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와 M.C.에셔 (1)

- 스무 살,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금은돌 (시인, 화가)

 

 

 

 

 

1. 스무 살의 기형도

 

시인 기형도의 스무 살은 어떠했을까? 그는 어떤 청춘을 보내고 있었을까? 그의 스무 살이 궁금하다. 기형도는 등단 이후, 4~5년 간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다가 급작스러운 죽음(1989년 3월 7일)을 맞이했다. 알려진 대로 기형도 시인은 중학교 3학년 때 손위 누이 기순도 씨의 죽음을 겪은 뒤,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춘기 무렵이다. 여기서 가정법을 가동시켜보자. 그가 습작 기간 내내 시를 썼다는 가정이다. 1985년에 <동아일보> 등단까지 그는 10여년의 시간이 있었다. 무리한 설정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기형도 시인은 등단 이후의 시기보다, 습작기, 문청 시절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세대학교에 입학 후, 연세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습작 시기를 갖는다. 방위병 시절 ‘수리’시 동인 활동을 할 때 발표했던 「사강리」나 연세대학교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인 「식목제」의 경우,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포도밭 묘지」 역시 1986년에 발표하였지만, 이 작품은 1982년에 거의 완성되었다. 기형도는 한 편의 시를 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서야, 깔끔하게 정서된 문서로 보관하였다. 퇴고 과정에서도 펜으로 끊임없이 고쳐 썼다. 시를 완성했을 때에는 정확한 날짜를 기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등단한 이후에도 문예지에 발표한 시를 복사하거나 정서한 상태로 보관하였다. 시집을 구성할 때도 직접 시의 배열도를 작성했다. 각 시편들에 일정한 점수를 매기며, 시집 배열 구성에 온 정성을 기울였다.1

 

 

등단제도를 제거하고 보았을 때 사실, 그는 이미 시인이었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시인이었다. 시적인 몸을 만들고, 시를 노래하고, 시를 향유하며, 시로 숨쉬고, 시로 살고 죽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시를 읽어주기를 좋아했고, 자신의 시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엄격하고 냉정했다. 새로운 시선을 갖기 위해 제3의 길을 가기 위해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시를 품고 살았고, 시를 쓰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어떤 다른 이름보다 시인이라 불리기를 원하였다. 파고다 극장에서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그의 자리엔 시집 원고가 든 가방이 있었다. 그 가방 속엔 제3의 길이 있었다.

 

 

2. 제3의 길을 선택하는 방식

 

지금의 나는 참여시(혹은 민중시), 순수시라는 작위적 이분법이 소재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당대를 살아가는 詩人의 가치지향성에 위배되는 허약함이라 비난받을 수 있겠으나, 나는 모든 사물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구조 및 현상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통하여 예술적 美學과 현실적 가치체계(혹은 理想型으로서의 질서공간) 모두에 접근하고 싶다. 전자의 구체적 이미지와 후자의 상관주의(칼 만하임의 의미에서)가 서로 만나고 부딪히는 詩世界는 나에게 다양성을 제공해 주는 무수한 時流적 갈등을 강요할 것이다.2

 

 

 

 

                 기형도문학관 시벽,  1985년 당시 기형도의 필체가 담긴 미발표 자료

 

 

기형도는 갈등하고 있었다. 고민하고 있었다. 참여시와 순수시라는 이분법에 그 자신이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분법을 가로지르는 방법을 모색하고 선택하려 했다. 바둑을 둘 때, 포석을 깔듯이, 자신의 집을 지으려고 했다. 참여시와 순수시 사이를 가로지르는 제3의 길을 찾고자 했다.

 

등단하기 전부터 이런 고민과 모색이 있었기에, 그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필자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고자 했는지, 그 출발선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시적 태도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보는 일이다. 스무 살로 돌아가는 일이이다. 1979년~1980년으로 돌아가 보는 일이다. 스무 살에 썼던, 등단 이전의 시라고 얕보지 말자. 당시 문예지에 발표하지 못한 미발표작이라고 비평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말자.

 

 

3. 시의 魂, 그리고 시인

 

기형도 시인은 꼼꼼하고, 섬세하고, 집착도 있고, 완벽주의적 성향도 있고,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높은 편이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할 때, 데스크 결재 때문에 자신의 글이 고쳐지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지상에 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환상적이었다. 신문사 재직 시절,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기사를 작성하였다고 한다. 밤새 기사를 수정하고 다듬었다. 심지어, 데스크 편집장의 결재가 떨어진 기사조차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수정하였다.(직장 내에서 한 번 결재 난 원고를 다시 수정하는 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편집장의 결재가 떨어진 신문기사를 말단 기자가 수정하여 신문에 내는 일은 징계‘감’이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같지만, 타자의 말에 흔들리는 편은 아니었다. 경청하지만, 무엇을 결정할 때, 신중했다. 조심스러웠다. 심사숙고 기간이 긴 편이었다. 한 편의 시를 퇴고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예민하고 또 신중했다. 한 편의 시는 이미지와 사유의 축적 결과이다. 자신의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조숙했다. 미래의 시간을 선취하여, 미리 시 속에서 늙어버렸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스무 살 때부터 나타난다. 1980년 2월에 집필한 시 「시인 1」을 살펴보자.

 

 

              나의 魂은 主人 없는 바다에서 一萬 갈래

             물살로 흘렀다. 一千 갈래는 고기떼로 표류

하였다 그 중 너덧 마리는 그물에 걸리었다.

 

한 마리는 뭍에 오르자 곧 물새가 되어 날아갔다.

부리가 흰 물새는 한번도 울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 물새의 魂은

九萬里 공중을 날다가 비가 되었다. 내릴 데

없는 물 같은 비가 되었다.

                                          -「시인 1」 전문 (1980. 2)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이 대학 2학년 시기에 쓴 시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시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투절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인은 어떠한 존재일까?

 

 

 

                             기형도 시인이 사용하던 타자기

 

 

 

4. ‘~이다’가 아니라 ‘~되다’

 

시를 쓰는 일은 혼(魂)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비가시적 영역의 존재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귀신의 영역이다. 실재하는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형태를 바꾼다. 시는 “~ 은 ~이다”가 아니라 “~은 ~되다”의 문장 구조를 가진다. 시인은 “되다”의 주어 격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주어 역시 불확정성의 대상일 뿐이다. 구체적인 유일무이한 존재자가 없다. “主人 없는 바다”라는 구절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주인 없는 바다에서 一萬 갈래 물살로 흩어지는 것이 시혼의 출발 방식이다. 시인의 영혼은 一千 갈래 고기떼와 같다. 그 물고기는 뭍에 닿자마자, 물새가 되어 날아간다.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은 “한 마리”의 물고기일 뿐이다. “부리가 흰 물새는 한번도 울지 못하고 죽는다.” 시인의 글쓰기는 비인칭적 죽음을 동반한다. 텍스트 위에서의 죽음이고, 글 쓰는 자의 죽음이다. 울음 한 번 크게 내뱉지 못한 자의 죽음이다. 시는 배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빈 텍스트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시론(詩論)을 만들어 간다.

 

“물새”는 “그”가 된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된다. “물새의 혼”은 구만리를 떠돈 뒤, “비”가 되어, “물같은 비”가 되어 흐른다. 주인 없는 바다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 과정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순환의 과정이 담긴 “~되기”라고. 액체의 유동적 상상력이다.

 

 

 

 

     나의 魂 ⇒ 一萬 갈래 물살(주인 없는 바다) ⇒ 一千 갈래 고기떼 ⇒

    한 마리 물고기(뭍) ⇒ 물새(하늘) ⇒ 구름(물새의 魂) ⇒ 비(물 같은 비)

 

 

 

 

 

 

5. 흐르는 주체가 ‘되어’

 

기형도 시인의 시적 주체의 특성은 물의 물질적 특성을 “흐르는 주체”라 명명한 적이 있다. 물의 변화 과정처럼, 기형도 시의 시적 주체는 순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주어의 자리는 비어 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주어의 자리에 그 무엇이 와도 된다는 뜻이다. 주어의 자리에 그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는 뜻이다. 그의 시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의 첫 구절로 유명한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다 가시라고

모든 길들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시인의 몸은 빈집과 같다. 그러니, 그 어떠한 혼이 머물렀다가 떠나도 된다. 혼의 집이다. 몸에서 혼이 새어나가는 길, 몸에서 새어나가는 시. 액체 성질로 흐르는 길. 모든 것들이 정처 없이 빠져나간다. 흐르는 길 위에 서성이는 시적 주체 역시 “흐르는” 성질을 지닌다. 그 물결 위에 어느 누가 와서 발을 적셔도 된다. 기형도 시의 공간은, 시의 육체는, 주어 자리는 비어있다.

 

비어있기에 “~되기”가 가능하다. 그 자리에 주어 “그/ 김/ 나”가 인칭이 자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그”가 “김”이고 “김”이 “나”가 될 수 있다. 비어있는 장소에 어느 누가 와도 상관없다. 그의 유고작품이라 알려져 있는 「빈집」 역시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그의 시는, 아니 그의 시집은 전체는 하나의 구멍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 시편에서 발견되는 구멍이 하나의 구멍으로 이어진다. 비어있음 덕분에, 시집 전체적으로 건축적 구조를 갖는다. 시집 전체가 하나의 건축 구조물처럼 바람이 통한다. 배관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형도 시집의 특이성을 찾기 위해서는 “주어”의 비어 있음뿐만 아니라, 공간의 비어있음을 살펴야 한다. 비어있음 덕분에, “주어”의 자리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주어의 변주가 결과적으로 서술어의 운동성을 강화한다. 시 전체적인 움직임을, 활동적으로, 틈과 틈 사이를 벌려 놓는 작용을 한다. 슬픔과 결핍과 회한과 안타까움의 구멍을 열어놓는다. 감정과 사건과 바라봄의 시선이 시집 전체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된다.

 

 

 

 

 

                                 기형도 시인이 연주하던 기타

 

 

 

5. 공존의 블록

 

“모든 되기는 공존의 블록이다”3 “공존”하기 위한 시적 장치이다. 변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존하기 위한 것이다. “되기”를 시행하는 것은 나의 자리에 타자를 모시기 위함이다. 더 불어, 함께, 따로, 같이 호흡하기 위함이다. 말로만 비어있음을 말하지 않고, 시적 실천을 하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없는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생성과 변화를 위한 출구를 모색하는 길이다.

 

「비가 2-붉은 달」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성과 “혼자”라고 하는 개별성이 공존하는 문장이다. 개별적인 혼자는 모두 위대하다. “위대한”이라는 부사어가 특별히 꾸미는 것은 “혼자”라는 개별성이다. 각기 위대한 개별자들이 모여, “우리”를 형성한다. 그런 다음 기형도는 주문을 건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죽은 영혼이건, 낯선 타자의 목소리건, 이 시대의 암울함과 고단함을 버티고 견디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어떻게 살아있어야 할 것인가? 몸 안에 다양한 혼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은 영매가 하는 일이다. 영매는 다른 존재의 목소리를 담아 두는 그릇이다. 영매의 몸은 감각적인 스위치로 작동한다. 타자가 몸 안에 들어서는 순간, ON. 나의 목소리에 압도되지 않고, 타자의 목소리가 시인의 몸 안에서, 시적 주체의 허름한 육체에서 새어나간다.

「오후 4시의 희망」을 비롯한 여타 시에서 나오는 낯선 목소리들의 실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소리 1」에서 보이는, 낯선 목소리가 새어나간다. 유령과 같은 신비로운 존재가 감지된다. 시적 주체는 자신의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타자의 목소리를 듣는 자가 된다. 허공에 떠도는 존재들이 기꺼이 존재자의 몸에 담기도록, 기꺼이 투명해지는 것이다. 시적 주체의 비어있음은 주어 없음과 연결된다. 따라서 시인은 변화무쌍한 혼을 담는 존재자가 된다. 스무 살의 기형도는 이것을 어찌 알고 있었을까?

 

 

 

  금은돌 : 발로 공부하는 사람이다. 2008년 『애지』에 평론을, 2013년 『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다.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를 비롯하여 평론집 『한 칸의 시선』이 있다. 2008년 교통사고 당시 “살아있는 것은 바라보는 일이다”라는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다. 그 이후 눈동자를 그리기 시작하여, 다섯 번의 개인전(<눈에 대한 낭만적 독해>)과 네 번의 단체전을 갖다. 2017년 여름 리좀 국제예술인 레지던스 작가로 참여하여, 프랑스 화가 Sylvie Deparis와 “숨”을 주제로 전시를 열다. 1인 잡지 MOOK ≪돌≫ 발행인이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기형도의 「비가 2」)라는 믿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 '수유너머 104'에서 공부하고 있다.  

  • 해당 글을 음성 파일로 만들어 올려 놓았습니다. 화면으로 글을 읽기 힘든 분들, 음성으로 들으셔도 좋습니다. 1인 잡지 무크 <돌>을 펴냈던 지난 작업을 이어, 1인 잡지를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 <그림이 있는 글>은 그림과 시,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연결하여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공간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그린 그림과 글을 올리기도 하고, 에세이류의 글을 올릴 계획입니다.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8년 가을호 『시와 사람』, <예술산책> 발표

 

  1. 금은돌,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 국학자료원, 2013, 182쪽. [본문으로]
  2. 같은 책, 186쪽. 이 원고는 󰡔기형도 전집󰡕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육필 원고는 2012년 11월 28일 기형도 시인의 작은 누이 기애도 씨와 필자의 인터뷰 과정에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 책에 소개, 발굴한 것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 책에 소개되기 전, 광명시 철산도서관 3층, 기형도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기애도 누이와 기형도 기념사업회의 도움이 있었다.) 2017년 11월에 개관한 기형도문학관 입구 왼쪽 바깥에 위치한 시벽으로 온전히 재현되어 있다. 이 자료 원본은 기애도 누이가 소장하고 있다. 시벽 조성 사업은 기향도 누이가 주도적으로 진행하였다. [본문으로]
  3.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3, 55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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