야 한다. 티베트인들에게는 기하학보다도 매다는 감각이 일차적인 것이었다. 그런 감각이 매달림의 기하학을 낳은 것이다. 사각형에 대한 선호도 이런 감각을 연기적 발생조건으로 하는 것일 게다. 깃발의 형태는 사각형도 있고 삼각형도 있지만, 룽다나 타루초는 경전이나 만트라를 새겨야 하니 사각형이 적절하다. 매달리는 걸개들에는 그림이, 상징적 도안이 들어가야 하니 사각형이 적절하다. 창문이나 벽은 사각형이 아니면 매달린 느낌을 주기 어렵다. 사각형에 대한 선호 또한 기하학적 선험성의 산물이 아니라, 그림을 매달고 천을 매달던 이런 감각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감각의 기원을 다시 물어야 할까? 혹시 그렇다면 적어도 티베트에 관한 한, 그것은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필경 그것은 양탄자를 매달아 방풍과 보온을 해야 했던 유목민의 삶을 발생조건으로 한다고. 매달림의 감각이 기하학을 공중에 매단 것이다. 그렇게 매달림의 기하학을 산출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형상의 보편형식이란 말로 수립된 기하학의 초월성이 와해되는 것을 본다. 하나의 단일한 초월적 기하학 같은 것은 없다. 연기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기하학이 있을 뿐이다. 기하학 또한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내재성의 구도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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