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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 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 7장 발제

지현 2022.06.30 19:25 조회 수 : 57

7장 양자 얽힘 – 실험 형이상학과 자연의 본성

p.1> 과학학과 자연에 관한 연구는 같이 간다. (...) 특히 보어는 과학적 실천들이 자연의 구성요소들 간의 간-행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우리의 지식-형성 실천들은 우리가 기술하는 현상에 영향을 주고 그것의 부분이 된다고 논증한다. 우리의 가장 뛰어난 과학 이론가들이 우리에게 말한 바에 따른 자연의 본성과 과학의 본성 둘 모두를 이해하기 위한 보어의 자연주의적 언급은 그의 양자 물리학 해석의 발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나는 단순히 과학을 반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학적 실천의 본성에 대한 얽힌 질문들을 제기하는 동안 과학적 실천에 연루된다.

---> 바라드는 이 장에서 보어의 경우에서 보다 더 신뢰할 만한 자연주의적인 해석, 행위적 실재론을 기반한 양자물리학의 해석, 새로운 과학적 결과 즉 인간주의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보어의 해석을 기초지우는 양자 물리학을 해석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예비적 고찰

양자이론에서 해결되지 않은 해석적 질문: 수식체계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

p.3> “수식체계는 아직 본격적인 이론이 아니다. 이론은 일련의 [...] 대응 규칙들과 설명 원리 또는 모델을 담고 있어야 한다”(ibid., 23). 엄격하게 말해서 그렇다면 양자 역학은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수식체계이다. (...) 그 해결되지 않은 해석적 구조에도 불구하고 양자역학 이론은 과학사에게 가장 정확한 것으로 신뢰받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일관된 해석틀이 없는 상황에서 대체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그들이 계산한 것과 측정한 것을 관련짓는 법을 아는 건가? 이 분명한 효과를 위한 기초는 무엇인가? 수식체계가 해석적 구조의 정립 없이도 그토록 광범위하게 과학 공동체에 의해 수용되어 왔던 것은 어째서인가? 이러한 것들은 중요한 질문이다.

p.4> 본질적으로 논점은 이것이다. 슈레딩거 방정식은 우리가 주어진 물리적 환경에 대해 아는 것이 가능한 바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하며, 그것은 뉴턴 물리학에서처럼 어떤 정확한 궤도가 아니라, 입자가 어떤 시간 t에서 측정될 때, 어떤 위치 x에서 발견될 개연성의 상술이다. 많은 상황들에 그토록 효과적으로 그 자체 작동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술]태도이다. (...) 사실상 양자 역학 이론은 물질의 가장 작은 입자에서부터 블랙홀과 같은 우주적 대상의 안정성에 대한 질문들에까지, (...) 레이저 펄스에서부터 우주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들에 걸치는 현상들을 해명할 능력에 있어서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p.5 하지만 해석 문제가 세부적으로 평가될 때, 표준적인 코펜하겐 ‘해석’이 전혀 일관된 해석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일관된 사유라기 보다, 상이한 요소들의 패스티시이며, 부분적으로 협상되고 매개적인 조합이거나 양자역학을 기초하려고 애를 쓴 지도적인 물리학자들의 연구결과의 조합 또는 중첩이다. 양자 수식체계의 막대한 생산성을 고려할 때, 물리학자들 중 엄청난 다수가 해결되지 않은 해석 문제를 괄호치는 동안 수식체계의 계산상의 성공들에 집중했으며, 지금도 집중하고 있다.

 

-양자역학을 성가시게 해 왔던 몇 가지 역설들과 곤경들

-보어 해석의 몇몇 신중한 반론들과 한계들, 몇 가지 통상적인 오해들

-행위적 실재론을 바탕으로 양자 역학의 영역에서 어떤 오래된 역설을 해결하기 위한 그것의 잠재력을 평가하고, 그것을 최근에 제안된 몇몇 더 새로운 해석들과 비교

 

▶물리학자와 고양이들-양자역학의 기초적 쟁점들

1. 토마스 영의 주제에 대한 양자적 변형: 중첩, 혼합, 그리고 ‘선택-경로’-간섭 상보성(하나의 입자에 대한 중첩)

p.6> 중첩은 양자역학의 신비를 체현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첩으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기초적인 쟁점에 관한 탐색을 시작한다. 중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떻게 그것은 양자 역학 수식체계 안에 등장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중첩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p.7> 슈레딩거 방정식(SE)은 입자들의 파동행위: 수학적으로 말해 이것은 SE가 선형 방정식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중첩의 실존 자체는 물질의 파동적 움직임의 특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첩이 수학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들은 SE의 선형성의 결과이다. 그러나 중첩은 무엇을 재현하는가? 우리는 그것들을 어떻게 물리적으로 이해하는가?

-색-측정 장비(블랙박스) 실험 ---> 물리학에서 마주하는 실천적 사례 SG장비(스핀값) 실험1, 2, 3

p.12> 그것은 우리가 여기서 목격하고 있는 것이 스핀 성분들에 있어서 어떤 불확실성 또는 미결정성의 결과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실상 우리는 스핀-벡터의 세 성분들 중 하나 이상을 동시에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지칭하는 어떤 표현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양자 역학의 수식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그에 따르면, 이것의 이유는 세 가지 성분들이 동시에 알려질 수 없고, 보어의 생각에서, 이는 그것들이 동시에 결정값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비등가적인 위치들 즉 불확실성과 미결정성 사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실성 원리는 인식론적 원리이다. 즉 그것은 측정이 기존의 값을 방해하고 이에 따라 그 상황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어떤 제한을 둔다는 생각을 옹호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어의 미결정성 원리는 존재론적 원리이다. 즉 논점은 측정이 고유한 속성들의 선재하는 값을 방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속성들이, 해당 개념에 상응하는 정의를 부여하는 특정한 물질적 배치들의 존재를 부여받을 때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조건들이 없으면, 해당 속성들은 결정값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 속성들의 집합의 결정성은 물질적으로 상보적인 집합의 결정성을 배제한다.

-SG장비(스핀값) 실험4: 변형된 SGx장비 실험

p.14> 이 실험들로부터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논점들이 있다. 우선 그 결과들은 선재하는 값들을 차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장비가 상보적 양들을 미결정으로 남겨둔 채, 해당 속성에 관한 생각에 정의를 부여하고, ‘객체’와 ‘측정 수단’ 사이에 어떤 절단을 수립하며, 그리고 해당 측정량에 대한 결정값을 생산하는 특수한 물질적 배치라는 보어의 해석과 일치한다. 이것은 인간 관찰자가 결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산출하지 않고, 오히려 장치들의 물질적 배치의 특수한 본성이 절단의 수립에 관한 특수성들에 책임이 있다[응답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측정에 있어서, 우리는 측정되는 양에 있어서 항상 허용된 고유값들 중 하나 즉 결정값을 발견한다. 이 중요한 점을 인지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측정에 있어서 각 입자들은 허용된 고유상태들 중 하나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점은 실험의 결과 안에서 일관성으로 나아가는데, 다시 말해 측정이 선재하는 값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것들은 어떤 임의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고, 오히려 확정적이고, 일관되며 재생산가능한 값들이 취해진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지막 두 실험은 중첩이 드러내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최초의 가설이 그릇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즉 중첩은 결정된 속성들과 입자들의 혼합을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첩은 존재론적으로 미결정의 상태들을 재현한다. 이 상태는 해당 속성과 연관된 물질의 그 어떤 결정된 사실도 가지지 않는다.

>>중첩과 혼합 사이의 중요한 차이

p.14~15> 혼합은 입자들의 모임 또는 앙상블을 가리킨다. 이때 각각의 입자들은 해당 속성의 결정값을 가진다. 이는 어떤 주어진 입자의 상태가 결정된 것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과 같다. 특히 혼합에서 각각의 입자들은 결정된 고유상태에 의해 재현된다. 혼합체들은 자주 통계적으로 기술되지만, 중요하게도 이런 경우 확률의 쓰임새는 양자 미결정성과 연결되지 않고, 단순히 주어진 입자를 위한 속성의 값이 알려지지 않는다는 사실과만 연결된다. (...) 대조적으로 중첩은 양자 미결정성을 체현한다. (...) 중요하게도 중첩과 혼합은 물리적으로 구별가능하다. 즉 그것들은 상이한 흔적을 남긴다. 중첩은 간섭 효과를 허용하지만, 혼합은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이중-슬릿 실험

p.16>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추론에 있는 결함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문제제기에 응답했다. 즉 그것은 이중-슬릿 정모와 간섭 패턴 둘 모두의 방식을 한 번에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며, 아이슈타인의 ‘반동-슬릿’ 배치는 간섭 패턴을 파괴할 것이라고 논증한 것이다. 보어의 사유에서 각각의 선택-슬릿 정보와 간섭 사이, 즉 입자와 파동 행위 간에 어떤 필연적인 교환관계가 있다. 보어는 이것을 파동-입자 상보성이라고 한다. (...) 논점은 만약 우리가 탐구 대상의 파동 같은 본성을 가정하는 어떤 질문에 의미 있게 질문하고 대답하도록 허용되는 실험적 배치를 도입한다면 그때 우리는 입자 같은 행위를 발견하며 그 어떤 간섭 패턴도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보어에 따르면 파동-입자 상보성에는 그 어떤 신비적인 것도 없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것들의 배제에 대한 어떤 고전적 변수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실험적 배치의 물질적 특수성에 관한 문제다. 즉 그것은 객체와 관찰 행위소들 간에 특수한 절단을 수립하며, 해당 속성의 결정값을 생산한다.

 

p.17> 결과의 확률적 본성은 존재론적 미결정성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지 고전적인 무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스크린 위 입자의 결과적인 분포는 간섭 패턴을 형성한다. 이것은 움직이는 선택-슬릿 탐지기를 갖춘 장치의 경우 발견되는 분포와 대조되며, 간섭 무늬를 전개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것이 양자역학의 일반적 형상이다. 즉 간섭패턴은 중첩의 표시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중첩은 양자적 세계의 어떤 기초적 형상이다. 혼합은 물리적으로 중첩과 구별가능하다. 즉 이 둘은 상이한 객체적 흔적들을 남긴다. 간섭 패턴은 중첩의 객체적 표식이다. 혼합물은 간섭패턴을 생산하지 않는다.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는 입자의 혼합물이 있으며, 그 어떤 중첩도 없다. 중첩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고전 형이상학적 전망에 도전한다. 입자 흔적들로 만들어진 중첩 또는 간섭패턴은 양자적 행위의 구별되는 흔적이다.

 

2.EPR(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 역설: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대하여(두 입자 얽힘)

p.18> EPR 논문의 핵심은 A와 B 사이의 상관관계다. 중요한 의미에서 중심적인 쟁점은 정확히 이 상관관계의 본성이다. 문제가 되는 이 특별한 종류의 상관관계는 ‘얽힌 상태’라고 불리워진다. 얽힌 상태란 단지 어떤 예전의 상관관계가 아니라, 양자역학적 상관관계임이 드러난다. 사실상 우리가 보게 될 바와 같이 양자 얽힘은 초-상관관계이다.

p.21> (EPR추론에 따라) 사람들은 오로지 두 가지 가능한 설명만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1) 체계 A에 대한 측정 결과는 어떤 비국소 효과, 즉 체계 B의 물리적 실재성에 즉각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또는 (2) 양자역학은 불완전하다. 사람들이 특수상대성 이론과 부딪히게 된다는 첫 번째 선택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은 양자역학이 완전한 이론이 아님에 틀림없다고, 그리고 사실상 이해를 막는 어떤 다른 변수들, 즉 만약 발견된다면 결국엔 그들이 드러냈다고 주장하는 바가 실제로 동시에 물리적 실재의 요소들이라는 소위 상보적 변수들을 포함하여 모든 물리적 실재를 해명할 변수들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결론 내린다.

p.21~22> 보어는 물리적 실재에 관한 EPR의 규준에 문제제기를 한다. 그의 응답은 체계 A에 대한 모든 측정을 수행함으로써 체계 B의 속성들을 연역하고 이에 따라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어떤 방식으로 B를 방해하기 않는다는 논지는 주의를 딴데로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보어에게 방해란 진정한 쟁점이 아니다. (...) 보어는 방해라는 생각을 주제화하는 바로 그 생각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보어에게 쟁점이 되는 것은, 방해의 문제라기보다 객체관찰 행위소들간의 존재론적 미결정성의 객관적 해법이다. (...) 다시 말해, 본질적인 쟁점은 존재론적 모호성이 어떤 특유한 실험적 배치로만 해결되는 방식이다. 만약 실험적 배치가 변화되면, 그 절단에서, 관찰 행위소들로부터 객체의 윤곽이 드러나는 중에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존재하며, 인과 구조가 그 절단에 의해 수립된다. (...) 보어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EPR 논증을 거부한다.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에 의해 사용되는 물리적 실재에 관한 규준은, 그들이 측정한다고 가정하는 그리고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추정되는 객체의 경계들과 속성들의 본질적인 모호함(미결정성)이 주어진 실험적 배치 바깥에서 해결되지 않으므로, 객관적이거나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상이한 상보적 변수들을 측정하기 위해 상이한 실험적 배치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리적 실재에 관한 그들의 규준에는 본질적인 모호함이 있다.

 

3.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다입자 얽힘, 거시적 객체들)

p.22> 고양이 역설은 측정의 본성에 관한 적합한 이해에 다가가는 것의 난점을 극화하는데 유용하다.

p.23> 슈뢰딩거는 파동함수가 우리가 미시 영역에 천착하는 한에서 “하나의 완전히 확실한 개념 안에서 특정 수준이나 종류의 모든 변수들의 오염”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 슈뢰딩거의 논점은 측정 사이에 슈뢰딩거 방정식이 파동함수의 결정론적인 시간 진행을 기술하고 -‘오염’은 그 자체로 시간 안에서 어떤 결정론적인 경향으로 증식되어 나아간다- 그 어떤 주요한 개념적 난점도 도입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물들이 미시적 객체들의 규모로 유지되는 한에서 오염은 어떤 도움이 되는 발견적인 것으로 증명된다. 하지만 오염이 거시적 객체의 세계로 스며드는 기회를 가질 때, 특별히 측정 동안 미시적 체계가 거시적인 측정 도구와 상호작용 할 때, 오염이라는 관념은 그릇된 것으로 된다. 슈뢰딩거의 논점은 미시적인 변수들의 오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오염적 성격을 측정에서 목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6> 슈뢰딩거에 의해 제안된 사유 실험은 미시적 수준에서 이미 존재하는 쟁점에 관한 극적인 무대화인데, (...) 논점은 우리가 철로 된 방을 열 때 발견될 것을 상당히 확신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뭉개져 혼합된고양이를 발견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죽거나 살아 있는 고양이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점은 또한 우리가 원자나 이런저런 입자들을 측정할 때 적용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고유상태들의 중첩으로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고유상태들 중 하나로 발견할 것이다. 논점은 측정이 미결정성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4.측정의 문제(다입자 얽힘, 거시적 장비들)

p.26> 고양이 역설은 전자와 중성자를 포함하는 동일한 현상이 단순히 그러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 가장 혼란스러운 것것, 즉 설명이 가장 필요한 것은 측정과정 중에 일어나는 상태 변환의 본성이지, 단순히 그것의 사전에 있던 상태의 본성이 아니다. 측정 이전과 이후의 상태에 있어서 중요하게 차이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측정에 의해 중첩은 혼합된 것으로 ‘붕괴’하는 것 같다. 특히 우리는 미결정 상태에 있는 고양이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에 의해 죽거나 살아 있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이것은 우리가 미시적 객체들에 측정을 수행할 때 만나는 상태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즉 측정기는 언제나 결정된 방향 안에서 무언가를 가리킨다.

>측정의 문제에 관한 슈뢰딩거의 전체적인 분석

p.29> 슈뢰딩거는 아마도 놀랍게도 얽힘이 흔적이 등록될 그 순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주체가 실제로 측정의 결과를 알아챌 때 해결된다”고 논증한다. 다시 말해 고양이의 경우로 돌아가서, 슈뢰딩거가 제안하는 해결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기묘한 상황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슈뢰딩거에 따르면 그러한(고양이는 이미 죽었거나 그렇지 않았다) 추정은 그릇된 것이다. 얽힘의 해결이라기 보다, 우리가 가지게 된 것은 이제 기록 기계도 마찬가지로 얽힌 상태 안에 있게 된, 즉 그 방 안쪽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과 얽힌 더 복잡해진 얽힘의 상황이다. 사실상 슈뢰딩거는 몇몇 인식하는 주체가 조사에 따라 결정값을 추정하는 기록 장비에 남은 흔적을 간파하기까지 얽힘이 유지된다고 논한다. (...) 파동함수에서 불연속적 변화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파동함수들에서 어떤 불연속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측정행위들이 주재하는 자연의 몇몇 구별되는 법칙에 기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로 진행되는 것은 ‘객체’의 파동함수가 ‘측정하는 체계’와 얽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얽힘에 관한 슈뢰딩거의 이해는 명백하게 인식적이지, 존재적이지 않다. 사실상 정의를 내리는 문장에서, 그는 “우리 인식의 얽힘”을 이야기한다.

p.30> 우리가 보았다시피, 핵심 주제는 측정에 앞서는 중첩 또는 얽힘과 그것의 측정에 있어서 일정한 값들의 혼합으로의 ‘해결’ 사이에 상태에 있어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두 종류의 상태들이 물리적으로 구별가능하다는 것을 상기하자. 즉 중첩은 간섭 흔적들을 남기지, 혼합은 그렇지 않다. 이 상태 변화가 문자 그대로, 즉 물리적인 어떤 것으로 취해질 때, 파동함수의 ‘붕괴’로 지칭된다. 슈뢰딩거는 물리적 변화에 상응하는 파동함수에서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 측정의 문제 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 관한 현대적 사유를 잘 아는 독자들은 실제로 파동함수가 측정에서 발생하는 것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 단일한 선택지에 직면하여 측정의 본성에 관한 질문은 실제로 ‘측정 문제’로 돌아가는데, 왜냐하면 붕괴가 정말로 특이하기 때문이다. 즉 “붕괴는 모든 공간에 걸쳐 동시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실험적 수학: 연구실 내 사유 실험의 실현

p.32> 실험적, 기술적 그리고 이론적 진보가 어떤 사유 실험들, 즉 양자 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직접 검토하는 실험을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EPR 문제제기와 벨 부등식

p.33> 벨은 두 가지 상이한 형이상학적 위치들 사이를 경험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 벨은 EPR 논문에서 어떤 ‘숨겨진 변수들’과 양자 역학 사이에 물리적으로 검사가능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 벨은 우리에게 물리적 실재가 국소-숨은-변수 이론에 의해 또는 양자 역학에 의해 올바르게 기술되는지 아닌지를 말해주는 실험적 검사를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p.35> 벨의 부등식에 관한 실험적 검사들은 부등식의 위반을 압도적으로 확증할 뿐만 아니라, 위반의 정도도 양자 이론에 따라 예측되는 바로 그것이다. 즉 실험적 검사들은 EPR 분석이 옳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의 화려한 논증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국소 숨은-변수 이론으로 합당하게 기술되지 않는다. 오히려 뉴턴 역학을 기초짓는 것이라기 보다 어떤 차이나는 형이상학의 존재를 위한 경험적 증거들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철학적 편견이 아니라, 어떤 경험적 사실이다. 그리고 이 점 자체가 이미 멋진 결과다.

p.36> 그러므로 EPR 사고 실험에 관한 벨의 개념의 실험적 실현의 결과는 그것이 더 이상 개체주의 형이상학을 수용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즉 개별적 객체가 각각의 속성들을 가진다거나, 객체들 간의 상호작용이 비국소적이라는 생각 중 하나가 그릇되거나, 또는 둘 모두 옳지 않다.

 

상보성 Ⅰ: BKS와 맥락성

p.36~37> BKS 정리는 알려져 있다시피, 양자 역학 이론에 대한 더 나은 통찰을 제공하는 어떤 중요한 이론적 결과이다. (...) 미결정성의 원리가 상보적 변수들의 동시 측정에 대해 어떤 제한을 설명한다는 것을 상기하자. 결과적으로 체계의 양자적 상태는 고전 역학이 그 상태에 대한 그것의 해명에 있어서 요청되는 모든 변수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상호적으로 양립가능한 변수들에 의해서만 설명된다. (...) 중요하게도 BKS 정리는 미결정적 관계들로부터 독립적이다. 이러한 결과는 고전 물리학의 전망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양자 물리학의 많은 전문가들에 이르기까지도 반직관적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그것을 취급하기 위해, 당신이 탐색하는 머리카락의 색깔은 당신이 신발 크기와 젠더를 동시에 측정하고 있는지 아닌지, 또는 당신이 높이와 폭을 측정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아주 잘 의존할 것이다”(Greenstein and Zajonc 1997, 115-I6).

p.37> BKS 정리에 따르면 양자 현상의 모든 실행가능한 이론과 해석은 ‘맥락적’이어야 한다.

논점은 모든 측정들을 위해 보다 큰 실험 배치가 물질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어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논점이다. 주목할 만 하게도 BKS 정리는 개체주의의 형이상학 –선재하는 객체가 고유한 속성들을 지닌다는 가설- 을 거부한다.

 

상보성 Ⅱ: 선택-슬릿 실험(불확실성이 아닌 미결정성)

p.38> 보어의 사유에서 ‘방해하는 그 어떤 선재하는 값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호 제한적 관계는 인식적 해석에 주어진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의미론적이고 존재적인 결정성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가 실제적 검사를 고려하기 전에, 보다 상세하게 그 관점들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가치 있다.

 

a. 상보성과 불확실성

>파동-입자 이중성의 유령

p.39> 보어는 ‘파동’과 ‘입자’에 관한 고전적 생각들이 단지 추상들이라는 것과 ‘파동’과 ‘입자’라는 생각이 단지 “다른 체계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정의가능하고 관찰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기술의 고전적 방식에 대한 양자적 대안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예를 취한다면, 전자가 상보적 환경들 아래에서 전개되는 겉보기에 모순적인 결과들을 조화시키는 수단으로서 상보성을 참조한다. (...)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관계에서 드러난 기술적 개념들의 상보적 본성이 이미 그것들의 상호적 규정가능성을 드러내는 기술적 개념들의 사용에 관한 분석에 의해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을 즉각 보여준다.

p.42> 보어의 ‘미결정성 원리’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간의 차이를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식상 그것들은 동일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같지 않다). 이것은 다른 상호 관계, 예컨대 에너지-시간 불확실성 또는 미결정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진실이며, 이는 똑같은 형식을 또 다른 한편에서 가지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 보어에게 논점은 분명 개념적 ‘정의의 선명도’이며, 이는 우리가 이전에 당연시했던 고전적 세계관 안에서는 그 어떤 실험적 맥락으로부터도 독립적으로 잘 정의된 의미를 가지지만, 양자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어떤 주어진 실험적 배치에서만 의미론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p.43>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의 관점을 묵인한다. 거의 논의되지 않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유명한 불확정성 논문의 후기에 그의 분석의 이러한 중요한 결점에 관한 수용을 포함하게 된다. 중요한 의미에서 이 후기는 그가 텍스트의 본문에서 드러낸 분석의 어떤 폐기를 구성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이 그릇된 분석이 상호 관계 표준 해설이 되었다. 불확정성 원리는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근본적인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고 인정했음에도, 그것에 조응하여 학생들에게 계속해서 가르쳐져 왔고 물리학자들과 비물리학자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역설적으로 상관 관계에 관한 보어의 해명, 즉 미결정성 원리에 대한 언급은 아무데도 없다.

p.43> 보어는 문제가 되는 것이 측정 행위 중에 발생하는 방해이며, 이러한 추정된 방해가 우리의 있다고 생각되는 잘 정의된 변수들 또는 측정된 객체의 속성들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제한한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을 거부한다. 대신에 보어는 문제가 되는 것이 개념 정의를 위한 가능성 자체이며 속성들과 ‘객체’의 경계 결정성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실험적 배치의 특수한 본성에 의존한다. 즉 보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인식론적 해석과는 대조적으로 상호관계에 관한 존재적-의미론적 해석을 제시한다.

 

b. 선택-슬릿 실험

p.43> 보어는 선택-슬릿 정보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실험 배치를 활용하는 것과 고정된 탐지 스크린 위에 간섭 패턴의 존재 사이의 상보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논증한다. (...) 특히 우리는 문제가 되는 것이 어떤 방해(하이젠베르크의 입장)인지 또는 존재적-의미론적 결정성(보어의 입장)인지에 관한 질문을 경험적으로 표명하기 위한 기회를 가진다.

p.44~45> 우터스와 취렉은 스프링-슬릿 실험의 특수한 경우를 위해 ‘보어의 원리에 관한 양적 진술’을 도출한다. 우터스와 취렉의 결론은 보어의 상보성 개념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간섭과 선택-슬릿 사이 또는 가끔 ‘간섭무늬 가시성’과 ‘구별가능성’이라고 불리는 것 사이, 즉 파동 입자 행위과 파동 입자 기술의 적합성 간의 연속적인 교환을 해명한다.

p.45> 보어의 상보성 원리에 관한 양적 진술들은 특히 왕(Wang), 주(Zou) 그리고 만델(Madel)(1991)이 속한 로체스터 그룹에 의해 실험적으로 확증되었다. (...) 간섭패턴을 약화시키는데 요구되는 모든 것은 구별하는 경로의 가능성이다. 즉 보어가 불확정성 원리와 EPR 분석에 관한 하이젠베르크의 추론과 해석 둘 모두의 비판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쟁점은 방해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가 되는 변수들의 ‘정의 가능성’이다.

p.47> 스컬리 등의 실험에 관한 다이아그램: 그들이 제시한 상보성의 원천은 ‘측정 장치와 관찰되는 체계들 사이’ 상관관계, 즉 ‘관찰 대상’과 ‘관찰 행위소들’의 얽힘이다

p.48> 상보성의 뿌리는 무엇인가? 원자적 객체들의 독립적 행위와 측정 도구들과 그것들의 상호작용 사이에 어떤 정확한 구분을 그리는 것도 불가능하며, 그것은 현상들이 발생하는 조건들을 정의하는데 기여한다. 달리 말해 대상과 관찰 행위소들의 분리불가능성이 바로 상보성의 토대인 것이다. (...) 보어의 상보성 틀의 함축적인 존재론적 차원들에 관한 나의 행위적 실재론의 탐색에 기반하며, 현상들은 단순히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의 인식론적 분리불가능성을 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상들은 행위적 간-행의 성분들의 존재론적 분리불가능성이다. , 문제가 되는 사태에서, 현상들은 객체들과 관찰 행위소들의 존재론적 얽힘인 것이다.

 

상보성 Ⅲ: 양자 지우개-얽힘 규칙

p.50> (만약 우리가 사실상 얽힘 안에 담겨 있는 상관관계를 발견하기 위해 올바른 변수들을 측정할 만큼 충분히 영리하다면) 선택-경로 정보를 지움으로써 간섭 패턴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우리는 원자가 슬릿들을 통과하고 그 흔적을 스크린 위에 남긴 후에 선택-경로를 지울지 지우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원자가 전체 장치를 통과해 가길 기다릴 수 있고, 만약 우리가 선택-경로 정보를 마이크로메이저 공진기에서 선택-경로 정보를 지우고자 한다면, 오직 그때 결정할 수 있다.

p.51> 선택-경로 정보가 지워지게 될 가능성이 절반이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절반이다. 이것은 우리가 스크린 위에서 불가피하게 발견하게 될 산란 패턴이 두 가지 상이한 종류의 사건의 흔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우진 선택-경로 정보를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p.53> 양자 지우개 실험은 객체와 관찰 행위소들이 단일한 현상의 분리불가능한 부분들이라는 보어의 중심 논제를 확인해 줍니다. 특히 원자는 어떤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현상의 분리불가능한 부분이며, 발견들의 역설적 측면은 쟁점이 현상일 때 객관적 지시체를 어떤 추상적 개체로 그릇되게 규정하는 것에서 나온다. 사실상 ‘객체’와 ‘관찰 행위소들’ 간의 양자 얽힘, 이 경우에는 우리가 정확히 필요로 하는 원자와 장치들 간의 얽힘은 간섭 패턴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에 참여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객체를 넘어서는 현상이 존재론적 우선성을 위한 증거를 본다. 다시 한 번 우리는 객체를 넘어서는 현상이 존재론적 우선성을 위한 증거를 본다. 만약 우리가 추상적인 개별적 실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결과는 전적으로 미궁에 빠질 것이고, 우리는 겉보기에 원자들의 불가능한 행위를 해명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실험자가 이미 현재가 되어 버린 과거를 변화시키거나, 원자들이 단순히 정보를 지움으로써 새로운 미래의 선 안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논점은 과거가 결코 단순히 거기에 시작하기 위해 있다는 것이 아니고, 미래가 단순히 펼쳐질 것이라는 것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는 모든 것이 하나의 현상인 시공간물질화(spacetimemattering)의 반복적 실천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작업되고 주름 접힌다. 공간안에 분리된 개별적 입자들과 시간 안에서 분리된 개별적 사건들 간의 유령적 양자 얽힘(spooky-action-at-a-distance)의 이어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현상적이다. 즉 그것들은 간-행적으로 현상들의 형성과정에서 생산된다. 공간이든 시간이든 그 어떤 것도 현상 바깥의 규정적 소여들로 존재하지 않는다

 

▶보어의 해석에 있어서 실재와 상상된 제한들

1.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실재론에 반실재론으로 답하는가? 객관성과 분리가능성에 관한 질

p.57>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둘 다 개체화의 객관적 규준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에 동의하며, 그래서 “우리는 무엇에 그러한 측정에 의해 드러난다고 생각되는 속성들을 귀속시키는가?”라는 질문이 객관적으로 대답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가 시공간 분리가능성 외에 다른 규준을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어는 상이한 규준을 제안할 수 있고 행할 뿐 아니라, 관찰자와 관찰된 것의 묘사는 철학적인 선입견(preconceptions)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리학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p.58> 보어는 분리가능성 조건을 명확하게 거부한다.(...) 보어와 아인슈타인은 관찰자와 관찰대상 간의 외부성 관계를 매우 다르게 해석한다. 아인슈타인에게 외부성은 공간적 분할이다. 다른 한편 보어에게 ‘관찰 대상’으로부터 ‘관찰자’의 개체화는 시공간적 분리가능성의 결과가 아닌데,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가 시공간 기술대상(descriptions)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체화는 보다 큰 물질적 배치에 수반하는 특수한 간-행의 결과이다.(...) 나는 객관성에 관한 보어의 인식적 개념의 확장을 아인슈타인이 그러했지만, 그것을 공간적 분리가능성의 문제적 규준 안에 근거짓지 않으면서, 존재론적 분리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전경화하는 존재론적 개념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2. 보어의 해명에 대한 반론들: 실재와 상상된 것

p.59> 보편성은 당연하지만, 특수성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동일성은 가정되지만, 차이는 어떤 이유로 발생한다. 특이성은 정당화를 요구하는 부자연스러운 사태다.

p.60> 포스트휴머니즘적 자세는 인간이 자연 현상들 또는 그것들을 해명하는 이론 안 또는 바깥에서 어떤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는 가정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자세는 머민의 측정에 대한 관점과 유사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인간’은 다른 어떤 방식이 아니라 이론과 관련하여 그리고 그것이 출현하는 특수한 간-행과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하지 않는가? 보어가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그 자연의 일부라고 언급할 때,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포스트휴머니즘적 자세를 공유한다. 그러나 그는 한 손에 그가 주려는 것을 쥐고, 다른 손으로 그것을 제거해 버린다.

 

a. 측정 장비는 본질적으로 고전적 체계인가?

p.61> 보어가 측정도구들과 고전적 용어들 사이의 연합에 대해 언급한 것은 어떤가? “측정 도구들은 (...) 고전적 용어로, 현상들이 나타나는 조건들을 정의하는데 기여한다”는 말은 보어의 철학-물리학의 탁월한 통찰들 중 하나로서, 객관적 기술의 가능성을 위한 조건인 고전적 개념들의 물질적 체현에 대한 것이다. 즉 보어의 강조는 기술적 개념들의 적합한 사용에 놓여 있다. 우리는 고전적 개념들 또는 기술들(descriptions)의 사용에 관한 보어의 주장을 고전 물리학 법칙의 필연적 적용에 대한 주장, 또는 분리된 영역들에 관한 주장과 같은 어떤 것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전술한 예에서 설명된 것처럼, ‘측정된 객체’와 ‘측정하는 행위소’ 사이의 구별은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 사이의 구별과 다르다.

p.62> 객체와 도구들의 윤곽을 그리는 행위적 절단에 대해 강조된 중요한 특성은 실험적 배치가 규정가능성을 위한 조건들의 상호 배제성을 체현하기 때문에 – 객체나 도구의 일부로서 - 실험적 배치의 어떤 특정 부분에 의해 작동되는 그 특별한 역할이 필연적으로 간-행의 세부사항들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b. 고전적 개념들은 양자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필수적인가?

p.63> 보어의 인용문: 비록 고전 이론들[법칙들]이 우리가 원자 물리학에서 관심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규칙들을 해명하는데 충분치 않을지라도, 고전 물리학에서 객체와 측정 행위소들 간의 구별은 고려되는 현상들의 기술(description)의 특성에서 어떤 차이를 수반하지 않지만, 양자 이론에서 그것의 기본적인 중요성은 모든 합당한 측정의 해석에서 고전적 개념들의 긴요한 활용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Bohr 1998 [1935 essay], 81) (...)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객체와 도구 사이에 어떤 구분을 만드는 절단이다. 이러한 구별에 있어서 고유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상 이것이 전체 논점이다! 아인슈타인과 대조적으로 보어는 도구와 객체 사이에 어떤 고정된, 고유한 분리를 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실험적 배치의 물질성이며, 이러한 구별을 구성하는 관찰자의 측면에서의 몇몇 형이상학적 선입관 또는 어떤 임의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러므로 거시적 체계와 미시적 체계 간의 (잘못-정의된) 어떤 분할에 일치하는 도구와 객체 간 구별을 취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을 것이다. 즉 현상들이 그것들의 간-행을 통해 결정적으로 경계지워지고 속성화된 하부체계들 – 객체와 도구 - 로서만 구별가능하게 되는 물리 체계의 분리불가능성을 도출하기 때문에, 도구를 구성하는 것이 거시적 구성요소들 전부이고 객체들을 구성하는 것이 미시적 구성요소 전부라는 것을 사전에 또는 모든 경우에 명시될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한 정당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p.64> 우리가 활용가능한 유일하게 잘-정의된(애매하지 않은) 개념들은 특수한 실험적 배치 안에 체현된 특정 개념들이다. (...) 실험적 배치에 의해 명확하게 정의된 용어들이 우리가 재생가능한 현상들의 객관적 기술에 사용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논점은 보어의 설명에서, 실험적 배치들이 의미적 결정의 물질적 운반자들(purveyors)이라는 사실을 향해 즉각적으로 나아간다.

 

▶양자 역학에 관한 행위적 실재론의 해석

보어의 양자 물리학에 대한 해명의 포스트휴머니즘적 탐색을 제안

p.66> 포스트휴머니즘은 전적으로 비판적 자연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을 자연의

부분으로, 앎의 실천을 세계와 연루된 그리고 그것의 부분으로서의 자연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접근법이다. 특히 인간이 자연의 부분이라는 깨달음은 동시에 우리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과학적 실천이 자연 세계에 대한 외적 부과라기보다 자연적 과정이라는 사실에 관한 어떤 평가를 동반하는 과학적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와 같은 자연주의적 이해는 철학적 선입견 안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훌륭한 과학 이론들 안에 근거지워질 것이며, 우리가 과학을 바깥으로부터 자연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내부에서 또는 그것에 의해 수행되는 어떤 자연적 능동성으로 이해하게 할 것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그리고 과학적 실천을 자연적 과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실천 – 특히 인과적 간-행 - 은 보어적 접근법의 기본적 가르침이다. 어떤 의미에서 요구되는 것은 보어를 보다 전반적인 자연주의로 밀어 붙이는 것이다

 

1. 행위적 실재론: 존재론적으로 현상들을 이해하기, 또는 관계적인 보어적 존재론

p.67> 특히, 나는 고유한 경계들과 속성들을 가진 독립적 객체들이 아니라, 현상들에 우선적인 존재론적 단위를 부여한다. 나의 행위적 실재론의 탐구에서, 현상은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인식론적인 분리불가능성만을 단순히 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상들은 간-행하는 ‘행위소들’ 의 존재론적 분리불가능성이다. 즉 현상들은 존재론적 얽힘들이다. 중요하게도 내 생각에, 현상은 단순한 실험실 고안물이 아니다. 현상은 어떤 새로운 존재론을 위한 기초다. 현상은 실험실에서 관찰된 것이지만, 그것들은 그것 이상이다. 즉 그것들은 존재의 기초적 단위들이다.

현상은 존재론적으로 원초적인 관계, 즉 선재하는 관계항 없는 관계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과성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근본적인 개념적 전환을 드러내는 간-행이라는 생각에 기반하여, 나는 현상에 속하는 ‘구성요소들’의 경계들과 속성들이 결정되고, 세계에 과한 개별적인 물질적 표현들이 의미있어지는 것이 바로 이 특수한 행위적 ‘간-행들’을 통해서라고 논증한다.

p.69> 세계는 현상들로 구성된다. 과학적 실천은 특수한 현상들을 드러내는 얽힘의 특수한 형식들이다. 결국 내가 제안하고 있는 바는 실재론적 해석이다. 과학적 실천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행위적 실재론의 함축은 8장에서 더 탐구된다.

 

2. 보잘 것 없는 실험실 측정을 넘어

p.70> 행위적 실재론은 물리학이 우리에게 ‘보잘 것 없는 실험실 작업’에 대해 말해주는 것 너머 이론의 더 커다란 함축들을 통해 사유를 위한 어떤 틀거리를 제공한다. 존재론적 함축을 신중하게 취함으로써, 행위적 실재론은 또한 실험실에서 발생한 것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한다.

p.71> 만약 측정이 현상들이 특수한 존재론적 얽힘이 있는 다른 현상에 의한 어떤 현상의 한 부분의 간-행적 형성과정, 즉 세계의 특수한 물질적 배치라면, 거기에는 측정을 환원불가능하게 인간 중심성으로 만드는, 그 측정의 본성에 고유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현상은 실험실에서 제작된 단순한 인간적 고안물이 아니다. 현상은 실재를 구성한다. 세계의 일부는 언제나 세계의 다른 일부와 간-행하고 있으며, 존재의 여러 의미가 – 경계들, 속성들, 원인과 결과와 더불어 - 행위소의 전진적인 썰물과 밀물 안에서 수립되는 것은 바로 특수한 간-행들을 통해서다. 여기에는 그 어떤 선재하는, 분리되어 결정하는, 구경꾼이나 간-행의 필수적인 성분으로 덧붙여지는 ‘인간’이라고 불리는 개별실체들이 없다. 오히려 ‘인간’이 특수한 현상들의 구성에서 역할을 맡음으로서 등장하는 한에서, 그들은 세계의 보다 큰 물질적 배치 또는 오히려 전진적인 재배치의 부분으로서 그렇게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아무론 특권적인 위상도 주어지지 않으며, 이것이 정확한 논점이다. ‘인간’은 여타 모든 다른 물리적 체계들처럼 출현하는 현상이다.

 

3. 객관성의 인식론적 개념 너머

p.72> ‘측정’은 인과적 간-행들이다. 그것들은 그 배치와 작동을 위해 인간에 의존하는 단순한 실험실 고안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론에 의해 해명되지 않는 특수한 행위항들의 인공물이 아니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은 ‘원인’에 따른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 있는 두 가지 물리적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떤 인간 관찰자도 요청되지 않는다(‘인간’이 실천의 부분으로 출현할지라도). 그리고 객관성은 인간 관찰자라는 측면에서 정의되지 않는다. 실험실 결과들에 대한 명확한 소통을 촉진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객관성은 어떤 고유한 존재론적 분리가능성, 즉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절대적 외재성의 관계에 기반하지 않으며, 간-행적으로 수립된 행위적 분리가능성, 즉 현상들 내부 외재성의 관계에 기반한다.

 

4. 인간 지식에 관한 질문 너머

p.73> 인식에 있어서 구경꾼 이론과는 대조적으로 쟁점은 위나 바깥으로부터 오는 세계에 관한 인식이 아니라, 존재의 부분으로의 앎이다. 사실상 행위적 실재론의 공식은 앎의 존재론에 관한 앞선 질문을 가져오는 것이다. 인식론에 대한 전통적 접근법 안에서, 아는 주체는 완전히 형성된 인식에 도래하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고, 자족적이며 독립적인 합리적 행위항이다. 그러나 만약 앎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이라면, 즉 우리의 가장 훌륭한 과학 이론들의 측면에서 이해되는 것이라면, 그 점에서 그것은 아는 자와 알려지는 것 사이의 관계가 전통적인 철학적 모델을 다르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p.74> 앎은 어떤 관념적 사태 또는 인간의 예외적인 생득권으로서의 어떤 능력도 아니다. 앎은 물질적 실천, 세계의 부분이 그것의 미분적인 사유가능성 안에서 그것이 부분인 바에 대한 또는 그것을 위한 그 세계의 다른 부분에 대해 미분적으로 이해가능하게 되는 세계로의 어떤 특수한 참여이다.

 

5. 측정의 문제에 대하여

p.78> (행위적 절단들) 이것은 모두 우리가 어디에 절단을 놓는지의 문제다. ‘측정 문제’의 해결은 상이한 절단들이 물질이 되는 차이들을 생산하는 방법에 참여함으로써, 그것들의 특수성에 있어서 물체들 위의 표시들에 대한 사유가능성의 문제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p.79> 우리는 결정값이 측정 중에 어떤 특정한 속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얽힘을 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물리적 붕괴도 포함되지 않는다. 쟁점은 행위적 절단의 수립, 즉 현상 내부에서 우발적 분리가능성의 수립이다. 행위적 절단은 현상 내부의 존재론적 결정성과 측정 간-행들을 통해 발생하는 얽힘의 확장을 수립한다.

 

6. 양자 역학과 우주론: 우주에 대한 파동 함수를 존재하는가?

p.80> 뒤따르는 것은 우주에 그 어떤 바깥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전체 체계를 기술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에 따라 기술은 언제나 내부로부터 생긴다. 즉 오로지 세계의 부분만이 하나씩 스스로에게 이해가능하게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세계의 다른 부분이 그것에 대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는 그 부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

p.81> 보어의 철학-물리학에 관한 행위적 실재론의 탐구작업은 그의 이론이 가진 암시적인 존재론적 차원들을 분명하게 하고, 이러한 통찰들을 그것의 인간주의적 근거로부터 떨어트려 놓으면서, 그의 많은 통찰들을 신중하게 취한다. (...) 행위적 실재론은 인간에게 이론 안의 특권적 위상을 부여하기보다, ‘인간’의 간-행적 출현을 해명하는 이론을 여타 물리적 체계 가운데 어떤 특수하게 차이화된[미분화된] 현상들, 즉 세계의 차이화하는[미분화하는] 생성의 특수한 배치들로 요청한다. (...) 보어의 사유에 관한 나의 포스트휴먼적 탐구작업은 인간을 이론 주위를 배회하는 어떤 보충적 체계로서가 아니라 이 관계적 존재론의 용어들 내부에서 해명될 필요가 있는 자연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질문들---

p.19> 어떤 얽힌 상태에 관한 수학적 정의: 양자 얽힘이란 무엇인가? 중첩과 마찬가지로 얽힘은 특유하게 양자역학적이다. 즉 이는 그 어떤 고전 물리학과도 상응하지 않는 입장의 행위에 관한 상을 나타낸다. 얽힌 상태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위에서 고려했던 바, 두 가지 스핀 고유상태, 즉 ‘위’ 또는 ‘아래’를 가진 입자의 예로 돌아가자. 얽힘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어도 그와 같은 입자 두 개, A와 B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Q. 두 입자에 대한 얽힘을 방정식에 의해 부호화해서 설명하고 있는 듯한데 제가 방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이것에 대한 부연 설명이 듣고 싶습니다.

 

p.48> 상보성의 기초는 바로 존재론적 분리불가능성 또는 객체와 행위소들의 얽힘이다. 이는 슈뢰딩거의 얽힘 개념과 대조될 수 있는데, 이는 명확히 인식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보어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얽힘을 이해한다. 보어에게 현상들 –객체들과 관찰 행위소의 얽힘– 은 물리적 실재를 구성한다. 현상들은 측정된 속성들의 객관적 지시체이다. 상보성은 존재적 원리이다.

Q.바라드의 얽힘은 보어의 존재론적 얽힘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데 슈뢰딩거의 인식의 얽힘과 바라드의 얽힘의 차이를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얽힘의 차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바라드의 얽힘이 휠씬 더 복잡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바라드의 존재-인식-윤리론에서 슈뢰딩거의 얽힘도 함께 횡단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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