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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 (카렌 바라드 지음, 박준영, 전방욱 역)

1장 우주의 중간에서 만나기

자연의 본성과 변화을 위한 가능성들

(40-41) 바라드의 존재인식론적 틀을 ‘행위 실재론’으로 부른다. 행위 실재론은 단어와 사물 간의 대응 관계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그 대신 담론적 실천들이 물질적 현상들과 어떻게 관련되는가에 관한 설명을 제시한다. 행위 실재론은 실재론과 사회구성주의의 전통적 형식 사이의 부적절한 논쟁을 따르는 경향을 떠남으로써, 논점을 (과학적인 그리고 이런저런) 재현의 본성으로부터 담론적 실천들(기술과학적인 것을 포함하여)의 본성으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이론적 틀에서 관건적인 것은 실천의 물질적 본성과 그것이 물질이 되는 방식을 사유하고자 하는 강력한 시도이다.

재현주의로부터 수행성으로

 

“우리가 사물과 말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우리가 우리가 보는 바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바를 본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이 이어져 있다고 믿을 수 있다.”(들뢰즈, <푸코>)

버틀러의 정치적 재현주의 문제 요약:

“푸코는 권력의 사법체계가 계속해서 재현됨으로써 주체를 생산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권력의 사법적 개념은 순수하게 부정적 의미로 정치적 삶을 규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와 같은 구조들에 의해 규제되는 주체는 그러한 구조들의 요청에 조응하여 그것들에 종속됨으로써, 형성되고, 정의되고 또한 재생산된다. 만약 이러한 분석이 맞다면, 여성들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재현하는 언어와 정치의 사법적 구성은 그 자체 담론적 구성이며 재현적 정치의 모든 과학학적 접근들이 재현주의의 비판인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 주체는 그러한 주체의 해방을 촉진한다고 여겨지는 바로 그러한 정치 체계에 의해 담론적으로 구성된다”(Butler 1990)

재현주의는 어떤 상식적인 호소력을 가지고서 서구 문화 안에 너무나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완전히 자연스럽지는 않더라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현주의는 (‘자연 자체’와 같이 단순히 그것에 관한 우리의 재현이 아니라) 역사를 가진다. 해킹은 재현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원자와 허공에 관한 데모크리토스의 꿈에 이르기까지 추적한다. 해킹의 인류학적 철학에 따르면, 재현은 데모크리토스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즉 “‘실재’라는 단어는 처음에 단지 자격 없는 유사성을 의미했다”(1983, 142).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재현과 재현되는 것 사이의 간격의 가능성을 출현시킨다. ‘외양’은 그것의 첫 번째 모습을 형성한다. 테이블은 나무나 허공을 움직이는 낱낱의 개별체들의 더미로 만들어진 단단한 물질인가? 원자론은어떤 재현이 실재인지에 대한 질문을 노정한다. 철학에서 실재론의 문제는 원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나온다.

(43)루즈는 데카르트적 부산물로서 재현주의를 지목한다. 이것은 특히 아는 주체의 노선을 따라 이루어지는 ‘내부적인 것’과 ‘외부적인 것’ 사이의 데카르트적 분할의 비가시적인 결과이다

“우리가 의미하는 바, 또는 우리의 언어적 수행이 말하는 바를, 우리가 그러한 말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손쉽게 알 수 있다는 가정은 데카르트적 전통이다. 이는 데카르트 주장의 언어적 변형으로서, 우리가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해 결여한 우리의 사유들의 내용에 대한 어떤 직접적이고 특권적인 접근을 가진다는 것이다”(Rouse 1996, 209).

사물에 덧씌운 재현에 대한 우리의 접근 안에 정립한 비대칭적 믿음은 서구 철학 전통의 부분으로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연적인 믿음인 것이지 어떤 논리적 필연성은 아니다. 즉 단순히 정신의 어떤 데카르트적 습관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안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데카르트적 의심을 향한 건강한 회의주의라고 하겠다.

(43-44) 재현주의의 기초 전제들을 회피하는 확고한 철학적 입장들을 발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자연문화적 실천들에 관한 수행적 이해는 하나의 대안이다. 수행적 접근들은 한편으로 재현물과 재현되기를 기다리는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개별체들이 있다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현하기의 실천들 또는 수행들에 관한 탐구뿐 아니라 그러한 실천들과 그 효과를 위한 조건들의 생산적 결과들에 초점을 맞추라는 재현주의적 주장을 의문에 붙인다. 예컨대 과학적 실천의 수행적 이해는 앎이 거리를 두고 재현하는 것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세계와의 어떤 직접적인 물질적 연루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사유한다. 중요하게도 문제가 되는 것은 정확히 이러한 제정행위(enactments)의 본성이다. 행위함이나 수행에 관한 어떤 임의적인 개념도 수행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수행적 제정행위(이것은 연극적인 수행과 같은 것이 아니다)에 연루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행적 사유는 재현주의로부터의 어떤 갑작스러운 단절을 만들면서, 다소간의 예를 들자면 존재, 동일성, 물질, 담론, 인과성, 역동성 그리고 행위소와 같은 다수의 기초적인 관념들의 본성에 관한 재사유를 요청한다.

  재현주의 없는 실재론

 

(44) 19세기 말 즈음, 물리학자들은 원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대개 반실재론자들이었다. 원자는 ‘재현적 허구’로 생각되었지, 물질의 조각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은 개별적 원자들은 주사터널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s, STM)을 사용하여 보면 규칙적으로 이미지화되며 개개 원자들을 보는데 뿐만 아니라 집어서 동시에(!) 옮기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철학자 이안 해킹은 무엇이 실제적인지에 대한 규준으로 조작가능성(manipulability) - 즉 효과적으로 개입할 능력 –을 사용한다. “개별체를 실험하는 것이 그것이 존재한다고 당신이 믿는 바를 분명히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개별체를 조작하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실험하기 위해 필요하다” 해킹의 생각에 재현하기(이론화하기)보다 개입하기(즉 실험하기)가 실재론의 토대인 것.

(46) 돈 아이글러(Don Eigler)와 같은 STM 전문가들은 주사형 터널 현미경을 사용한 이미지 구성은 시각이라기보다 촉각과 관련되는 어떤 만남과 더 많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STM은 터널 전류를 사용하여 표면을 훑음으로써, 그 표면을 ‘느끼기’ 위해 작동한다. STM 조작자는 단순히 어떤 시료를 삽입하고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고, 봄을 제기하는 것(voila), 어떤 이미지가 출현하는 것이다.

(48) 보어와 갤리슨에 따르면, 세계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생각은 그 물질적 계기들의 하중으로부터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론화하는 것은 물질 세계를 뒤에 남겨 두고, 정신의 드높은 공간이 객관적 반성을 가능하게 하는 곳에 있는 순수 이데아들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다. 이론화하기는 실험하기와 마찬가지로 어떤 물질적 실천이다.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이론가와 실험가들 둘 모두 이론화하기와 실험하기의 상호간 엮인 실천들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인정될 수 있다.

(49) 해킹과 마찬가지로 실천의 물질적 본성을 신중하게 취급하는 과학적 실천들에 관한 비재현주의적인 실재론적 사고에 흥미를 가진다. 해킹의 실재론은 개별실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들과 앎과 생성의 얽힌 물질적 실천들을 향한다. 현상들은 바라드의 행위실재론적 사유에 따르면, 개별적 실체들도 아니고 정신적 인상들도 아니며, 얽힌 물질적 행위소들이다행위 실재론은 해킹의 재현주의 비판에 관한 노고들을 제공한다. 즉 그것은 실험하기와 이론화하기가 객체들과 주체들 그리고 물질과 의미화의 생산에 있어서 구성적 역할을 하는 역동적 실천이라는 것이다. 이론화하기와 실험하기는 (바깥으로부터) 끼어들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그리고 부분적으로 현상들이 생산되는 간-행에 관한 것이다.

(51) 새로운 정치적 집합을 위한 어떠한 제안이든지 단순히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구별들을 생산하는 실천들 만이 아니라, 미분적 구성이 생산되는 실천들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재현주의(그것의 개체주의 형이상학과 더불어)는 단순히 완고한 질서로 재장착될 것이다. 이것이 과학학이 우리의 가장 탁월한 정치 이론가들과 사회 이론가들이 제시해야 하는 통찰들을 무시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다.

 

수행성과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행위소

버틀러는 젠더를 자연적으로 성화된 신체에 대한 어떤 문화적 기입으로 형상화하는 사회구성주의 모델을 문제시한다. 신체가 침묵하는 실체, 역사나 문화가 젠더의 표식을 그 위에 만드는 어떤 수동적인 서판이라는 가설은 그 자신의 역사성의 물질을 박탈하는 것이며, 행위소의 가능성들을 제한하는 것이고, 문제적인 자연-문화 이분법, 바로 이 구별에 관련해서 단순히 성-젠더 구별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53) 버틀러의 젠더가 수행된다는 주장은 이 젠더를 선택하려는 어떤 의도적인 주체에 의해 행위되는 일종의 연극적 수행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그와 같은 오독은 역설적이게도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적 주체를 정면에 재도입함으로써, 후기구조주의의 반휴머니즘을 약화시키게 된다. 수행성은 “이미 수립된 주체에 의해 활용되는 단일한 행위가 아니고, 주체들이 사회적 존재로 요청되는 강력하고 교묘한 방식들 중 하나가 사회 집단들을 확산시키는 것, 다시 말해 주체가 요구에 따라 여러 가지 확산적이고 강력한 사회성 안으로 구체화되는 것이다”(Butler 1997a, 160). 젠더 수행성은 젠더화된 주체를 구성한다(그러나 충분히 결정하지 않는다). 버틀러는 주체의 젠더화된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 푸코의 규율권력과 담론적 실천에 관한 후기구조주의를 끌어들인다.

  행위적 실재론과 양자물리학

 

보어의 양자물리학에 관한 탐구는 자연의 본성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그리고 다른 여타의 사회적 실천의 본성에 대한 질문들을 열어놓는다. 특히 우리의 가장 훌륭한 과학이론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따라 자연의 본성과 과학의 본성 둘 모두를 이해하기 위한 보어의 자연주의적 실행은 그가 양자물리학 교훈의 핵심을 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보어는 측정 과정에 관한 어떤 비판적 평가로 시작한다. 측정은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만남이다. 이것은 과학적 지식의 구축에서 어떤 강렬한 계기이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물질과 의미화가 만나는 순간이다.

(58)철학 없는 물리학은 기호들과 사물들을 조작하는 의미 없는 연습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물리적 세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철학은 세계 안에 그 어떤 기반도 없는 기호들과 사물들에 대해 의미를 만드는 연습일 수밖에 없다.

 

질문입니당~

(49) 심지어 몇몇 페미니스트 과학학의 접근들 조차 젠더, 인종, 민족성, 계급 그리고 섹슈얼리티같은 사회적 변항이 개별적 인격들의 속성들이라는 어떤 주어진 것으로 취급하며, 그 결과 개체주의 형이상학이 재도입된다. 당연시되는 자연-객체는 추방되지만, 담론적 실천 – 특히 푸코가 담론-권력-지식의 교차지점이라는 난문에서 고려한 것, 예컨대 주체의 담론적 구성 - 에 대한 질문은 무시된다. 이 중요한 논점이 특유한 역설적 경향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체 생산이 모조리 언어에 대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사실상 푸코의 논점은 정확히 언어적 재현이라는 문제로부터 떠나, 그 대신에 그것들의 물질성에 있어서 담론적 실천의 구성적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회 이론가들은 재현주의의 틀 너머로 가는 정치적 발명의 가능성들에 관한 합의를 구성하기 위해 분투한다”고 바라드는 말하고 있는데...

Q. 담론을 구성하는 이미지 텍스트 등은 언어인 동시에 물질이 아닌가요? 즉, 언어적 재현, 이미지적 재현은 곧 물질로서의 담론적 실천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또한 재현의 문제를 떠나서 수행성 실천이 가능한가도 여전히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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