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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인류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기후위기의 위협은 나날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뚜렷한 변화의 움직인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자주 언급되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기온 증가 정도를 살펴보자. IPCC는 2018년에 발표한 <특별보고서>에서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라면 2030~2052년 사이에 1.5도 상승에 도달한다고 했지만, 불과 3년 뒤에 발표한 <6차 보고서>에서는 그 시기가 2021~2040년이 될 것이라고 수정했다. 이러한 기후위기는 인간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IPCC는 평균기온의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약 그 선을 넘어버리면, 지구는 각종 되먹임 작용들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인류를 비롯한 현생 생물종들의 생존에 적대적인 환경으로 변해갈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선을 넘어버리는 지점을 이진경 선생님은 ‘파국 특이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반대로 아직은 조금 남아있는 가능성을 비집고 들어가 현재 기후변화의 경향성에 단절을 불러온다면, 그 지점은 ‘출구 특이점’이 될 것이다.

파국 특이점과 출구 특이점이라는 두 항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분법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한편에는 출구 특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에서 출구를 만들어 대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선택지가 있다면, 그 맞은편에는 파국 특이점을 받아들여 어떻게 해도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비관론 속에서 문제 자체를 외면하는 선택지가 있다. 우리는 이 중 한 쪽을 선택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른바 ‘지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거나, 혹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무시해 버리거나.

강의에서 이진경 선생님은 이 두 선택지를 비껴가고 있다. 출구 특이점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거절하면서도, 파국 특이점에 대해 단순히 염세적으로 반응하기 또한 거부한다. 기후위기로부터 출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의 자본주의와 국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거시적인 구조뿐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방식까지도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세계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경쟁의 질서는 이런 출구로의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오직 그 질서만을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갖는 자본과 국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국 특이점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비관론이 반드시 우리의 미래를 마치 내팽개치는듯한 태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진경 선생님이 말하는 비관과 절망은 역설적이게도 긍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차이는 다름 아니라 파국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다가오는 종말에 대해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의 사고는 두려움 때문에 종말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손쉽게 종말을 외면하고는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종말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전과는 달리 살아가게 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자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듯, 우리가 종말을 받아들인다면 서서히 진행되는 파국의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기 위해 고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파국을 받아들였기에 그 파국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방금 나는 파국의 시간이 서서히 진행된다고 말했는데,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진경 선생님은 기후위기에 함께 우리에게 자주 들려오는 이른바 ‘멸종’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멸종을 떠올릴 때, 어느 날 지구에 대재앙적인 사태가 벌어져 ‘모든’ 인간이 다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을 그리고는 한다. 하지만 재난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런 멸종의 ‘순간’이나 종 ‘전체’의 멸절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허구다. 멸종은 아주 서서히 벌어지는 일인데, 이는 당장 지질학에서 대멸종을 ‘100만년 이내’에 종의 ‘절반 이상’이 멸종하는 사태로 정의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파국의 시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파국을 막기 위한 노력이 뿐만이 아니라 파국을 잘 살아가기 위한 노력까지도 말이다. 다가오는 파국은 결코 한 순간의 사건으로 끝나지도, 모든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도, 어차피 다 죽을 것이니 피곤하게 고민하지 말자는 허무주의도 멀리 하자.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남아있고, 그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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