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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2021-0712] 헬리콥터·금성라디오…그는 본질을 꿰뚫는 관찰자였다 

오영진 (한양대 에리카 한국언어문학과 겸임교수)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⑧ 기계]
일상의 사물이나 기계 / 나아가 전쟁무기까지 / 시적 소재로 활용하되
압도되거나 두려워 않고 / 그것의 운동 안에서 / 본질을 읽으려 노력해

벨 H-13 수(Sioux) 모델. 오영진 제공

한국문학사 안에서 김수영 문학의 특이한 점을 하나 꼽자면 일상의 사물이나 기계, 나아가 전쟁 무기 등을 시적 소재로 끌어들이는 과감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성 라디오’, ‘후란넬 저고리’, ‘헬리콥터’, ‘네이팜탄’, ‘PLASTER’, ‘영사판’, ‘더러운 향로’, ‘수난로’ 등의 작품에서 기계-사물은 단순히 감정이입의 매개나 재료가 되지 않고, 그 자체의 사물성을 스스로 발산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의 시에서 화자는 사물에 대해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찰하는 존재가 된다. 때로는 하나의 사물이 인류의 역사에 필적할 만한 고독과 역사를 품는 것으로 비약되면서 사물과 화자 사이의 관계를 훌쩍 뛰어넘는 스케일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시가 ‘헬리콥터’(1955)일 것이다. 이 시의 1연에서 화자는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별세계에서 온 듯한 헬리콥터의 상승은 땅에 묶여 상승하지 못하는 자를 서럽게 할 것이다. 그 또한 상승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를 “우매한 나라의 어린 시인들”의 설움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어한다.

한편 애초에 상승하고자 하는 욕망조차 가져보지 못한 자도 있다. 이들은 상승하는 헬리콥터를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다. 한국전쟁 시기 헬리콥터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촌부의 풍경을 찍은 아래 사진을 보자. 그들에게 과학기술의 최첨단에 있는 헬리콥터의 상승은 먼 나라 남의 이야기일 뿐 애초 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잃어버릴 것도 없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헬리콥터는 그것의 상승을 보고 놀라는 자도, 놀라지 않는 자도 모두 설움 속에 놓인 존재로 만든다.

한국전쟁 중, 촌부와 헬리콥터 그리고 후송되는 군인들. 출처: https://www.warhistoryonline.com/

다음 연에서 “천구백오십년 칠월 이후에 헬리콥터는/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 위에 자태를 보이었고”라는 문구로 시작함으로써 이 시가 한국전쟁의 체험 위에 쓰여진 것임이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적으로도 헬리콥터가 본격적으로 전장에 투입된 전쟁이 바로 한국전쟁이었다. 이동과 착륙이 간편한 헬리콥터의 운용은 변화가 많은 한국 산악 지형에 맞는 군사작전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다소 난해해 보이는 마지막 연의 시 한 구절이 시인이 경험했던 헬기의 종류를 쉽게 특정할 수 있게 한다.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김수영 시 ‘헬리콥터’ 원고. 출처: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벨 헬리콥터사에서 개발한 초경량 헬기 ‘H-13(Sioux)’ 모델은 전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꼬리쪽의 프레임이 앙상하게 드러나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 모양은 이 헬기 운용의 목적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H-13 수’ 모델은 한국전 당시 주로 정찰이나 보급, 부상자들을 싣는 데 사용되었다. 이를 위해 조종사의 시각적 탐지력을 높이기 위해 삼면을 투명하게 만들고, 거의 모든 프레임에서 장갑을 없애는 방식으로 경량화했다. “헬리콥터에 의한 이송과 이동병원의 활용은 부상자 치료에 기적적인 성과를 가져왔다.”(<경향신문> 1952년 02월29일치 2면 ‘주한유엔군에 수혈’) 그러니까 시에 표현된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는 과장되거나 난해한 시적 수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한 명의 환자라도 더 후송하려는 선의를 품은 기능과 디자인을 시인이 가감없이 관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시 ‘헬리콥터’의 1연에서 헬리콥터는 화자에게 설움을 안겨주는 존재지만, 3연에 가서는 선의를 기꺼이 내어주는 존재로 바뀌어 있다. 이 같은 전환에는 어떤 반성이나 통찰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2연의 전개에 있다. 화자는 헬리콥터는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에 동양의 풍자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안에 느끼고야 만다”

찰스 오거스터스 린드버그는 1927년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무착륙 단독 횡단을 성공시킨 모험가이자 파일럿이었다. 20세기 초 그는 횡단과 정복이라는 유서깊은 서양인들의 꿈을 이룩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횡단 성공 후 그는 영화배우와 같은 인기를 얻었으나 한때 나치와 협력해 반유대주의 운동에 골몰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 헬리콥터에 동양적 풍자를 느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헬리콥터는 횡단과 정복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높은 곳에서 멈춰서 세상을 응시하는 데는 능한 기계다. 바로 이 정지의 운동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헬리콥터는 스스로도 서러운 존재로 이양되기 시작한다.

공기를 빨아들여 그 압축 에너지로 추진력을 만드는 제트기에 비해, 헬리콥터는 로터의 회전운동이 만들어내는 양력과 그 회전운동의 반대편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테일로터의 반작용 간 균형으로 공중에 뜬다. 헬기는 손쉽게 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균형을 간신히 맞추고, 때로는 그 균형을 무너뜨려 이동을 하는 기계다. 화자는 이 기계의 운동에서 자신과 같은 서러움을 읽어낸다. 쉼없는 회전운동이 야기하는 서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잡으려는 부단한 노력을 김수영은 시 ‘달나라의 장난’(1953)의 팽이운동을 통해서도 포착한다.

시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육필원고. 출처: <김수 영 육필시고 전집>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팽이의 운동은 두 가지 운동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팽이 자체의 원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팽이축 자체의 원운동 즉 세차운동이다. 팽이는 언제나 불균질한 바닥에 던져지는 사물이기에, 팽이는 부단히 돌아 원심력을 발생시켜 세차운동의 축을 바로 직각으로 세우려 노력한다. 팽이는 단지 도는 것이 아니라 바닥으로 향하는 중력을 원심력으로 이겨내 간신히 서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순간은 헬리콥터가 호버링 운동을 하며 공중에 정지한 것과 같은 순간이다. 이들은 정지를 지속하기 위해 작용과 반작용 사이 힘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이 균형이 깨지는 것을 김수영은 타락한 것으로 생각했다.

금성라디오 광고. 출처: 1966년 4 월9일치 8면 <매일경제>

다음은 ‘금성 라디오’라는 시의 일부이다.

“금성라디오 A 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500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금성 라디오’, 1966)

오늘날 김수영이 태어났다면 도처에 있는 얼리어답터와 힙스터들을 경멸했을지 모른다. 이들은 사물의 작동과 효과보다는 상품으로서 첨단성의 포즈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수영이 평소 예술가의 포즈를 경멸한 이유는 그들이 새롭게 유행하는 개념이나 언어를 취하며 예술적 포즈만을 빠르게 선취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금성라디오 A 504 모델의 재빠른 입수, 그것도 일수로 사들여온 일이 시인에게는 죄처럼 느껴진다. 새 기계는 헌 기계를 가게로, 다른 쌀집으로 밀어내 타락시킨다. 아내는 이러한 상품의 속도를 쉽게 받아들이고, 어렵지 않게 결정하는 존재다. 이 시에는 새 캐시밀론 이불과 새 책도 등장한다. 새 라디오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망의 결과물이자 그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대상물이다.

한편, ‘후란넬 저고리’(1963) 같은 시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오래된 양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저고리의 호주머니에는 물뿌리와 담배 부스러기, 종이쪽지 정도만이 있을 뿐 돈이 없다. 돈이 오래도록 수중에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이 빈곤함은 후란넬 저고리의 오래된 성격 “친근(親近)”으로 규정된다. 이후 시인은 혹시 오래도록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는 왼쪽 호주머니에는 휴식의 갈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시를 마친다. 라디오와 비교해보면 후란넬 저고리는 낡아버려 폐기해야 할 사물이지만 쉽게 버려질 수 없다. 오랫동안 한 몸이었을 낡은 옷을 계속 입는 일이야말로 시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된다. 시인이 낡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낡은 옷이 시인을 만든다. 시인은 사물의존적이다.

1966년 금성 라디오는 파나마에 무려 2만5천불어치 수출계약을 맺는다. 저품질의 섬유 제품 말고는 마땅히 내다 팔 것이 없던 그 시기 라디오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술품이었다. 당시 “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해외수출되는 금성 라디오”(<경향신문> 1964년 12월23일치) 같은 광고카피는 우리도 이제 기술적 완성도를 가진 기계를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다. 최초의 국산 냉장고(1965)와 흑백텔레비전(1966)이 출시된 것도 이즈음의 일이었다.

금성라디오 A 504. 출처: 금호라디오박물관(www.gumho.net)

시인 김수영은 기계-사물에 압도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기계-사물의 운동 안으로 들어가 대상의 본질을 읽어내려 노력한다. 그가 선호하는 운동은 제트기의 직선운동이 아닌, 헬리콥터나 팽이의 원운동이었다. 이 점에서 기계-사물의 직진 운동을 찬양했던 이탈리아 미래파의 필리포 마리네티(1876~1944)와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리네티는 “경주용 자동차가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전쟁기계의 압도적인 힘, 파괴력을 찬미했다. 전쟁기계의 빠른 속도와 괴력을 찬미하며 파시즘 세력과 영합한 그의 미래파 시는 지금 보아도 철이 없어 보인다.

이 점에서 김수영이 ‘네이팜탄’(1955)에서 전쟁 무기 네이팜탄을 취급하는 방식을 비교해 살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네이팜탄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적 지역을 초토화하는 폭탄이다. 절대로 시적 대상일 수 없는 이 기계-사물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자신에게 이 작전의 “지휘편”이 없지만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가려 하고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네이팜탄의 위력적인 살상력이 아닌 그 강력한 운동의 에너지를 자신의 힘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신동아> 1966년 11월호에 발표된 시 ‘금성 라디오’. 이영준 제공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 설움과 과거는/ 오천만분지 일의 부감도보다도 더/ 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애정은 절박하고/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 이처럼 가장 높은 곳에서 내리꽂는 폭탄의 운동은 그 내리꽂는 행위로써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연상케 한다. 김수영은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들 모두에게 폭탄을 내리꽂는 방식으로 강요된 죽음을 스스로 죽음으로써 돌파하고자 한다. 이는 상징적 자살이며 자기갱신의 운동이미지이다.

이 같은 수직낙하운동은 그의 시 ‘폭포’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나타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김수영 문학의 특징이자 가장 큰 미덕은 시인이 오히려 사물로부터 배운다는 점이다. 그는 사물로부터 도는 법과 내리꽂는 법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단련하는 수련법으로 삼았다. 그가 사용한 시어가 비유나 상징이 아닌 온몸인 이유다.




오영진 한양대 에리카 한국언어문학과 겸임교수
 



금성 라디오

 

금성라디오 A 504를 맑게 개인 가을날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500원인가를 깎아서 일수로 사들여온 것처럼

그만큼 손쉽게

내 몸과 내 노래는 타락했다

헌 기계는 가게로 가게에 있던 기계는

옆에 새로 난 쌀가게로 타락해 가고

어제는 캐시밀론이 들은 새 이불이

어젯밤에는 새 책이

오늘 오후에는 새 라디오가 승격해 들어왔다

아내는 이런 어려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해치운다

결단은 이제 여자의 것이다

나를 죽이는 여자의 유희다

아이놈은 라디오를 보더니

왜 새 수련장은 안 사 왔느냐고 대들지만

 

기사원문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100309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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