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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행위에 대한 약간의 놀라움: 사실, 물신, 팩티쉬

“우리가 실행의 가르침을 들을 때에는 너무도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이론의 가르침을 들을 때면 너무도 모순적이고 뒤틀려 있고 불분명해 보인다.”(423)

실행과 이론의 괴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답은 “파괴의 지점”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423).

분할과 분리를 향유하며 파괴·복수·비판의 망치를 내려치는 우상파괴자들이 있다. 이들의 공격을 받아 남은 잔해에 잔해를 보태는 대신 그들의 망치를 중지시키는 편이 낫겠다. 그러기 위해서 근대적 이성 확장 기획에 복무했던 비평가 중 하나를 살펴볼 것인데, 그는 왜 자신이 비판의 제스쳐를 멈췄어야만 했는지에 관해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 된 자이다.

그 비평가, 자간나트의 에피소드는 우상에 감정을 투사한 쪽은 우상파괴자였지 우상파괴자의 감상주의가 질료로 삼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우상파괴자야말로 우상에 대한 믿음을 느끼는 유일한 자다(429). 믿음과 조작이라는 개념을 ‘발명’하고 이 개념을 물신의 역할과 정반대로 가동시키는 이들이 비판이론가들이다.

‘물신’과 ‘사실’의 어원은 다르지 않다. ‘제조’이다. 사실은 허상을 깨부수는 무기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의 무대 장막 뒤 역사와 세팅을 덧붙여 보면 사실이라는 망치의 힘은 약화된다. 대신, 사실은 가늘고 길고 복잡하게 혈관화되어 순환하는 지시체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실험실의 사실에 제조를, 물신에 제작자의 (명시적이고 성찰적인) 제조를 더하면 비판의 망치와 모루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팩티쉬factish가 나타난다. 우상파괴주의가 파괴했어도 늘 거기 있었었고 일신을 거듭해온데다 행위와 논증(acting and arguing)에 필수적인 그것, 바로 팩티쉬 말이다.

팩티쉬를 통한다면, 근대주의자와 탈근대주의자 모두가 자기들 기획의 건드릴 수 없는 핵심인 ‘믿음’을 건드릴 수 없는 채로 두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순진하게 믿는다는 것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보건대, 두 개 형태의 불가지론이 존재한다. 첫째, 믿음의 내용에 관한 선택적 거부로 구성된 불가지론, 둘째, 의심 그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 정의되는 불가지론이 그것이다.

비판적인 모더니스트는 두 부류의 자원을 한 번에 다 사용하는 꾀를 부린다. 한쪽으로는 팩티쉬를, 다른 한쪽으로는 사실(누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을 물신과 구분하는 모순적 이론을 쓴다. 우상파괴를 보호 장치로 삼아 실험실이라는 방음 처리된 자궁 안에서 원하는 만큼 팩티쉬를 생산한다. 결과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된 ‘이론’이 만들어진다. 점점 간극이 벌어져 위에서는, 특히 과학 이론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확실히 분리되어 있지만, 아래에서는, 특히 과학 실행에서 주체와 객체가 엄청나게 섞여 있다. 높은 곳에서, 사실과 가치는 따로 떨어져 있지만 낮은 곳에서 사실과 가치는 혼동되고 재분배되고 주거니 받거니 된다.

팩티쉬는 명징하게 빛나는 이론으로 대체되거나, 침묵되거나, 절대적 구분에 따라서 비가시적이며 등록 불가능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근대인은 팩티쉬를 보이지 않게 하는 그 삼중 구조를 안다. 근대인은 우상을 파괴하면서도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땜질하고 수리하다가 복구 불가능을 깨닫고는 절망하고, 간절해지다가 대리물을 고안해낸다. 심리와 활동이 복잡하고도 변덕스럽게 이행되어 감에 따라 근대인은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급적 우위, 근대화의 위세, 지역 신의 힘을 뒷배로 가졌다. 근대화 투쟁의 성공 여부가 어떻든 “결국에는 천민이 지는 것 같다.”(442)

그렇다면 정치 행위 모델의 수를 어떻게 증식하고, 반동의 정치를 계몽의 정치와 대결시키는 개념을 무효화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의 배경도법을 바꾸고 진보 개념에 대안을 제공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하여 다시 팩티쉬의 보호 아래 살게 되면 우리 삶에서 최소한 세 가지가 변한다. 첫째, 행위와 지배이다. 사실이 제조되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는바, ‘행위-만들기fait-faire’가 존재하며 행위는 분기, 사건, 상황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지배는 일방적이지 않다.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것은 상호 침투하고 서로를 조금씩 점유한다. 둘째, 양육되거나 파괴될 믿음도, 망치로 이용될 사실도 없어지므로, “각양각색의 실제적 존재론에 직면하게 된다.”(453)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비난받는 데 지쳤다고 말하자. 셋째, 대중의 세심한 배려 아래 돌봄과 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것이 팩티쉬의 역할이기도 했다. 팩티쉬는 주의caution와 주목publication을 접언하는 데 특출하다.

이제 정치에 대한 다른 모델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가 항상 코스모폴리틱스의 관계되어 왔음을 보아야 한다. 팩티쉬가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실제적 존재론을 품는 정치적 모델을 떠올릴 수 있을 터이다.

지식은 스스로 팩티쉬가 되어야 한다. 그간의 주체-객체 이분법은 인간성 자체에 대해 정의 내리는 능력을 잃어왔다. 왜냐하면 비인간(적)을 이해할 여지를 매번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팩티쉬의 운동 안에서라면, 주체-객체 이분법에 의해 접속 불가능한 것으로 떠밀려났던 비인간성이 인간성의 녹지대에 있음을 보게 될 터이다.

 

질문 1: 라투르는 ‘제조’에 관해서, 잘 제조된 경우와 잘못 제조된 경우를 나누던가요?

질문 2: 라투르식으로 세상을 본다면, 정작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일’은 팩티쉬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와 관련한 실천의 구체적 예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팩티쉬를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 다시 또 언어와 이론으로 재현되는 한계에 봉착하지 않는지요? 선생님들의 고견을 구합니다.

질문 3: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442쪽 “결국에는 천민이 지는 것 같다”는 발언이 재밌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더 큰 관점에서 보자면 계급도 의미 없고 지배도 의미 없을 수 있겠습니다만, 라투르가의 광대한 관대함이 사치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해서, 이번만 라투르한테 신경질 좀 내겠습니다.) 혹시 '관대'  그 자체가 라투르의 세계관에 적용될 수 없는 표현어인 것은 아닌지요? 

 

10장. 결론: 무엇이 판도라의 희망을 자유롭게 할까?

근대주의의 합의 장치들을 바꾸기 위해 생각해야 할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론이라는 인공물 전체를 대체해야 한다. 내부의 정신에 침잠하고 논리에 천착하는 언어의 죄수에서 벗어나 “신체들, 기구들, 과학자들, 제도들로 풍부하게 혈관화된 사회”, 즉 접언된 세계를 진실되게 말해야 할 것이다(468). 둘째, 철저히 ‘분리’되어, 외부에 관해 자신이 말하는 것을 ‘확신’하는 이중 속박의 구조 속 삶 대신 “인간 집합체와 관련되기 위해 비인간들을 사회화”하고 ‘순환하는 지시체’가 공급되는 일상을 과학 전개의 공간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468). 셋째, 자연과 대치하는 사회 대신,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포괄하는 집합체collective로의 사회화와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존재자들의 정치를 신경써야 한다. 넷째, 지배의 자리를 그대로 놔둔 채 지배자만 바꾸는 일을 멈추길 권한다. 실로 지배자가 없으며, 행위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얽힘이 지속되는 ‘테크닉의 영역’을 도입해야 한다.

깨진 팩티쉬를 모아 복구하고자 애쓰며, 인간과 비인간의 연합을 염두에 둔 정치 재발명의 전선에서 우리는 무기 대신 시민의 복장을 하고 있을 터이다(472-4).

 

질문 4: 라투르의 철학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더 잘 살기 위해서’ 인간과 비인간이 연합한 집합체의 정치를 재발명하자는 것인가 봅니다? 발명보다 재발명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라투르가 민주주의를 지지하지, 폐기하는 입장은 아니라는 냄새가 그의 화려한 수사 사이로 풍겨 나오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눈앞에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는 언어의 전유자들인 인간의 몫이고, 비인간은 결국 인간에 의해 대변, 혹은 대리될 수밖에 없지 않을는지요? 그 가운데에서 비인간이 합당한 제자리를 누리고 순환하는 지시체가 과연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질문 5: 나, 라투르는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남은 희망을 되찾기 위해 새롭고 복잡한 장치 만들기를 시도해 본 것이고, 다음에는 성공할 것이라고 이 책을 끝맺고 있습니다. 『판도라의 희망』 이후 성공을 향해 진일보한 그의 논의를 접할 논저로 추천해 주실만 한 것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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