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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글] 거동수상자의 걸음-마르셀 뒤샹과 이상

수유너머웹진 2019.06.21 20:09 조회 수 : 178

거동 수상자의 걸음
마르셀 뒤샹과 이상

 금은돌 / 수유너머 회원

 

1. 정지, 길들여지기를 거부하는 일

 

 

마르셀 뒤샹의 존재 방식은 운동이다. 뒤샹이라는 텍스트는 걷고 달리고 생각한다. 사유의 운동이자 작동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미술 운동을 주도하였다.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이 저곳에 있다고 말할 때, 그는 기존의 프레임을 무너뜨린다. 수직적 방식으로 예술이 작동할 때, 그는 옆으로 문을 연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그의 뇌는 작동한다. 이분법을 가로지른다. 정지하고, 운동하며, 재배치한다. 이질적인 오브제를 결합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그곳에서 생각하라고 (은근히) 명령한다. 뒤샹이 가지고 있는 질문은 21세기 지금-여기에도 작동 중인 화두이다.

기존 프레임에 갇힌 사유구조를 깨뜨리고 싶을 때, 예술가는 질문할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어떻게 전복시킬까?

뒤샹은 계단에서 걷는다.

정지하고, 운동한다.

 

2.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

 

운동성에 반응한 작품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이다. 뒤샹은 이 작품에서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다. 추상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움직이는 육체의 형태를 완성한다. 여기서 육체는 기계적으로 작동한다. 이 작품은 프랑스 생리학자 에티엔-쥘 마레의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한 프레임 안에서 피사체의 연속 움직임을 촬영 할 수 있는 카메라가 발명된 것이다. 연속 사진(motion picture)이다. 뒤샹은 인물의 육체를 기계처럼 구조화시킨다. 그리고 연속 동작을 멈추며, 위치 이동을 한다. 상체의 움직임과 다리의 운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피사체 내부에 작동하는 세부 기관의 기계적 원리에 주목한다. 그렇기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누드화였지만,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젠더 구분을 탈피하면서, 인간의 육체를 기하학적인 운동성으로 사유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관음적 시선과 젠더적 구별 등, 누드라고 하는 프레임에 갇혔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통념이 흔들린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곳을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흔적이자 평면적인 얇은 파편이었을 뿐이다. 인간의 몸은 원통과 실과 철사로 이어진 기계장치일 뿐이다. 역동성은 선과 선의 겹침과 반복으로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인간은 사라진다. 계단을 내려가는 기계의 동작만 남는다. 중력이 이끄는 대로 이행하는 물리적인 역동성이 남는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움직이고 있는 순간을 주목하기 위해, 정지시킨다. 정지함으로써 뒤샹은 움직임의 추상적인 선을 돋보이게 한다. “나는 움직임의 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내고 싶었다. 움직임은 일종의 추상이며, 실제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나 실제 계단인지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림의 내부에서 진술된 추론이다.”[각주:1] 화가는 시간을 세부적으로 분할하고, 쪼개지는 시간 속에 정지된 화면을 반복적으로 배치한다. 사실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운동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지의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만든 것은 결국 그림에 편입된 관찰자의 눈이다.”[각주:2] 그림에 나열된 선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역동성이 완성된다.

관찰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 시선에 의해 정형화된 흐름이 없는 파동이 입자로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전통적인 양자역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을 시도하는 순간, 즉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확률파동이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변하면서 모든 가능성이 하나의 값으로 직결된다. 이것을 확률파동의 붕괴(the probability wave collapse)’ 현상이라고 한다. 이 붕괴란 양자가 파동으로서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시각장 안에 고착화되지 않은 채 잠재 에너지로서 흐르던 것이 어느 순간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그 파동을 버리고 입자를[각주:3] 택한다. 그림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완성하는 것은 관람자의 시선이 개입한 결과이다. 화가의 표현이 완성되는 것 역시 관람자의 개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20세기 전반은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 미술은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결정론적 사고에 굳어버린 19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가 발견된다.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는 인간과 동물의 운동성에 대한 실질적인 사유의 폭을 넓혀 놓았다. 20세기 초 과학의 발달은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리스본에서는 페르난두 페소아가 수많은 이명을 만들어내며 글을 쓰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혁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미술계에서는 미래주의, 구축주의, 큐비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기존의 결정론적인 사고방식을 뒤집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쇤베르크와 에릭 사티의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고, 피카소와 기욤 아폴리네르는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무의미 시가 낭송되고 있었고 이 세상을 전복하려는 예술가, 특히 문학과 예술가의 화가의 결합이 공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3. 이상(李箱), 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2019년 뒤샹 전시[각주:4]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직접 보고 온 이후, 번뜩, 떠오른 사람이 있다. 1930년대 모던 보이 이상(李箱)이다. 시인 이상을 알아보았던 김기림은 "파리 가서 3년간 공부하고 오자. 파리에 있는 슈르 리얼리스트들하고 싸워서 누가 이기나 내기하자"고 제안한다. 뒤샹 역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과 더불어 활동했던 화가였던지라, 그 연장선상에서, 건축기사이자 화가이자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를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각주:5]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앞에서 시인 이상의 건축무한육면각체AU MAGASIN DE NOUVEAUTES작품을 오버랩해 본다. 이 작품의 한글 제목은 새로운 기계이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

        의사각형.

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운동의사각이난원.

비누가통과하는혈관의비눗내를투시하는사람.

지구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의를모형으로만들어진지구.

거세된양말.(그여인의이름은워어즈였다)

빈혈면포.당신의얼굴빛깔도참새다리같습네다.

평행사변형대각선방향을추진하는막대한중량.

마르세이유의봄을해람한코티향수를맞이한동양의가을.

쾌청의하늘에붕유하는Z백호.회충양약이라고쓰여져있다.

옥상정원. 원후를흉내내고있는마드무아젤.

만곡된직선을직선으로질주하는낙체공식.

시계문자반에ⅩⅡ에내리워진두개의젖은황혼.

도아의내부의도아의내부의조롱의내부의카나리아의내부의감살문호의내부의인사.

식당의문간에방금도착한자웅과같은붕우가헤어진다.

검정잉크가엎질러진각설탕이삼륜차에실린다.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구를질구하는조화금련.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나는애처로운해후에애처로워하는나)

사각이난가걷기시작한다.(소름끼치는일이다)

라디에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꾿빠이.

바깥은비. 발광어류의군집이동.

― 「AU MAGASIN DE NOUVEAUTES전문(1932)

 

이 시를 뒤샹의 시선으로 음미해 보자. 당시 경성에 고급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낯선 이방인의 침입과 같았고, 근대문명의 배달 창고였으며, 소비를 부추기는 욕망의 장소였다. 1930년대의 낯선 문명을 재빨리 받아들이던, 문화의 최첨단 아이콘들은 백화점 옥상 정원에서 자유연애를 즐기며, 멋을 부렸다. 판탈롱 바지, 에나멜 구두, 마드모아젤, 중절모, 스타킹, 코티향수, 비누, 엘리베이터, 가배차(·커피) 등 새로운 것을 익히고 쓰고 향유하였다. 백화점 옥상정원(屋上庭園)에서 그들은 자본주의 감각과 속도를 즐겼다. 거리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있었다. 하늘에는 붕유하는 Z백호가 떠 있다. 이상은 비 오는 날 헤드라이트를 킨 자동차를 보고, "발광어류(發光魚類)의 군집이동(群集移動)"이라고 표현한다. 이 모든 것들을 낯설게 바라본다. 자기 나름의 언어로, 새롭게 명명한다. 그리고 추상화했한.

 

 

이것은 사물과 사물의 열거와 배치의 방식이다.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언어의 기술과 반복의 효과이다.[각주:6] 사각형 건물 안에 사물과 인간이 움직인다. 반복되고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과 그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분주함은 기하학적인 도형의 반복을 통해 나타난다. “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의내부의사각형카메라를 줌인(zoom in)하거나 줌아웃(zoom out)하면서, 혹은 롱테이크(long take)로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평행으로, 사선으로 길게 보여주는 관찰법으로 선택할만하다. 건물의 외부 윤곽인 사각형을 ‘over view’ 위치에서 보여주고, 그 건물 안으로 한 단계씩 진입해 보는 것이다. 그 안에 회전문이 작동한다. 회전문의 원과 사각형이 사각이난원운동을 하는 문의 작동이 반복하며, 추상화된다. 그 다음에 콜라주 방식으로,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이 열거된다. 비누, 지구본, 스타킹, 코티향수, 의약품 광고, 하늘에 떠 있는 비행선, 상품 광고 등이 보인다.

뒤샹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에서 정지한 순간을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인간-기계의 운동성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처럼, 시인 이상 역시 반복과 겹쳐 그리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시적 주체 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주체는 1층에서 옥상정원으로 이동한다. 계단이 있고, 하늘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가장 높은 건물에서 바라본 시대 풍경은 어떠했는가? “명함을짓밟는군용장화가 있다. 그것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숱한 이름이 짓밟혔다. 감시와 억압과 처벌을 당했던, 1930년대 강제와 폭력과 억압의 현실이 있었다. 군용장화 아래, 제국주의와 식민 정책이 진행되는 가운데, 인간-기계가 작동한다. 그 사이에 다시 인간-기계의 운동성이 극대화된다.

 

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가고위에서내려오고밑에서올라간사람은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밑에서올라가지아니한위에서내려오지아니한사람.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계단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들은 상행이거나 하행이라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을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 의 장면으로 분할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계단 위에 있는 그들은 인간-기계이고, 움직임/정지 상태가 반복된다. 밑에서도 올라가지 아니한 사람이고, 위에서도 내려가지 아니한 사람이 된다.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진다. 시인 이상은 카메라 위치를 고정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장이 달라진다. 시간을 세분화하고 분할함으로써, 계단에 서 있는 존재자는 성 정체성마저 뒤섞인다.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하다.

 

그것이 여성인가() 아닙니다. 그럼 남성인가? 아닙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난 하번도 그것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까? 내 그림은 대상이 아닌 추상에 관한 것입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움직임의 추상화입니다.”[각주:7] 뒤샹의 말처럼, 인간-기계의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연동시켰을 때, 젠더 구분이 사라지면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상태에 다다르게 된다. 일종의 자웅동체의 몸을 구성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상하 운동을 수평 운동(걷기)으로 치환함으로써, 다른 지평을 열어버린다. “사각이난가걷기시작한다.(소름끼치는일이다)” 대상이 낯설게 환기된다. 작용 가운데 정지. 상식적인 운동이 진행되는 가운데, 방향 바꾸기. 이 지점에서 환상이 펼쳐진다.

시인 이상은 언어로, 시적 추상화 작업을 거치면서, 삶과 현실의 문제,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의 문제, 결정론적인 사고방식 등을 전복한다. 이 지점이 소름끼친다. 백화점 건물 구조와 상품이 콜라주 방식으로 배치되며 독자의 시선이 따라 움직이는 동선 역시 가변적이다. 그 사각형 공간 속으로 드나드는 인간 역시 새로운 기계(시 제목처럼)였던 셈이다. 마지막 부분, 수직 운동을 수평운동으로 전화하는 지점. 이곳에서 일시 정지하며, “사각이난가 걷기 시작할 때, 지극히 소름끼친다. 이 지점에서 시인 이상의 이상한 우월함이 있다.

 

4. 콜라주, 다리와는 닮지 않은 바퀴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필연적인 인과법칙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던 시기, 앞으로의 미술사 100년을 좌지우지할 거대한 회오리의 ’, 자전거 바퀴가 움직이고 있었다.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로, 카오스를 포함한 코스모스의 세계로, 사고의 전환을 위한 자양분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뒤샹은 작품 안에 우연의 문제를 받아들인다. 실험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으로 변화 발전한다. 뒤샹은 다른 차원의 운동을 꿈꾸었다. 평면적인 2차원에서 3차원, 4차원으로 도약하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움직여야 했다. 운동과 정지,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

 

 

콜라주, 관계, 운동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 뒤샹의 <자전거 바퀴>(1913)이다. 이 작품은 바로 언급하기 전에, 뒤샹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각주:8] 1912년 가을, 뮌헨에서 파리로 돌아온 뒤샹. 그는 뮌헨에서 돌아온 이후 줄곧, 자신의 작업을 바꾸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그해 10월 말 아폴리네르 등 몇몇 친구와 함께 프랑스 동부 쥐라 지방으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뒤샹은 친구들과 기계와 인간의 유사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각주:9]

뒤샹은 아폴리네르의 이 문장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일까. 뒤샹의 작품이 아폴리네르의 문장에 영향을 준 것일까. ‘초현실주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게 된 문장이 있다. “인간은 발걸음을 모방하려 했을 때, 다리와는 닮지 않은 바퀴를 창안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초현실주의를 실천한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의 전위 연극 티레시아스의 유방(1916) 서문이다.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아폴리네르와 두터운 교류를 유지해 왔던 뒤샹을 생각하면, 서로가 각자의 작업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뒤샹의 <자전거 바퀴>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이고, 산업적이고 핵심만 남은 물건을 좋아하는 뒤샹의 취향, 화려한 장식에 대한 깊은 혐오, 가정 내 물건은 절대적으로 단순한 것을 추구하는 그의 애호와 맞아 떨어진 작품이었다.[각주:10]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격인, 첫 번째 작품이었다. 결과적으로 뒤샹은 미술을 포기함으로써 미술을 얻는다.[각주:11] 예술가와 예술가의 만남, 사물과 사물의 만남. 그리고 문장과 문장의 만남. 이 모든 것들은 관계에 의해 작동한 것이다. 오브제는 반란의 도구가 되고, 일상의 맥락을 뒤집는 착란의 도구, 사유의 도구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사물과 사물의 결합이 중요해지면서, 무의식적인 연동과 우연성이 끼어들면서, 비결정론적 사고를 전복시킬 시대적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5. 둘이면서 하나, 절름발이 운동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적어서다리짧고바른

다리가아프니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사람처럼걸

어가면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무사한세상

이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다

                                               ―「지비전문(1935)

 

이상의 시에서 이질적인 사물과 사물의 콜라주를 시도하고 있는 작품으로, 지비를 꼽고 싶다. 아내와 의 결합하기 어려운 걸음이  하나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 키는 크고 왼쪽 다리가 아프다. 콜라주는 어울리지 않을 만한 조합을 가지고 있다. ‘아내의 키는 작고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 이 두 사람이 이상한 환자처럼, 걷는다. 이인삼각경기를 하듯이, 절룩이며, 걷는다. 아프다는 것은 정지했다는 것이다. 정지할 수만은 없기에, 타자에게 기댄다. 옆 사람에게 기댄다. 나는 아내에게 의지하고, 아내는 나에게 의지한다. 절름발이. 두 사람이 하나의 호흡으로 걷는, 기괴한 걸음걸이가 탄생한다. 절름발이가 되어, 두 사람이 한사람인 것처럼, 이상한 운동성을 가진 콜라주의 효과가 발생한다

절름발이의 운동성. 이것이 식민주의 시대에 최신의 모던함을 쟁취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병든 내면 운동일 것이다. 종이비석, 지비(紙碑)인 셈이다. 부부의 걸음은 종이 위에서 정지한다. 아내와 나의 괴이한 걸음 콜라주는, 두 사람의 이질성을 하나의 아픔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이들은 이 세상을 진단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둘이면서 하나인 주체는 여자의하반은저남자의상반에흡사한 몸을 구성하며, 이 시대를 견디는 자가 된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새로운 주체는 불연속적으로 운동하고, 연속적으로 정지한다. 환자이면서 의사라는 자격으로, 종이(텍스트) 위에서 자신의 시대를 진단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이 새로운 주체는 무사한 세상이 곧 병이었음을 자각한다.

 

 

 

6. 이상 & 에로즈 셀라비

 

이상(李箱)의 본명은 은 김해경(金海卿)이다. 김해경의 필명은 하나가 아니다. 이상(李箱)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꾼 것은 1928년 경성고등학교 졸업기념 사진첩에서 발견된다.

이상은 여러 이름을 갖고 싶어했다. 1932비구(比久)’라는 필명으로 조선에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을 발표하고,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으로 휴업과 사정을 발표한다. 1934하융(河戎)’이라는 필명으로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삽화를 연재한다.[각주:12] 페르난두 페소아처럼 수십 개의 이명을 만들어, 각각의 이름으로 다른 스타일의 시를 쓰고 산문을 쓰듯, 시인 이상은 이상이라는 필명 이외에 다른 이름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김해경은 전근대적인 사회에서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다. 따라서 김해경이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의무와 책임이 부여받는다. 예술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김해경은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프레임을 벗어던져야 했다. 이런 운동성의 연장선상에서 이상이라는 필명이 필요했다. 전근대적인 사유방식과 관습에서 탈주하고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염원하는 이름을 스스로 호명한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상한 가역반응이상이 나타날지라도, 이상(李箱)은 상자() 속에(마치 뒤샹의 녹색 상자[각주:13]처럼) 낯선 이상(異相)과 기존의 사유방식을 뛰어넘는 이상(理想)과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운동성을 보여주는 이상(異常)을 담는다. 시인 이상(李箱)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이상(以上)이 되어야 했다. 이 필명의 언어 놀이를 통해, 시인은 자기 자신을 지우며, 삼차각설계도, 건축무한육면각체, 조감도, 오감도 등의 작품을 내놓는다.

 

 

이 지점에서 특이한 사진이 보인다. 그는 단지 낯선 이명으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함으로써, 존재자에서 존재가 탈출하고, 다시 존재자의 몸 안으로 귀환하는 운동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1928년 경성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살펴보면, 김해경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다. 김해경이 이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변경하면서,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것이다. 수많은 이름을 갖는 것 역시, 원심력과 구심력의 운동성을 극대화 하는 방법인데, 그는 젠더적 이분법마저 지워내려고 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상이 살아있었다면, 뒤샹의 에로즈 셀라비처럼, 적극적인 캐릭터를 부여했을까?

 

 

1920년대 뒤샹에게는 에로즈 셀라비(Rrose Sếlavy)라는 존재자가 있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와의 협업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 형체가 구성된다. 에로즈 셀라비는 뒤샹의 또 다른 분신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에로즈 셀라비는 책을 출판하고, 작품에 그녀의 사인을 한다.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작품 활동이 시작된다. 원래 텍스트적인 실험과 언어 놀이를 좋아했던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 놀이를 한다. 여인을 구성하고, 그 여인에게 맞는 캐릭터를 부여하는 실험을 한다. 페르난두 페소아가 베르나르두 소아레스, 알베르투 카에이루, 알바르 두 캄푸스 등 수많은 이명을 만들어 내어, 그 이명으로 출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뒤샹 역시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한다.

 

 

고정된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적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위계적인 권력과 질서를 전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 한, 수행적 과정에 놓여있는, 이상한 운동을 하는 육체를 만든다. 그 가운데 우연적인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지금-현재의 운동성을 수용한다. 수행과 과정으로서의, 새로운 주체는 언제나 새롭게 구성되며, 실험된다. 순간적인 운동과 정지 가운데, 시대적인 규정성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미규정적인 상태로 미끄러지는 일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 그렇기에, 아무 것도 아닌 상태이기에, 그 무엇이 될 수 있다.

정체성은 순간마다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다른 지점으로 위치이동 할 수 있고, 낯선 입자이자 파동으로써, 해석될 수 있다. 미규정적인 상태로, 경계를 지우는 일. 이것이 중요하다. 정치, 젠더, 지역, 민족 등 다양한 분야로 행위하고 수행하는 열린 주체로서 미지의 영토 위에 존재 가능하다.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지우려고 했던 것처럼, 뒤샹은 에로즈 셀라비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 대한 웃음과 조롱을 던진다. 언어게임과 언어 놀이를 일삼았던, 셀라비는 작품에 사인을 하고, 향수병 라벨로 등장하면서, 미규정적으로 작동한다.

 

 

7. 옥상정원, 아무 것도 없다

 

일층우에있는이층우에있는삼층우에있는옥상정원에올라서남쪽을

보아도아무것도없고북쪽을보아도아무것도없고해서옥상정원밑에있

  는삼층밑에있는이층밑에있는일층으로내려간즉동쪽에서솟아오른태

 양이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

 올라서쪽에떨어지고동쪽에서솟아올라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시

계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시간은맞는것이지만시계는나보다도젊지

않으냐하는것보다는나는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

어지는것은필시그런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시계를내동댕이쳐버리

고말았다.

                                        ―「운동전문(1931)

 

이 시는 시적 주체의 상승과 하강의 반복 운동이 나타난다.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힘겹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시적 주체의 운동이 펼쳐진다. 옥상정원까지 올라간 시적 주체는 옥상정원에서 그 무엇을 찾지 못하였기에, 1층으로 허무하게 내려온다. 이 과정에서 시적 주체는 욕망하는 그 무엇을 가진 상태였다. 그 최고의 지점인 옥상정원에 가 보니, 아무것도 없다.

 

  시적 주체의 운동이 옥상정원이라는 곳을 올라가는 것은 의 상승 욕망이 작용했음이다. 하강운동은 실패하거나 절망하면서, 지상으로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상으로 내려와서도 자연의 운동은 꿋꿋하게 지속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태양의 운동이다. 사흘이 흐른다. 인간-기계가 (그것이 욕망의 추동일지라도) 한번 상승하고 하강하는 운동을 할 동안, 자연의 운동은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쪽하늘과 서쪽 하늘을 오고간다.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생활을 지탱해야 하는 생활의 시간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나흘째 되는 날, 시적 주체는 하늘 한복판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시적 주체가 하는 일은 태양과 시계를 동시에 콜라주 하는 것이다. 정오의 순간, 지상의 시간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계는나보다도젊지않으냐하는것보다는나는시계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이다.

 

24시간 속에서 시적 주체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규정될 수 없다. 다만 믿어지는것이다. 옥상정원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 무()였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위치를 규정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지상의 시간은 맞지만, 시계의 시간에, 시적 주체의 그 어느 것에도 자리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 12이라는 숫자를 가진 시계의 규정 속에서 시적 주체를 바라볼 것인가, 24라는 하루의 숫자를 기준으로 시적 주체의 주치를 설정할 것인가. 이것은 관찰자의 개입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양자역학의 원리와 같다. 결국 주체의 입장과 위치, 시선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진다. 그리하여 시적 주체는 시계를내동댕이쳐버린다.

 

 

시인은 규정가능한 것과 완결된 규정 속에 예속되지 않는다. 시계를 버림으로써, 탈주하고자 한다. 옥상정원에 올라가는, 욕망의 최상위 것을 향해 지향하는 일은 지상에서 무화되어 버린다. 인간-기계의 영역조차, 규정적인 것을 넘어서, 미규정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모든 운동성 안에서 시적 주체는 미규정적 가능성에 그 자신을 열어놓는다. ‘추상기계가 되는 것이다. ,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아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욕망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하고, 텅 빈 상태. 지극한 무()의 회전 운동. 시인은 지극한 미규정성 속에서 단지 운동할 뿐이다. 운동과 정지의 관점에서 이 지구를, 이 우주를 사유하다보면, 모든 것은 운동의 충돌과 그로 인한 효과들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사물도 사물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운동을 하고 있고, 자연도 자연의 흐름에 따라 피고 진다. 모든 것들이 운동하는 가운데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지워진다. 주체의 고정성 역시 무너진다. 무한 그 자체의 작동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우주가 그 자체의 힘으로 존재를 유지하려는 힘, 코나투스(conatus)가 존중된다. 코나투스에 대한 굳건한 믿음, 시인 이상은 그 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굳건하였다.

 

 

8. 거동 수상자, 자네는 할 수 있겠나

 

뒤샹은 이렇게 말한다. “회화는 이제 끝났어. 저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누가 만들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네는 할 수 있겠나?”[각주:14]

 

 

그는 움직이는 사물들에서 강력한 오브제를 발견한다. 여기서 오브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일상용품들이 평범한 부르주아의 일상적 관습적 맥락을 깨드리는 반란의 도구가 된다. 아폴리네르는 입체파 화가들에서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화가의 감수성이 그의 예술 세계의 핵심적 특징이라고강조한다. “어쩌면 예술과 대중을 화해시키는 일은 미학적 고민에서 자유롭고 에너지에 관심을 갖는 마르셀 뒤샹 같은 예술가에게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뒤샹을 칭찬한다. 아폴리네르는 현대의 스타일은 기계적 인공물의 세계, 특히 자동차나 오토바이나 비행기 같은 빠른 운송기계에 기반 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각주:15]을 드러낸다.

운송기계에 대한 감각은 오브제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사물은 곧 오브제가 되어 회화의 영역을 깨드린다. 굳이 붓을 들지 않아도 된다. 개성이 작품에 표현되지 않아도 된다. 주체 가 아니어도 우연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물과 사물의 만남으로, 예술적 효과가 발생한다.[각주:16] 작가는 다만 발명하고 선택하면 될 일이다. 어떤 사물과 사물을, 거리가 먼 사물을 접붙일 것인가? 콜라주할 것인가? 이런 조화와 배치가 중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예술이라는 무게와 권위가 무너져 내린다. 뒤샹은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오가면서, 원근법을 이용하고 때로는 원근법을 벗어나는 실험하고 재구성한다. 캔버스 대신 유리를 캔버스 삼아 작업하고 주체 역시 생각하는 사물로 객관화한다.

 

 

생각하는 사물, ‘는 곧 명명하는 자로 변화한다. 사인(sign)하는 자로 만든다. 뒤샹은 원본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다수의 복제본을 만들어, 예술 작품의 가격을 조정한다. 오브제의 일상적 반란을 도모한다. 서명하는 자는 자유자재로 판단하고 활자를 적는다. 이때 무엇을 예술로 볼 것인가? 라는 질문이 발생한다. 예술을 사건으로 만드는 자리에 뒤샹이 존재한다. 이것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질문의 확장이다. 장르를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1915년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프랑스에 두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술가는 영혼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며, 예술 작품은 그 영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이후 1917년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에 <>이 출품된다. 뒤샹은 사건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습관적인 사고를 전복시키는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꽃나무전문 (1933)

 

  여기에 또 다른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었다. 이상은 옥상정원의 이상을 보기 위해 193610월 일본으로 떠났다. 뒤샹은 뉴욕으로 떠난 뒤, 미술사적으로 조명을 받는 거장이 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김해경은 거동 수상자로 지목되어 19372월 사상 혐의로 검거된다. 동경은 이상이 꿈꾸던 옥상정원이 아니었다. 서구세계를 모조한 도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이상은 서울로 귀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각주:17] 그는 열심히 꽃을 피웠다. 참으로 이상한 방식으로, 달아나고 운동하던 꽃나무를 만나고자 하였다. 영매와 같은 꽃나무를 위해서, 그는 기성적 권위를 거부하고, 새로운 양식과 기법으로, 새로운 시, 거꾸로 가는 시, 전위로 가는 시, 이상한 시를 완성하였다. 이상은 자신을 믿으며[각주:18], 운동하였던 것이다. “한꽃나무를위하여참으로 이상한 운동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 굵은 글씨는 필자

 

금은돌 : 발로 공부하는 사람이다. 2008년 『애지』에 평론을, 201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다.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를 비롯하여 평론집 『한 칸의 시선』『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가 있다. 2008년 교통사고 당시 살아있는 것은 바라보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다. 그 이후 눈동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다섯 번의 개인전(<눈에 대한 낭만적 독해>)과 네 번의 단체전을 갖다. 2017년 여름 리좀 국제예술인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여, 프랑스 화가 Sylvie Deparis을 주제로 전시를 열다. 1인 잡지 MOOK 발행인이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기형도의 비가 2)라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수유너머 104"에서 공부하고 있다 

  • <그림이 있는 글>은 그림과 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연결하여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올리기도 하고, 에세이류의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시와 사람』, <예술산책>, 201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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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정현, 「뒤샹의 작품과 그의 일상에 나타난 우연의 문제」, 『현대미술사연구』, 2013, 114쪽. 뒤샹의 말 재인용. [본문으로]
  2. 김정현, 같은 글, 114쪽. [본문으로]
  3. 김정현, 같은 글, 115쪽. [본문으로]
  4. 마르셀 뒤샹展 2018.12.22(토) ~ 2019.04.07.(일) 장소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2전시실 [본문으로]
  5. 시인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을 배우며 수학, 설계, 숫자, 선에 대한 기본 사유 방식을 익힌다. 조감도를 그리고 청사진을 찍고, 건축 설계를 하고, 계획하는 자의 시선으로 건축물을 투시하는 눈을 획득한다.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며, 서구의 미술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상은 보성고보 고희동 미술교사로부터 입체파와 미래파의 특성을, 선명학교 재학 중에 만난 화가 구본웅으로부터 역원근법과 큐비즘적 공간에 대한 해석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이재복, 「李箱 시에 나타난 다다이즘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언어문화』 제18집, 305~306쪽. [본문으로]
  6. 이지연, 「이상(李箱)과 러시아 아방가르드」,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 2010, 87쪽. 연구자 이지연은 “이 때 ‘사각이 난 원’ 이라는 표현은 사각형을 빨리 돌렸을 때 만들어지는 원을 연상시키며 이것은 하름스가 「원에 관하여」에서 언급한 직선들의 무한한 꺾임을 통한 원의 형성과정과 유사하다. 즉, 사각의 원은 무한은 아니지만 무한에 다가가는 하름스의 cisfinitum의 논리를 반복하면서 이상의 텍스트 속 평 면 세계가 무한성을 얻게 되는 원칙을 설명해 준다. 즉, 「건축무한육면각체」의 첫 번째 시는 사각 형들의 무한한 중첩과 펼쳐짐을 통해 무한히 펼쳐지는 내부를 지니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의 풍경을 담는다.”고 말한다. [본문으로]
  7.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35쪽. [본문으로]
  8. 뒤샹에게는 기욤 아폴리네르라는 시인이 있었다. 아폴리네르는 그의 뇌를 자극하는 도끼와 같았다. 뒤샹은 텍스트, 종이의 세계에 이끌린다. 책은 움직이는 지식 상자였고, 이동하는 전시관(녹색상자)이었고, 활자화 된 그림이었다. 뒤샹은 1912년 11월 고문서 학교의 사서 훈련 교육을 받는다. 1915년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는 생트-주느비에브 도서관에서 자원봉사자로 근무를 한다. 도서관은 뒤샹에게 미술계에서 도망칠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하지만 사실 그것 이상이었다. 뒤샹의 작품과 글,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는 그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고대 철학을 비롯해 원근법과 광학에 대한 르네상스 논문을 광범위하게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뒤샹은 메모광이기도 했다. 노트에 자신의 예술 활동과 창작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언어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뒤샹은 그의 애인이었던 레이놀즈와 ‘책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1921년판 『위비 왕』의 장정 작업을 한다. 그 이후에도 텍스트와 연계된 잡지 작업 등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폴리네르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에나멜을 칠한 아폴리네르> 그림이다. 산업용 페인트를 홍보하는 기존의 양철 광고판에 브랜드 이름을 가리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성과 동음이의어를 만들어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였다. ‘마르셀 뒤샹(으로부터)라고 서명해 (’마르셀 뒤샹에 의한‘이라고 하지 않고) 자신이 공예로서의 회화에서 멀어졌음을 강조했다. 매슈 애프런,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6~89쪽. [본문으로]
  9. 아폴리네르가 죽은 뒤 뒤샹은 초현실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앙드레 브르통을 만나 뉴욕의 초현실주의 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한다. 초현실주의 잡지 『VVV』를 만들기도 한다.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5쪽. [본문으로]
  10.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65쪽. [본문으로]
  11.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 미술을 업으로 삼지 않는다. “그림이 직업이 되는 순간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시장의 요구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므로 예술은 죽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질문을 던지는 자가 되기 위해, 미술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다.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미술과 존재. 예술과 생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멀어질수록 그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우물 안에서는 우물의 크기의 하늘이 보일 뿐이다. 뒤샹은 우물 밖으로 벗어났기에 다른 위치에서 거리를 두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거리를 두는 일, 그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예술이라는 직업에 얽매였을 때 발생하는 피곤과 눈치를 거부하기 위함이었다. [본문으로]
  12. 졸업앨범에 그는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도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라는 이상의 친필이 담겨 있다. 권영민 엮음, 『이상 전집』, 뿔, 2011, 391~394쪽. [본문으로]
  13. 뒤샹은 예술가는 단독자이고, 노마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 속에서, 뒤샹의 <여행 가방 속 상자>는 그의 주요 작품들 이 복제의 형식으로 ‘여행용 가방’처럼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필자는 21세기 녹색 상자는 곧 스마트폰, 노트북이라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14. 매슈 애프런 외,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43쪽. [본문으로]
  15. 매슈 애프런 외, 같은 책, 43쪽. [본문으로]
  16. 이런 의미에서 주체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여성으로, 타자로 자신을 만듦으로써, 주체는 운동성을 갖는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의 네 번째 노래에 보면, “네 번째 노래를 이제 시작하려는 자는 사람이거나 돌이거나 나무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발화하는 자는 한 명이 아니다. 발화하는 주체는 세계와 자연 속에 잠재해 있는 어떤 보편적인 어떤 목소리를 받아 적는다. 사물은 더 이상 고정되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무엇이 주체이고 무엇이 대상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본문으로]
  17. 뒤샹과 이상을 하나의 선상에 놓고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서, 일방적으로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상상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이상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작품을 썼을까. 다만 꿈 꿔 볼 뿐이다. [본문으로]
  18. 뒤샹 역시 이런 말을 남긴다. “대개 사람들이 ‘나는 알아’라고 말할 때 그들은 사실 아는 게 아니라, 믿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진정한 개인임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의 형태가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오직 예술에서만 인간은 동물적 상태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술은 시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들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매슈 애프런 외,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의 인터뷰」, 『마르셀 뒤샹』, 현실문화연구, 2019, 17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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