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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인사원 사변적 우화 에세이

제목: 퍼스와 인류학, 동시대 예술에서 실재

채승우

 

1. 구성되는 실재

미술사가 할 포스터는 <소극 다음은 무엇?>(2020)에서, 실재에 대한 예술의 태도가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고 말한다. 첫째, 소위 이데올로기 비판이라 불리는 프레임에서는 실재는 재현 뒤에 숨어있는 것, 재현보다 먼저 존재하는 근거, 바탕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예술가들은 무언가를 폭로하기 위한 작업을 했다. 둘째, 20세기 후반의 후기구조주의는 선험적 근거를 찾는 근대적 사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다. 실재에 관한 관심이 사라지고, 텍스트와 시뮬라크르만이 중요해졌다. 기호의 ‘의미’는 차이에 의해서만 나타난다고 말했지만, 그 차이는 무한이 연장되고, 의미는 계속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호의 붕괴는 “허무주의적 경향”을 띄는 문제로 나타났다. 포스터가 말하는 세 번째 프레임은 외상적실재론이다. 20세기 말, 일군의 예술가들이 에이즈 유행을 배경으로, 상처 입은 신체, 몸의 고통을 다루었는데, 이는 기호의 붕괴가 확인하지 못하는 실재를 신체를 가진 이로서의 주체가 확인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포스터는 21세기에 들어 네 번째 프레임 즉, 실재를 ‘염려하며 보살펴야 하는 연약한 구성물’로 보며, 작품 안에서 실재를 ‘구성’하는 시도들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가 분석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인터넷의 연결과 인공지능의 세계에 관심이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과 글을 보고, 그가 관심 있을 법한 것들을 추천한다. ‘좋아요’ 숫자는 주가를 변동시킨다. 실재란 뭔가 다른 것이 된 듯하다. 포스터는 “오늘날 많은 이미지는 세계를 기록하지도 않고 세계를 탈실재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바이러스성 이미지는 ... 자체의 현실을 빚어”낸다고 말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현실 자체가 후반 작업이 되고 각본에 따른 것인지”를 탐지하는 것이다. 히토 슈타이얼은 극영화에서 발견한 장면, 게임, 다큐멘터리를 뒤섞어 작품을 만든다. 포스터에 의하면 슈타이얼은 자신이 관찰해 발견한 알고리듬을 과장해 폭발할 지경까지 몰고 간다.

이들의 말대로, 이들이 제작하는 이미지가 재현이면서 동시에 실재라면, 그 작업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 실천적인 것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실재일까? 예술작업이 실제 현실에 실천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퍼스의 기호론과 문화인류학의 연구를 통해 이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2. 퍼스의 기호론

나는 포스터의 의견과 인류학자들의 통찰을 연결하기 위해 퍼스의 철학을 접착 풀처럼 사용해보려고 한다. 찰스 샌더스 퍼스의 실용주의 철학은, 근대서양철학이 진리나 실재를 선험적으로 전제하고 있음을 반대하면서도, 실재를 다루는 방법을 찾는다고 설명된다. 그의 기호론도 그런 기획 위에서 정립되었다. 퍼스는 인간, 비인간 생명체, 사물, 관습 사이의 기호 작용을 설명하고, 그 기호 작용으로부터 형성되는 일반적인 것을 실재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기호 작용과 실재의 일원론을 편다는 점에서 퍼스의 철학은 ‘기호-실재론’이라 불리기도 한다.

퍼스는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에 ‘대상체-표상체-해석체’를 정의하고 표상체와 해석체의 반복되는 연쇄를 설명했다. 기호 작용이란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는 것이고, 그 대체는 무한히 연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연쇄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처럼 끝없이 미끄러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삶, 관습, 공동체와 관계하며 일반적인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패턴이 실재이다.

이러한 설명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재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는 한편, 근대서양철학의 선험적 실재로도 회귀하지 않은 채, 실재를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 퍼스의 기호론은 정말 실재를 다룰 수 있을까? 에두아르도 콘이 그 답을 주는 듯하다.

 

3. 숲은 생각한다.

<숲은 생각한다>에서 아마존 문화에 대한 에두아르도 콘의 관찰은 기호 작용이 실재와 밀접하게 관계함을 보여준다. 콘은 아마존에서 기호 작용이 증폭된다고 말한다. 아마존에서 사는 사람들은 동물과 식물, 비, 바람과 땅의 표상들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야자나무가 쓰러질 때, 그 나무의 쓰러짐은 원숭이에게는 하나의 기호이다. 야자나무가 쓰러지는 것에 대해 원숭이가 뛰어오르는 것은 일종의 해석체가 된다. 그리고 그 해석체는 누군가에게 또 다른 기호가 되는 것이다.

아마존의 시냇물은 흘러서 작은 강줄기가 되고, 작은 강줄기는 모여서 하류의 큰 강이 된다. 이 체계는 땅에 영향을 미쳐 고무 산업의 형태에 연쇄되었을 뿐 아니라, 중간 합류점의 금융경제가 하류의 더 큰 금융경제에 포섭되는 경제적 형태로 연쇄된다. 금융경제를 점령한 백인의 침략은 거꾸로 아마존 부족의 위계를 만들고, 아마존의 셔먼과 애니미즘의 형태에 연쇄된다. 기호 작용은 실재와 함께 한다.

모든 기호 작용이 실재의 일부라면, 예술의 기호, 재현, 이미지 역시 실재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서, 예술의 다양한 주체들 즉, 예술가, 관객, 비평가 역시 같은 기호 작용 안에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전처럼 예술작품을 대상으로 놓고 (이분법적으로) 떨어져서 감상하거나 분석하는 이상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객이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그것을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때, 그의 반응은 하나의 기호 작용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4. 부분적인 연결들

메릴린 스트래선이 설명하는 인류학의 방법을 예술에 응용할 수는 없을까? 그를 위해서 먼저, 스트래선의 설명이 퍼스의 기호론과 연결될 수 있는지 보려 한다. 스트래선은 성찰적 전회의 인류학을 포스트모던 태도라고 설명하면서 그 다음의 즉 제3의 방법을 찾는다. 다시 말해, 성찰적 전회의 인류학은 전체를 가정하는 총체적 인류학자의 상이나 선험적인 지식에 반대하고, 대신 독자에게 텍스트와 ‘환기’로 주어지는 인류학을 제안했는데, 스트래선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넘어서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 구조는 포스터가 포스트모던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실재 관점이 등장했다고 설명하는 것 또, 동시대 이론가들이 퍼스의 ‘기호-실재론’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는 방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스트래선의 설명에서 퍼스와 비교할 핵심은 ‘연상’과 ‘연결’에 관한 것인 듯하다. 이는 퍼스의 ‘기호 작용의 연쇄’와 비교할 수 있다. 스트래선과 그가 인용하는 해러웨이에 의하면, 부분적인 것의 연결만이 객관적인 지식일 수 있다. 그는 멜라네시아의 피규어들이 수많은 형식 가운데 일부라 하면서 그 이미지가 어떻게 창출되고 어떻게 다른 이미지로 확장되는지 말하기도 하고, 또 인류학자들이 만드는 내러티브가 변환과 차이의 시퀀스를 모방함으로써, 형식이 특정한 연쇄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스트래선은 타일러의 ‘저자-텍스트-독자’가 만드는 ‘창발적 정신’을 다시 정의한다. 창발적 정신은 미리 정해진 소재지를 가지지 않고, 그 외부에, 발생하는 사건, 타자의 현존 속에 자리한다고 말한다. 이는 퍼스의 일반적인 것의 발생과 유사하다.

그런데, 스트래선의 실재에 관한 생각은 콘과 달라 보이기도 한다. 콘은 형식이 자연에 실재한다고 말하지만, 스트래선은 실재하는 형식이라는 생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실재’는 정의가 다른 듯하다. 스트래선이 비판하는 실재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콘의 실재는 퍼스의 것처럼 기호 작용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면, 콘과 스트래선의 주장은 모순 없이 놓일 수 있다.

스트래선이 보여주는, 부분적인 것들을 절단하고 연결을 찾는 인류학자의 태도를 동시대 예술에서 예술가, 독자, 비평가의 행위에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변의 이미지들을 연결하고, 그 부분을 관찰하고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는 조각가 세라 제를 소개하는데, 그는 주변의 낯익은 물건들을 가지고 무언가를 구성한다. 그는 상품을 사용하여 조각을 만드는데, 이전의 조각가들과는 달리 “상품 형식의 등가성을 단순히 재언급하는 대신 상품 형식을 가지고 어떤 대안적 세계의 모형을 만든다.” 포스터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에 관한 설명을 인용하는데, 신화를 만드는 이는 “인간의 노력이 남긴 물건들을 모아 작업한다. ... 제도 마찬가지다. ... 물건과 이미지를 가지고 제는 오래된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세계들을 건설하는 것이다.”

 

5. 종과 종이 만날 때

도나 해러웨이는 “내가 나의 개를 만질 때 나는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만지고 있는 것일까?”하고 물었다.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볼 때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해러웨이가 물질-기호론의 입장에서 개의 진화, 목축 산업과 식민지의 역사를 연결할 때, 우리는 이미지가 어떤 기호 작용 안에서 만들어졌는지 생각하고, 그 기호 작용에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러웨이의 “함께 되기”라는 생각은 누구와 무엇이 반드시 문제가 되는 관계에 들어가는 세속적인 실천을 의미한다.

포스터는 동시대 예술의 태도에서 실재는 ‘염려하며 보살펴야 하는 연약한 구성물’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기호의 네트워크에서 이미지들이 만드는 실재는 연약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을 다루는 일은 그 이전 어느 때보다 실천적인 것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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