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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영화가 서울을 버틴다는 것

정생 2016.06.02 06:58 조회 수 : 622

  올해 전주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깊게 만난 영화에 대해 일기 같은 글을 써 보았는데, 나름의 응원 혹은 지지, 혹은 감사를 전하고자 부끄럽지만 글을 남겨봅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홀로 영화공부를 해왔고, 23살인 현재 두 편의 작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도권 밖으로 나와 홀로 공부를 하던 시절에 수유너머 같은 공간이 제 주변에 있었다면 여러모로 힘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유너머라는 공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코뮌이란 단어는 나의 마음을 흔든다. 어쩌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2016년에 살고 있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코뮌은 단어 그 자체로 내 마음을 떨리게 한다. 1871년, 파리, 코뮌, 지상 최초의 노동자정부는 만들어진지 두 달 만에 셀 수 없이 많은 피를 흘리며 사라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코뮌은 그 이후로 재현되지 못했다. 내게 있어 코뮌은 상상의 공동체다. 분명 존재했었지만, 앞으로 영영 다시 만나지 못 할 것 같은 곳. 하지만 상상하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 한 뼘만큼이라도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있는 힘껏 꿈꾸고 싶다.

 나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들을 ‘코뮨 주의자’라고 일컬으며 ‘수유너머’라는 공간에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이 쓴 책 <코뮨주의 선언: 우정과 기쁨의 정치학>을 통해 코뮨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코뮨주의는 언젠가는 도달해야 할 세상의 이름이 아니라, 언제든 도달할 수 있고 언제든 실현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코뮨주의는 대안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시도 속에서 언제든 실현된다. 우리는 머무를 곳을 찾아 이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행 속에 머무르는 사람들이다. 목적이 이행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이행이 목적을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의 여정을 코뮨주의라고 부른다. 우리가 시도하는 매번의 실험을 코뮨주의라고 부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내가 가장 깊게 만났던 영화는 다큐멘터리인 <코뮌 서울>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수유너머의 코뮨 주의자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다. 영화는 단순한 구조로 진행된다. 서울 곳곳의 이미지가 먼저 보여 지고, 그 다음 수유너머에 모여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여 준다. 이것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된다. 이것이 전부다. 영화가 바라보는 서울은, 자본에 의해 상처받고 있는 도시다. 국회의사당을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는 북아현 재개발 구역, 용산 재개발 구역을 비롯해 무너져가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바라본다. 영화는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서울을 바라보기도 하고, 카메라를 세워 놓고 바라보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길을 걸으며 바라보기도 한다. 그 이미지들만이 모인다면, 자본이 잠식해가는 서울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체가 너무나 슬프다. 영화가 바라보는 서울 속에는 스러짐과 무너짐 밖에 없다. 그 안에 사람이 없다. 대화가 없고, 이름이 없다. 

 하지만 이 슬픈 서울의 이미지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수유너머의 사람들, 책들, 이름들이 영화에 기적 같은 희망을 새겨놓는다. 수유너머의 사람들은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다. 그들은 논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큰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과 예술, 철학과 미학, 역사와 정치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하자면 취업과 학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읽는다. 그것으로부터모든 것이 시작된다. 사사키 아타루의 말, 모든 혁명은 읽고 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무언가를 읽고 쓰고 나면 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 “서점이나 도서관이라는 얼핏 평온해 보이는 곳이 바로 어설프게 읽으면 발광해버리는 사람들이 빽빽 들어찬, 거의 화약고나 탄약고 같은 끔찍한 장소라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니체의 "나는 일개 다이너마이트다"라는 대사를, 뭔가 과장되고 멋이나 부린 농담이나 그 비슷한 것쯤으로 흘려듣는 만만한 태도에 우리는 아무래도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 같습니다.”(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중)

 점점 무너져가는 서울 속에서 그들은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수유너머라는 장소를 지켜왔다. 몇 번의 이사로 인해 그들이 자리 잡은 지리적 위치는 달라졌지만, 코뮨 주의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그들의 공간은 언제나 그곳을 채우고 있는 책들과 언어들, 목소리들 아래서 그 장소가 무너지지 않고 서울을 버텨 왔다. 그 공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쉽게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희망을 느꼈다. 목소리가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목소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 공간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 정보를 얻기 위한 독서가 아닌, 그 책속에 들어가 코뮨을 꿈꾸는 독서. 세상에서 가장 전투적인 독서. 
<가난뱅이의 역습>(2012)도 <서울 코뮌>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이다. <서울 코뮌>이 수유너머를 주인공으로 삼아 서울을 이야기하듯, <가난뱅이의 역습>은 해방촌 게스트하우스 ‘빈집’을 주인공으로 삼아 서울을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손님이고 모든 사람이 주인’인 ‘빈집’에 다양한 성별, 나이대,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빈집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풍경들과 빈집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회의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들은 이 집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회의한다. 규칙을 정하고, 누군가를 환영하고,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이사를 가고, 예산을 짜고. <서울 코뮌>의 독서가 <가난뱅이의 역습>에서는 회의인 것이다.

 두 편의 영화가 취하고 있는 방법론. 한 공동체를 찍으며 그들 공동체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 그 공동체가 숨쉬는 법, 그 공동체가 운동하고 있는 현상 자체를 기록하는 것. 그 선택에는 자본이 개입되지 않는다. 관객들과 극장에 익숙한 형태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편의 영화는 개봉하지도, 많은 영화제에서 소개되지도 못 했다. 말하자면, 기껏 만들어져서는 몇 안돼는 사람들과만 만나고 홀로 남을 가능성이 큰 영화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론이 두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장 정확하게 합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갈수록 변화무쌍해지고 따라가기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믿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영화도 멈춰서서 그들의 어쩌면 지루한 이야기를 그저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루한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중 문득 내 이야기가 되고, 그들의 치열함이 문득 내 치열함이 되는 그 순간들이, 두 영화가 영화적으로 도달하려 하는 어떤 순간들인 것이다. 

 

 두 편의 영화는 이미 비주류인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도 또 다시 비주류인 영화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우선 관객과 감독을 생각하기 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영화가 살고 있는 시간들에 가 닿으려고 애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두 편의 영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감동과 위안을 받았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상, 아무도 그 영화를 찾지 않더라도 그 영화 안에는 그 영화가 기록한 시간들이 영원히 존재한다. 지금 서울에서 필요한 어떤 애씀들, 시간들을 온전히 기록해 준 두 편의 영화가 나는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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