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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926]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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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익살의 기술들, 해학의 기법들

: 웃는 포대화상의 익살과 웃지 않는 달마의 해학

거조사 오백나한상엔 여유롭고 허허로운 삶의 모습 담겨
슬프거나 험악함으로 슬며시 웃게 하는 감각은 더 어려워
소중하다는 생각이 강해 못 웃는다면 매였는지 의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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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슈 토요의 ‘혜가단비도’

용문4품 중 ‘시평공조상기’
용문4품 중 ‘시평공조상기’

 

묘사되거나 서술되는 내용으로 웃음이나 유쾌함으로 이끄는 유머가 ‘익살’이라면, 그 표현형식으로 인해 그런 감응으로 이끄는 유머를 ‘해학’이라 하자. 익살을 구사하는 가장 쉽고 흔한 방법은 웃는 모습을 형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포대화상이다. 물론 웃고 있는 모습이라고 언제나 익살스러운 것은 아니다. 웃는 모습이지만, 통상적인 관념이나 감각에서 이탈하는 작은 어긋남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익살스럽다고 느낀다. 역으로 웃는 모습을 재현하여 웃기려는 것은, 쉬운 만큼 안이한 경우가 많다.

작은 이탈이나 의외성은 웃는 표정 없이도 웃음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고상하리라 여겨지는 이들이, 고고한 모습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며 하강하는 것이 그렇다. 영천 거조사의 오백나한상은 이 점에서 탁월한 사례다. 꼿꼿한 모습으로 경외감을 주는 고귀하고 고매한 모습이 아니라 속인의 모습, 아니 그 이하로 망가진 동작을 하지만, 그걸 보는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여유 있고 허허로운 삶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다른 한편 뜻밖의 결합이 야기하는 의외성도 익살의 감각이 사용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는 부처나 보살보다는 인도 신화로부터 넘어온 신이나 야차, 동물 등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아수라나 가루다, 가네사, 마후라가, 긴나라, 건달바 등이 그들인데, 이렇게 혼합된 인물들은 새로운 형상들로 증식되며 멋진 익살의 감각을 보여준다.

익살의 기술은, 종종 천진함이나 소박함을 통해 표현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과장된 표정이나 동작을 통해 구사된다. 과장이란 있는 걸 불리고 가던 방향으로 더 밀고 가는 것이지만, 이렇게 증폭시키고 더 멀리 갈 때, 통상적인 상태나 형상에서 이탈하는 어긋남이 발생한다. 후카이 에쿤(風外慧薰)의 ‘지월포대도(指月布袋圖)’에서 달을 가리키는 포대화상의 손은 곧바로 하늘을 찌르듯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 있고, 정작 가리켜진 달은 그리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화상이 메고 있는 포대는 몸 전체보다 몇 배 크게 그려 달도 화상도 가려버렸다.

이런 과장이나 증폭이 야기하는 익살은 종종 명시적인 어떤 감정을 상반되는 감응으로까지 밀고 간다. 막고굴 158굴의 ‘십대제자거애도’는 슬픔의 표현을 증폭시켜 반대의 감정인 웃음마저 유발한다. 사천왕상은 분노를 표시하며 부릅뜨게 되는 눈을 더욱더 크게 증폭시켜 눈알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마귀들을 징치하는 그 얼굴은 공포를 주는 어두운 싸늘함이 아니라 밝고 따뜻함이 넘친다. 웃는 모습이나 웃기는 장면으로 웃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슬프거나 험악한 얼굴을 통해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이런 익살의 감각은 어렵고도 드물다.

다음으로, 익살스런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해학적인 표현형식도 있다. 먼저, 묘사되는 중심인물의 시선이 엉뚱한 곳을 향하게 하는 방법이다. 셋슈 토요(雪舟等陽)의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에서 팔을 잘라 바치는 혜가의 표정은 진지한데, 뒤돌아 면벽한 달마대사의 눈은 가운데가 솟아오른 눈썹을 따라 벽인지 허공인지 볼 것 없는 윗부분을 보고 있다. 능청스런 느낌마저 주는 이 시선은 이국적인 얼굴로 인해 더 익살스럽다.

둘째, ‘좋은’ 비례나 익숙한 비례에서마저 벗어나는 낯선 비례를 통해 해학적 형상을 만드는 방법이 있다. 4등신이나 될까 싶은 창녕사 나한상들의 큰 머리와 짝달막한 키,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크고 두툼한 빈양중동 주불이나 일부 협시불의 머리와 손 등은, 익살스런 내용이 굳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해학적인 모습이다. 낯선 비례라고 하지만, 길이 방향, 수직 방향 비례의 증폭이 초월성과 숭고의 감응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면, 수평 방향의 증폭은 내재성과 유머의 감응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거대한 불상이고 직선성이 확연함에도 불구하고, 어깨가 넓고 머리나 신체의 수평적 비율이 큰 운강석굴의 대불들은 해학적인 느낌을 동반하는 편안함을 준다. 반면 공현석굴 제4굴의 남측불감에 2층으로서 조성된 두 주존불은 목이 길고 머리가 길어 고고한 느낌이다.
셋째, 선의 형태들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선은 긴장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유머의 편안함이나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부드럽고 둥글둥글한 선은 유머와 인접해 있다. 그런데 이는 이웃한 선이나 전체적인 장면 속에서 달라지기도 한다. 앞서 셋슈의 ‘혜가단비도’에서 동굴벽의 뾰족뾰족한, 깊이감을 표현하며 어둡게 칠해진 촘촘하고 날카로운 선들은 달마 몸의 부드럽고 유연하고 넓고 성긴 최소한의 선으로 흰 여백을 부각시키는 선과 대비되며, 혜가와 달마의 상반되는 표정과 나란히 어울려 해학적이다.

사실 해학을 위해 좀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부드러운 선보다는 과도하게 구부러져 구불구불 중첩되는 선들이 아닐까 싶다. 작은 곡률로 부드럽게 구부러진 곡선은 대개 해학적이기보다는 우아하다. 앞서 언급한 돈황 막고굴 158굴의 ‘십대제자거애도’나 ‘제왕거애도’는 둥근 얼굴마저 다시 큰 곡률의 곡선으로 거듭 동글동글 재분할했을 뿐 아니라, 거기에 음영을 넣어 고저의 방향으로 구불구불하게 만들었다. 정도는 덜 하지만 그 옆의 ‘제왕거애도’에서도 눈과 입, 볼과 모자까지 그런 선들로 묘사해, 칼로 자해하는 인물들의 행위마저 해학적이다.

넷째, 직선은 강하고 곧아서 힘이나 권력을 표현하는데 흔히 사용되니 해학과는 거리가 먼 표현형식이지만, 이마저 해학적인 표현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때 직선은 수직선의 긴장이나 수평선의 안정감에서 벗어나는 어떤 이탈의 각도, 그리고 스스로 망가지는 형상을 자처하며 안정된 균형 감각을 일부러 깨는 듯한 삐딱함과 위반을 동반한다. 선들이 과도하게 두꺼워지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이를 무엇보다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용문석굴의 불상들을 만들며 세워놓은 비문(조상기)의 글씨들이다. ‘시평공조상기’의 두꺼운 획은 충격적일 정도다. ‘용문4품’ 혹은 ‘용문20품’이라 불리는 ‘조상기’들은 모두 직선성을 칼로 깎은 듯 더없이 예리하게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해학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놀라운 전복적 감각을 보여준다.

남을 비하하고 조롱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웃음이 있다. 스스로 망가지길 자처하며, 자기를 낮추는 웃음이 있다. 그러나 내재성의 구도를 취하는 종교나 이념 안에서도 하강할 줄 모르는 경건함과 엄숙함이 있고, 초월성의 구도 위에서도 낮추며 하강할 줄 아는 여유와 웃음이 있다. 부처든 신이든, 평등이든 인권이든 웃으며 말할 수 없다면, 어떤 것을 절대화하는 초월성의 구도에 말려든 것이다. 소중하다는 생각이 강하여 웃을 수 없다면, 스스로 위계화 된 수직선을 따라 초월적인 어떤 것에 매인 건 아닌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원래의 이념이나 가치가 무엇인가보다, 망가짐 속으로 스스로 하강할 줄 아는 여유와 웃음이 더 중요한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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