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께 듣다, 수유너머 104란?

팡자 2017.05.09 20:21 조회 수 : 6864

“멋있다.”
2000년대 초반, 구독하던 한겨레신문에 자주 오르던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라는 연구자들의 활동기사에 대한 당시의 느낌이다. 다양한 강연과 저술로만 먹고사는 ‘공부의 달인들’과의 인터뷰, 신간도서 출판소식, 다채로운 세미나 , 새로 개설되는 강좌, 심포지엄 그리고 연대하는 사회적 활동 등 나름  신선한 활동에 대한 호기심으로 기사를 꼼꼼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개된 신간 서적 중 ‘쿄문주의 선언’을 포함한 몇 권의 책을 구입해 읽기도 했었다. 드디어 2017년 1월, 제도밖, 학교밖 배움터에 대한 오랜 로망이 수유너머 연구실과 ‘+’, 즉 접속되었다. 동시에 대뇌 시냅스에서 새로운 학습이 연일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 공부, 밥’ 등을 통해.

 인터뷰어(interviewer) 호심이(好心)는 수유너머령(齡)으로 100일을 갓 넘은 새내기이다. 그에게 ‘수유너머 104’ 홈페이지 개설과 동시에 ‘알고 싶다, 비욘드 수유’의 궁금증이 해갈되는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 손기태 선생님과 김충한 선생님 두 분께 식사, 운동, 산책 등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들어본다. ‘수유너머 발자취’와 ‘수유너머 104’에 대해.


수유너머는 발전적 분화 중

 

▶ 호심이: <수유너머 N>이 해체되고 새 연구실 이름이 <수유너머 104>로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수유너머’란 이름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수유너머 시작을 정확히 언제라고 해야 할까요? 공동체 시작과 더불어 줄곧 동반한 ‘수유너머’란 이름에 어떤 남다른 애착이 있을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1999년, 따로 운영해오던 두 공동체, 그러니까 수유리의 작은 공부방에서 시작된 국문학 연구자들의 ‘수유연구실’과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독립해서 나온 연구자들이 결합해 <수유연구실 + 연구공간 '너머'> 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10년 정도 <연구공간 ‘수유+너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에 다양한 형태로 코뮨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문제의식 아래 여러 개의 ‘수유너머’들로 분화되었지요. <수유너머N>도 그렇게 생겨났구요. 이번에 새로 출발하는 <수유너머 104> 역시 ‘코뮨’에 대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라는 이름 자체를 고수하려 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수유너머’가 추구해온 ‘코뮨’에 대한 문제의식을 계속해서 밀고 나가려는 것이겠지요.”(손기태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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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위, 바위, 보! 오늘은 누가 이겼을까요? 설겆이도 선물, 이겼으니까

 

▶ 호심이: 수유너머 104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여곡절 끝에 이 이름이 결정되었다고 들었는데, 작명의 뒷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수유너머 일공사, 수유너머 S, 수유너머 알레프, 수유너머 소소 등 여러 이름들이 추천되었습니다. 그 이름들 모두 취지도 좋고 그 의미도 좋아서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지적이면서도 눈에 튀는 이름도 거론되기도 했는데요. 그러다가 이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이름은 간소하고 간명하게,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짓되, 진정성 있는 운영에 더 치중하자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수유너머 104>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4월 말에 이사할 새로운 공간의 위치가 마침 ‘104고지’ 정류장 근처여서 ‘104’라는 명칭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김충한선생님)
 

▶ 호심이: 기존의 <수유너머 N>과 달리 <수유너머 104>에서 달라지는 것들이 있을까요?

 “아쉽게도 그동안 <수유너머 N>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연구실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저희가 공부하는 연구자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외부와의 다양한 접속에 소홀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영화, 음악, 미술, 작품 전시회 등 예술관련 활동들이 부족하고 미흡했다고 자평해봅니다.

 최근엔 연구실에 예술관련 활동가들의 접속이 많아졌는데, 그분들과 결합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방식의 도전이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서예 동아리를 비롯해서 영화, 미술작품 전시, 요리, 제빵 및 텃밭 가꾸기 등 먹거리와 그 밖의 다양한 동아리 활동 등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기를 기대하며, 또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손기태선생님)

 
▶ 호심이: 모든 것을 코뮨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Sub specie communitas!),  그렇다면 코뮨주의’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요?

  "어원상 코뮤니즘(communism)이란 코뮨(commune)이란 말에 무슨 ‘주의’를 뜻하는 이즘(ism)을 붙인 것입니다. 코뮨(commune)이란 ‘함께’, ‘묶음’ 등을 뜻하는 cum과 ‘선물’을 뜻하는 munis가 결합된 것입니다. 즉, 코뮨은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결합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코뮤니즘(communism)은 통상 ‘공산주의'라는 단어로 번역됩니다.

반면, 우리가 지향하는 코뮨주의는 ‘우정’의 관계로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환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인과의 상호적 배려, 이해타산적으로 계산하지 않고 주고받음에서, 심지어 되돌아오는 결과에 대한 계산 없이 선물을 나누는 관계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함께 생산하고 함께 소유하는 생산양식”이라는 경제주의적 공산주의(共産主義) 개념에 갇혀버리지 않고, ‘다양한 공유와 공속, 공생의 삶’을 추구하는 관계를 표현하는 이념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선물을 나누는 관계가 반드시 물질적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로 ‘나누려는’ 마음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 서로가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공부도 나누고, 식탁도 나누고’ 하는 그러한 여러 형태의 ‘나눔’의 관계가 곧 코뮨이겠지요. 선물이란 이렇듯 코뮨을 구성하고 살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다양한 구체적 행동들을 말합니다.”(손기태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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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수유너머지기 대표 주자, 자전거로 운동중이신 손기태선생님!
공간은 선물로 채워진다. 이 자전거 역시도.

 

내적인 관계들을 통해 활동과 역량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

 

▶ 호심이: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인문학 연구 공동체가 많아지고 있고, 주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요, 다른 공동체와 구분되는 수유너머만의 차이점이나 개성은 무엇일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인문학 연구 공동체가 생겨났는데요. 그동안 수유너머에서는 전문 강사들을 모셔다가 강좌를 열어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이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 이를테면 관심 있는 강좌나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혹은 하고 싶은 세미나를 스스로 개설하는 등 내적인 관계들을 통해 활동과 역량을 만들어가는 것, 밥, 산책, 청소 등이 공부와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더 중시해왔습니다. 곧, 코뮨을 만들어가는 활동들이 수유너머의 공부를 진전시키는 밑바탕으로 삼아 왔습니다.

 공부와 다른 활동이 서로 섞이는 것, 이것이 수유너머와 다른 인문학 연구 단체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이미 공부했거나 강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누면서 다른 활동들과 뒤섞이게 되고, 그렇게 해서 또 다른 새로운 활동들을 촉발하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아요.”(손기태선생님)

 

▶ 호심이: 한마디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지식의 생산이 가능한 곳’인 것 같네요. 주변에서 공동체를 찾아 가기도 하고 또 스스로 모임을 만들기도 하면서 다양한 양태의 공동체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 예기치 않게 엄청난 갈등과 번뇌를 겪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출발한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요, 수유너머를 찾아오고 싶어 하시는 분들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실까요?

 “수유너머도 여러 유형의 공동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에 어떤 유일한 기준이나 잣대를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수유너머도 많은 공동체들이 겪는 온갖 어려움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경험해 왔었구요. 오히려 이러한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공동체에 대한 그동안의 생각이나 활동방식을 바꾸어 가는데 가장 값진 밑바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동체가 경계해야할 모습 가운데 하나가 내부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배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성을 깨뜨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쉽게 그들만의 우물에 갇히게 되고 말 겁니다. 외부와의 접속, 즉 외부성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공존할까에 대한 고민이 살아있는 것이 장점이지 않을까 싶네요.”(김충한선생님)

 

▶ 호심이: 수유너머가 어느덧 스무살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는데요, 외부자로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수유너머를 지켜보면서 인문학 부흥에 거름 구실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간 불편했던 오해나 헛소문이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초창기에는 수유너머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꿈, 동경, 수유너머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나온 여러 성원과 기대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구요.

 반면, 시간 많고 돈 많고 철없는 사람들의 자족적인 모임,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없이 학자연하면서 헛된 관념을 양산하고 소비하는 곳으로 치부하던 시각도 있었습니다.

 글쎄요. 헛된 관념만으로 어떻게 20년 가까이 유지될 수 있었겠어요? 그 어디보다도 예리하고 치열한 비판이 그치지 않는 학술 운동 안에서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인문학이 구체적인 현실과의 접점을 잃고 ‘문화 교양주의’가 되어버리는 것을 특히 경계했었던 것 같습니다. 수유너머 N의 활동 초기인 2011년에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었습니다. 지식과 교양의 습득에만 머무르는 당시의 인문학 풍토에 대해 인문학의 불온성을 지피려는 시도였습니다.”(손기태선생님)

 

코뮨주의적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제시해온 사상가들과 함께

 

▶ 호심이: 세미나는 누구든 원하는 참가자들이 개설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오랫동안 수유너머에서 장수하는 세미나들이 있는 것 같아요. 수유너머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철학자나 사상가는 누구일까요?

 “수유너머가 표방해온 쿄뮨주의에 대한 사상적인 자극과 촉발을 제공하고 코뮨주의적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제시해온 사상가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다들 아시듯이, 들뢰즈나 니체, 푸코, 데리다, 프로이트, 맑스, 스피노자 등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이 기준점이 되는 것은 아니구요. 언제라도 다른 많은 새로운 많은 사상가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김충한선생님)

 

▶ 호심이: 물론 ‘동일성’을 추구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오랜 기간 수유너머지기로 활동하시면서 수유너머 회원들의 공통점 같은 건 없을까요? ‘수유너머지기답다?’라고 해야할까요?

 “수유너머지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ㅠㅠ 아마도 수유너머 회원들의 공통점이라면,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 적극 공감하고 마음으로 지원해주시고 참여하는 분들의 공통점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함께해온 분들도 있고, 혹은 잠시 떠났다가 다시 합류하게 된 분들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원으로 참여하시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함께 세미나에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이런 모든 분들의 공통점이라면,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덜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분들이 수유너머와의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손기태선생님)

 

▶ 호심이: 연구실에 온지 얼마 안 돼 1박 2일 회원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연례행사였던 것인지 그리고 어떤 성격의 활동이었는지 궁금하고, 이밖에 회원 간의 멤버쉽 트레이닝이나 유대 강화 및 특별한 행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연구실이 명칭도 바뀌고 이사도 하면서 새롭게 출발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회원들끼리 발야구도 하고, 산책도 하고, 앞으로의 운영에 대해 토론도 하고, 밤늦도록 뒷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 정도이고 매월 운영회의와 전체 세미나를 합니다.

 수유너머에서는 매주 화요일마다 모든 분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화요토론회, 강연, 각종 공연이나 상영회 등이 그것인데요. 여기에도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김충한선생님):

 

▶ 호심이: 공동체적 관계와 가치에 뿌리를 둔 윤리나 약속 등은 코뮨 운영에 필수적일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편으로 매월 연구실 임대료와 운영비 등 현실적인 문제와 외부에 대한 개방성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수유너머 104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계획이신가요?

 “윤리와 관련된 약속이나 규칙은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반대로 활동을 억압하는 기제가 되기도 합니다. 수유너머에서 이러한 약속이나 규칙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여긴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없으면 보이지 않은 권력관계를 만들거나, 또는 오랜 관성대로 움직이게 해서 사태를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듭니다.

 수유너머에서는 윤리와 관련된 규칙들을 계속 만들고 또 바꾸는 과정을 계속해온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이나 규칙이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그러한 약속이나 규칙들이 불변의 의무사항인가, 아니면 언제라도 내적인 요구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지고 바뀔 수 있는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이든 비회원이든 이런저런 부담이나 의무적인 요소는 어느 정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세미나 간식준비, 식사 준비나 보조, 청소 등등. 또 회원들은 월회비도 내야하고, 운영회의나 주방 요리, 청소 등에 참여해야 하구요. 물론 이는 각자의 사정에 맞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요.


 또한, 예산 문제는 아주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회원들의 회비, 세미나나 강좌, 특별회비 등으로 겨우 한 달을 메웁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연말에 결산할 때마다 다들 감탄의 탄성이 쏟아집니다. 늘 빠듯하게 운영을 했음에도 월세를 펑크내본 적도 없고, 연말이면 수입과 지출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외부 기금이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온 것이 수유너머가 갖는 이러한 자립성과 독립성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손기태선생님)
 

▶ 호심이: 회원의 자격조건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회원에 대한 외적인 규정을 엄격하게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얼마나 연구실 활동에 함께 참여하는지, 사람들과 잘 섞이면서 어울리는지, 무엇이 되었든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려고 하는지 등 이런 점들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위나 전공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우선시하거나 그것에 얽매이지도 않구요.

 또한, 수유너머 104로 개편하면서 ‘친구회원’이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기존의 회원 규정이 다소 폐쇄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여건상 회원으로 활동하기 어려웠던 분들까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싶지만, 시간이나 여건상 회원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친구회원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수유너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지요.”(김충한선생님)

 

▶호심이: 제가 붙여드린 별명이 집사님인데, 연구실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회원이든 비회원이든 좀 생각해줬으면 하는 것,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없을까요?

 “전등고치기, 전기, 컴퓨터, 음향, 마이크, 프로젝트 등 가전기기들을 다루고 설치, 회계 등의 일을 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한데 하던 사람만 계속 하게 되고, 안 하면 못한다는 이유로 계속 또 안 해도 되는 것처럼 되어가도 괜찮은 문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다른 사람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세미나 각 반장들에게 음향기기 사용 및 프로젝트 설치법 등을  교육시키고 있죠. 반응도 좋았고, 잘 배웠습니다.


 최근에 ‘쓰고 난 물건 제자리에, 사용한 컵은 씻어서 제자리에’를 쓴 종이를 연구실 곳곳에 붙였습니다. 화장실, 세탁기 사용 등 함께 사용하는 청결이 특히 중요한 공간이나 기기에 대해서 세심한 배려와 주의를 조금만 더 기울려주셨으면 좋겠어요.”(김충한선생님)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바꾸어가는 공동체

 

▶호심이: 연구실은 얼마나 되셨는지, 그리고 나에게 수유너머란?,간단히 한 마디로 한다면요?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던 초창기에 저에게 “왜 너 거기 있느냐? 맨날 공부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 등의 질문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 제 대답이 그랬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 것을 공부로 하고 있다.” 여전히 그 대답은 제게 유효한 거 같아요. 수유너머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충성심이나 의리는 매우 부족한 편에 속합니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분들에게 늘 배우고 자극받을 수 있어서 수유너머에 있습니다.” (손기태선생님)

  “ 2011년 강좌를 들으러 온 것이 인연이 되어 회원까지 하게 됐으니 벌써 6년째네요. 원래 학부 전공은 물리학이었지만, 인문학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철학과 물리학을 같이 공부해보자'란 야심찬 생각에 철학과 과목들을 들었지요. 그런데 철학과에서 강의를 들을수록 강의란 형식이 인문학 공부에 적합한가란 의심이 생겼어요.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선 누군가 앞에서 얘기하는 걸 받아 적고 기억하는 것보다는 비슷한 수준의 동료와 토론하며 공부하는 것이 적합하겠다고 결론을 내렸죠. 마침 수유너머N이란 곳에서 하는 '이진경의 철학교실' 이란 프로그램이 딱 그런 형식이었어요.(이진경의 철학교실은 토요일 강의와 일요일 세미나를 모두 참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음)

 그리고 수유너머N이란 곳에 와보니 많은 것들이 제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공부 형식, 삶의 양식과 일치했어요. 돈 걱정 없이 밥을 먹을 수 있고, 한 달에 2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모든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고, 또 무엇보다 같이 공부하고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대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스터디를 만들어서 같이 물리학 공부를 했지만, 생활을 공유하지는 않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세미나란 공부 양식을 원했던 것도 결국 사람들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싶다란 욕망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수유너머는 제게 있어 그런 욕망을 실현하게 해준 곳이에요.”(김충한선생님)
 


▶ 호심이: 수유너머가 자신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동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전에는 공동체를 동질적인 집단으로 생각하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공통된 이념이나 가치를 더 중시한 것 같아요. 그것이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는 다분히 계몽적인 발상일 수 있는데, 수유너머에 와서 그런 생각이 깨졌습니다.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바꾸어가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건강한 공동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상과 함께, 운동이나 활동에 대한 방향도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손기태선생님)

 

충한선생님 산보.jpg
▲ 공부도 체력, “산보갑시다.” 식사후 누군가의 선창과 함께 식후산책은 매일 계속된다.
맨 앞줄 가운데 흰색 차림의 인터뷰이 김충한 선생님도 산보중이시다.

 

▶ 호심이: 수유너머 104의 1년 커리큘럼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데 소개 부탁드려도될까요?


 “1년 커리큘럼이라고 할 만한 것은 크게 토요인, 인사원, 계절 강좌 정도 있겠네요. 토요인문학(토요인)은 인문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 강좌로 한 시즌당 10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1년에 3,4회 정도 열리구요. 이에 비해 인문사회과학연구원(인사원)은 대학원 수준의 인문학 강의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학기제로 구성되고 한 학기에 두 과목이 개설돼요. 계절 강좌는 여름 방학, 겨울 방학 혹은 봄, 가을에 열리는 상설 강좌로 난이도로 따지면 토요인과 인사원 사이 정도가 되겠네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유너머104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김충한선생님)

 

“필이 꽂혔다.”
‘수유너머 104’를 향한 호심이의 마음상태다. 옳다고 믿는 길을 계속 걸어오신 수유너머지기 선생님들께 감사하면서 매일 등하실(燈下室)하고 있다. 어릴 적 너무 맛있어서 아껴먹던 과자처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맛보면서. 수유너머가 향원익청(香遠益淸)이 될 것을 믿으며, 나도 옆에서 은은한 향기를 보태고 싶다.
 코뮨주의 선언(고병권,이진경 외,2007)을 읽다 밑줄친 문장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우리는 결국에 웃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웃으면서 시작하자고 말한다.’ 오늘 하루도 웃으면서 연구실 문을 연다. 나의 하루가 수유너머 104와 더불어 웃으면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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