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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록하는 ‘사람’ 이수정 다큐멘터리 감독을 만나다

[대학신문 2021-1128] 채은화 편집장 / 
사진: 이연후 부편집장 opalhoo@snu.ac.kr 레이아웃: 이다경 기자 lid0411@snu.ac.kr

 

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이수정 다큐멘터리 감독 인터뷰

때때로 누군가는 사회에서 내몰리거나 삶의 균열에 맞닥뜨린다. 여기 그런 사람에 주목하고 사람을 기록하는 감독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깔깔깔 희망버스>, <재춘언니>, <시 읽는 시간> 등을 제작한 이수정 감독이다. 이수정 감독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따른 희망버스 시위를 담아낸 <깔깔깔 희망버스>로 2012년에 데뷔한 후, <시 읽는 시간>, <재춘언니> 등을 제작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삶을 담은 <나쁜 나라>의 공동 연출에도 참여했으며,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의 투쟁을 담은 <재춘언니>로 2020년 부산국제영화제 비프메세나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15일(월)『대학신문』이 그가 속한 지식 공동체 ‘수유너머’의 연구실에서 이수정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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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시작하다

Q. 영화를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는 문학이 대중 예술에서 대세였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돼 문학을 하리라 생각했고요. 그래서 대학교 1·2학년 때 교내 문학회에 들어가 시도 쓰고 시 합평회도 하고 그랬죠. 그러다 3학년 끝 무렵에 교내 영화 서클에서 진행하는 대학 영화제에서 8mm, 16mm 필름의 짧은 영화들을 보게 됐어요. 저와 비슷한 대학생들이 만든 8mm, 16mm 필름의 영화들을 보니 나도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극장에서 보는 상업 영화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면, 그때 봤던 영화들은 사실적이고 가깝게 느껴져 그랬던 것 같아요. 

그걸 계기로 영화 서클에 들어갔어요. 영화 서클에 8mm 필름카메라가 있었는데, 그걸로 교내에서 이뤄지는 집회를 기록하기 시작했죠.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집회를 기록하는 과정이 매력적이었어요. 당시에는 필름을 현상하려면 일본으로 보내야 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온 필름을 자르고 붙이며 컷 편집을 하고, 편집한 걸 8mm 영사기로 돌려보는 과정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마침 당시 교수님께서 미국에서는 문학 전공 안에 영화가 포함되기도 한다며, 영화도 하나의 내러티브로서 다뤄질 수 있다는 걸 말씀하셨어요. 그 이후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봐야겠다고 결심하면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Q. 다큐멘터리를 계속해서 찍으셨는데요.

1990년대 한국에서 독립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1970~80년대 다큐멘터리가 혁명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과 달리 1990년대부터는 개인과 여성의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기 시작했죠. 저도 그런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당시 저는 상업 영화를 준비하면서 극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기획도 하며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고자 했는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어요.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또 2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죠. 

그러다 2007년에 카메라를 하나 사서 엄마를 찍기도 하고, 2008년에는 아들이 커가는 과정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2011년 희망버스 운동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때만 해도 희망버스 운동을 꼭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게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는 게 너무 오랜만인 거예요. 20대 때 노동자·농민들을 기록하고 집회나 시위를 촬영한 입장에서 나이가 든 20년 후에 그런 시위 현장을 보니까 분위기가 다른 게 느껴지고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1차 희망버스에 참여하고 난 후 이걸 영화로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죠. 

현장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 중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콜트콜텍 노동자 등 현장에서 싸우는 다양한 활동가들이 있었어요. <깔깔깔 희망버스>를 완성한 이후에도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이나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를 계속해서 기록했어요. 이후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를 다룬 <재춘언니>를 제작하기도 했고요. 세월호 사고 이후에는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나쁜 나라>에도 참여하게 됐고, 또 <나쁜 나라>를 하다 보니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 읽는 시간>을 제작하게 됐죠. 그렇게 계속해서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것 같아요.

 

그가 기록하는 사람들

Q. 여러 작품에서 노동자 문제, 특히 내몰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아오셨어요.

노동자라고 했을 때 공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만 떠올리고는 하는데, 사실 노동이라는 건 굉장히 광범위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노동자라고 할 수 있죠. 신자유주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본과 노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는 걸 자각했어요. 대기업과 대공장에서 수천 명이 정리해고되고, 그 사람들이 사회의 벼랑 끝으로 내몰려 자살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 <시 읽는 시간>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신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사람보다 시가 중심이 되는 텍스트 중심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결국 시를 전달하는 건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보니 그 사람들의 말이나 표정 자체가 시 같이 느껴졌죠. 결과적으로 처음 의도와 달리 인물이 중심이 됐어요.

<시 읽는 시간>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인생에 균열이 생긴 사람을 담아내고자 했어요. 사건을 만나지 않고 진정한 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 임재춘 씨가 시 읽는 사람이 됐어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편안한 노후가 보장될 줄 알았던 한 인물에게 예상치 못한 삶이 닥쳐온 거잖아요. 또 다른 시 읽는 사람으로는 공황장애를 앓는 제 친구를 정하기도 했어요.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고액 연봉자로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가 온 거였죠. 그런 문제들이 결국 자본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죠. 친구의 이야기는 상황상 담지 못했지만요.

시는 자본과 반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화 한 편에서는 자본과 연결되는 인물의 삶을 표현했고, 반대편에서는 시에 대해 말한 거죠. 자본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시를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다른 차원의 두 세계가 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본의 시간 속에서만 살아가는 게 전부라면 너무 비참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이런 시간도 있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잘 연결된 사회의 톱니바퀴 속에 있는 사람보다는 약간 어긋난 존재, 혹은 이른바 ‘몫 없는 자들’을 찾기로 했죠. 

 

그가 전하는 이야기

Q.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다루고 있음에도, 감독님의 영화에서는 따뜻함과 즐거움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둡고 비극적인 영화가 좋아서 그런 영화들을 찾아볼 때도 있어요. 어두운 영화를 보면서 그 주제가 가진 묵직함과 힘을 느끼곤 하죠. 그런데 저는 무거운 주제일수록 가볍고 즐겁게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해요. 희망버스 현장 자체가 즐겁고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했기 때문에 전에는 갈 생각조차 못 했던 사람들이 운동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던 것이거든요. 저도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표현하고 싶었고, 어떻게 보면 그게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즐거움’ ‘가볍게 춤추는 방식’이 아닐까요. 다루는 것들이 마냥 가볍고 즐거운 건 아니지만, 문학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일종의 ‘유머’인 것이죠.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코미디라고 얘기되지만, 그가 다루는 세계가 가벼운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웃으면서 그런 것들을 바라보지 않으면, 외면하고 싶어지고 도망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Q. 다큐멘터리 제작의 원동력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특히 지식 공동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끊임없이 지식을 나누는 게 원동력이에요. 함께 공부하는 누군가로부터 늘 자극이 오고, 나도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기도 하죠. 함께하는 공부들이 다큐멘터리 작업에 큰 도움이 돼요. 공부를 하다보면 써먹고 싶어지거든요. 예컨대 예전부터 인간 정신에 관심이 많아서 라캉의 정신 분석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정신장애, 심리적 우울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졌고 <시 읽는 시간>에서도 공황장애,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들을 다루고 싶었죠. 심리적인 문제들을 라캉의 정신 분석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어요. 우리 무의식에는 잠재된 욕망들이 있는데 극영화들은 이런 욕망들을 보여주면서 수용자들이 대리만족할 수 있도록 하죠.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극영화만큼 자유로운 방식으로 잠재된 욕망들을 표현하기 어렵잖아요. 다큐멘터리의 윤리상, 개인의 욕망이나 갈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어요. 그런데 <재춘언니>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조금 드러나요. 그 사람의 주변 관계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의 어떤 욕망이나 괴로움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꼭 노동 운동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을 보라”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Q. <시 읽는 시간>에는 ‘희망과 절망은 손등과 손바닥과 같다’라는 말이 나와요. 절망 속에 놓인 우리 사회의 청년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저도 20대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와 지금의 청년 세대가 다르겠지만, 어느 세대든 20대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와 사회 진입을 준비하고, 또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는 시기잖아요. 사회인으로 홀로서기 하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어느 학교에 들어가서 어느 직장에 취업했으니, 저 사람은 이런 인생이 보장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더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본이 그렇게 흘러갔고, 또 그렇게 흘러가도록 너나 할 것 없이 톱니바퀴처럼 기능을 해왔죠. 물론 거기서 뛰쳐나간 사람들도 있죠. 그렇다고 자본에 복무하는 사람들이 다 죄인인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만큼 공동체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건 같이 나눌수록 기쁨이 배가 되는 거고 먹는 것도 같이 먹어야 더 맛있는 거고, 공동체의 끈을 놓지 않으면 혼자 굶어 죽는 일은 없잖아요. 그래서 늘 어떤 좋은 공동체를 조그맣게 만들어서 그 안에서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남들과 같이 살아간다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니죠.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끊임없이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다 어느 날 갑자기 죽기도 하는 게 인간인데, 그래도 좋게 살다가 죽고 싶잖아요. ‘즐겁다’ ‘행복하다’와 같은 감정은 혼자서 느낄 수 없어요. 누가 같이 있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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