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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725]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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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춤추는 기둥들, 삐딱한 보살들: 삐딱함의 미학

: 확연한 이탈 보여주며 수직적 엄격주의 비껴가

서산 개심사 기둥은 춤추는 듯 불규칙한 곡률로 직선성 교란해
앞으로 기울어진 막고굴 협시보살은 공간 자체에 유연성 부여
대충의 미학과 삐딱함 미학은 서로 닮은듯 다른 파격의 두친구

서산 개심사 범종각 기둥이 춤추듯 S자로 구부러져 있다.
서산 개심사 범종각 기둥이 춤추듯 S자로 구부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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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 막고굴 45굴은 앞으로 기울어진 협시상이 흥미롭다.

 

서산 개심사의 많은 전각들에서 대충의 미학은 또 하나의 문턱을 넘는다. 대충 만드는 구부러진 선들이 아주 심하게 삐뚤대며 의도적임이 분명한 삐딱한 선들로 증폭될 때, 직선의 기하학에서 이탈하는 선들은 이제 ‘완전성’이니 ‘초월성’이니 ‘숭고’니 하는 개념들에 함축된 엄격주의를 웃어넘기는 놀라운 표현능력을 드러낸다. 개심사에 들어서는 이에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범종각은 네 개의 기둥 모두가 대충 구부러진 선이 아니라 아예 춤추고 있다고 해야 할 만큼 구부러져 흔들리고 있다. 두 기둥은 두 번 구부러져 S자형인데, 위아래도 수직선에서 크게 어긋나 있다. 대웅전을 제외한 다른 전각이나 공양간 같은 건물들의 기둥이나 보, 천장의 부재들 모두가 아주 불규칙한 곡률로 크게 구불댄다. 심검당이나 공양간의 기둥이나 보, 인방이나 천정부재들 모두가 구불구불하다. 무량수각의 한 모퉁이를 받치는 한 기둥은 두툼한 자연목을 그냥 가지만 툭툭 쳐내고 다듬어 모서리에 세워 놓았다. 그 기둥의 배는 ‘흘린’ 정도가 아니라 중간만 튀어나오듯 부풀어 있고, 뒤쪽으로 돌아가서 보면 기둥형태는 S자에 가깝게 구부러져 있다. 표면은 다듬지 않은 양 울퉁불퉁하고, 사선의 곡선을 그리는 나무의 결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거기에 이어진 벽에는 그 기둥의 구부러진 선을 따라 삐뚤어진 변의 사변형을 진하게 그려놓았다. 이 정도면 직선을 슬며시 넘어서는 게 아니라, 명시적으로 직선성을 교란시키려는 ‘삐딱함의 미학’이라 해야 한다. 기둥과 건축의 틀을 깨는 파격의 미학이다. 

파격이라 하긴 했지만, 삐딱함이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각도나 형태의 ‘극심함’으로 오해되어선 안된다. 기둥에 대한 통념을 깨는 양상의 정도란 점에서 보면, 운강석굴들의 울퉁불퉁한 기암성 기둥이나 산서성 현공사나 복건성 감로암사의 아슬아슬한 기둥이 오히려 더 극심하다. 대충 만든 듯한 그 기둥들은 그렇게 과감한 파격을 행하지만 삐딱하다 하긴 어렵다. 삐딱함의 미학 또한 파격의 미학에 속하지만 대충의 미학과는 다른 양상으로 파격을 실행한다. 

대충의 미학이 두 점을 잇는 수직성을 받아들이면서 직선성에서 벗어나는 지대를 만드는 이탈을 통해 시작된다면, 삐딱함의 미학은 기둥의 수직성을 교란시키는 이탈의 각도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대충의 미학이 직선성에서 이탈하는 곡선을 통해 시작된다면, 삐딱함의 미학은 수직성에서 이탈하는 사선을 통해 시작된다. 대충의 미학이 기하학을 초월적 모델로 삼는 완전성의 형식주의와 대비된다면, 삐딱함의 미학은 수직성을 통해 초월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위계적 엄격주의와 대비된다.

이 삐딱함의 미학 또한 기둥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멋진 예는 돈황 막고굴 45굴의 협시보살상이다. 제자든 보살이든 본존불의 협시상은 무엇보다 우선 본존불의 격을 높이고 그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그 불상들을 보는 이들에게도 경의의 마음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협시상은 근엄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본존상에 품위와 격조를 더한다. 엄격한 위계의 수직성은 아니지만, 공손함과 단아함, 근엄함과 품격은 대개 수직성을 취한다. 이는 협시불이 입상인 경우에 더욱 분명하다. 물론 사천왕이나 금강역사처럼 마구니를 처리하고 악행을 단죄하는 인물이라면 협시한 경우에도 힘을 드러내는 역동적 자세를 취하게 되겠지만, 보살이나 제자의 협시상이라면 그럴 이유가 없다. 협시한 불상이나 제자들은 손의 모습이나 지물들이 어떠하든 대부분 단정하고 곧바로 선 수직의 근엄한 형상을 취한다. 

이점에서 막고굴 45굴의 협시상은 아주 특이하다. 일단 본존불인 석가모니의 왼편에 선 가섭은 제자로서 협시상의 이러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가장자리의 사천왕들 모습도 전형적이다. 그런데 본존불 오른편의 아난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 차수하고 서 있지만,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는 몸의 중심으로부터 허리 위의 상체가 적지 않은 각도로 삐딱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엄격주의자였던 가섭과 대비하려 했던 것일까? 더욱더 놀라운 건 그 앞에 있는 두 구의 협시보살이다. 동양에서도 입상들의 경우에도 한쪽 다리에 무게가 실리며 골반과 어깨가 살짝 반대로 기우는 ‘콘트라포스토’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건 서양이든 동양이든 ‘자연스런’ 모습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45굴의 두 보살상은 자연스러운 각도를 넘어서 허리가 척추에서 이탈한 건 아닐까 싶게 기울었다. 그와 맞추어 고개 또한 큰 각도로 기울었는데, 옆으로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기울었다. 악인이나 마구니를 밟고 있어서 한쪽 다리는 접혀 있고 허리도 기울어있는 그 옆의 천왕들보다도 그 꺾인 허리와 고개의 삐딱함이 훨씬 두드러져 보인다. 

이 삐딱한 두 보살로 인해 딱딱할 수도 있었을 단정함은 유연한 선을 따라 부드러워지고, 무거울 수도 있었을 근엄함은 확연히 가벼워진다. 이 보살상들은 당대(唐代) 조각의 사실성과 관능적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것은 확실하게 이탈의 각도를 거듭 만들며 공간 전체를 유연하고 여유 있게 만드는 이 삐딱함이다. 

정도차가 있지만, 막고굴 332굴의 협시보살, 병령사석굴 37-54감의 많은 협시보살들 역시 이런 삐딱함의 미학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명시적 삐딱함은 아니지만, 수직성이나 형태적 정형성을 벗어나 흐르는 곡선의 다른 불상들, 예컨대 석굴암 본존불 둘레에 협시하여 선 제석천과 범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등 또한, 자연스런 사실성 이상으로 이런 유연함과 여유의 공간을 만드는 삐딱함의 미학을 공유하고 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입상은 아니지만 운강석굴 제6굴의 부조 중 하나에선 단아하게 가부좌를 한 석가모니 좌우에 협시한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삐딱한 각도를 따라 기운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마치 나무그늘 아래 평상에 편하게 앉아 대화하는 분위기다. 

 삐딱함은 수직적 엄격주의를 교란시키며 이웃한 것들을 수평으로 엮는 사선적 감각이다. 그러한 사선들이 발아하는 싹이고, 횡단하는 선들을 통해 옆에 있는 이들을 향해 몸을 기울게 만드는 이탈의 각도다. 크지 않은 이탈의 각도만으로도 위계적 수직선을 동맹의 횡단선으로 바꾸어주는 작은 편차다. 삐딱함의 미감은 정형화된 ‘완전성’의 초월적 이상주의와 달리, 일부러 기울이는 각도를 통해 연기적 조건의 우발성을 직교한 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내재성의 감각이다. 그 삐딱한 선과 기울어진 각도로 구부러진 형상은, 엄격주의가 추방하려고 했을 이질적인 감각과 가벼움과 웃음을 불러들인다. 

약간 강하게 대비하여 말하자면, 대충의 미감이 확고한 직선 및 형식의 ‘완전성’과 대결한다면, 삐딱함의 미감은 행동의 엄격함, 복종과 숭배와 짝하는 직교주의적 수직성과 대결한다. 대충의 미감이 직선에서 슬그머니 벗어나는 곡선의 여유와 상관적이라면, 삐딱함의 미감은 수직성에서 확연히 벗어나는 이탈의 각도와 상관적이다. 그러나 직선의 궤적을 벗어나는 곡선이 이탈의 각도를 전제하듯, 삐딱한 각도로 이탈하는 횡단선은 유연한 곡선을 필요로 한다. 이 점에서 대충의 미학과 삐딱함의 미학은 하나의 얕은 문턱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가까이 인접해 있다. 고정된 틀을 깨는 파격 미학의 두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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