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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질병을 행하기

-하위 텍스트

 

문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이 책에서 다루는 민족지는 네덜란드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특정사건으로,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더 큰 의료 체계로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의료실천상의 변형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학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표준적인 방식과 그 변형들은 문헌들에서 찾아내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헌들은 다른 병원과 다른 의료실천에 대한 텍스트들이고, 신체와 질병에 대한 텍스트들이라도 전혀 다른 주제에 관한 텍스트들이다. 그러나 그 문헌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네마리 몰은 하위텍스트에서, 주텍스트와 공명하고, 함께 가고, 방해하고, 거기에서 멀어지고, 주 텍스트에 가외의 차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문헌을 다루었다.

 

특수성

문헌을 일반화하면 항상 다른 정신, 나름대로의 다른 관심사를 가진 이질적인 저작들을 한데 끌어 모아 놓게 되기 일쑤다. 일반적으로 그 문헌이 의학의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한다면, 분열을 강조하는 이 연구의 독창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하나는 거짓된 새로움을 주장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학의 다중성을 지적하면서도 의학을 다루는 다른 학문 분야들에는 의학에 없는 통일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네마리 몰은 다양한 학문 분야의 문헌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도 다른 학문들의 다중성도 억누르거나 숨기려 하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지식에서 여러 가지의 관심사, 물질성, 스타일, 대상 구성을 공정하게 다루고자 한다.

 

날짜 그리고 시대에 뒤쳐진다는 것

탤컷 파슨스는 <사회 시스템>(1951)에서 아프다는 것은 병자 역할의 의례화를 주장한다. 환자는 일할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인받지만, 동시에 회복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의사의 지시를 따를 역할이 요구된다. 이것은 병자 역할에 대한 기능주의적 설명이다. 50년대에는 기능주의적 설명이 대세였으나, 후대의 의료사회학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60년대에는 아프다는 것이 ‘죄’라는 꼬리표의 세속적 형식으로 보이게 되었는데, 아프다는 것이 동성애와 혼외 출산과 같은 일탈의 형식과 관련하여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파슨스의 이론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여전히 그의 저작은 꾸준히 언급되는데, 왜냐면 파슨스가 의료사회학을 창안했기 때문이다. 이 학문의 대상들, 즉 병과 의료서비스 모두를 구체화한 것을 그의 작업에서 추적할 수 있다.

파슨스에 따르면, 병은 생물학적 시스템으로서의 유기체와, 개인적, 사회적 적응의 상태 양자를 다 포함하여 온전한 개인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지장이 있는 상태로, 그래서 일부는 생물학적으로 일부는 사회적으로 정의된다.” 사회 사상의 모든 전통이 이 문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파슨스의 연구가 중요하다. 파슨스가 놓은 좌표를 이해해야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

파슨스는 의사의 능력의 내용에 대해서, 그러니까 의사들이 수행하는 기능적으로 전문화된 일에 대해서 말하기를 자제하기 때문에,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파슨스가 의사의 역할을 사회적 분석의 대상으로 바꾸면서 사회학자들은 새로운 연구 대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파슨스가 사회학자로서 병자 역할을 이야기한 것은 사회학자들이 병의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할 전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료사회학은 여전히 대체로 파슨스가 설정한 조합들 안에서 움직인다. 파슨스의 연구를 통해 사회과학이 어떻게 의료서비스와 병에 대해 말할 권리를 확립했는가를 알 수 있는 동시에 사회과학이 어떻게 이 권리에 제한을 두었는가도 알 수 있다. 사회과학은 사회적인 것의 영역을 사회과학이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란히 놓기와 대조하기

앨런 영이 1981년 발표한 <합리적인 사람이 병이 날 때: 의료인류학의 일부 가정들에 대한 조사>-영은 많은 의료인류학자가 자기의 병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마치 ‘합리적인 사람’인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아픈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은 분열하는 의미들의 배열이며 그들의 추론은 일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앨런 영의 논문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첫 번째, 영과 의견을 같이 할 수 있다.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합리적인 사람’ 구도가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두 번째, 영을 비판할 수도 있다. 영은 아픈 사람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의사들은 합리적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의사들도 다른 이들처럼 비논리적이고 자기모순적이다. 세 번째, 숨겨진 절반의 발언을 끄집어내 부풀려서 믿어 버리는 것이다. 영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지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며, 인지를 이야기에만 한정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환경 속에 박혀 있는 지식embedded knowledge 같은 것이 있다. 이 지식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는 추론할 수 없다. 그것은 임상절차에, 도구에, 비언어적 구조에 내포되어 있다. 영은 관련자들이 이 지식을 더 분명하게 표현하려는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환경에 박혀 있는 지식의 존재를 취한다. “임상의의 관점에서는 환경에 박혀 있는 지식은 일종의 전문적 투자의 형식이며 계속 일하려면 자신의 평판과 능력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일에 투자하는 쪽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박혀 있는 지식 안에서 그 지식을 통해 일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의학 지식을 이해하려면 의사의 마음과 인지 작용보다는 임상절차와 도구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문헌을 설명하면서 환경 속에 박혀 있는 지식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동의나 비판보다 더 섬세한 방식이다. 그런 방식으로 영의 텍스트와 이 책 사이에 부분적인 연결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 논문 하나를 설명해야 할까? 좋은 논문이지만 영은 그 못지않게 좋은 것을 훨씬 더 많이 썼다. 또 무수한 문헌과의 부분적인 연결고리를 전부 다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계속 작업을 해나가면서 “계속 일을 할 능력”을 보여 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학문 분야

이 책은 신체와 질병의 다중성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이 이 주제 때문에 특정한 학문 분야 안에 놓이게 되는가? 위치 설정 작업을 하는 고전적인 방식은 학문 분야를 구성하는 문헌을 설명하는 식이다. 파슨스를 설명하면 이 텍스트는 의료사회학이 되고 영을 설명하면 이 텍스트는 의료인류학이 된다. 그러나 설명해야 할 분야와 문헌들이 너무 많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생물학과 사회과학 간의 경계 짓기에 관한 산발적인 연구들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우생학적 실천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인류의 생물학적 평등성이 강조되었고, 인간들 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사회과학의 특권이 되었다. 사회과학은 다양한 형식과 변종으로 자신들의 대상을 생물학의 대상과 나란히 묘사했다.

1982년 마틴 바커는 <새로운 인종주의>를 출간했다. 이 책은 그 시대의 영국 신우익의 담론에 대한 분석인데, 신우익 담론에서는 다른 인종들의 열등함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가 우리그들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제시된다. 이는 한때는 유용했던 생물학과 사회학 사이의 기분이 초기의 힘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주 명확히 드러내 주기 때문에 언급하기에 좋은 텍스트다.

<자연 이후: 20세기 후반의 영국 친족>에서 매릴린 스트래선은 또 다른 식으로 자연/문화의 구분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스트래선은 인류학이 전 세계적으로 친족 체계들을 자연적 사실에 기반한 사회적 구성물처럼 연구해왔음을 보여준다. 친족연구는 아이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반씩 물려받은 자식이라는 자연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20세기 영국 친족의 표현이었다. 소위 생식에 대한 자연적 사실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이미 ‘유산’과 같은 사회적 관계의 이미지들 속에 통합되어 있었다. 자신의 영국성과 거리를 두기 위해 스트래선은 다양한 멜라네시아 민족에게서 이론적 도움을 청했다. 그들의 개념 구조에는 자연도 문화도 없다. 대신 그들은 아버지를 낳는 아들들을 안다. 여성의 몸으로 남자인 여성들도 있고 그 역의 경우도 있다. 인간 재생산을 재형성하는 최근의 기술도 이런 식으로 작용한다. 단일한 자연적 부모 관계와 나중에 그것을 형성하는 문화적 구성물들 간의 대립이 더는 유지될 수가 없다.

도나 해러웨이의 에세이 <마르크스주의 사전을 위한 젠더’: 단어의 성정치학>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스톨러는 생물학/문화 구분의 틀 안에서 젠더 정체성의 개념을 공식화하여, 섹스는 생물학과 관련짓고 젠더는 문화와 관련지었다. 50년대에는 또 다른 분할이 이루어졌다. 신체의 생물학적 섹스와 무관하게 젠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신체를 정당화의 근거로 이용하여 종속적 위치에 여성을 놓으려 했던 생물학적 결정주의와 싸우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우리가 섹스/젠더 분할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이런 분할을 따름으로써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와 무관한’ 젠더의 사회적 형성에 대해 말할 권리를 얻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섹스범주를 분석되지 않은 채로 남겨 두는 것으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기서 언급한 바커, 스트래선, 해러웨이의 텍스트에서 ‘질병’이나 ‘병’이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지만, 이런 텍스트들은 ‘질병’연구를 생의학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때 언급할 가치가 있다. 인종과 문화, 생물학적 부모 관계와 친족 체계, 섹스와 젠더, 혹은 질병과 병 간의 차별화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이런 구분들 각각은 생물학과 나란히 사회과학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1950년대에 구성되었다. 나란히. 이 텍스트들은 딱 떨어지는 학문 분과가 아니라 약간 덜 확립된 학제적 분야에서 온다. 이론과 정치학, 자연과 문화, 분과학문들의 경계선들에서 나온다. 그런 텍스트들을 언급하는 것은 비분과적인 유동적 공간에서 이런 텍스트에 장소를 마련해 주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가시성과 접근

문헌을 설명하는 것은 자신의 텍스트를 다른 것들 속에 위치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며, 독자에게 보통은 도움이 된다. 그 텍스트를 형성한 선행연구와, 텍스트가 차별화하고자 하는 이전 것들의 개요를 제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목적들 모두를 위해 좀 권위있는 문헌을 언급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권위있는 저자들이 어떻게 권위를 얻었을까? 답은 다른 저자들에게 언급됨으로써 얻었다. 빙빙 도는 원이다.

로버트 풀의 흥미로운 논문이 있다. 풀은 카메룬 북서쪽 지역에서 영양결핍으로 인한 병인 콰시오커가 어째서 먹을 것이 주변에 널려 있을 때조차 흔한지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이 질병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통찰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풀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콰시오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혹은 병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보통 사람들이 대화에서 서구 의학의 범주와 깔끔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식으로 존재자를 묘사하겠는가? 그럴 거라 생각했다면 서구 의학의 질병 범주들이 자연적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폴은 사람들의 범주는 접근할 수 있는 자연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신 그 범주들은 생명, 고통, 죽음을 다루기 위한 특정 실천의 일부다.

이 논문은 네덜란드어로 쓰여 있다.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작성된 흥미로운 논문들은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아네마리 몰이 네덜란드어로 쓰인 논문을 인용하면, 독자들은 아네마리 몰의 텍스트가 위치한 지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공간/시간 없음!

아네마리 몰은 이 책에서 역사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서술한다. 이 책에서 생산되는 매트릭스들은 주로 공간적이다. 다른 배치 형태들이 서로 나란히, 혹은 안에, 위에 그려진다. 공간에 대한 유클리드적 이미지를 가지고 놀고, 옮기고, 이런 형상들을 상호포함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바바라 두덴의 <피부 밑의 여성들>을 읽으면 독자는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물리성의 경험이 문화에 선행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살아 있는 경험조차 매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서구 신체가 의학에 선행했고 나중에 의학에 의해 객관화되었다는 말도 아니다. 이 두 역사가 상호 얽힌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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