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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하루였어" 전시 리뷰]

평범하면서도 멋진

 

멋진하루였어 아티스트 토크.jpg

 

“멋진 하루였어.” 기꺼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하루였다면, 아마 그 날은 평범한 하루는 아니었을 테다. 우리에게 평범한 하루란 비슷한 패턴이 무료하게 반복되는 하루, 그야말로 ‘일상’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하루이니 말이다. 그런 보통의 일상과 ‘멋지다’는 수식어의 결합이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닐 테다. 어느 하루가 ‘멋진 하루’가 되려면, 일상의 평범함을 뒤흔드는 사건을 통해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기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사건으로부터 보통의 일상에서는 마주칠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받음으로써, 우리는 ‘멋진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전진경 작가와 치명타 작가의 이번 전시 제목이 “멋진 하루였어”인 것은 다소 의아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멋진 하루’에 걸맞은 어떤 특별한 사건들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일상의 나날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기록물들을 모아놓은 전시에 붙은 ‘멋진 하루’라는 이름은 제법 모순적으로 다가온다. 농성장 천막 안에서 누워있는 모습을 담은 드로잉에서 흘러나오는 감응은 투쟁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함보다는 차라리 일상의 나른함에 가깝다. 드로잉 작품들이 묘사하는 장면들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쉬운 그런 장면들이다. 누워서 쉬고 있다던가, 오렌지를 까먹는다던가, 보드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던가 하는 모습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장면들이다. 온통 이런 작품들뿐인데 전시 제목이 “멋진 하루였어”라니!

내가 지금 딴지를 걸고 있는 전시 제목에 대해서라면 사실, 작가들이 아티스트 토크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농성장에서 그림이 잘 된 어느 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려는 데 한 분이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시며 “멋진 하루였어!”라고 외치셨는데, 이때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 전시 제목으로까지 되었다고 한다. 작가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전시 제목에 얽힌 뒷이야기는 그냥 흐뭇하게 웃어넘기고 말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내가 그랬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작가들의 경험과는 별개로, 얼핏 어색해 보이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보고 싶다. 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순간들을 ‘멋진 하루’로 기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이 문제에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우회로로써 우선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왜 하필 평범한 일상이었을까? 왜 작가들은 특별한 순간(혹은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닌 평범한 순간들을 포착해 그림에 담아내려 했을까? 이는 전적으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의 무대이자 소재이기도 한 농성투쟁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된다. 이번 전시의 드로잉 작품들은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의 10년 이상 이어진 농성투쟁 현장에서 만들어졌다. 2007년 콜트콜텍의 정리해고에 맞서 시작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은 ‘투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다. 그들의 투쟁은 ‘투쟁’이라는 단어를 통해 쉽게 연상되는 비장미 넘치는 저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콜트콜텍 투쟁은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농성장을 중심으로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활동가들과 연대를 이루어나갔다. 작가들이 농성장에 방문해 그곳에서 예술 활동을 한 것도 이런 연대의 일부였다.

자그마치 13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친 농성이라는 환경은 투쟁으로부터 비장미를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아니, 투쟁의 비장함을 내려놓았기에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농성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투쟁의 현장을 떠난 비장함의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바로 ‘일상’이었다. 진지한 비장미를 일상의 평범함으로 대체했기에 농성투쟁은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다. 적대의 감응만을 가지고 어찌 그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 적대의 정치 속에서 적대의 감응을 잊어버릴 수 있는 일상적인 연대의 공간을 만들어냈기에 농성은 13년을 이어갈 수 있었을 테다.

그렇게 투쟁을 평범한 일상으로 녹여낸 현장에서 연대를 했기에, 작가들의 작품이 주는 첫인상은 어떤 특별함보다는 막연한 평범함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작품이 ‘멋진 하루’를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들이 담아낸 일상의 순간들이 투쟁의 현장에서 ‘만들어낸’ 일상이기에 그것들은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 정말로 평범한 날들은 굳이 ‘만들어낼’ 필요조차 없으니 말이다. 일상성이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투쟁이라는 상황이었기에, 그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이어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일상이 만들어져야만 했다. 콜트콜텍 투쟁은 다양한 활동가들과의 연대 속에서 그런 일상을 만들어 지속해냈고,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이 만든 보통의 하루들은 평범함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나름의 특별함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들이 그려낸 콜트콜텍 투쟁의 일상은 얼마든지 ‘멋진 하루’로 기억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멋진 드로잉’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그림을 잘 그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작품들이 농성투쟁의 ‘멋진 하루’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작품들은 투쟁의 외부에서 관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농성의 일상 속에서 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작품들은 그것들이 그려내고 있는 일상의 일부이자, 작가들이 스스로를 그 일상에 내던진 연대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드로잉에 소소하게 적혀있는 문구와 날짜마저도 그 외관상의 평범함을 뚫고 투쟁의 긴장감까지 잊게 만드는 연대의 쾌감이라는 색다른 감응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감응을 통해 작가들이 기록한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투쟁의 기억들이 단지 누군가의 기억을 넘어 다른 연대와 투쟁의 희망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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