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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0315] 이진경의 생각의 그늘  https://m.khan.co.kr/series/articles/ao398

세 개의 특이점 사이에서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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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이 온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이자 과학기술자이며 미래학자이기도 한 레이 커즈와일이 책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던 유명한 예언이다. ‘특이점’이란 급작스레 상태가 변하거나 불연속적 변화가 나타나는 점이다. ‘특이점이 온다’는 말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가 그처럼 급변하는 때가 온다는 말이니, 이때 특이점이란 ‘기술 특이점’이라 하겠다. 정말 이런 특이점이 올까? 모를 일이다. 예언을 떠받쳐주던 ‘무어의 법칙’이 2016년경 작동을 정지했지만, 새로운 기술이 그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상을 덧붙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와는 아주 다른 특이점이 이미 왔으며 다시 또 올 것이다. 기술 특이점이 아니라 기후 특이점이.

기후학자 윌 스테판과 요한 록스트롬은 1950년 이후 대기 중에 배출된 이산화탄소, 메탄 등 온실가스의 양이 꺾은선을 그리며 급상승했으며, 더불어 지표면의 온도와 해양산성화 정도, 열대우림의 파괴, 생물권 훼손에 따른 멸종의 속도 등이 모두 가파르게 상승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거대한 가속’이라 명명된 이 급격한 변화 이전에 이미 하나의 특이점이 있었음을 덧붙여야 한다. 석탄이 인간사를 움직이기 시작한 산업혁명이 그것이다. 악명 높았던 런던 스모그 등은 이를 알려오는 징후적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지구의 기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급격한 변화의 특이점이라는 게 알려진 것은 1950년경의 저 특이점이 발견된 이후였다. 지구는 아직 넓고 컸기에 그런 사태는 모두 국지적인 문제로만 포착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다시 ‘특이점이 온다’는 근심스러운 예언은 이미 과학적 예측이 된 지 오래다. 1950년 이후의 급상승을 다시 한 번 비약적으로 꺾는 특이점이 오리라는 것이다. 가령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하여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면, 극지방과 그린란드, 히말라야 등의 빙하가 녹아 땅이 검게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햇빛을 반사하여 온도 상승을 저지하던 대지는 반대로 햇빛을 흡수하여 온도 상승을 가속하게 될 것이며, 이는 빙하가 녹는 속도를 가속할 것이며, 그에 따라 햇빛을 흡수하는 검은 땅은 더 넓어질 것이고…. 결국 양의 되먹임이 발생하여 기온 상승의 속도가 급격하게 폭증하게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기 기온 상승은 바닷물의 온도를 높일 터이고, 수온이 높아지면 더워진 콜라가 그렇듯 바다가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이는 대기 중의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수온을 올리고 하는 양의 되먹임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이 악순환을 따라 기온은 지금까지의 증가 속도보다 아주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온난화, 해양산성화에 더해 ‘죽음의 3인조’라 불리는 해양의 산소 부족도 그렇다. 이 새로운 특이점 이후의 곡선은 이제 인간으로선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을 향해 아주 가파르게 뻗어갈 것이다. 기후위기의 ‘티핑 포인트’란 말이 지칭하는 게 이것이다.

탄소제로는 풍요나 편의 감소 의미

1950년경 도래한 기후 특이점을 온난화가 본격화된 점이란 의미에서 ‘온난화 특이점’이라 한다면, 도래할 특이점은 파국적 사태의 분기점이란 의미에서 ‘파국 특이점’이라 하겠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는 200여명의 과학자가 쓰고 5만명의 과학자가 검토하기에 광범한 신뢰를 받고 있는데, 2018년 ‘1.5도 특별보고서’에서 파국적 사태를 막기 위해선 2100년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의 기온보다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빠르게 줄여 2050년에는 순배출량을 0으로 낮추어야 한다. ‘탄소제로’는 이를 요약해주는 말이다. 이를 위해선 탄소 기반의 기술이나 경제, 생산과 소비 등 모든 것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생산과 생활 모두에서 이제까지의 궤적이 급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꺾이는 새로운 특이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존의 상승곡선을 반대방향으로 꺾음으로써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니, 이를 ‘출구 특이점’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세 개의 특이점 사이에 있다. 이미 도래한 ‘온난화 특이점’과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필연적으로 도래할 ‘파국 특이점’, 그리고 파국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출구 특이점’ 사이에.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파국으로 치닫는 기후위기의 이유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걸 벗어날 해결책도 명확하다. 탄소 배출량을 급격히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 유통, 우리의 소비생활 등 모든 경제활동이 탄소를 동력으로 하기에, ‘탄소제로’는 적어도 당분간은 그 모든 활동의 성장이 정지되는 것을 뜻한다. 인구가 증가하는 조건에서 이는 생산이나 유통의 감소뿐 아니라 고용의 감소를 뜻하고, ‘풍요’나 편의의 감소를 뜻한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회의가 시작되고 정부 간 협의나 협정이 반복되었지만, 탄소 배출량의 증가 속도는 전혀 줄지 않았다. 2008년 경제위기 직후에 잠시 근소하게 줄었던 적이 있지만 즉시 ‘회복’되었고,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거의 정지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6~7% 정도 감소되었지만, 이 또한 1년 만에 다시 증가세로 되돌아갔다. 출구 특이점을 만든다는 것은 두드러진 경제위기나 경제 정지 상태와 근접한 변화를 감수할 때에만 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우린 이미 1.5도 저지선 안에 들어서

재생에너지 기술이 해결해줄까? 별로 가망 없어 보인다. 태양전지 효율이 지수적으로 성장한다며 낙관적 호언을 하지만, 그건 태양광 패널 등을 다시 만들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나 그때마다 폐기되는 낡은 패널 등을 생각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전기차도 그렇다. 한편 빌 게이츠의 계산에 따르면, 에너지 산업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7%에 불과하다. 콘크리트, 철, 플라스틱 등의 물리적 설비의 생산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31%로 그보다 많다. 새로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을 건설할 때마다 증가하는 탄소 배출은 그만 둔다 해도, 기술 발전이 콘크리트나 철 생산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을 지수적으로 줄여줄 거란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심지어 탁월한 재생에너지 기술이 나온다 해도, 전 지구상의 국가들 모두에서 탄소에너지 시설을 그것으로 대체하는 데 필요한 엄청난 비용은 누가 지불할까?

녹색뉴딜이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줄까? 1950년대 이후의 거대한 가속이 1930년대 시작된 뉴딜이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축적체제의 결과임을 안다면, 그건 사실 출구 특이점보다는 파국 특이점과 가깝지 않은지 의심해야 한다. 녹색뉴딜의 중심 아이디어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에 공공지출을 확대하는 것인데, 재생에너지 기술 자체가 기후문제의 출구가 되기엔 크게 부족함을 고려하면, 그건 녹색 물감을 칠한 성장 경제학이 될 공산이 크다. ‘성장 없는 번영’을 주장하며 녹색뉴딜을 지지하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이명박 정부의 ‘생태 관련 사업’(4대강 사업)을 녹색뉴딜의 가장 선도적 사례라고 언급한 것은 이 점에서 충격적이다(팀 잭슨, <성장 없는 번영>).

사태는 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가면 2100년경에는 최대 4.8도 상승하리라는 게 2013년 ‘5차 보고서’의 예상이었는데, 2021년 ‘6차 보고서’는 최대 5.7도 상승하리라고 전망한다. 또 2018년의 ‘1.5도 특별보고서’에서는 지금처럼 배출한다면 2100년이 아니라 2030~2052년에 1.5도 상승하리라고 경고했지만, ‘6차 보고서’에서는 그 시기가 2021~2040년으로 10년 당겨졌다. 2022년이니, 우리는 이미 1.5도 저지선 안에 들어선 것이다!

IPCC 보고서의 문장처럼 “지금 이대로라면”, 다시 말해 가던 길을 계속 간다면 우리가 탄 기차는 ‘거대한 가속’ 페달을 밟으며 머지않아 파국 특이점에 도달한다. 출구 특이점을 향해 가려면 곡선의 방향을 완전히 꺾어야 한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 1년이었지만 이산화탄소의 유의미한 감소를 보여주었던 코로나 시대의 무겁고 어두운 대기와 비슷할 것이다. 누구도 좋아할 리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공짜점심은 없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자본가도 노동자도, 정치인도 대중도 자기가 향유하고 있는 이익과 편의를 큰 규모로 지불하지 않고선 파국 특이점을 향해 가속되는 기차의 방향을 바꿀 순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이 편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거나 바꿀 수 있을까? 저 무겁고 어두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앞장서 가려는 지도자가 있을까?

지금 세 개의 특이점 사이에 있다. 이미 도래한 ‘온난화 특이점’과 도래할 ‘파국 특이점’,
그리고 파국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출구 특이점’ 사이에.
가던 길을 계속 간다면 우리가 탄 기차는 거대한 가속 페달을 밟으며 머지않아 파국 특이점에 도달한다. 출구 특이점을 향해 가려면 곡선 방향을 완전히 꺾어야 한다.
기차 방향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이 편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거나 바꿀 수 있을까?
저 무거운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앞장서려는 지도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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