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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반의 경계에서, 폭풍의 언덕

김혜영
 

“시시한 결말이야, 그치?”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죽음을 감지하고는 넬리에게 건넨 말처럼, 폭풍처럼 질주하던 히스클리프의 마지막 변심은 다소 허탈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내가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 이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고전 스토리는 어릴 때 보았던 영화 덕에 어렴풋이 일부분 기억에 있었지만 텍스트로 완독한 이 소설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무(蕪)’에 가까웠다. 격정적인 러브 스토리라고는 하나 2022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기준에서 격정과 어울리는 씬은 거의 없었으며, 작가가 여성인 관계로 여자에 대해 이해도가 낮다라고 꼬집어 비틀 명분도 없었다. 사실 19세기 여성이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글을 써 이 한권의 소설을 남기고 요절했다는 신화가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나는 19세기 당대에 브론테의 글이 외면당한 그 잣대 그대로 170년의 세월을 건너 그녀의 책을 평가하는, 이성의 영역 안 권력 욕망의 화자 - 넬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인지 모른다. 히스클리프의 시시하다는 자조적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자는 주인공들이 아닌 외지인 록우드와 주변인 하녀장 딘 부인 - 넬리이다. 소설은 도시에서 지방 시골로 쉬러온 록우드의 시선으로 폭풍의 언덕에 방문하며 마치 그가 결정적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듯 캐서린의 유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는 그 이후 줄곧 침대에 누워 넬리를 통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는 브론테가 자신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에 투영한 만큼 넬리에게도 지분을 줬다고 느꼈고 어쩌면 현실의 브론테는 넬리와 가장 많이 닮아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폭풍의 언덕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하며 영혼의 단짝이 된다. 그러나 캐서린은 사랑보다는 동등한 신분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지역 유지 에드가 린턴과 결혼을 선택하고 이후 둘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히스클리프의 폭풍의 언덕(위더링 하이츠)과 에드가의 티티새 지나는 농원(드러쉬 크로스 그레인)은 자연과 이성의 이항대립으로 소설의 배경을 장악하고 있다.

 캐서린의 죽음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고자 자연을 배반한 뒤 자신의 주체성을 잃은 대가인 동시에 자신의 파괴를 불사한 막다른 주권 회복의 시도였지만 넬리는 그녀의 병을 광기로 치부해 버린다. 넬리는 가부장 계급사회에서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한 존재이며 사실상 가부장을 대리하는 이성의 수호자 이기 때문이다. 넬리는 캐서린의 죽음에 기여한 밀고자이자 방관자이다.

 캐서린의 딸 캐시 또한  드러쉬 크로스 저택이라는 온실 속에서 아버지 에드가와 넬리의 보호아래 자라난다. 그러나 캐시는 캐서린의 기질을 물려받아 금지된 자연의 성인 폭풍의언덕을 동경하는 숙녀로 성장하고 넬리의 감시를 벗어나는 모험을 택한다. 캐시에게 위반의 결론은 단절과 절망이다. 그녀는 열망하던 폭풍의 언덕에 입성하지만 시아버지 히스클리프에 의해 또 다른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캐시에게 정념을 느낀 록우드에게 두 가문의 악연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은 넬리이다. 그녀는 히스클리프에게 캐시를 잃고 다시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남편이 죽고 상속권 마저 시아버지 히스클리프에게 빼앗긴 캐시에게 남은 기회는 다른 신사와의 재혼이다. 넬리는 넌지시 록우드의 가부장적 욕망을 건드린다. 

 캐서린의 죽음과 그녀의 딸 캐시의 이어진 고난은 위반의 미학의 재생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캐시는 캐서린과는 조금 다른 진일보한 주권의식을 보여준다. 그녀는 사회적 규범과 타협한 어머니와는 달리 록우드의 응시에 야만적인 태도로 응수하고 결국 자연영역의 헤이턴을 선택했다. 헤이턴은 유년의 히스클리프의 삶을 반복하고 있던 청년이다. 교육과 단절되어 더러운 농장 일을 하고 있던 숨겨진 보석을 캐시는 알아본 것이고 안온한 이성의 선택지를 버리고 자기 본연 - 자연으로 돌아갔다. 넬리는 록우드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이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지위를 되찾았고 캐시와 헤이턴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이 가족이 새로운 모범적 세계가 되기를 꿈꾼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작품이다. 브론테가 30세즈음 폐렴으로 사망하기 전 출간된 ‘폭풍의 언덕’은 현재에도 꼭 읽어야할 위대한 고전으로 손꼽히며 수차례 영화화 된 이야기 이다. 이룰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연인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사랑을 완성하였다. 이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자기 스스로도 병약했던 브론테의 죽음에 대한 일상적 체험과도 밀접한 결과이다. 히스클리프가 복수에 몰입하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명확한 이유없는 판타지로 묘사된다. 캐서린의 유령을 기다리며 결국 현실세계의 나를 초월한 죽음을 통해 연인과 하나되는 희열은 사후 환희에 가득한 부릅뜬 히스클리프의 눈으로 표현된다. 폭풍의 언덕은 응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응시는 욕망의 발현이다. 여주인공 캐서린과 캐시는 남성들의 시선에 주체적 시선으로 응대한다. 브론테의 소설이 당대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 또한 이러한 여성의 현실 직시 은유 때문일 수도 있다. 올랭피아의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규범적 세계의 미술 관람객들에게 분노를 유발한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액자구조에서 최초 - 최후의 화자는 남성인 록우드이며 그와 이야기 주도권을 두고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여성은 넬리이다. 록우드가 병에 걸려 침대에 누우며 주인공들을 관찰하는 응시의 구도는 넬리의 위치로 전복된다. 이 전복은 자연과 야만의 세계로의 초월인 아닌 이성적 규범 사회안에서의 안전한 위치전환일 뿐이다. 넬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죽음을 넘어선 합치의 과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미친자들 이라는 통념으로 재단해 버린다. 미친자들의 사랑놀이는 동화적이고 몽화적이다. 엄격한 가부장의 대리인 넬리를 통해서는 캐서린과 캐시, 에드가의 동생 이사벨라까지 근원적 야만인 섹스에 대한 욕망은 삭제된 채 그려진다. 남성에 대한 욕망은 응시로만 표현될 뿐 넬리의 입에서는 그 어떤 여성도 연인에 대한 성적 욕망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녀들은 모두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신화 속 여신이지만 결혼을 통해 (순결한)여신의 지위를 상실하면 가부장제 안에서 소모적 자산이 되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에서 사랑을 완성한 듯한 캐시의 경우 헤이턴과 관능의 교류가 교양이라는 가장 이성적 방식으로 표상되는 아이러니를 맞이한다.

 브론테가 글쓰기를 통해 19세기 남성중심 사회에서 자기 초월과 규범적 위반을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폭풍의 언덕이 여성의 주체적 글쓰기의 산물이라는 평가만으로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내적 체험임을 장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위반의 경계에서 안과 밖의 한발자국의 차이는 결국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문학동네 / 김정아 옮김

<문학과 악> 조르주 바타이유 / 민음사 / 최윤정 옮김

<폭풍의 언덕에 나타난 응시의 문제> 이연 / 이화여자대학교 / 2005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에 나타난 극단의 미학 – 시와 소설에 나타나는 이항대립적 요소를 중심으로> 김진옥 / 숙명여자대학교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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