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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 <왕국과 영광>(2007/2016) (박진우 옮김)

 

2007년에 출간된 <왕국과 영광>은 1995년 <호모사케르>를 출간한 이래 아감벤의 전체 사유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자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호모사케르>에서의 존재론적 정치철학이 <왕국과 영광>이라는 ‘통치성의 정치철학으로 이동한 것이다. 통치성의 계보학에 대한 푸코의 연구와 궤를 같이 하면서 푸코를 넘어서려는 아감벤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슈미트 정치철학으로부터의 전환 또는 그의 정치철학의 전복이기도 하다. 신학정치를 기본 축으로 근대정치를 논하는 슈미트(“현대 국가 이론의 주요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개념이다”)의 긴 그림자를 고대의 정치철학과 신학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근본적으로 전복하려는 시도이다. 슈미트에게 근대정치는 신학의 세속화지만 아감벤에게는 역으로 신학이 실제로는 (신성화된) 정치학이다. “현대 국가이론의 주요 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들”이라는 슈미트의 주장과 달리 “신학의...중요한 개념은 모두 정치적 개념이 신학화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정치는 ’신학‘을 벗어나 근대화된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정치 스펙트클을 통해 여전히 신학적 패러다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학과 오이코노미아, 존재론과 실천론이라는 이 대립을 세속적 권력으로 옮긴 것이 근대정치이며 그것은 ‘왕국’과 ‘통치’라는 패러다임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이 아감벤의 주장이다. 기독교 신학은 처음부터 정치나 국가가 아니라 오이코노미아의 속성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대라는 패러다임은 고대의 신학적 패러다임을 벗어나 성립된 것이 아니라 근대의 정치와 경제는 고대의 ‘오이코노미아’의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감벤의 질문은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하고 답을 찾아나간다. 서구에서 권력은 왜 오이코노미아 형태를 띠게 되었는가? 왜 현대의 민주주의 정치는 고대의 신학적 통치 장치의 가장 강력한 도구였던 영광의 스펙터클과 미디어(매체)를 여전히 핵심적으로 요구할까?

 

[개인적 의견 :  아감벤이 현대 사회를 미디어에 의한 스펙터클 사회라고 설정하는 관점은 너무 구식의 미학으로 느껴진다. 수정이 필요한 관점이 아닌가 싶다. 기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라는 1960년대 인터네셔널 상황주의자의 미학적 개념을 21세기 현대의 초연결시대 미디어 환경에 적용하다니...아무튼 대안을 말하기에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대안을 찾는 작업도 흥미로울 듯.^^]

 

***발제***

 

[서문]

 

아감벤은 이 연구에서 서양에서 권력이 어떤 경로를 거쳐 왜 ‘오이코노미아oikonomia’(인간들에 대한 통치)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통치성’의 계보학에 대한 푸코의 연구와 궤를 같이 하는 동시에 그의 연구가 완수하지 못한 내적 이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푸코가 다룬 계보학의 연대기를 뛰어넘어 기원후 초기 수세기 동안의 그리스도교 신학이 ‘오이코노미아’라는 형식으로 최초의 시험적인 삼위일체설을 만들어 낸 시기로 올라간다. 삼위일체적 ‘오이코노미아’라는 장치가 어째서 통치 기계의 작동과 (내적일 뿐 아니라 외적인) 분절화articulation를 관찰하기에 안성맞춤인 실험실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장치 안에서는 이 기계를 맞물리게 하는 요소들이 각자 패러다임적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권력은 왜 영광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권력이 본질적으로 행위와 통치를 위한 힘과 능력이라면 그것은 왜 엄격하고 거추장스러운 의식, 환호송, 의전이라는 영광의 형식을 띠는 것일까? 아감벤은 연구 결과 중의 하나로 바로 환호송과 영광의 기능이 여론과 총의consensus라는 현대적 형태로 지금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 장치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미디어가 그토록 중요한 것은 미디어들이 여론에 대한 통제와 통치를 가능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것들이 영광, 즉 현대에서는 사라져버린 듯 보였던 권력의 환호송적이고 영광송적인 측면을 운용하고 집행하기 때문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감벤에게 스펙터클의 사회(현대 민주주의 국가)란 ‘오이코노미아’와 통치에서의 영광의 양상을 띠는 권력을 따로 식별해 낼 수 없는 사회이다. ‘오이코노미아’에 총의라는 환호송적인 형태로 영광을 완전히 통합시킨 것이 바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 그리고 총의(동의)에 의한 통치가 수행한 고유한 과업인 것이다.

 

달리 보면 이는 통치 기계의 중심이 비어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시대의 바실리카 양식 교회당의 아치와 애프스 위에 나타나는 비어있는 옥좌, 곧 ‘옥좌의 준비’는 가장 의미심장한 권력의 상징이다. 현대가 인간의 가장 고유한 차원인 정치에 접근하는 것을 오랫동안 가로막아온 것은 생산성과 노동에 대한 순진한 강조였다. 아감벤은 여기서 정치를 그것의 중심에 있는 무위inoperativity로, 즉 인간과 하느님의 모든 역사를 무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위operation로 되돌린다. 아감벤은 우리는 비어있는 옥좌, 영광이라는 상징을, 그것을 넘어 지금으로서는 다만 ‘조에 아이노스’ 곧 영원한 생명(영생)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릴 수 있을 뿐인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세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고유한 인간적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무위의 결정적 의의는 이 연구의 4부(삶-의-형식)가 완결되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1장: 두 개의 패러다임]

 

1.1 아감벤은 하나의 패러다임의 계보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이 연구를 시작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두 개의 정치적 패러다임이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이다. 1)하나는 유일신에 근거해 주권권력의 초월성을 설정하며, 2)다른 하나는 오이코노미아(경제)신학으로 신의 삶과 인간의 삶 모두에 대한 내재적 배치로 착안된 ‘오이코노미아’라는 관념으로 앞의 초월성을 대체한다. 정치철학과 현대의 주권이론은 첫 번째 패러다임에서 파생된 것이다. 반면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오이코노미아(경제)’의 승리를 비롯해 사회생활의 다른 모든 측면까지 통제하기에 이른 현대의 생명정치는 두 번째 패러다임에서 파생된 것이다.

 

(기원후 2-5세기 사이에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진) 경제(오이코노미아)신학의 역사는 여태껏 무슨 의미인지조차 잊힐 정도로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발생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오이코노미아(가정)’와 뚜렷한 인접성을 보이고 또 18세기에 ‘동물의 오이코노미아(생리학)’ 및 정치경제학의 탄생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은데 그러한 것들이 억압되어 왔다. 딸서 그러한 억압된 이유를 살피고 그러한 억압을 산출한 사건으로 되돌아가려는 고고학적 연구가 절실히 요청된다.

 

*교부들 개개인에 관한 수많은 연구서에서 ‘오이코노미아’ 문제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게하르트 리히터의 최근작 <오이코노미아Oikonomia>가 출판되기 전까지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이 주제에 관한 개괄적 연구서가 없었다. 몽쟁의 <이미지, 도상, 경제>는 8-9세기에 벌어진 우상파괴 논쟁에서 이 개념이 지닌 함의에 관한 분석에 한정되었다. 이 특이한 침묵은 삼위일체설의 일종의 ‘수치스러운 기원’으로 보일 수 있는 무언가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때문일 것이다. 이 개념이 서로 다른 여러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가고 확산되는 과정과 동시에 쇠퇴하게 된 것은 트리엔트 교회법령집에서 이 개념이 주목받지 못한 점에서도 증명된다. ‘오이코노미아’문제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다시 나타나지만 이때는 그저 ‘구속사Heilsgeschichte’라는 테마의 애매하고 불확실한 전조로만 등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구속사’의 신학은 그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은 패러다임의 부분적 반복이자 재개, 한마디로 축소판이다.

 

1.2. “현대 국가이론의 주요개념은 모두 세속화된 신학적 개념들이다”(슈미트, 1922) 이중의 패러다밈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가설이 옳다면 슈미트의 진술은 타당성의 범위를 공법에 국한 할 것이 아니라 경계를 넘어 확장(경제의 근본개념과 인간 사회의 재생산적 삶이라고 하는 관념자체까지도 포괄)되게끔 보완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이코노미아(경제)가 세속화된 신학적 패러다임일 수 있다는 이러한 테제는 신학 자체에도 소급적용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테제는 신학은 태생적으로 신의 삶과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오이코노미아’로 생각하고 있음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이 생명체에게는 정치가 아니라 오로지 오이코노미아(경제)의 능력만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즉 역사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과 ‘통치’의 문제가 된다는 사실)은 오이코노미아(경제)신학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고전적 위계가 뒤집혀 복음적 고지의 중심에 ‘비오스’가 아니라 ‘영생zoe ainos’이 있는 점은 확실히 어휘론적 사실 이상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의 권리로 내세우는 영생은 ‘폴리스polis’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오이코스oikos’의 패러다임에 있는 것이다.(타우베스의 반어법: ‘생명의 신학theologia vitae’이 ‘동물신학theozoology’이 되어버림)

 

*세속화secularization‘란 하나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푸코나 멜란드리가 말하는 의미에서 ’표기signature’인바, 어떤 기호나 개념 속에서 이 기호나 개념을 표시하고 초과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기호적인 것이 새로운 의미나 새로운 개념을 구성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어떤 규정적인 해석이나 장으로 회부하는 어떤 것이다. 표기는 개념들과 기호들을 의미론적으로 재규정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어느 한 장에서 다른 장으로(세속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또 그 반대로) 옮기고 치환한다.(벤야민의 ‘은밀한 목록.’ 기호들의 해석에 방향성 부여함으로써 필수적이고 규정적인 전략적 기능을 수행하는 표기들. 순수한 역사적 요소) 푸코의 고고학과 니체의 계보학은 (어떤 의미에서 데리다의 해체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론 조차도) 표기학이다...이러한 의미에서 세속화는 근대의 개념체계 속에서 바로 그러한 개념체계를 신학으로 회부시키는 표기로 작동한다. 세속화란 인간에게 세상을 처음으로 세속성과 역사성을 띠는 것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교 신앙 교유의 수행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여기서 신학적 표기는 일종의 트롱프뢰유로 작동하며, 바로 저 세계의 세속화란 이 안에서 세계가 신의 ‘오이코노미아’에 속함을 확인하는 표시가 된다.

 

1.3. 독일 관념론의 역사철학과 계몽주의의 진보관념은 모두 한갓 역사신학과 그리스도교 종말론의 세속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근대의 정당성’을 옹호한 블루멘베르크가 세속화라는 범주자체가 사실 성격상 부당한 것임을 단언했지만, 이 논쟁은 진정한 문제를 숨기기 위한 분란이었다. 진짜 문제는 세속화가 아니라 역사철학이었으며, 나아가 그것의 전제를 이루는 그리스도교 종말론이었던 것이다. 뢰비트가 말한 구원의 종말론(독일관념론 철학은 이것의 반복이자 재개)은 훨씬 더 큰 신학적 패러다임의 한 양상에 불과했고 바로 이 신학적 패러다밈이 우리가 탐구하고 하는 신의 ‘오이코노미아’인바 근본적으로 이 패러다임에 대한 억압이 논쟁의 밑바탕에 깔린 문제였다. 헤겔은 이점을 온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계에 대한 합리적 통시에 대한 자신의 입론과 하느님의 섭리적 계획이라는 신학적 교리가 사실상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공언했고 또 자신의 역사철학을 하나의 변신론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셀링은 <계시의 철학>의 결론에서 ‘오이코노미아’라는 신학적 형상으로 자신의 철학을 요약한 바 있다.

 

*이는 곧 하느님의 존재 속에 인격과 행위를 도입하는 하느님을 “존재의 주인”(셀링)으로 만드는 이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사도바울에게서 “오이코노미아의 신비”(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신학적 ‘오이코노미아’ 교리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영원으로부터 감추어져 왔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드러나게 된 하느님의 계획, 곧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인해 세상에 분명히 드러나게 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말한다. 이 순간이 계시철학의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다. 계시는 신화처럼 어떤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온전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가장 자유로운 어떤 의지의 결단과 행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계시를 통해 새로운 창조, 제2의 창조가 도입되는데 이는 온전히 자유로운 행위이다.”(셀링)

 

1.4. 1935-1970년 사이에 페테르존과 슈미트는 특이한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의 핵심쟁점은 정치신학이다. 하지만 세속화논쟁에서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또 다른 문제를 감춰주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사유의 결과물에는 말해지지 않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드러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논적 관계인 두 사람은 ‘카테콘katechon’적이라고 규정될 수 있을 신학적 발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도였던 그들은 예술의 재림에 대한 종말론적 신앙을 고백해야 했다. 그런데 둘 다 하느님 왕국의 도래와 세상의 종말 곧 ‘에스카톤eschaton’을 억누르는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종말을 지체시키는 요소가 슈미트에게는 ‘제국’이고 페테르존에게는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부이다. 그러므로 이 법학자와 신학자 모두에게서 현 인류의 역사란 하느님의 왕국의 지연에 따른 ‘과도기inter-im’인 셈이다. 하지만 슈미트의 경우 이 지연은 곧 그리스도교도인 제국의 주권권력과 일치한다. 반면 페테르존의 경우 교회의 역사적 실존은 유대인들이 회심하지 않음으로써 빚어진 하느님 왕국의 유예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강림이 목전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위에서만, 달리 말해 구체적 종말론에 빠지는 대신 그 자리에 ‘최후의 사건들’이라는 교리가 놓일 때만 교회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의 진짜문제는 정치신학의 수용이 아니라 ‘구체적 종말론’을 늦추고 제거하는 힘, 곧 ‘카테콘’의 본성과 정체인 것이다. 이렇게 보게 되면 두 사람 모두에게 결정적인 사안은 궁극적으로 구원지향적인 역사철학이 무효화였다. ‘오이코노미아’라는 하느님의 계획이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완성에 이른 순간 ‘에스카톤’을 유예시키는 힘을 지닌 어떤 사건(유대인들의 회심하지 않음, 그리스도교인 제국)이 일어났다. 구체적 종말론이 배제됨으로써 이제 허공에 붕 뜬 어떤 시간으로 바뀐다.

 

1.5.페테르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 곧 부동의 원동자라는 신학적 패러다임이 어떤 식으로든 이후 유대-그리스도교 계통에서 나타나는 모나르키아적monarchic 권력에 대한 신학 정치적 정당화의 원형임을 시사한다. 페테르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위작으로 알려진 <세계에 대해>를 분석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정치학과 신의 모나르키아라는 유대적 관념을 이어주는 가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이란 모든 운동의 초월론적 원리이자 전술가가 군대를 이끌 듯 세상을 이끄는 자인 반면 이 논고에서 독재자는 구중궁궐 안에 숨어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세상을 움직인다.

 

“여기서 신의 모나르키아가 어떤 모습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의 원리가 있느냐 둘 이상의 원리archai가 있느냐가 아니라 차라리 신이 우주cosmos에서 작용하는 힘들에 관여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즉 신은 우주에서 작용하는...힘의 전제조건이지만 바로 이 때문에 그분 자신은 힘potenza, dynamis이 아니다.”(페테르존) 페테르존은 하느님의 모나르키아에 대한 이 이미지를 슈미트가 즐겨 사용했던 표어를 인용해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공식으로 요약한다.

 

“하느님의 모나르키아라는 교리는 삼위일체설에 가로막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에 대한 해석 역시 그리스도교 종말론에 가로막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정치적 문제로서의 일신론은 신학적으로 폐기되고 그리스도교 신앙은 로마제국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모든 ‘정치신학’과도 단절된다. ‘정치신학’과 같은 것은 유대교나 이교신앙의 장 안에서만 존립할 수 있다.”

 

*유리한 세계제국의 도래, 폴리아르키아의 종언, 한분의 참된 신 하느님의 승리라는 이 세 가지 것의 일치에 관한 에우세비우스의 입론은 유일한 자본주의 세계 제국 안에서 국민국가가 초극되고 그것이 코뮤니즘의 승리를 위한 길을 닦는다는 네그리와 하트의 입론과 모종의 유사점을 보여준다.

 

1.6. 페테르존의 논의에서 전략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4세기의 카파도키아의 신학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한구절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하느님의 모나르키아를 표방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의 위격을 지닌 하느님의 모나르키아가 아니라 세 위격을 지닌 하느님의 모나르키아일 터이다. 이런 식의 단일성은 피조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에 더불어 정치적 문제로서의 일신론은 신학적으로 배제된다.”

 

페테르존의 과감한 요약에 따르면 그레고리우스는 “단일 위격의 모나르키아”에 맞서 “세 위격을 지닌 하느님의 모나르키아”를 내세움으로써 삼위일체설에 “궁극의 신학적 깊이”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슈미트는 페테르존이 분석한 것과 똑같은 구절을 이용해 페테르존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슈미트에 따르면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 속에 모종의 내전이론(참된 정치신학적 내분론)을 도입했으며, 그런 식으로 여전히 신학정치적 패러다임, 으레 동지냐 적이냐는 대당으로 회부되곤 하는 저 신학정치적 패러다임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의 관심사가 하느님의 실체의 단일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술어를 삼위일체의 술어와 조화시키는 데 있음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 그레고리우스가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정치신학적)이라고 규정될 수 있을 어떤 은유적 어법이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 ‘내분stasis’을 도입하지 않고 위격들의 삼위일체적 분절화를 생각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레고리우스는 스토아학파의 술어를 자유롭게 이용하면서 세 위격을 실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존재 양태나 관계양태로(곧 관계적으로 배치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강론전체를 해석하는 열쇠는 제공해 준다. 그는 당시 이미 확립되어 있던 술어적 전통에 따라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본성에 관한 담론과 ‘오이코노미아’에 관한 담론”을 구별할 줄 아는 자만이 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곧 페테르존이 인용한 구절 또한 그러한 구별에 비추어서만 해석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달리말해, 그레고리우스에게서 ‘오이코노니아’의 로고스란 구체적으로 삼위일체를 통해 하느님 안에 내분론적(정치적) 파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출된 것이었다. 모나르키아조차도 내전 곧 내부분열stasis을 야기할 수 있는 한 그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치적 합리성을 ‘오이코노미아적’ 합리성으로 치환하는 것뿐이다.

 

1.7. 하느님의 모나르키아라는 신학-정치적 패러다임의 계보 속에서 페테르존이 위에서 인용한 저자들을 대충 훓어 보면 텍스트의 관점에서든 또는 개념의 관점에서든 ‘오이코노미아에 관한 담론’이 모나르키아에 관한 담론과 촘촘히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페테르존의 주장에 밑바탕이 되는 삼위일체설에 대한 이해는 ‘오이코노미아라는 말’에 대한 사전적 이해를 전제한다. 일단 이 말logos이 구체적 맥각 속에서 어떤 표현인지를 모두 탐구해본 연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정치신학에 관한 한 동지이자 적인 두 사람 간의 논쟁에서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분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경계영역)

슈미트와 페테르존 사이의 관련성은 두 저자가 드러내고 싶은 것 이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슈미트 저술에서 페테르존이 처음 언급되는 것은 1927년 <인민투표와 인민청원>에서이다. 1935년 페테르존의 책에는 짧은 서문이 붙어있는데 거기에는 두 저자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의 이유뿐만 아니라 불화의 이유 또한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신론으로의 환원이 계몽주의 결과로 제시되는 데 맞서 페테르존은 “그리스도교인에게 정치적 행위란 삼위일체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존립”한다고 상기시킨다. 그분은 유대교와 이교신앙, 일신론과 다신론 양자를 초월해 계심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 순간 이 서문은 그리스도교 정치신학의 ‘신학적 불가능성’에 관한 이 책의 최종 명제를 예고한다.

 

슈미트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이상으로 결정적인 것은 삼위일체교리가 그리스도교적 정치가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라는 입론의 표명이다. 두 저자 모두 정치를 그리스도교 신앙위에 정초하고자 한다. 하지만 슈미트에게 정치신학이란 정치를 세속적 의미로 근거 짓는 데 반해 페테르존에게 문제가 되는 ‘정치적 행동’이란 전례, 곧 ‘공적 실천’이라는 어원적 의미로 되돌아온 전례이다.

 

전례적 행동으로서의 정치란 종말론적 영광의 예배적 선구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속 권력의 행동이란 이 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종말론적 타당성이 결여된 것이다. 다시 말해 ‘카테콘’으로 작동하는 것은 어떤 정치권력potere이 아니라 오로지 회심에 대한 유대인의 거부인 것이다. 이는 곧 페테르존에게 그가 목격한 역사적 사건들이 신학적으로 하찮은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하나 예외가 있는데 유대인 집단학살이다. 만약 하느님의 왕국의 종말론적 도래가 유대인들이 회심한 다음에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게 될 터라면 유대인 집단학살은 응당 교회의 운명과 무관할 수 없다. 페테르존이 교회의 존립뿐만 아니라 완성까지도 유대인의 생존이나 소멸과 결부시키는 신학적 입론의 끔찍한 양의성은 아마도 ‘카테콘’(역사의 종말을 지연시킴으로써 세속정치의 공간을 펼치는 힘potere)이 하느님의 ‘오이코노미아’와 그것의 영광과의 본래적 관계로 되돌려 질 때야 비로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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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을 활용한 단편소설 발표 file 크리슈나 2018.06.25 120
614 [아감벤의 정치철학] [14주차]왕국과 영광(8장,보론) 발제 file RH 2018.06.25 37
613 [아감벤의 정치철학] 왕국과 영광_4장_발제 file revoros 2018.06.25 41
612 [아감벤의 정치철학] [14/15주차] 왕국과 영광(4장/8장) 발제 file 도경 2018.06.23 42
611 [아감벤의 정치철학] 공지 : 프로포절 작성 안내 키티손 2018.06.18 109
» [아감벤의 정치철학] [14주차] -발제-아감벤-왕국과 영광 : 서문-1장 yeony 2018.06.18 283
609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프로포절 발표 file 크리슈나 2018.06.15 102
608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발제 :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file 미요 2018.06.14 30
607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프로포절] 김혜순의 "돼지라서 괜찮아"- 안죽은(undead) 돼지들을 위한 소론 교오오오 2018.06.14 166
606 [지젝과 무의식의 정치학] 발제 :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1부 발제문 file 2018.06.08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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