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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춤을] [즐거운 학문], 탈주자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

수유너머웹진 2019.04.22 20:22 조회 수 : 40

[즐거운 학문], 탈주자를 위한 하드 트레이닝

 

 

 

모 로 / 수유너머104 세미나회원

 

 

 

‘낳을 때가 아니면 낳지 말라’(73. 성스러운 잔혹성 中)고 일렀건만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로 향할 미숙아 같은 글을 낳게 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니체의 《즐거운 학문》 제2부를 접한 나의 신체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짜증이 극에 달했고, 심히 피로해졌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다. 세미나 당일에는 급기야 머릿속이 혼탁해져 발언이 무분별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적잖은 것들이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데, 그럴 때마다 난 기어이 그 정체를 밝혀야만 직성이 풀린다. 이번엔 도대체 무엇이 나를 자극한 것일까? 우선 격랑을 진정시키기 위해 세미나 다음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내리 두 편의 영화를 봤다. - 제2부의 주요 소재였던 예술에 대해선 거의 논의하지 못했는데 나에게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영혼의 비스킷이라 답하겠다. 아울러 이 시대 최고의 예술은 영화라 생각한다 - 다소 진정된 내가 찾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니체의 글쓰기법, 즉 문체이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내가 쓰는 언어를 이해한다고 확신하는가?] -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中

 

 

이토록 놀라운 유용성이라니!

 

제2부의 내용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지금의 나로선 불가능하다. 텍스트만 생각하면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때문이다. 대신 나의 신체가 감지한 것을 면밀히 규명해봐야겠다. 이것이 현재의 나의 힘에의 의지이며, 니체라는 한 예술가를 감히 평해보는 나쁘지 않은 접근이 될 것 같다.

 

[이 운율을 붙인 말은 명료한 전달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모든 유용한 합목적성을 조소하기라도 하듯이 세상 모든 곳에서 솟아나오고] - 84. 시의 기원

[망상이란 느끼고 보고 듣는 일에서 자의가 돌출하는 것두뇌의 방탕한 향락무분별에서 느끼는 기쁨] - 76. 가장 큰 위험

 

자의의 돌출! 두뇌의 방탕한 향락! 바로 니체의 텍스트가 이러하다는 데 우리 세미나원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돌직구를 날리는가 싶다가도 저의를 알 수 없는 반어법을 쓰기도 하고, 언중들과의 약속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자신만의 자의적인 개념을 생성하는가 하면, 같은 단어라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벼워져라’ 하면서도 마냥 멍 때리고 읽는 독자는 안드로메다로 보내기 일쑤. 그래서 니체의 텍스트를 읽기 위해서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 난 아직 본능화는커녕 체화하지 못해 가볍게 읽는 경지가 아니다 - 하며, 별도의 독해법을 몸에 익혀야 한다. 몇 가지 유형을 들자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① 같은 단어라도 어떤 맥락에서 어떤 단어들과 결합했는가에 따라 반대의 가치를 갖는다.

▶[자연 속에서의 정열은 극히 눌언이고] (--> 본연의 순수한 충동) (80. 예술과 자연)

[이탈리아인들 덕분에 노래하는 정열이라는 또 다른 부자연스러움을 기꺼이 참을 수 있게 된 것처럼] (--> 가식적으로 고양된 감정) (80. 예술과 자연)

▶[늙은 무용교사] (--> 지혜로운) (75. 제3의 성)

   [늙은 아리스토텔레스] (-->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지 못하는) (75. 제3의 성)

▶[정열적이면서도 느린 정신의 템포인 안단테의 발전속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 면밀한) (10. 일종의 격세유전)

   [보편적 신앙이 모든 정신적 과정에 대하여 요구하는 저 느린 템포](--> 보수적인) (76. 가장 큰 위험)

 

② 반어법을 빈번하게 사용해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건전한 상식”의 옹호자들이 모든 시대에 걸쳐 다수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76. 가장 큰 위험) --> 이 말은 반어법일까? 아닐까?

 

③ 통상 부정적으로 쓰이는 개념도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다.

▶[유령 같은 아름다움이여!] (60. 여성과 원격작용)

▶[죽음처럼 고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방랑자들은!] (59. 우리들 예술가들)

--> 정말 부정적으로 쓰인 게 아닌 걸까?

 

④ 행간을 읽어야 한다.

▶[남자의 본성은 의지요, 여자의 본성은 응낙이다. 진정 이것이 양성의 법칙이다!] (68. 의지와 응낙)

-> 이렇게 쓰여 있다고 이것이 니체의 생각일까? 이를 통해 진짜 하려는 말은 무엇일까?

 

니체는 종종 여성은 변덕스럽고 헤아리기 어려운 존재 - 어찌 여성만 그러하겠는가! - 라며 역정을 내곤 하는데, 그렇다면 니체의 텍스트야 말로 "여성"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어져야 할 다음 질문은 왜 그는 이렇게 쓰는 것인가. 즉, 우리의 사고회로를 교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의 기원(84 아포리즘)’ 편에서 니체는 시(운율)와 음악에 잠재하는 어떤 강제력, 기술적 수단으로써의 미신적 유용성, 마술적 힘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혐오』는 책 한 권 전체가 이러한 내용들로 이뤄져있다 - 나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텍스트도 그 자체로써 미신적 유용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물론 니체는 시와 음악의 부정적 기능을 비판 - 나는 예술의 선전·선동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읽었다 - 하기 위해 미신적 유용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나, 이글에서 나는 긍정적 개념으로 변주하련다.

 

 

첫째, 탈주의 글쓰기로 가치를 전복시키는 작업.

 

[대부분의 사람들은 찬성이나 반대의 궁극적이고 확고한 근거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그러한 근거에 대해 사후에나마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 현존재의 경이로운 불확실성과 애매성 한가운데에 머물며 물음을 던지지 않은 것물음의 욕구와 기쁨 앞에 몸을 떨지 않는 것 … 이것이 바로 내가 경멸하는 것이다.] - 2. 지적 양심

 

제1부 ‘2. 지적 양심’ 편에서 니체는 시대의 규범(중력장)에 물음을 던지지 않고 안주하는 우리들을 크게 나무랐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이성, 예술, 성, 덕 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집요하며 독창적인 해석을 손수 제시하며 지적 양심이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준다. 글쓰기에도 당대에 통용되는 규범이란 것이 있다. 만약 니체가 규범적 글쓰기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면 그것은 배신일 것이다. ‘75. 제3의 성’ 아포리즘에 빗대자면 니체의 글은 지배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다른 성에 속하는 작은 여자"이다. 고로 《즐거운 학문》 이 책의 내용과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지적 양심의 사례집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지적 양심’을 배양시키는 트레이닝.

 

[결국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을 통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기적의 선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 99.쇼펜하우어의 추종자들.

 

하지만 각각의 가치들이 무엇인지 니체가 공으로 퍼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에게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가치를 생성할 것인가’라는 개인 미션이 주어진다. 문제는 결여된 지적 양심을 복원하는 길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모호하며 역설로 가득한 니체의 암호문을 우리는 가진 애를 써서 최선을 다해 해독해야 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지옥훈련 입문이다.

다시 말해 니체는 자신의 텍스트를 읽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각자 가치를 생성하는 법을 트레이닝 시키고 있는 것이다. 텍스트를 통해 사고법을 훈련시키다니! 무슨 ‘기적의 기억법’ 같은 두뇌 훈련법이 연상되기도 하고, 100년 전 텍스트가 살아 숨 쉬는 채찍이 되어 마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미래의 인류를 조련시키기 위한 니체의 기획은 아닐는지.

 

[오로지 창조하는 자로서만 우리는 파괴할 수 있다.] - 58. 오로지 창조하는 자로서만!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즐거운 학문》은 나에게 즐겁지 않다. 2부에 접어들면서 부쩍 난이도가 높아졌는지 나는 기진맥진해져 흥미를 잃었다. 훈련을 하다보면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는 것이고, 그 슬럼프를 이겨내면 크게 도약하기도 한다. 아마 나는 그 지난한 과정에서 외로이 분투 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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