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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2022-0508] 이진경의 불교를 미학하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http://www.beopbo.com/news/articleList.html?view_type=sm&sc_serial_code=SRN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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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형상의 완결성을 파고드는 재료의 힘 : 공-산(共-産)의 미학(1)

: 형상이 재료 밀치지 않고 서로 스미는 게 석불미학

서구미학에선 형상 완전성 위해 재료는 자신 드러내길 포기
석불 중엔 형상 완결성 무너지고 재료·형상 섞인 모습 많아
돌이라는 재료 지우는 게 아니라 돌이란 점 드러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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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강석굴. [법보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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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먼석굴. [법보신문DB]

 

철학은 개념을 다루지만 예술은 형상(figure)을 다룬다. 멋지고 아름다운 형상에 대한 꿈은 적어도 현대미술 이전이라면 모든 예술가를 사로잡았던 소망이었을 터이다. 이러한 소망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형상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탁월하게 만들어진 작품은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잊게 한다. 작품의 가시적 형상 뒤로 재료(material)가 된 것들은 사라지고 망각된다. 가령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법열’에서 조각상 전체를 전면에서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한 옷주름을 보면 그 주름에 홀려 그게 돌로 된 것임을 잊게 된다. 그게 돌임을 깨닫는 순간 ‘아니 이게 돌이라니!’ 하고 경탄하게 된다.

예술이 가시적 형상을 다루는 한, 예술이 형상에 일차적 지위나 특권적 지위, 아니 어쩌면 유일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서구의 미학에서 아주 두드러진다. ‘형상과 재료’, 혹은 ‘형태(form)와 질료(matter)’라는 개념에서 형상이나 형식이 지배적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형상의 완전성을 위해 재료는 자신을 드러내길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야 한다. 재료는 그렇게 형상에게 사물성을 주지만, ‘준다’는 사실마저 지우는 방식으로 준다.

그리스 이래 서구의 철학은 형상에 원리나 원인이라는 철학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비대칭성을 더 멀리 밀고 간다. 형상을 가시적 외양으로부터 원리적이고 원소적인 것을 향해 밀고 올라감으로써 고귀한 이념적 지위를 부여한다.

플라톤은 원리이자 모델이 된 형상에 이데아란 이름을 부여하고, 불완전한 현실의 피안에 별도의 자리를 마련한다. 현실의 세계는 이데아가 된 형상, 실재와 분리된 형상을 나누어갖는 모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시적인 형태(morphe)와 구별하여 이상적 ‘형상(eidos)’을 재정의하고, 플라톤에 반해 현실 모든 것 속에 존재하는 실체 자리를 부여한다.

형상은 이렇게 원리이자 원인이 된다. 의자와 구별되는 테이블의 형상, 그것이 테이블을 테이블이게 한다. 나무는 그것으로 만들어진 게 집인지 테이블인지, 의자인지를 구별해주지 못한다. 형상은 어떤 것이 취한 현실적 모습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취해야 할 모습을 뜻한다. 현실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원과 삼각형, 사각형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구성하려는 기하학주의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확고한 지배적 지위를 가졌던 것은 모두 이런 연유에서다. 반면 재료는 그러한 형상에 몸을 대주는 것, 형식의 ‘명령’에 따라 재단되며 그것을 떠받쳐주는 노예적 지위로 밀려 내려간다.

재료에 가시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 조각이기에, 불상을 만드는 이 또한 최고의 형상에 대한 지향을 벗어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나 모든 것을 포괄하는 원리를 찾고자 하는 초월성의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모든 것을 연기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사유한다면, 작품의 형상을 조건 짓는 재료와 무관한 형식에 ‘영혼’을 내주진 않았을 것 같다. 형상들의 초월적 형식과는 충분히 거리를 둘 수 있었을 것 같다. 연기적 조건을 넘어선 것을 추상화할 때조차 어떤 것도 정해진 본성은 없으며, 충분히 추상된 것이라면 어떤 원리조차 ‘공’하다는 가르침을 안다면, 형식을 본성적 원리나 원인으로 삼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재료가 형상 속으로 밀고 들어와 형상의 일부가 되게 하고, 재료를 통해 대칭성이나 기하학적 형식의 ‘완전성’을 와해시키는 불상들을 종종 본다. 그렇게 형상의 완결성이 무너지는 지점에서, 재료와 형태가 섞인 새로운 형상이 출현한다. 재료와 형상의 관계를 다루는 이런 양상은 크게 두 개의 방법으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로, 재료가 갖는 힘이 형식적 완결성을 교란하거나 형상의 독자성을 침범하게 하는 대결의 방법. 여기서도 우리는 재료의 힘이 형상을 흘러넘치게 하는 범람의 방법과 재료들의 분절을 통해 형상 사이 틈새를 만들며 교란하는 방법을 구별해 볼 수 있다. 먼저 재료가 형상을 범람하는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은 거대 석불들이다. 가령 윈강(雲崗)석굴 20굴의 석불좌상, 롱먼(龍門)석굴 봉선사동의 유명 석불들이 그렇다. 거대 석불은 일단 만드는데 필요한 거대한 돌이라는 재료의 특성상 그 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있는 그대로의 돌을 이용해서 제작해야 한다. 그래서일 텐데 그것은 작품을 기존의 물리적 환경 속에서, 거기에 변형을 가하지만 그 환경 전체를 수긍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석불의 독립성을 극대화하려 할 때조차 석불 인근의 돌이나 굴, 땅 같은 이웃한 것들과의 연속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크든 작든 석불들은 많은 경우 석불 둘레를 거칠게 쳐서 최소한의 경계를 만드는 것 이상을 하지 않는다. 또한 조각상 둘레의 돌을 깔끔한 직선이나 원 등 기하학적 선으로 다듬지 않고 대강 쳐내서 울퉁불퉁 거친 모습대로 둔다. 돌이란 재료를 지우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다듬어 조각한 재료 거대한 돌이란 점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롱먼석굴 봉선사동 비로자나불 뒤에는 물처럼 흘러내리는 돌의 물결이 확연하다. 파고 잘라내 불상과 ‘배경’ 사이를 확실하게 분리하는 경우에도, 애초에 하나였던 석불 주변의 돌을 그대로 두어, 석불과 그 배경을 이루는 돌을 하나로 잇는 지층적 연속성이 석불의 형상을 횡단하며 형상적 구획선을 침식한다. 운강석굴 20굴의 유명한 불좌상은 가슴과 배를 횡으로 관통하는 지층적 선들이 불상 뒤의 배경이나 협시한 불상과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며 이어져 있다. 게다가 가부좌한 석불의 다리는 제대로 다듬지 않고 그냥 두어서 돌덩어리라는 재료가 그대로 노출되게 둔다.

이와 반대로 재료의 분절된 선들이 형상과 무관한 선과 틈새로 형상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재료의 존재가 형상과 뒤섞이며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크메르의 수도 앙코르 톰 한 가운데 있는 바이욘 사원의 불상들이다. 마치 돌봉오리 같은 탑신의 4면에 새겨진, 거대하다고는 못해도 대단히 큰 불상의 얼굴들은, 비슷한 크기로 잘라 종횡으로 쌓은 많은 돌덩이들에 의해 분절되어 있다. 그러나 이 분절은 형상의 마디들과 무관하게 규칙적인 크기로 잘라진 재료의 리듬만을 따르고 있기에, 형상과는 별개의 선들로 형상을 나누고 있다. 즉 재료를 분절하는 선들이 형상을 가로지르고 있다. 거기에 더해 불두 사이 울퉁불퉁 도드라진 돌의 모호한 모습과 불두의 명확한 형상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밀고 당기며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불두 사이의 돌들을 그저 배경으로 밀쳐내지 않고 그 긴장된 균형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양자를 관통하며 하나의 전체로 만드는 돌들의 리듬이다. 불두와 그 사이의 돌들을 하나의 돌봉오리로 통합하는 돌들의 분절이다. 재료는 그렇게 형상을 분할하면서 그 분할의 틈새로 드러나며 그것과 섞여 들어간다. 그러한 분절의 통일성에 의해 형상과 배경은 서로를 잠식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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