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춤을] 거미의 비행

수유너머웹진 2019.09.30 12:47 조회 수 : 96

거미의 비행


우 림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정보화시대 인터넷에는 가짜뉴스, 댓글부대, 증거를 은폐한 살인자의 거짓말 등이 범람한다. 진실을 왜곡, 은폐, 날조하는 글들에 노출된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니체는 "오랫동안 친절은 친절을 위장함으로써 가장 많이 발전되어왔다. (...)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장에서 자연적인 본성이 생겨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진실을 거짓으로 우기는 행태가 니체가 말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일본에는 "100번 우기면 진실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중국에는 "삼인성호 -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것이 니체가 말한 위장에서 생겨난 자연적인 본성이 뜻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1. 우리들 거미



자신의 입장에 유리한 언론플레이로 여론몰이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왜곡해서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니체는 "진실이나 진리"는 없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른 해석"만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놓고 다른 해석을 보이며 서로 자신의 말이 옳다며 우기고 싸운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갖는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감각의 거짓과 기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감각기관들이 다시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뒷길도 샛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들 거미는 이 그물 안에서 무엇을 붙잡든 바로 우리의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아침놀 #118 도대체 이웃이란 무엇인가!]

 

최근에 위안부 소재의 다큐멘터리 주전장」 「김복동이 개봉했다. 주전장은 위안부를 놓고 성노예냐, 매춘부냐 한국과 일본 각자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제국주의시절 일본이 위안부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사건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김복동속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에게 정식사과와 법적 보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한다. 원치 않게 전쟁에 동원되어 일본군에게 자유를 속박당한 어린소녀였고 지금은 할머니가 된 김복동의 입장. 그리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발적인 사람들로 위안부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극우의 입장. 그물 안에 걸리는 것만 붙잡을 수 있는 거미처럼, 그들도 당연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위안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2. 거미줄을 찢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감각할 수 있는 것밖에 감각하지 못한다. 거미줄 안 거미는 거미줄 안에 걸리는 것만 감각할 수밖에 없고,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 세상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니체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증언에 무게를 가지려면, 기독교를 떠나 방랑을 한 뒤 엄격한 판단과 함께 돌아와야 그들의 증언에 무게를 갖는다고 말한다.

 

정직한 열정을 품고 기독교와 대립된 삶 안에서 견뎌내고 몇 년 동안 기독교 없이 생활한 뒤가 아니면, 기독교를 떠나 방랑을 한 뒤가 아니면, 그대들의 증언은 무게를 갖지 못한다. 향수 때문이 아니라 엄격한 비교에 바탕을 둔 판단에 의해 되돌아올 경우에만 그대들의 귀향은 중요하다! [아침놀 #61 필요한 희생]

 

기독교인에게 기독교, 거미에게 거미줄이 있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는 위안부라는 사회적 낙인이 있다. 자신들은 우월하므로 동양을 침략해 식민지화해도 된다는 서양의 담론에 따른 일본의 침략제국주의. 그들은 침략은 인정해도 위안부 강제착취는 부정하였고, 지키지 못함과 약함을 드러내기 싫어 대한광복회 독립운동가들조차 위안부를 외면했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족들에게조차 위안부였다는 사실 때문에 부정당하는 아픔까지 가지고 있다. 스스로 심어놓은 아프고 추악한 각인도 있다. 이 때문에 자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없이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둘러싼 거미줄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거미줄이 아닐까.


김복동을 비롯한 위안부 할머니들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고 그 경험에서 떠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라고 공개적인 발언을 하기 전까지는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위안부 피해자였던 것보다 보통 여자이길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통 여자의 삶을 살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과거 기억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의 무게감보다 더 무거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거미가 거미줄을 떠나는 것,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떠나 보는 것, 개구리가 우물 안을 떠나는 것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고 숭고한 행위다. 반면 일본극우는 어떠한가. 위안부에 동원된 소녀들은 자발적이었고 자신들은 가해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고하게 관철시킨다. 게다가 위안부를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빼버린다. 이것은 은폐일 뿐 자신들의 관점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3. 촘촘한 거미줄


 

주전장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극우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언에 반대되는 근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다루었다. 일본극우의 위안부에 대한 입장을 요약하자면, 역사수정주의자로서 90년대 일본 교과서에 나오는 위안부라는 단어를 젊은이들에게 밝은 것만 보여줘야 된다는 이유로 2000년대 와서 빼버린다. 위안부는 매춘부였다는 증거를 대기 위해 위안부모집 광고지, 위안부가 돈을 받은 것을 기록한 문서를 내보인다. (물론 구체적인 근거로 반박 당한다.) 일본 기술을 질투한 중국과 한국이 위안부를 빌미로 일본 전자제품 불매운동을 하기 위함이라는 주장. 미국에 설치된 소녀상을 반대하며 한국과 중국의 로비로 설치된 것이며 이것이 설치되어 한국인이 미국에 사는 일본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거짓말. (물론 구체적인 근거로 반박 당한다.) 문서 맥락을 무시하고 부분만 고의적으로 발췌해 일본군에 끌려간 소녀를 자발적인 위안부로 왜곡. 일본극우의 논리에 맞는 기사를 쓰는 서양인 기자에게 로비활동을 하는 등. 전쟁 가해자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위한 목적을 두고 휘황찬란한 활동을 벌인다.

 

그대들은 비판, 학문, 이성을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대들은 역사가 그대들을 위해 증언하도록 역사를 왜곡해야만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우상과 이상을 그늘에 두지 않기 위해 덕을 부인해야 한다! 합리적인 논거가 필요한 곳에서 다채로운 그림! 열렬하고 힘찬 표현들! 은빛 안개! 감미로운 밤! 그대들은 비추고 어둡게 할 줄 알며 빛으로 어둡게 할 줄 안다! 그리고 실로, 그대들의 열정이 미쳐 날뛸 경우 그대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순간이 다가온다. 이제 나는 떳떳한 양심을 획득했다. 이제 나는 고상하며 용감하고 극기하며 관대하며 정직하다. 이제 나는 정직하다! [아침놀 #543 정열을 진리의 논거로 삼지 말라!]

 

자신들의 우상과 이상 (일본극우의 힘, 제국주의와 당시 전쟁의 정당성, 일본에 대한 세계의 평판 등)을 위해 합리적인 논거가 필요한 곳, 위안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곳에서 다채로운 그림, 열렬하고 힘찬 표현들, 은빛 안개, 감미로운 밤을 휘황찬란하게 만들어내어 거짓을 쌓아간다. 이러한 활동의 절정은 2015년 박근혜 정부에게 10억엔을 주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만든 화해치유재단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양국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不可逆)적 해결을 확인했다." 는 이유로 이 재단 설립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 모두 끝났다." 며 위안부에 대한 논쟁을 끝낸다. 강제 입막음으로 그들은 떳떳한 양심을 획득했고 고상하고 용감하며 관대하고 정직하게 되었다. 강도는 내가 당했는데 강도와 박근혜 둘이서 합의를...? 이런 날강도들.


자신의 학설 앞에서 정지했으며 그것 안에 자신의 경계석을, 여기까지이고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의미하는 경계석을 세웠다는 것은 거미줄을 더 촘촘히 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김복동 할머니가 전 세계를 순회하며 위안부 발언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볼 것인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거미줄을 더 촘촘히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4. 바다를 향하는 힘


 


김복동은 위안부 할머니들 중 가장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과 의지를 가지신 분이다. 그래서 그의 활동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노쇠한 몸으로 이렇게까지 활동할 수 있는 건 처음부터 가능했던 일이 아니다. 숨기고 싶었고, 잊고 싶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되살려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을 세세히 되풀이하고 발언해야 하는 것. 바다를 건너가 전세계에 알리는 것. 이것이 김복동의 반복된 위장이다.

 

오랫동안 친절은 친절을 위장함으로써 가장 많이 발전되어왔다. 커다란 힘이 존재하는 곳 어디서나 이렇게 위장할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위장은 안심과 신뢰를 불어넣고 물리적 힘의 실제적인 총량을 백 배 증대시킨다. (...)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장에서 자연적인 본성이 생겨난다. 마지막에 위장은 스스로를 지양한다. 그리고 기관과 본능은,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위선의 정원에 열린 열매다. [아침놀 #248 의무로서의 위장]

 

친절이라는 커다란 힘은 친절을 지속적으로 연습한 결과이다. 당당하고 즐거운 위안부 활동가 김복동의 시작은 피해자의 요구가 그렇듯 약하고 초라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김복동의 또렷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되었다. 영상에서의 모습은 피해자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커다란 힘 그 자체였다. 자신의 가장 맨 민바닥의 추함을 가리지 않고 제대로 본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일본에게 요구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들을 반복함으로써 김복동은 단순히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가 아니라 일본에게 자신의 부당함을 내뿜고 요구할 수 있는 그 존재 자체로서 힘이 되었다. 위장은 스스로를 지양한다. 과거 피해자로서 김복동, 위안부 경험을 지우고 싶었던 김복동은 찾아볼 수 없다.


반면 일본극우의 모습은 어떠한가.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본 그들의 입장이 힘을 가지려면 김복동처럼 그에 대한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왜 위안부가 자발적인 소녀들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발언을 자신 있게 하는 힘의 운동을 왜 하지 않는가! 위안부 소녀상이 아니라 위안부 매춘부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지 않는가! 쪽팔리더라도 그들의 입장이 힘을 가지려면 이러한 위장과 지양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맞다. 왜 일본이라는 큰 나라가 가진 힘으로 위안부 은폐에 더 집중하는가. 반대로 독일처럼 위장과 지양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식사과의 반복으로 과거 전범국이라는 이미지를 지양하고 점점 더 나은 이미지로 거듭난다. 나치와 현재 독일국민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김복동은 자신의 추악함을 인식한다. 독일도 그렇다. 그리고 인식들은 위장의 반복으로 힘이 되었다. 일본은 인식에 대한 시작도 못했다. 자신들의 가장 맨 밑바닥을 보는 게 고통스러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피해자의 자발성으로 돌린다. 여기에 무슨 힘이 존재할 수 있을까. 힘의 크기는 차이날 수밖에 없다. 일본 극우와 위안부 할머니 힘은 정반대다. 위장의 반복으로 가상의 깊이를 가진 김복동 힘, 가상의 깊이는커녕 한 장의 가상도 가지지 못한 일본극우.

 

현실에서 이탈하고 가상의 깊이로 도약하는 것에서 환희를 느끼는 것에 길들어 있는 그 모든 사람들 (...) 이들은 현실이 추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추악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아름답다는 것과, 자주 많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항상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현실 전체를 전혀 추악한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 도대체 그 자체로 선한것이 존재하는가? 인식하는 사람의 행복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보다 밝게 만든다. 인식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사물 주위에 펼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물들 안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투입한다. [아침놀 #550 인식과 아름다움]

 

김복동에 우리나라 최초로 위안부임을 밝힌 김학순 할머니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높은 정상에서 바라본다.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가장 추악한 기억을 되살리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 아픔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며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목소리, 표정, 눈물 하나하나 생생하다. 가장 깊고 험난한 동굴을 뚫고 나온 자의 모습. 그 과정을 거친 할머니들은 그 과거가 더 이상 추악하지 않다. 가장 깊은 추악함에도 까무러쳐 죽지 않은 자의 위대함. 그저 차분히 바라볼 수 있는 힘.


김복동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거워보였다. 자주 많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해 항상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일까. 아픈 과거는 현재의 그에게 아무런 상처가 되지 못한다. 그는 즐겁다. 아플 때 활력적이고, 건강할 때 오만하지 않다. 수술을 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일정을 소화해내고 싶어 하며 소화해낸다. 그에게 억지나 의무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모습만 보였다. 강한 힘을 가져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면 그것으로 이미 강한 힘이다! 이 힘이 즐거움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5. 우리, 정신의 비행사들!


 

김복동이 위안부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위 사람들 덕분이다. 할머니들의 편의를 돌봐주는 활동가부터 평화의 소녀상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옆에서 릴레이 농성을 하는 대학생들, 위안부 졸속합의에 대항하는 어린 친구들 .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커다란 힘에는 무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 같다. 그들은 같이 힘을 낸다. 큰 힘에는 작은 힘이 붙는다. 그래서 더 힘이 넘친다. 단순히 동정심이나 연민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다.

 

멀리, 가장 먼 곳까지 날아가는 이 모든 대담한 새들, 분명히 그것들은 더 이상 날아갈 수 없게 되어 돛이나 황량한 절벽에 내려앉을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이 나와 그대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다른 새들은 더 멀리 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통찰과 믿음은 그것들과 경쟁하면서 멀리 그리고 높이 날아가고 곧바로 우리의 머리와 그것의 무력함을 넘어 높은 곳으로 올라 그곳에서 먼 곳을 내다보고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새들의 군단을 본다. 이 새들은 우리가 추구했던 곳, 온통 바다, 바다, 바다인 곳을 향해 날고 있다! [아침놀 #575 우리, 정신의 비행사들!]

 

김복동의 힘은 다른 힘들을 생성한다. 김복동의 힘을 위한 양분이자, 사건을 창조하고 상황을 열어가는 또 다른 힘들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슬프지 않다. 위안부활동은 더 활력적으로 굴러간다. 평화의 소녀상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방사능이 싫어서 일본극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처음부터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던 나조차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글로 방향이 바뀌었다. 힘의 끌림인가. 어떻게 이렇게 멋진 할머니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반면 일본극우들은 로비활동을 통해, 또는 자신의 평판 때문에 위안부 발언을 근근이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6. 거미줄 뭉치


다큐 [주전장]에 출연한 일본우파 논객들. 왼쪽부터 역사수정주의의 대표학자 후지오카 노부카츠, 스기타 미오 자민당 중의원, 미국변호사이자 일본방송인 켄트 길버트, 후지키 슌이치 매니저와 그가 맡고 있는 친일미국인 유튜버 토니 마라노.


주전장마지막쯤에서 일본극우의 실체를 다룬다. 일본극우의 어이없는 발언에도 조용했던 극장은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푸근하고 익살스러워 보이는 할아버지의 발언으로 들썩거렸다. "곧 중국이 약해지면 한국은 일본에 의존해서 친일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귀여운 나라다. 귀여운 어린아이가 떼쓴다. 왜 사람들이 위안부에 열을 올리는가. 아무래도 위안부에 포르노적인 면이 있어서인가."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떼쓰는 미취학 아동의 우김 아닌가? 일본극우의 중심에 있다는 그는 일본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는 가짜 역사학자인데 자신이 쓴 책 밖에 읽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일본에서 위안부 관련 권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반대 입장에서 쓴 책이나 심지어 자신과 같은 입장에서 쓴 책조차 읽지 않았다.

 

그대는 그를 혐오하며 이렇게 혐오하게 된 근거들을 풍부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의 혐오만 믿을 뿐, 그대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믿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생기는 것을 하나의 이성적인 추론인 양 자신과 상대방에게 제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미화하는 것이다. [아침놀 #358 근거들과 그것들의 무근거성]


이 할아버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망상 속에서 산다. 그가 가진 권력으로 일본 역사교과서를 자신의 입맛대로 수정하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주입한다. 마치 오직 신만을 믿는 열광적인 신도처럼. 자신이 믿는 것을 미화하고 자신을 미화한다. 실제로 일본극우는 일본의 특정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법을 고치려는 아베를 비롯해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가진, 일본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집단이자 종교집단일 뿐이다. 니체적으로 보면 매우 약한 자들이다.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소망에 대한 믿음만 갖고 있다. 부패한 권력으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가는 자들이다.


제국주의 정신은 계승하고 싶고 세계사회 눈치는 봐야 해서 위안부 착취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거미줄을 똘똘 뭉쳐나가는 일본극우 단체. 위안부라는 사회적 낙인과 죽음보다 깊은 개인의 상처라는 거미줄. 그것을 찢고 나와 위장을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마침내 위안부 활동가라는 자연적인 본성으로 만든 가장 숭고한 자기극복. 어떠한 상황도 개의치 않는 가벼운 몸으로 자유롭게 비행하며 위안부활동을 하는 할머니 개인.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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