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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고? 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친척이라고?"

-누리-

 ‘트러블 연구소’의 세 번째 시간, 오늘날의 긴급한 기후 변화와 생태 위기 시대에 외면할 수 없는 ‘비인간과의 동맹’이라는 주제로 독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까지는 기후 위기 상황의 배경과 그것이 미치는 현상을 중점적으로 살폈다면, 이번에는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론적인 지점을 고민하기 위해, 시민연구원들과 같이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를 읽어보았는데요.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생물학자, 과학학자, 문화비평가인 해러웨이는 이 책에서 ‘인류세’와 ‘자본세’를 넘어서 인간이 지구상의 인간 아닌 존재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안합니다. 특히 ‘트러블’은 우리 연구소의 이름을 대표하는 반가운 말이기도 한데요. ‘불러일으키다’, ‘애매하게 하다’, ‘방해하다’ 같은 뜻을 지니는 트러블과 굳이 함께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해러웨이는 권합니다. 우리를 당황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문제를 언제까지나 문제로만 떠안고 살지 말고, 어쩌면 문제가 아닐 ‘가능성’과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보자고요. 그리하여 ‘선언의 사상가’라고 불리는 특유의 독창적이고 급진적인 목소리로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라는 슬로건을 제시하기에 이릅니다.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자식은 보통 혈연을 매개로 이어지고, 친척 또한 그러기 마련인데, 여기서 말하는 ‘친척(Kin)’이란, 인간이라는 종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비인간의 경계를 유동하고 아우르는 관계적 개념이라고 합니다. 해러웨이가 기후정의를 위해 주요하게 내세운 중심에도 바로 ‘관계’가 있고, 트러블 연구소는 이 대목에 깊이 감명했습니다. 주류 담론을 지배한 ‘인류세’와 ‘자본세’는, 기후 위기의 주범이 인간(/중심적 자본주의)이라거나 인간만이 단독적으로 그 한복판에서 응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오히려 “Game Over, 너무 늦었어.”(100쪽) 따위의 냉소주의와 패배주의, 자책감이나 무력감 등의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게 된 우리는 앞날을 모색하기 쉽지 않다는 회의감을 거듭하고 있었는데요. 반면에 해러웨이가 발명한 ‘쑬루세’라는 개념에 기대어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쑬루’란 땅속의 복잡한 연결망을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세가 마치 땅 위에서 군림하는 신과 같은 위계적 지배를 뜻한다면, 쑬루세는 땅 밑이라 인간의 눈에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촉수의 다양한 감각을 발휘하여 와글와글 얽혀 있을 미지의 존재적 세상을 뜻해요. 덕분에 우리는 인간이 주로 위기를 촉발했더라도, 이미 인간처럼 각자 지구적 위기를 겪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과 살아갈 여러 복수 종과의 응답―능력을 함께 실천하자는 비관 속에 싹튼 낙관의 표정을 마주하였습니다. 인간과 비인간을 ‘거주자’ 존재로 묶는 새로운 관계망이라니, 이렇게 비인간 존재도 우리 친척으로 꾸려 지낼 수 있다니,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이 느껴지시나요? 해러웨이는 그러한 미래를 더 구체적으로, 현재적으로 그리고 노력할 길을 먼저 걸어보며, 책의 한 장을 빌려 ‘카밀 이야기’라는 SF 소설을 썼는데요. 생산적인 상상력의 놀라운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해러웨이는 복수―종을 ‘반려―종’이라고 부르며, 그들과 ‘공―산’하자고 요청하기에 이르는데요. 이때의 공산도 기존의 유명한 정치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함께 만든다’는 의미의 ‘공생’에 보다 가깝습니다. 서로를 만드는 관계 속에서 서로가 본래 규정되어 있고 서로를 규정했던 좌표를 와해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바라보자는 도발적인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죠. 이를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예시로 ‘실뜨기’도 등장합니다. 실뜨기에는 한쪽이 능동적으로 실을 뜨고, 한쪽이 그 실을 수동적으로 받는 과정이 필요한데요. 다만 실을 받은 쪽이 실을 뜨는 차례가 되면 반대쪽에서 실을 받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즉 주체와 대상의 자리가 계속 뒤바뀌는 역동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계속 같은 패턴으로만 실을 뜨다 보면 금방 지겨워지고, 재미없는 놀이를 이어가기는 더 재미없는 것처럼, 해러웨이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지루하지 않게 놀이하듯 살아갈 미래를 열고자 합니다. 놀이의 핵심이야말로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해러웨이의 쑬루세에서는 너에게만 책임을 묻거나, 반대로 나만 책임지는 일이 없고도 서로 동맹을 맺어 즐기며 살아가자고 꿈꿀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엿보입니다.


 한편, 이 책에서 처음 만나는 용어가 많은 것처럼, 훨씬 다양한 측면을 고려할 때 해러웨이가 의도한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논점도 여럿 있었는데요. 때마침 다음 주차에 이 책의 역자이시며, 『공-산의 사유』의 저자이신 최유미 선생님의 특강이 예정되어 있어, 궁금증을 마저 해소해보자고 약속했습니다. 트러블 연구소의 세미나에서는 이렇게 전문가 선생님을 모셔서 우리가 읽은 텍스트에 대해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깊이 배울 기회가 마련되어 있기에 훨씬 고무적인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네요. 선생님들의 특강 시간을 ‘실뜨기 활동 실험’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책을 두고 되도록 깊고 넓은 대화를 추구하고 싶은 저희의 바람을 타고 더 다양한 분들이 와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늘 새로운 여러분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시간, 함께 만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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