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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530]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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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형태와 재료의 이인무: 공-작(共-作)의 미학(2)

: 재료 형태 최대한 존중…재료에 형상을 맞추기도

대개 마애불은 바위 모습 최대한 그대로 살리며 불상 새겨
갈라지거나 튀어나온 것조차 제거하지 않은 채 형상 만들어
시각적 형태가 질감에게 자리 내주고 형상은 뒤로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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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미리 마애불.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

 

형태의 완결성을 와해시키며 재료가 형상 속에 파고드는 두 번째 방법은 존중과 화해의 방법이다. 재료의 모습을 존중하여, 형상과 재료가 타협하거나 화해하는 방식으로 재료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방법이다. 먼저, 재료가 갖는 형태를 최대한 존중하여 그것에 형상을 맞추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의 수많은 마애불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불상이든 조각상이든 어떤 상을 빚을 때면 통상 형상의 윤곽선 바깥을 잘라내어 원하는 형상에 독립성과 완결성을 부여하며, 여백을 남길 경우에는 배경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마애불은 대개 바위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며 불상을 새긴다. 환조 아닌 부조가 선호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통상 부조를 할 경우에는 그 면 전체를 깔끔하게 평면화하여 형상을 명료하고 뚜렷하게 도드라지게 하려 하지만, 마애불들은 배경을 다듬는 경우에도 필요한 최소한에 머물러 있다. 특히 불상의 신체를 벗어난 부분의 요철은 대개는 별로 손대지 않고 그냥 둔다. 돌들의 물결이 불상의 형상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불상을 새기려는 바위의 면을 평면으로 다듬기는커녕 울퉁불퉁한 채 그대로, 심지어 갈라지거나 쪼개진 것, 불룩 크게 튀어나온 것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형상을 새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령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의 마애불은 중앙의 주불인 미륵불의 신체조차 바위의 요철에 따라 울룩불룩 오르내리며 바위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고 있다. 어깨선은 바위의 굴곡에 맞추어져 있고, 광배는 바위의 틈과 굴곡에 의해 ‘잘린 듯’ 보인다. 주불의 오른쪽에 있는 협시불들은 평면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둔 바위의 큰 굴곡을 따라 구부러져 있다.

환조를 만드는 경우에도, 불상의 형태를 위해 돌을 다듬고 잘라내 형상에 재료를 맞추기보다는 재료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고 존중하며 심지어 재료의 모습에 형상을 맞추어 변형시키기도 한다. 신체적 형태의 분절이나 형상의 중심, 대칭성 같은 것을 깨는 경우마저 있다. 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파주 용미리의 마애불이다. 이구(二軀)의 미륵불을 조상한 이 마애불은 애초의 바위를 다듬어 신체적 형상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대신, 한쪽은 불룩 튀어나오고 다른 한쪽은 쑥 들어간 바위의 리듬을 그대로 살려 양과 음의 대조적인 신체로 만들었고, 별로 손대지 않은 바위 위에 두 개의 두상을 얹어 환조로 제작했다. 오른쪽의 미륵불은 큰 바위 위에 얹혀 있는 작은 바위를 그대로 살려 손과 팔로 만들었는데, 바위의 형태에 따라 합장한 손이 신체의 중심에서 이탈하여 한쪽으로 치우치며 대칭성을 깨고 있다. 미륵불의 오른쪽이나 왼쪽 측면에서 보면, 조각적 완결성은커녕 불상으로서의 독립성마저 사라지고, 그저 바위 위에 불두를 둘 얹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경주 단석산 신선사의 마애불상군은 재료인 바위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살려서 불상을 만드는 존중과 화해의 방법이 ‘건물’이라 해야 할 공간 자체까지 만드는 경우다. 서로 면하고 있는 바위의 면들에 마애불을 만들고 거기에 지붕을 얹는 것으로 전각을 대신하는 하나의 독자적 공간을 만든다. 정면을 향한 후면의 벽은 비스듬한 수평선으로 양분된 두 개의 바위로 되어 있는데, 불상의 형상을 강하게 부각시켜 그 균열을 가능하면 덜 보이게 하려는 통상적 욕망과 반대로, 불상의 형상을 희미하게 새겨 불상의 신체가 재료를 가르는 그 선 뒤로 물러선 양상이다. 형상을 새기기 위해 바위에 손을 많이 댄 것은 왼쪽 벽의 미륵상인데, 여기서도 바위의 모습에 따라 머리와 어깨를 분절하고, 얼굴과 두 손을 모두 둥글게 처리하여 익살스런 일관성을 형성한다. 더욱 익살스런 것은 바위 표면의 턱진 선 아래 발가락 다섯 개씩 정면상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 역시 바위의 원래 모습을 따라가며 살짝 변형시킨 것이다.

다른 한편 오른쪽의 불상의 얼굴은 바위를 평평하게 펴서 둥글게 새기는 대신 바위 위에 약간 튀어 나온 한쪽이 파먹힌 듯 찌그러진 사각형 비슷한 돌의 표면을 그대로 둔 채 그 안팎에 들어앉아 있다. 얼굴이 파먹힌 모습인데도, 재료의 형상에 얼굴을 끼워 맞추어 버린 것이다. 그 얼굴에 신체의 간단한 윤곽선을 더한 것으로 불상의 조성을 끝냈기에, 바위 표면의 질감이 전면에 나선다. 시각적 형태가 촉감적인 질감에게 자리를 내주고, 형상이 배경 뒤로 물러선다. 이는 왼쪽 미륵불 옆에 분리된 채 나란히 선 또 하나의 바위에 새겨진 작은 저부조의 불상들도 그러하다. 이 불상들은 바위의 울퉁 튀어나온 어떤 면보다도 더 낮게 들어앉아 바위 표면의 질감에게 일차적인 감각을 양보하며 물러서 있다.

사실 시각적 형태를 최소화하여 질감이라는 촉각적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형상을 재료에 근접시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서구의 형상 개념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각적 감각이다. 형태들의 기하학, 형태적 구성의 양상 등이 모두 시각적이다. 음악조차 그 형식을 말할 때는 악보로 표시되는 시각적 상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시각적 자극을 무력화하며 질감적 표면에 다가갈 때, 눈마저 만지는 일을 하게 된다. 이로써 감각은 형상을 넘어 재료로 다가가게 된다. 이를 위해서 환조보다는 부조가, 고부조보다는 저부조가 좀더 유용하다. 형상의 굴곡을 최소화하게 될 때, 재료는 우리의 촉각으로 훨씬 가까이 다가온다. 경주 남산 탑곡의 마애불, 충주 봉황리의 마애불, 남원 사석리 마애불, 고창 선운사 동불암사지 마애불 등 평면적인 저부조의 마애불들이 이를 잘 보여주는 경우일 것이다.

재료를 지우며 어둠 속에 묻는 방식으로 시작된 형상중심적 감각은 그 최소한의 형식으로 형상을 환원해가며 초월적 원리와 모델의 자리에 형상을 올려놓는다. 이때 재료는 형식의 영광을 보이지 않게 떠받치는 말없는 노예의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재료 자체가 갖는 물성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형상과 대결시키고 때로는 형상과 화해시키며 형상 안에 들어설 자리를 주려는 감각은 양자를 관계와 조건 속에서 다루는 내재성의 사유와 손잡는다. 이 내재성의 장에 형상 없는 재료는 없으며, 재료 없는 형상 또한 없다. 작품의 형태란 재료의 물성을 수용하며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지질학적 시간의 무게에 눌려 고형화된 재료의 주름 사이에 상상력이 그리는 생기 있는 형태의 주름을 접어 넣어 새로운 형상의 선을 만드는 변환이다. 그렇게 새로운 형상의 선 안에서 만나며 섞이는 선들이 감각을 흔들며 춤추게 하는 공작이다. 형상과 재료, 형태와 질료가 손잡고 작품을 만드는 공-작(共-作)의 미학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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